1,094일째 술 한 방울 입에 안 댔다
3년 전 술을 끊었던 것은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섞여서 내리게 된 결정으로 다분히 충동적이었고, 과체중인 사람들이 늦잠 자고 일어나 자신의 부은 얼굴을 보면서 흔하게 내뱉는 '나 이제 치킨 끊을 거야' 같은 의미 없는 다짐 같은 거였다.
당시는 겨울방학 끝무렵이었다. 직업이 선생인 나 같은 사람들은 신학기를 맡는 2월 말 무렵이면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8월 말보다 조금은 더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개강 전 마음을 다 잡을 겸 같이 산티아고를 걸었던 몇몇과 겨울 지리산을 걸으러 하동 어디쯤에 있었는데 전날은 눈 내린 지리산중을 하루 종일 걷고 나서 일행들과 술을 삐뚤어지도록 마시고 곯아떨어졌었다. 늘 그렇지만 술 깬 다음날은 삶이 헛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날 아침 무렵에도 나는 멍한 시선을 아무 곳에나 던져두고 가야 할 길, 남은 인생을 물끄러미 그리고 처연하게 바라보았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 그러나, 내 숨결에서 느껴지는 술냄새가 다짐을 무색하게 했다.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 하지만, 한쪽으로 밀어 둔 빈 술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 준비를 착실하게 해야 해. 다용도실 구석에 쌓아 둔 와인병들이 떠 올랐다. 신학기를 맞아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해 보려는 구상들을 해 보지만 번번이 술과 술이 불러오는 부작용들이 계획을 막아섰다. 늘 맞서지만 아주 강한 상대에게 연거푸 패배를 맛보는 기분.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가 많았던 것처럼 술을 그만 마셔야 하는 이유도 결코 적지 않았다. 눈 내리는 지리산 속 호텔에서 속이 빈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술 때문에 망가진 심신이 초라하고 궁색해 보였다. 또 이렇게 하루 이틀 살다가 다시 술병을 돌려 따겠지. 몽롱해지면 역시 애초에 마시려던 양보다 더 마실 테고, 그렇게 취하게 되면 스스로 연민에 빠져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또 실망을 안겨주겠지. 이 모든 무한반복 음주생활에 한없는 염증이 몰려왔다.
이쯤에서 이 못난 버릇을 끝내자.
그렇게 단호하지 않았고 자칫 이전까지의 여러 번 금주 시도 중 하나로 묻혀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술을 그만 마시기로 결정하면서 술만 마시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라 술과 함께한 모든 것들을 함께 순장시켜 버리기로 했다.
제일 쉬운 일부터 먼저 했다. 집으로 돌아와 집안 곳곳에 쟁여두었던 술과 술 관련 물건들을 꺼내어 처분했다. 아껴두고 좋은 날 마시려고 깊숙한 곳에 감춰둔 와인과 21년 산 위스키가 목덜미를 잡혀 나왔고 그늘진 상온에 보관 중이던 가볍게 시작할 때 흥을 돋우는 용도의 크래프트 맥주, 면세점에서 사 온 마오타이와 수정방 백주병도 도열했다. '데일리'로 마시던 코스트코 와인, 박스채로 사다가 먹다 남긴 국산 라거 맥주, 그 맥주와 섞어 마실 용도로 준비했던 소주도 있었다. 예전에도 술을 그만 마시겠다고 쌓아 둔 술을 모조리 개수대에 흘려버린 적이 있었는데 요번에는 술 좋아하는 친척들과 조카들에게 선물했다.
그게 끝일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매우 고급진 독일제 와인오프너와 포일커터, 와인 스토퍼로 이루어진 세트가 있었고 그것 말고도 여러 재질의 오프너와 다양한 용도와 모양의 전용 맥주잔들, 위스키용 샷 글라스, 병과 캔 오프너 등도 꽤 많이 보였다. 싸구려 와인을 고급 와인으로 변모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산 수제 디캔터와 잘토 글라스, 섹시하게 쭉 뻗은 샴페인 글라스, 와인 종류대로 사 모은 리델 글라스가 수납장 한 칸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반에 반값에 올리고, 떨이 가격으로 당근마켓에 후려치니 앞 다투어 사람들이 몰려와 모조리 집어갔다. 많이들 마시시오, 나는 이제 그만이오!
그렇게 내가 처분하기로 한 것들은 술과 술 마시는 도구들 뿐만이 아니었다.
