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터닝포인트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소리냐고?

by 찬류

글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지금까지 써둔 글은 무엇이길래 이런 말을 하지?’

설명하자면,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정신병으로 인해 제대로 학업을 수행하지 못했던 나는 우연찮게 글을 접했고, 그렇게 글로 진학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잘 지내나 싶던 차에 찾아온 두 번째 시련은 나에게 휴학을 하게 만들었고, 그동안 나는 브런치를 접하며 조각글을 이곳에 남겨왔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구석이 없다. 그 말인즉슨, 나는 졸업을 했고 이제 사회로 한 걸음 내딛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


졸업 이후 약 2달, 그 삶은 평탄하다 못해 탄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졸업을 축하한다며 이곳저곳에서 건네주신 용돈은 잠깐의 자유를 누리기에는 충분했고, 진정한 법적 성인이 된 나는 부모님의 손을 떠나 내 인생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내 하루가 타의가 아닌 자의로 흘러가는 기분은 꽤나 짜릿했지만, 그만큼 리스크 또한 거대했다.

망가진 생활패턴은 되돌릴 방도가 없었고, 그나마 학교라는 시스템 덕분에 바깥에 나가 콧바람을 쐬던 일도 없어졌다. 키보드를 잡지 않게 된 것도 오래, 루틴이나 데드라인 또한 없으니 일상을 마구잡이로 흘려보내게 된 것도 오래요, 그나마 조금 있던 지인들이나 친구들도 성인이 되니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연락이 뜸해져 세상과의 교류 또한 단절된 채로 살아왔다.

즉, 잉여인간이나 인간쓰레기로 불리기에 충분한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보려 해도 취업난을 정통으로 마주한 우리의 시점에서는 변변찮은 알바 공고 하나도 찾기 어려웠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고 싶어도 부족한 포트폴리오와 이미 포화상태인 쟁쟁한 실력자들이 나를 막아섰다. 그 결과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울면서도 당장은 일이 없어 편안한 현재를 만끽하며 이불속에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 나는 결국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적어 내려 갔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글쓰기’였다. 정확히는 예술 전반이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글쓰기가 가장 하고 싶었다. 예술 중에서는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고, 그나마 내가 전공이라는 전문성을 갖춘 분야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 현대에서 내가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내가 계획을 세운 대로 인생이 흘러갈 수 있을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되기까지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모든 것이 막막해진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 글을 쓰는 것도 잠시 쉬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제 오래간만에 친구들과 메시지를 나누었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와중에 나만 뭐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알바를 하며 돈이라도 벌었으면 이렇게까지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인생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며 으쓱댄 것 치고는 초라한 현실이었다. 취업 준비는 하나도 안 하고 있으니 제자리걸음이라는 알바생인 친구의 말에 지레 찔렸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 내가 ‘터닝포인트’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을 마주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다시 키보드를 잡고 활자를 써 내려가게 되었는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는 간단한 말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르게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생 전반에 해당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의 사소한 문제에서도 말이다.

예를 들어, 양식을 먹을지 분식을 먹을지 고민하며 다른 사람에게 골라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둘 중 하나를 골라 나에게 추천해 줄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분식을 추천해 주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순순히 분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분식을 먹고 싶은 것이 맞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단순 청개구리 심보로 ‘네가 추천해 준 것이 먹기 싫어졌어!’의 이유여도 상관없다. 그렇게 분석을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진짜 먹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내 끼니는 진정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깨달은 양식이 될 수도 있고, 고민을 해본 결과 역시 이게 맞는 것 같다-며 선택된 분식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이가 제시해 준 삶을 살아가려 하다, 계속 고민하고 고민해 본 결과 역시 나는 이 길이 아니고, 내가 진정 원한 것은 다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른 이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아직은 사회 초년생이니 이 정도의 도움은 청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진정한 나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게 된다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당장 이 길을 가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게 되지만, 생각보다 나 자신이 준비해 둔 것이 없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계단을 오르듯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미워 이를 가는 데에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실 나는 타고나기를 끈기도 없고, 성실하지도 못하고, 특출 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삶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끌어가는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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