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가올 끝이 무서워서
오늘은 날씨가 유독 추웠다. 대화의 물꼬는 무조건 ‘오늘 진짜 춥다’라는 말로 트였고, 나을락 말락 줄을 타는 감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쩐지 시린 것은 내 몸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목적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가장 최근에 마련한 가방을 손에 들고 목적지로 향하니 발길이 가벼웠다. 비록 밖에 나와 있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밖에 나온 나를 칭찬하며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있잖아…’
핸드폰은 기본적으로 무음으로 두는 내가 바로 알림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째서인지 차가운 날씨에 얼어붙을 듯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았고, 어째서인지 뻣뻣한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첫 메시지를 보내고는 말이 없었다. 그 뒤의 말을 기다리다 지친 내가 답장을 보내고서야 ‘뒤의 말이 안 간 줄 몰랐다’며 사과를 건넸다. 이제 막 근무를 끝냈을 친구가 메시지를 보낸 이유가 있었다. 친구와 몇 년을 함께한 강아지가 떠났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네 집 강아지는 나에게도 특별한 녀석이었다. 살면서 동물을 접할 기회라고는 얼마 없었던 내가 거의 유일무이하게 마음껏 만질 수 있는 아이였다. 친구의 부탁으로 내가 직접 산책을 시켜보기도 했고, 실외배변을 하는 아이였기에 따라다니며 변을 줍기도 했다. 게다가 가슴 아픈 과거와 얌전한 성향까지 더해지니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이쁨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집 강아지인 것처럼 녀석을 챙겼고, 녀석 또한 내 냄새를 알아봐 주었다.
녀석은 내가 강아지라고 부르기는 했으나 나이를 꽤 먹은 다음에서야 친구네 집으로 입양된 녀석으로, 성견의 의젓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그 녀석이 우리와 함께 할 날이 다른 강아지들보다 짧을 것이라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잘 지내와서인지 그런 걱정을 잊고 있었는데… 이제는 노견이 되어버린 녀석은 가장 추운 날, 내 마음에 시린 겨울을 안겨주고 떠나가 버렸다.
과거에 내 마음이 아주 아팠던 시절이 있다(적나라하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냥 이렇게 말하겠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냐는 아빠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뭐든 쉽게 질려. 생명에게도 그럴까 봐 무서워.’
무엇에도 쉽게 질렸던 나는 나의 삶에도 질려 있었고, 다른 생까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반려동물을 들인다고도 들은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었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도덕심이 고개를 들었다.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생명에게 질리는 것이야말로, 분명 해서는 안될 짓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런 순간이 오는 것이 무서웠고, 내가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처음부터 싹을 자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다 답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이전보다 마음이 건강해져서인지, 내가 나를 잘 알게 되어서인지,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넓어졌는지. 내가 생명에게 질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마음이 그 정도로 모질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모질지 않기 때문에 다가올 아픔이 두렵다. 나보다 짧은 삶을 살고선 떠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떠난 다음의 마음이 담담할 자신이 없다.
동물을 데려오지 말라 이야기하면서도 막상 가족이 되면 누구보다 따뜻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이별이 두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하는 것이라 들었다. 처음 그 말을 접했을 때는 솔직하지 못한 어른들이라며 혀를 내밀곤 했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런 어른들을 이해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친구는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다행인 일이었다. 병원에서 딱딱해진 녀석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침묵이 상상이 갔다. 친구의 어머니는 여전히 울고 계신다고 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걱정이었다. 장례는 밤늦게 치러질 예정이라고 했다. 잠깐 친구를 만나 동물의 털을 담을 수 있다는 키링을 선물했다. 친구는 스톤도 만들지 않기로 했고, 털도 담지 않을 것 같다며 무엇을 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선물을 사양하는 친구에게 나는 그냥 뭐든 담으라고 말했다.
친구가 그 키링에 그리워하는 마음이든, 함께했던 추억이든, 아니면 상관없는 것을 담아 허한 마음을 채우는 것도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