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를 합시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by 찬류

나는 가끔 생각난 글감을 메모장에 적어놓고는 한다. 그리고 그중 내 생각이나 경험을 담은 것들을 골라내 분량을 불려낸 후, 브런치에 업로드한다.

내가 끄적거린 글들을 수필이나 에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에세이를 주력으로 쓴다고 포장하고, 동기들 또한 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해주었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아직 그런 이름을 가지기에는 아주 먼 사이버 일기장일 뿐이다.

아. 생각이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적어나가는 점에서 어쩌면 저널링의 형식을 띄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보는 것을 상정하고 있고, 교훈을 어떻게든 찾아내려 애쓰는 부분을 보면 에세이의 옷을 입으려 애쓰는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나 수필이라 부르기에는 부끄러운 글이고, 일기라고 부르기에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기에 크게 진솔하지도 못하다. 그러나 멋지게는 부르고 싶으니… 나는 내 글을 저널링이라고 부르겠다.




내가 핸드폰 화면으로 글을 써 본 경험은 딱 한 번, 그마저도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서 만 자를 조금 넘는 분량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때를 제외하면 늘 넓은 화면으로 글을 써왔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보는 내 문장과 문단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압박감이 느껴지지는 않는지 늘 걱정한다.

나는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글들의 글자수를 대개 2000자 정도로 맞추는 편이다. 생각보다 적은 양이기도 하고, 숫자만 보자면 많게 보이기도 한다. 주제에 따라서는 100자를 겨우 채우고도 앞으로 채워야 할 분량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정한 주제인데도 이렇게 편차가 클 수 있을까? 심지어 난이도에 따른 글의 주제들의 발상 과정이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아이디어 뱅크’라고 불릴 정도로 아이디어나 생각이 넘쳐나는 편이었다. 입시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문장력도, 구성력도 전부 떨어졌던 내가 모두에게 유일하게 인정받았던 것이 글의 ‘소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너무 과대평가된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글의 주제들은 특별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로 분류될 정도로 독보적이거나 독창적인 주제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내가 자만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겸손해지자고 중얼거리곤 한다. 가끔은 나의 모든 것이 어릴 적의 영광에 매몰되어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질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내 글의 주제가 탄생하는 과정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의 난이도가 뒤죽박죽이라 쓸 때마다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상에서 글감을 떠올리고, 그것을 메모하고. 보통의 크리에이터와 방식이 똑같다. 나는 특히 저장강박이 있는 편이라 조금만 괜찮다, 싶은 것들은 북마크를 해두거나 메모를 하는 통에 내 북마크 목록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터져나갈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음, 사실은 바로 메모하지 않으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까먹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메모하고 싶었는데’라는 찜찜함만 가지고 영원히 괴로워하는 것이다… 망할 ADHD.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아무리 졸리더라도 바로 핸드폰을 켜 메모하거나, 최대한 까먹지 않기 위해 입으로 그 주제를 중얼거릴 때도 있지만… 문제는 내가 메모하는 꿈을 꾼 것으로 ‘메모했다’고 착각하고, 꽤 길거나 입으로 내뱉기 부끄러운 주제는 머뭇거리는 데에 시간을 쓰다 그대로 머릿속에서 휘발시켜 버린다는 것에 있다.

메모를 해두더라도, 메모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메모장을 뒤질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떠올린다. 특히 독서노트에서 그렇다. 까먹지 않는 메모법에 대한 책이나 영상을 보아도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어렵더라. 그래도 다시 복기할 수 있으니 ‘남겼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남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내가 의사 선생님께 듣기로는 메모를 남기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모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즉… 나는 반쪽짜리 메모를 하고 있는 것에 가깝겠다. 머릿속에 정리의 목적이 닥칠 때마다 시간을 내어 북마크와 메모들을 정리하고는 있지만… 참, 그 양이 경이로워서 언제든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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