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고 싶다면 지켜주세요
내가 학교 게시판에 처음 접속한 날, 접한 것은 선배의 표절 사실이었다.
“와.”
나는 입을 틀어막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연신 손가락을 놀렸다.
‘불탄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한 번 새로고침 하면 새 글이 3개씩 올라오던 그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온 학생이 들썩이고, 타과의 학생들까지 우리 과의 게시판으로 몰려와 한 마디씩 얹던 광경이 눈을 감아도 그려진다.
나는 당시 막 입학 증명을 마친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게시판 속 모든 글들을 열람할 수는 없었으나, 사건의 전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이 내가 정식 활동자격을 얻은 후에도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마 ‘너희에게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선배가 베풀 수 있었던 최대한의 배려였겠지... 그 덕분이었는지, 새로운 학번인 우리에게도 그 사건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뜨거운 감자’ 그 자체였다.
수많은 비난들이 당사자를 향했다. 일부 날 선 말들은 교수님을 향하기도 했다. 과열되는 분위기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나는 그 사건의 당사자가 불쌍하다던가, 과한 욕을 듣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도 당시의 나는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 예비 예술인이자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가진 창작자가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게 왜 표절을 해서, 표절은 엄연한 도둑질이잖아. 나는 아무리 과제 제출이 급해도 저런 짓은 저지르지 말아야지.
그것이 내 입장이자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고유한 창작물을 내놓기도 전부터 표절의 두려움을 안게 되었다. 이것이 예방주사였는지, 내 상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었는지는... 천천히 밝히도록 하겠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과제로 자신의 창작물을 제출해야 했고, 나는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생각들을 하나 둘 낚아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생각은 소재가 되어 파일이 되었고, 교수님과 동기들의 입을 거쳐 구체화되었다. 더 이상 지나간 일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바쁜 나날이었다. 우리는 공장처럼 파일들을 찍어내되 매 수업마다 다른 창작물들을 내놓아야 했으며, 나는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나는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과제물의 기반으로 삼을 생각으로 머릿속에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내 학교생활은 조금 벅찬 속도로 흘러갔다.
그러던 와중, 내 창작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당시에는 그 이유 모를 불쾌감을 방법도 모르는 채로 해소하려고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공포였다.
‘당신의 작품에서 ~가 연상된다’라는, 어쩌면 칭찬의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말이 결국 ‘표절’이라는 꼬리표로 이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 아이’라는 애칭을 가질 만큼 애정과 노력을 쏟은 나의 작품에서 다른 무언가가 연상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즉, 소재의 시작인 아이디어부터 완전한 오리지널리티가 주장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나고 서글펐다는 것이다. ‘내가 시작이 아니야?’라는 생각에 소소한 박탈감은 덤이었고.
내 일이 되지 않을 테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그 사건은 결국 나에게 깊이 뿌리내렸다. 나는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여러 갈래의 미래 중 피하고 싶은 하나의 미래 때문에 나의 창작의 가능성을 없앴고,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한 번쯤은 내가 ‘본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 고유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가끔 내 창작물은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와 작품에 빗대어져 칭찬을 들었다. 나는 더욱 강박적으로 내 머릿속의 것들을 지우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애썼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나를 몇 천 걸음쯤 퇴보하게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몇 만 보 까지도.
내 고유의 것을 만들겠다고 자신의 눈과 귀를 닫으면 그저 시야가 좁아질 뿐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수많은 창작물들이 존재하고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 하루가 멀다 하고 표절 의혹과 그 해명이 번갈아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대중이 피로를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표절 시비들을 잘 파헤쳐 보면 법정까지 가져가도 그저 우연의 일치로 표절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고, 누가 보아도 한눈에 보아도 남의 것을 훔친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완전범죄를 꿈꾸어도 소용없다. 독자는, 청중은, 대중은,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그러나 ‘지금’의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현재 시점에서는 A부터 Z까지, 완전하게 고유한 나의 창작물이 존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이미 인류에게는 넘칠 정도로 많은 창작물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창작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소재’라는 것들은 이미 고갈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작을 하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뇌 또한 거기서 거기이기에...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창작이란 ‘먹어보았던 것을 얼마나 더 맛있게, 혹은 새롭게 내놓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식당에서 먹어본 메뉴를 자신의 식당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이지만.
사실 ‘성공하는 작품’에 공통점이 존재하고 공식이 있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작품들이 그 공식을 따르고 있고, 지망생들은 그 공식을 공부하여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다채로운 작품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에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의식적으로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려는 윤리의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저작권이란 결국 ‘권리’이기 때문에, 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히 새겨야 한다. 모든 국민이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 이 나라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면 타인의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디어마저 재산이 되는 시대다. 남의 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데 내 것이 휴지조각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창작자임을 자기 스스로도 끊임없이 검증해야 할 것이다.
윤리의식에 대해 언급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선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 권리를 존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한다면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돌아와 나를 좀 더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