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민을 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정신병자니까 어쩔 수 없다’
가끔은 이 말이 주는 해방감에 영원히 취하고 싶다.
나에게 본인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 지인의 수가 적지 않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어째서 내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 보면 한 단어가 번개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끼리끼리’… 아! 결국 모든 것은 나에게서 기인하는구나.
나 스스로도 나를 담담히 ‘정신병자’라고 칭하지만, 사실 이 단어에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라는 단어를 ‘정신병자’라는 말로 깎아내리듯. 가끔은 내가 직접 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낮춘 나를 연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스스로를 조롱하는 말, 자조적인 단어, 블랙 조크, 그 어떤 말로도 포장할 수 있지만 그 진상을 까발리자면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정신병자로 정의하고 싶은 것뿐이다. 이것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워지고 저절로 부정하고 싶어 지지만… 그것이 진실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내가 정신병자로 정의되어야만 나의 모든 ‘평균 이하’의 면모들에 정당성이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 ‘이 따위인데 정상이라고?’라는 절망감에 빠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더 크기도 하다.
사실 내 안의 정신질환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지 오래다. 평균 이하의 인간으로 허우적대다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니 숨부터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라, 안락한 이곳에서 다시 평균을 향한 치열한 싸움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어쩌면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멈춰있는 일상에 안주하다 보니 가장 자주 드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생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뒷걸음질 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런 생각에 어쩌면 나는 내 병이 치료되는 것을, 나의 상태가 나아지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단된 병명을 환자에게 이야기하면 그 틀에 갇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주위 정신질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내가 특별히 견고한 틀에 갇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를 포함한 주위의 정신질환자들이 모두 자신을 연민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정신병은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닳게 만드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방패가 되어줄 수도 없는 부실한 약점에 이것이 우월한 특징이라도 되는 양 놓지 못하고 나를 연민하는가… 조금 더 고찰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자기 연민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신 질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연민한다. 아니, 자신을 연민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히 ‘나는 정신병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위로가 된다. 나에게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것 같고, 책임을 회피하더라도, 주어진 일에 실패하더라도 내 탓이 아니라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 같고, 해방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나는 자기 연민을 멈출 수 없는 것 같다.
가끔 논문이나 기사, 영상 매체들을 보고 나서 ‘내가 가진 정신질환은 이런 특징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자기 연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찰된 사실이니까.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는 그것조차 나를 정신병이라는 틀에 가두고 나를 제한하는 행위하고 생각했나 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이의 자기 연민이 듣기 버겁다 이야기하는 나에게 너도 똑같은 사람이라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아 더 이상 그런 쪽으로는 입을 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분출하지 못해 내 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낼 일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았고, 설령 입 안에서 맴돌더라도 삼켜 잊어버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나를 해방한다 생각했던 행위는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재단하고 묶어두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렇게 깨달았다. 자기 연민은 나의 어딘가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어 나를 조종하고 있었고, 다른 이의 자기 연민이 거북하게 느껴졌던 것은 결국 자기혐오의 일종이었다는 것을. 우리만의 리그에서 네가 낫네, 내가 낫네를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것 또한.
그러나 내 안에 자리 잡은 자기 연민을 당장 뿌리 뽑을 수는 없다. 세상에는 자기 연민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으면, 뒤를 돌지 않으면 나를 갉아먹는 것만은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