술과 함께 했던 액티비티, 즉 등산, 트레킹, 여행, 백패킹, 캠핑을 버렸다. 그리고 그런 액티비티를 하면서 어울렸던 사람들도 버렸다. 알던 사람들과 산을 다녔던 건 아니고 산을 다니다가 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어찌 됐든 사람을 잃는 것은 편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산을 함께 했던 것처럼 늘 술도 함께 한 사람들이라 그들과 술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입했던 동네 산악회, 산악동호회, 안내산악회 카페, 산티아고 카페를 떠났다. 액티비티와 사람을 떠나보내니 그들과 함께 한 지리산 둘레길, 제주올레길, 삼남길, 외씨버선길, 서울둘레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던 여러 길들, 설악산 서북능선, 지리 종주능선, 덕유산 육구 종주길들이 나에게서 멀어졌다.
애석하다. 그들은 잘못이 없는데 내 삐뚤어진 술버릇 탓에 애먼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창고 한쪽에 처박힌 내 배낭들, 신발장에서 빛을 못 보고 있는 등산화를 보면 오랫동안 연락 못한 친구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슬프다.
술과 산을 떠나보내고 내가 새로 맞이한 친구는 달리기였다.
무엇보다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활동이고 술은커녕 물만 잔뜩 마시게 되는 운동이라는 점, 아무리 오래 해도 한 두시간이면 끝난다는 점이 늘 술이 따르고 한나절 이상 걸리기 마련인 산행과 비교할 때 매력적이었다. 나의 달리기 속도는 느렸지만 다행히 실력과 관계없이 달리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트레킹과는 달리 액티비티를 마치고 나서도 하산주니 해단식이니 이름 붙인 술집을 향하는 뒤풀이 문화가 없었다. 단체로 마라톤 대회를 마친 뒤에 맥주와 막걸리를 펼쳐두기는 했지만 막상 몇 시간을 달리고 나서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친하게 된 이들끼리는 달리기를 마치고 맥주집으로 몰려가기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일부 젊은 축들에게나 적용되는 얘기였다.
3년이 흘렀다.
나는 정말로 지난 3년 동안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산엘 가지 않고 달리기를 하면서 버텼다.
이제 내일이면 꼬박 3년을 견뎌낸 것이다.
그동안을 돌이켜보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꾸준한 자기 단속이나 필사적인 금주의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고 의외로 술은 내 앞에서 유혹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회식 문화나 술을 같이 하던 직장 동료가 있지 않았고 길고 긴 방학은 달리기가 채워주었다. 예전처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천 킬로가 넘는 산티아고 길을 걷기는 했지만 갈리시아 뿔뽀를 탄산수와 먹어도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행지에서는 챙겨간 러닝화를 신고 낯선 코스에서 달리는 기쁨이 그 지역의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재미있었다.
나의 3년간 금주를 가장 반기는 건 당연하게도 나의 가족이다.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과 형, 누나도 반가워하고 기뻐하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동안 나의 음주벽으로 이런저런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사람들이라 나는 이제라도 그들에게 취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유쾌하고 기쁜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내 목소리가 취해 있으면 내가 아무리 진심이라 할지라도 아이들과 아내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술에 취해 흥이 나서 내가 뱉은 말들을 나는 다음날 기억해내지 못했고 큰 목소리로 다짐했던 내 말을 믿었던 가족들은 여러 차례 실망했던 것이다.
3년 내내 아빠가 맨 정신으로 깨어있었다는 것, 이것이 내 가족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금주로 포상처럼 내게 주어진 것은 오랜 음주로 얻은 질병인 끔찍한 '통풍'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발작과 발작이 몰고 오는 어마어마한 통증으로 늘 불안한 상태였던 나의 통풍은 한번 찾아오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고 발작에 대비해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술과 기름진 안주로 과도하게 발생한 퓨린을 억제하느라 매일 아침마다 복용했던 약은 금주 2년이 되어갈 무렵 그만 복용해도 좋다는 답을 얻어냈다. 매달 확인해 보던 요산 수치가 가라앉자 분기별로 혈액 검사를 늦추었고 술을 마시지 않고 달리기를 꾸준히 하면서 발작이 서서히 멈춘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3년 동안 한차례 건강 검진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5회 이상 고강도 운동을 하던 나에게는 당연히 모든 지표가 좋게 나왔다.
30년 넘게 마셨던 술을 3년간 끊었다. 30년 동안 술을 마셔서 좋았던 시간을 합하면 아마 한 달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3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아서 좋았던 시간은 고스란히 3년 동안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서 아쉽거나 후회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술과 함께라면 더 맛있었을 음식과 분위기가 있었겠지만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음료도 있고 술 때문에 좋아졌을 분위기라는 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다행히 이제 세상은 그렇게 술에 연연하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나의 금주 라이프는 나의 즐거움 달리기와 함께 계속 이어진다.
금주와 달리기는 정말 환상의 콤비였고 서로를 보완하고 채워주는, 사학연금보다 더 값진 내 노후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