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외향인이라도 이런 말을 한 번쯤은 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말을 매일 하는, 습관이 된 나머지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를 남발하는 자타공인 집순이다.
만보기 어플은 있으나 마나. 심지어 간단하게 화장실 갈 때에는 휴대폰을 들고 가지도 않는 탓에 만보기 어플에서 0보라는 기적적인 숫자를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한 친구는 나에게 '동상'을 직업으로 추천해 주었다. 하긴, 이불 깔고 누울 수만 있다면 지하철 환승역 한복판에서 동상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우울증만 진단받았던 예전에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라도 침대에서 미적거릴지언정 꼬박꼬박 현관문 밖을 나섰다. 그러나 나의 노력들이 무색하게도 얼마 가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학교가 문을 걸어 잠가 버리자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게 코로나 시대의 우울증 환자는 옳다구나 하며 집에 틀어박혀 병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외적으로 본다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같기에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내적인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설명을 해보자면 이전에는 자발적으로 안 나가는 쪽에 가까웠다. 굳이 나가야만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지금은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못 나간다'. 비교적 최근에 진단받은 공황장애라는 녀석은 언제 어디서 발작을 일으킬까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뇌는 '나간다'라는 상상 자체를 차단시켰고, 이전에는 수면바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아무렇지 않게 다녀온 집 앞도 온갖 준비를 다 하게 만들었다. '혹시나'하는 생각이 뇌를 점령하는 것이다. 가정한 그런 일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만, '혹시 다음에는'이라는 생각이 행복을 강박적으로 만들었다.
사람에게 바깥공기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심지어 걷기는 사람을 더욱 창의적으로 만들어 준다고도 한다. 특히나 우울증 등을 가진 사람들은 산책을 꼬박꼬박 하는 것이 치료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도 있었다.
공황장애가 생기기 전에는 학교 방학 동안 영상기록까지 남기면서 꼬박꼬박 산책을 다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과 몸을 단장하고 옷을 갈아입기까지가 정말 귀찮은, 무기력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나는 '하기 싫은 것'을 해냈다.
그런데 단순히 '하기 싫은 것'과 '하는 것이 무서운 것'은 차원이 달랐다. 이전에는 시작도 전에 망설였지만 지금은 준비를 빠르게 다 해놓고 현관문 앞에서 망설인다. '또 그 증상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문고리 한 번 돌리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내가 집을 나서는 이 상태 그대로 안전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이미 몇 번이고 공황의 증세 때문에 외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한다.
결국 나가기까지의 시간은 우울증이 아주 약간 호전된 지금이, 중증이었던 이전보다 배로 걸린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지치기도 한다. 결국 나는 신었던 양말을 벗는다. 챙겼던 비상약 따위의 물품들을 정리하고, '이런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라는 죄책감을 안은 채로 이불속으로 숨어든다. 이불 속이라고 공황이 안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약한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이 나를 약간 안심하게 만든다.
휴학을 하니 외출공포증은 더욱 심해졌다. 공황을 치료하려 휴학을 결심한 것인데, 이 상태로라면 내가 복학을 할 수 있는 것은 맞는지 의심스럽다. 나가는 것은 2주에 한 번 병원에 가는 일뿐, 그마저도 걷지 않고 버스를 타는 데다 돌아오는 데까지 30분 남짓 걸린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는 길, 탔던 버스에서 내릴 때면 주름이 남을 정도로 힘껏 잡고 있던 옷 소매가 축축하게 젖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겨우 10분 정도임에도, 내가 밖이라고 인지하는 공간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 바깥공기가 코를 통해 뇌로 전달되면 마치 독극물이라도 들이마신 듯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공개적인 공간에서 공황발작을 겪어본 뒤로는 변변한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 없으니 집에 틀어박히는 시간은 더욱 늘어나 몸의 근육은 자연스레 퇴화하고, 몸은 땅 넓은 줄 모르고 불어난다. 아마 이것도 히키코모리라면 히키코모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걱정하신다. 더 이상 부모님이 나를 책임져 줄 의무가 없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품에 안은 팔 한 번 벌리시는 것도 무서워하신다. 어쩌다 외출 한 번 했다고 자랑하는 날에는 한글을 깨친 아기 다루듯 칭찬을 하신다. 이 지경까지 기대치를 떨어뜨린 내가 밉다는 감정도 든다. 걱정하시지 말라고 등을 두들겨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바깥으로 눈 한 번 돌려보는 것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