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분명 중독

의지로 조절되지 않는

by 찬류

나는 나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는




​중독, 중독이라… 사실 ‘중독’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무시무시한 이미지만 생각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알코올, 니코틴, 약물… 한 번만 접해도 인생이 망가진다고들 하는,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요즘에는 여러 가지에도 중독이라는 말을 접목시키고는 하던데, 아무튼 내 입장에서 보았을 때 ‘중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이렇다. 전혀 가볍게 생각할 수 없고, 어쩌다 하나에 중독된다면 건강도 이미지도 망치는… 나와는 전혀 연이 없을 것 같은 단어.


​그런 것 치고는 나는 ‘나를 해하는 것에 중독되었다’고 고백하는 글을 한 번 업로드한 적이 있다. 그 글을 작성하고, 업로드를 한 지가 꽤 된 시점이기에 지금은 지속적인 치료와 함께 호전되었다고 믿었다만… 글쎄, 아무래도 내 사고방식과 몸뚱이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변하기 어려운 녀석들이고, 무식한 것 같다.

겨우 자해 행동 하나 때문에 내 생각을 뜯어고치게 되다니, 내가 참 대단하면서도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짐작하기도 어렵다. 사실은 아직 치료는커녕 호전된 상태도 아닌데 어떻게든 의식하며 정신력으로 충동을 참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어떻게든 유지하던 그 정신력이 이제는 소진되어 충동이 승기를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의식한다는 행동 자체가 참 무섭다. 사실 별 것 아닌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어느샌가 거대한 것으로 번져버리니까.

어쩌면 내가 나를 해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 자체를 뇌에서 의식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행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이전의 시간들과 나를 되짚어보아도 팔에 새로 새긴 빗금의 색은 흐려지지 않았다. 후회했던가? 잘 모르겠다. 그저 막혔던 둑을 뚫은 듯한 해방감과 함께 지금까지 내 정신을 갉아먹던 충동들이 한 번에 깨끗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연히 사라지기는커녕 집착이 되어 그 목적을 이루어야만 사라지는 상념이라, 다른 분야에서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중독이라는 단어에 겁을 먹었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중독, 뭐 별 건가.

툭하면 생각나고, 생각을 끊을 수 없고, 문득 생각나고… 무슨 짓을 해도 생각이 그것으로 귀결된다. 생각의 끝이 고작 그거라니… 한심하지만 그게 중독이고, 중독자의 일상인 것 같다.

나는 중독과는 집착이라는 단어가 결을 비슷하게 한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사랑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착과는 다르게 중독과 사랑은 오래되면 가끔 시들해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

아, 그렇다면 중독과 사랑은 한 끗 차이인가 보다.

중독과 사랑이 비슷하다니, 사랑이라는 단어를 더럽히는 결론이 아닌가? 잠깐은 그렇게도 생각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랑도 그리 고결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생각을 그만두었다. 찾아오지 않은 사랑보다는 당장 내 눈앞에 존재하는 중독이라는 녀석이 더 위험하다는 결론이었다. 어쩌면 중독이라는 그 이름처럼 중독성이 더 강한 것 또한 이쪽일지도 모르겠다.




중독으로 인한 충동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저지르고 말았다. 당연히도 밥 먹듯이 저지르던 과거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뒷일을 생각했고, 감각이 달랐고, 소감 또한 달랐다. 그러나 과거와 지금의 공통점은… 저지르고서야 다른 것들이 눈에 보였다는 점이다. 당장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생각나지 않았다.

막힌 둑을 뚫었다는 표현도 이제는 진부하다. 더 어울리는 것은 변기가 뚫린 것 같다는 표현일 것이다. 겨우겨우 내려가는 상념과 충동의 소용돌이가 어지러우면서도 오히려 벽면에 붙은 사소한 찌꺼기마저 함께 쓸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시간이 지난 현재, 지금의 나는 놀랍도록 평온하다. 충동에도 시달리지 않고, 모든 생각을 지워낸 것처럼…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나를 해했음을 고백한 이후, 약이 더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외적인 요소가 아닌 충족감에서 오는 안정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안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금만 더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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