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파요?

이유 없이 아플 리가 있나요

by 이프로

미국 가서 살면서 놀라게 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 하나는 미국인들의 타이레놀 사랑이었다.

타이레놀은 아세트 아미노펜 계열의 진통해열제이고 비슷한 효능의 이부프로펜 성분인 애드빌 역시 미국인들의 손 닿는 곳에 늘 있는 약인 것 같았다. 나 어릴 적에도 엄마 심부름으로 "사리돈"사러 약국엘 뛰어다녀오곤 했지만 미국인들처럼 수백 개들이 두통약을 어린아이들 캔디 사 먹듯 시장 볼 때 한통씩 쟁여두지는 않았다.

어쩌다 방학이 되면 한국에 놀러 오곤 했는데 그때 값싸고 환영받는 선물 중 하나는 타이레놀 선물이었다.

사리돈보다 신뢰감 가는 미국약이었고 한국에서는 열개들이 소포장으로만 팔았고 가격도 미국보다 비쌌는데 실제로는 같은 효능이겠지만 미국약이 더 잘 듣는다는 편견이 있었을 때라 누구나 환영했다.

친척들에게, 친구 부모님에게 타이레놀을 한 병씩 늠름하게 건네드리며 '온 가족이 평생 드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는데 내가 요즘 타이레놀을 소비하는 걸 보고 있으면 대용량 타이레놀 하나쯤 나 혼자서도 몇 달 내에 거뜬히 해치우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왜 이렇게 자주 머리가 아프지?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다. 머리가 이유 없이 자주 아프다면 심각하게 생각하고 정밀한 진단을 받아봐야겠지만 왜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건 심각한 게 아니라는.

그도 그럴 것이 맘 편히 쉬는 주말에 그런 두통을 느끼는 적은 별로 없다.

주로 주중에 아픈데 직장에서 아픈 것을 느끼는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대체로 퇴근하고 집에 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려면 두통이 느껴진다. 한번 느껴진 두통은 오래가도록 말끔히 사라지지 않고 온전히 이틀쯤 쉬면 사라진다. 머리가 아파서 달리기를 하거나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는데 운동할 때는 잠시 아픈 걸 잊는다. 잊는 것이지 사라지지 않는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 후 옷을 갈아입으면 어느새 두통도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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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타이레놀과 아드빌은 쪼잔한 열개들이 포장이 아니라 화끈한 390개, 360개들이 대용량이다.

그래서 종종 타이레놀을 먹는다.

처음에는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두통이 심한 상태로구나 자각하기도 하고 아내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타이레놀 빈봉투를 버리지 않고 주방 한쪽에 두기도 한다. 그러면 '어머, 당신 또 두통약 먹었어요?' 하고 놀라서 나에게 물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어머 당신도 타이레놀 먹었어요? 나도 먹었는데.' 하는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반응과 함께 '내일 나갔다 집에 올 때 약 좀 넉넉히 사 오세요.'라는 심부름까지 받게 된다.


내가 봤을 때 머리가 아픈 이유는 '하기 싫은 일'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오래 할 때 가장 증상이 심해지고 오래간다.

즐겁고 신나는 일을 할 때 예를 들어서 놀러 갈 계획을 짜거나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는 두통이 생기지 않는다. 일종의 꾀병인 듯 하지만 분명한 증상이고 자주 반복되면 좋지 않을 것이다. 두통을 참아내다가 결국 약을 먹는데 고통을 감내하며 견뎌내는 것보다는 약으로 증상을 가라앉히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이토록 오래도록 전 세계에서 많은 양의 타이레놀을 팔아먹고도 승승장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계속 머리가 아프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타이레놀은 가정의 상비약이 아니라 개인의 상비약이 되었고 이제 내 나이쯤이 되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손 닿는 곳에 넉넉한 양의 타이레놀을 비치하고 있어야 안심이 될 정도이다. 코로나로 국내에 인지도를 올린 타이레놀에 제발 아무리 자주, 오랫동안 먹어도 유해한 성분이 없기를 바라며 그동안 온 지구인들에게 돈을 많이 벌어먹었으면 약값도 좀 내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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