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보낼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망했다.”
테이프 뜯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엄마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 빌고 빌며 보수한 택배 상자를 못 쓰게 되었다.
“규정이 왜 이렇게 빡빡한 거야!”
때문에 나는 중고 도서 판매 예약을 취소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끌어안고 가버려? 이런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을 먹었는데 끝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나. 준비하며 이것저것 늘어놓은 것을 수습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나는 결국 철저한 준비 후에 다시 핸드폰 액정을 두들겼다.
‘판매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내 거대한 책장에 숨구멍이 트였다. 아니, 트였었는데, 다시 막혔다.
나는 중고거래를 꽤 즐기는 편이다. 그중에서 내가 중고거래를 가장 많이 하는 품목은 단연코 책이다.
집중력이 약해 책을 완독하는 속도가 느려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데다 소장욕이 강한 나의 성향상 독서는 책을 구입해야만 영위할 수 있는 취미다. 그러나 새 책은 생각보다 비싸고, 나는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잘 없었다. 참으로 가성비 떨어지는 성향이다. 때문에 나는 필연적으로 중고시장을 탐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의 책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꺼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낙서가 있으면 어떡하지? 책장 사이에 벌레라도 살고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몇 번 했으나... 한두 번 연속으로 성공을 경험하다 보니 이제는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먼저 중고시장에 검색부터 해본다.
중고시장의 참 좋으면서도 안 좋은 것이, 절판된 도서도 찾다 보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어떠한 것에 꽂힐 때마다 웃돈을 주고 들인 책들이 몇 권인지. 아무튼 새 책과 중고책들의 구입을 병행하며 들인 것들이 야금야금 모여 어느덧 책장을 포화상태로 만들었다.
얼마 전에 행사 하나를 다녀왔다. 도서전처럼 대놓고 책에 관련된 행사는 아니었으나, 취급하는 품목의 대부분이 책의 형태인 데다 필연적으로 책장에 자리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잔뜩 구매하여 집까지 낑낑 이고 와보니 그것들은 최소 내 허벅지까지는 쌓일 만큼의 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높이를 자랑하자 한 지인은 그날 열린 행사를 통째로 옮겨왔냐며 매우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래, 사 온 것까지는 좋았다. 금융치료라는 것이 무엇인가, 돈을 쓰고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입금할 때는 행복했고, 부스에서 책을 수령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만족감의 무게를 체감했다. 집에 돌아올 때는 조금 후회했지만... 행복의 무게란 아주 무거운 것이었다... 정말, 물리적으로.
그렇게 집에 돌아와 책들을 침대 앞에 쌓아두고 보니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 내 허벅지까지 오는 책들을 들일 공간이 내 책장에는 없었다. 심지어 새 책들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있는 책들도 빼내야 할 상황이었다. 그만큼 내 책장은 포화상태였고, 그렇게 되니 책장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책을 꾹꾹 눌러 넣은 내 소장욕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책장을 비우기로 했다. 비우는 것은 비우는 것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책장에 공간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것들을 욱여넣기 위해 입주민들을 몰아내는 행위였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아마 책들에 자아가 있다면 항의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내가 행사에 나가기 전부터.
“우리가 이렇게 끼여 사는데 또 책을 들이겠다고? 미쳤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책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책장을 비우기 위한 작전에 착수했다. 모든 책들을 꺼내 바닥에 쌓아두고 한 번씩 흝어보며 나에게 여전히 필요한 책인지를 가늠했다. 한 번 읽은 책은 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했고, 읽지 않고 몇 년을 묵혀둔 책은 바뀐 독서 취향과 왠지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과감히 내놓았다.
다행히도 나는 밑줄을 비롯한 책을 훼손하는 행위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책들의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중고로 판매하는 데에 결격사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다만 내가 중고구매를 즐겨했던 만큼 내놓는 책도 재판매가 되는 것들이 많아서 꼼꼼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매장에서 중고판매하는 책들을 보면 생각보다 낙서 등 훼손된 부분들이 많던데 왜 내 매입신청은 안 받아주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엄선한 내 품을 떠날 책들은 총 39권. 권 당 5천 원으로 쳐도 꽤 많은 금액을 구매하는 데에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 읽는 속도보다 구매하는 속도가 빨라 초래한 불행이었다. 책을 구매하는 빈도를 좀 줄여야 하는데, 왜 이렇게 좋아 보이는 책들이 많은지.
마침 집에 존재하는 가장 큰 박스를 가져와 차곡차곡 쌓았다. 39권의 책이 딱 맞아 들었다. 이대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며 판매신청을 했는데, 매입에 허용되는 박스 규격을 너무 늦게 봤다. 찍찍 소리를 온 집안에 울려가며 시트지로 박스 바닥 보수까지 했는데.
그렇게 우는 심정으로 박스들을 뒤져 겨우 규격에 맞는 박스들을 찾아냈다. 2개의 박스에 나누어 넣는 과정은 꽤 험난했지만, 매입 후 39권이 내게 가져다준 대금은 꽤 쏠쏠했다. 물론 중고판매이기 때문에 그리 큰 값은 받지 못했지만.... 이거라도 어디야.
몇 권의 책은 매입할 수 없다고 했다. 불가 사유를 천천히 흝어보니 ‘이럴 거면 내가 갖고 있을걸’이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중에는 새것 같은 책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책들은 내 손을 떠났고, 매입 불가인 책들은 폐기를 부탁했으며, 책장의 빈칸에는 새 식구들이 들어와 있어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이번 정리를 통해 책장을 환기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책장을 환기하며 나의 묵은 부분도 함께 떠나보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래서 주기적인 뒤엎기가 필요하다는 건가, 과정은 꽤 힘들었으나 감각은 나쁘지 않아 다른 것에도 종종 적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