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보아요

과시나 허영이라 할지라도

by 찬류

책을 취미로 삼아보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별 거 없다. 그냥 책이 읽고 싶었다. 아니, 어릴 적 책벌레였던 그 순간이 그리웠던 것일지도?




독서를 취미로 삼아보겠다고 결심한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독서를 취미로 삼겠다고 결심한 직후부터 나는 온갖 책을 사들였다. 장르나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모은 책들은 내 방 책장에 차곡차곡 쌓여갔고, 그 광경에서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책이 배송된다는 알림은 크리스마스 산타보다도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서점 어플 최상위 등급을 유지하게 된 것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독서가의 방은 이삿짐센터에서 따로 취급한다는 소리에는 ‘에이, 설마~’라며 웃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두려움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사실 그런 것 치고는 나는 책을 잘 읽지 않았다. 못 읽은 것에 가깝다고 할까… 도서전에서 2년 전에 산 책을 1년에 걸쳐 최근에서야 다 읽었을 정도면 말 다 했다.

허심탄회하게 말하겠다. 나는 책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정확히는, 어릴 적처럼 책에서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크고 나서 세상을 통해 접한 것들에는 자극이 흘러넘쳤고, 자극에 절여져 역치가 높아진 뇌는 더 이상 재미를 위해 책을 읽을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지가 벌써 거의 반평생이다. 갑자기 책을 읽고 싶어 졌다고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는 성인 ADHD 환자다. 진득하게 앉아있는 것은 물론이요, 조금이라도 긴 시간을 집중하는 것과 지루한 것을 견디는 것을 정말 어려워한다. 그런 내가 취미독서를 할 생각을 하다니, 하늘이 두쪽이 날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입시를 위해 필요로 할 때에도 책 한 줄을 읽지 않았고, 읽지 못했으니까.

그런 내가 어째서 책을 읽기로 결정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과시나 허영을 위한 수단으로 독서를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우선 나는…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단으로 독서를 택했다. 그렇게 위기감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책을 집어 들었고, 여러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곧 해결책을 찾아냈다.




독서에 제대로 박차를 가하게 된 요즘은 15분씩 타이머를 걸어두고 병렬독서를 하는 중이다. 뭐든 많이 해보아야 아는 것이라고, 하나를 진득하게 잡고 있지 못하고 끝없이 자극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병렬독서가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ADHD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든 타이머가 굉장히 도움을 주는데, 나의 경우 15분이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고 대신 하루에 읽는 책의 권수를 늘리는 것으로 독서량을 채우는 중이다. 정 집중이 되지 않는 날은 한 페이지만 읽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한 번만 경험한 것은 두 번 반복하지는 않지만 잘 잊어버리는 나를 위해 독서노트를 적기로 결심했다. 원래는 독서노트를 작성하는 것 때문에 죽어도 직렬독서를 선호했는데, 인덱스를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서는 나에게 잘 맞는 병렬독서로 변경했다. 그전에 쓰던 방법은 종이책과 전자책 어플을 활용해 한 권씩 번갈아가며 병렬독서를 했다. 점점 방식이 발전되고 확립되는 것을 확인하니 꽤 기분이 좋다.


역시나 독서의 취향이 발전하며 내가 깨달은 나의 취향이 몇 있다. 첫째, 소설은 한국 작가의 것을 선호한다. 둘째,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셋째, 소장욕은 비문학과 작법서에서 더 강해진다 등… 이전에 마구잡이로 책을 사들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형성된 확고한 취향이 나의 과소비를 막아주는 것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실감한다.

그럼에도 사실 이북리더기를 탐내고 있긴 하다. 핸드폰 화면으로는 책을 잘 읽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화면이 눈이 아프다던가, 다른 어플로 쉽게 빠지게 된다던가… 하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이북리더기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나저러나 일단 결심하고 손에 들어야 독서를 하는 것인데, 결심하고 손에 잡는 것부터가 어려운 관문이기 때문이다.

대신 오디오북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어플을 열고 재생하는 과정까지가 위에서 말했듯 좀 험난하긴 한데, 한 번 재생하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귀를 열어두고 책을 들을 수 있으니 편한 것 같다. 다만 생각이 필요한 일을 할 때는 오디오북을 듣기 어렵다. 이건 당연한 건가, 싶다가도 내가 멀티태스킹이 이리도 안 되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SNS에 읽은 책을 기록하고 싶어서 독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텍스트 힙이라... MZ의 과시욕이 독서계에도 미쳤다는 말에는 나는 해당되지 않을 거라며 헛웃음, 코웃음을 친 게 엊그제 같은데 나도 어쩔 수 없는 MZ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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