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안 불쌍한 사람 어디 있겠냐만은
자꾸만 식은땀이 나고 불안했다. 비상약으로 챙겨둔 진정제를 먹어도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고,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머릿속은 웅웅 울렸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윗사람으로서의 체면도 다 내려놓고 동생에게 애원했다. 동생아, 학원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주면 안 될까?
그날은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낀 날이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셨다. 명절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어째서 오신다고 하셨을까.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통보하신 날짜는 그날부터 일주일 후였다. 일주일, 단 일주일 안에 책잡힐 만한 모든 것을 없애두어야 했다. 집을 청소해야 했고, 음식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했다. 휴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 모든 일을 제대로 해낼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것까진 정말 괜찮았다. 나는 열심히 움직였고, 주말에는 부모님도 팔을 걷고 나섰다. 특히 아빠의 활약 덕분에 화장실이 리모델링이라도 한 것처럼 정말 깨끗해졌다. 엄마는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도 없는데 반찬가게를 털어온 것처럼 반찬을 산더미만큼 사 오셨다. 부모님은 대형마트에 가셔서 밀키트를 사 오시고, 아침도 먹지 않는 나는 할아버지의 아침 준비를 하셔야 할 엄마를 돕기 위해 몇 시에 일어나면 되겠냐며 약속을 맞췄다.
드디어 당일이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오시는 날은 월요일이었다. 일주일의 시작인 터라 아빠도 휴가를 내실 수 없었고, 엄마도 일이 많았다. 동생도 곧 수험생인지라 할아버지가 오신다는 이유로 학원이나 학교를 뺄 수는 없었다. 오전 안으로 모든 가족 구성원이 집을 비웠고, 나는 청소기를 돌리며 할아버지가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나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이 제일 빠르게 돌아오는 시간은 6시 반, 할아버지가 지하철역에 도착하시는 시간은 4시였다. 나는 약 2시간을 혼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해야만 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고 있었다. 4시가 다가왔다. 2시부터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혹시 아침약을 빼먹었나 싶어 약 봉투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약은 한참 전에 먹은 뒤였다. 못 참겠다 싶어서 비상약도 먹었다. 3시가 넘자 비상약까지 먹었음에도 상태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길 반복했다.
‘아, 혹시 음식이 얹혔나?’
체했거나, 감기몸살이 왔을 수도 있겠다 싶어 급하게 병원에 갔다. 몸에서 힘은 쭉 빠지고, 하늘은 빙글빙글 돌았다.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마치 과호흡 직전과도 같은 상태였다. 내 몸 상태는 틀림없는 공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공황이 올 상황이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는 정신과 대신 동네 병원을 찾았다.
내 상황과 증상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진정제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여러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지만 나는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공황이 올 정도로 괴로워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진정제를 주사로 처방받았다. 사람이 진정제를 주사로 직접 맞을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지만, 집 앞 병원에서도 진정제를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상태를 부모님께 전했고, 엄마는 좀 괜찮냐며 나를 걱정하셨다. 반면에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대답도 짧아지셨다. 그 반응에 나는 솔직히 겁을 먹었다. 할아버지는 아빠의 아버지인데, 자신의 아빠를 만난다고 공황이 올 정도로 겁을 먹는 자녀가 곱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병원을 나왔다. 그것과 별개로 집 앞 병원에서도 진정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방패가 하나 더 생긴 듯한 안심과 동시에 병원을 자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아빠 또한 할아버지를 마주한다고 생각하면 숨을 잘 쉬지 못한다고 하셨다. 아마 나처럼 공황 비슷 한 것이 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병원에서 아빠와 통화했던 것이 생각났다. 유독 짧았던 대답, 길었던 침묵, 딱딱한 분위기… 아빠 또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는 부모님을 어려워하지는 않는데… 참 슬픈 현실이다. 이러한 것들을 마주하고 생각하다 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안쓰러워 보이다가도 타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