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road, street, avenue, boulevard, way, path, route, camino, via, calle
언어는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의미가 추가되거나 축소되기도 합니다.
시대마다 중대한 사건이 언어에 반영되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처럼 연이어 국가적인 재난을 당한 이후에 언어는 모질어지고 강한 발음으로 변합니다.
언어가 속한 국가나 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세분화되고 미묘한 차이에 따른 유사어가 생겨납니다.
길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단어는 길이 다입니다. 대부분의 명사가 한자어인 언어의 특성상 로路나 가街를
병행해서 씁니다.
우리나라가 길에 해당하는 단어에 인색한 것은 우리나라가 길을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오솔길 하나 있으면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길에 대한 인식도 차이가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워낙 평지가 적고 산이 많아서
길을 만들 생각이 엄두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 간에 장도 서고 물건이 오고 가기도 했을 텐데 오솔길로 버티다가
규모가 좀 필요하다 싶으면 그때에서야 달구지 하나 지나가는 소로를 하나 만들었지요.
그나마 흙길이어서 비가 오는 날이면 달구지고 뭐고 진창에 빠져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지요.
비 오는 날이면 그래서 온 국민이 공치는 날입니다. 이동불가.
널찍하고 빗물이 빠지는 신작로를 만들어준 일제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그래도 길을 넓히거나 단단하게 닦지 않은 이유는 우리에겐 지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양엔 있는데 서양엔 없는 물건 중에 하나가 지게일 것입니다.
반면에 서양엔 있는데 우리에겐 늦게 생긴 것이 수레와 전투용 마차이지요.
마차는 심지어 그 옛날 모세가 이집트에서 도망 나올 때에도 등장합니다.
지게가 지나갈 수 있고 마을 어르신 양반이 타고 지나갈 가마가 지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만족했습니다.
동네 안에서는 집을 먼저 짓고 나서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간격이 자연스럽게 길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골목길의 탄생입니다.
2000년 전, 2500년 전 로마는 길에 관한 뛰어난 예지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길이 있어야 통치가 가능하고 통신이 원활하게 되며 제국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을 건국 초기부터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만들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견디고 무기와 장비를 실은 무거운 수레와
수천수만의 병력이 이동해도 견고한 '고속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투스카니 지방인 에트루리아 인들의 솜씨가 빛을 발한 아치 기술도 단단히 한몫했습니다.
수많은 수로와 다리, 앰파이시어터라고 부르는 원형극장을 건설하는데 아치가 없었더라면
공기와 자재는 몇 배로 늘어났을 것입니다.
속주를 만들면서 길을 닦고, 전쟁하러 가는 길에 길을 만들며 갔던 로마 병사들은
공병이자 육군 보병이었고
한번 만들어진 길과 교량, 수로는 꾸준히 관리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어매이징 한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근동을 가면 어느 나라 어느 곳이든
로마의 흔적을 지나칠 수밖에 없는데 그중 가장 흔한 것은 길과 수로입니다.
카미노에서는 로마길을 그대로 사용하는 구간이 많습니다.
2000년 전 로마 병사들과 로마 병참 수레들이 다니던 길을 우리가
걷는 것입니다.
은의 길 Via de La Plata은 상당 구간이 로마길이어서 로마식 이정표, 마일스톤이 동네 강아지보다
자주 발에 차입니다.
이 길로 로마는 전선의 긴급상황을 로마 본국에 알리는 파발마가 달렸고
요소마다 배치된 역참에서는 교체할 말들을 넉넉히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가장 서쪽인 스페인에서 로마까지, 가장 동쪽인 시리아에서 로마까지
뉴스와 지령은 지체 없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이제는 온 세계가 경이로워하는 빠르고 안전한 길인 인터넷망과 사통팔달의 고속도로 국도를 갖추고 있는
대한민국.
한국이 이렇게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입성한 데에는 뒤늦게 길의 중요성을 깨닫고 21세기형 고속도로인
인터넷망의 구축과 관리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마 길 얘기하려다가 국뽕에 차서 마무리를 하게 되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