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었게 안 먹었게
ADHD 때문에 약을 먹는데 ADHD는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조차 까먹고 만다. 이것도 기억을 못 하는 금붕어라며 자괴감에 치는 몸부림이 얼마나 심했던가. 그러나 결국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나는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적 나는 유독 목구멍이 작았다. 당연히 알약은 잘 넘기지 못했고, 쓴 가루약을 피해 알약을 처방받겠다고 말한 뒤에도 약사 선생님께 절반으로 잘라달라 부탁했다. 온전한 알약 한 개를 넘길 수 있게 된 것도 좀 더 크고 나서부터였다.
게다가 꽤 튼튼한 건강 체질이었는지 나는 약을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영양제도 잘 먹지 않던 나에게 약이란 특별히 아플 때만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약이란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약이 떨어져 가는 것을 보고 곧 병원 예약일이 다가오는 것을 추측하고, 약봉지가 두툼하면 내 마음도 풍족한 기분이 든다.
이전의 나는 약을 아침, 점심, 저녁까지 하루에 총 세 번을 먹었다. 상태가 많이 호전된 지금은 아침과 저녁 두 번만 약을 먹는다. 대신 그 한 번 한 번의 복용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세 번에서 두 번으로 줄인 것만으로도 어디냐 싶긴 하다.
지금도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나는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에 대한 구분이 약한 편이다. 누군가는 약을 먹거나 가스밸브를 잠그게 된다면 이마를 한 번 때려서 그 고통으로 구분을 한다고 했는데, 도전해 본 결과 나는 약을 먹은 이후 스스로 이마를 때리는 것도 까먹는 데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이마를 때렸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던 방법은 내 이마에 붉은 자국만 남기고 흐지부지 되었다.
약 좀 늦게 먹으면 어때, 한 번쯤은 약을 빼먹어도 괜찮지 않나? 그 생각을 내가 안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의 문제는 내가 그 생각을 해도 될 정도로 괜찮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아침약을 조금이라도 늦게 먹으면 공황 때문에 하루의 생활이 어려웠고, 저녁약을 먹는 것을 잊는 날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규칙적으로 제때 약을 먹는 것이 내 정신과 몸의 건강과도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되면… 뭐, 그냥 죽어드려요?’
홀로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지만 반쯤은 진담이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몸뚱이를 이끌고 평생을 살아가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렇게 괴롭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히 우울했다. 그래도 어떡해, 살기 위해 약을 먹고 있는데… 방법을 찾아야지. 그렇게 나는 고심하던 끝에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고, 이 방법으로 정착했다. 내 이마도 아프지 않고, 약을 먹었는지의 여부를 까먹어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 맨날 까먹더니 결국 터득해내고 말았다.
먼저 줄줄이 이어진 약봉지를 세 봉지 단위로 분리한다. 굳이 세 봉지인 이유는 그 정도가 약봉지의 길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 약을 약 봉투의 앞에, 저녁 약을 약 봉투의 뒤에 몰아넣는다. 그렇게 반반의 자리를 차지한 약들은 내가 약을 먹을 때마다 그 방향으로 모습을 보인다. 아침 약을 먹었으면 약 봉투의 앞이 위에 올라와 있고, 저녁 약을 먹을 때는 약 봉투의 뒷면을 위로 오게 돌려놓는 것이다.
이 방법은 내 생각보다도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었다. 물론 약을 분리해 내고 몰아넣는 첫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이 과정을 미루지만 않으면 그 뒤로 몇 주가 편하다. 혹시 약을 두 번 먹을까 봐,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공황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없어도 된다. 또한 약을 먹었는지 궁금할 때 괜히 공포에 질리지 않아도 되고, 대신 약 봉투의 방향만 확인하면 된다. 더 좋고 편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택하겠으나, 아직은 이 방법이 가장 편하고 나에게 잘 맞는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N년째다. 그동안 약을 먹는 루틴이 정착하지 않았다는 것도 웃겼지만, 루틴이 정착하지도 않았는데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몰라 헤매는 나 자신이 웃기다. 물론 지금은 처음만큼 허둥대지 않고, 이제 거의 루틴으로 편입되기 이전이니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에 대한 것으로 겁을 먹고 싶지는 않은데… 언제쯤 이룰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