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을 하는 정신병자

안녕하세요, 뭐 때문에 오셨어요?

by 찬류

“개X끼.”

“아, 놔 봐!”

“사람 바꿔!”


종이를 찢는 소리가 꽤나 자주 들린다. 종이도 자원인데,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뒤에서는 열을 내며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내 머리는 차갑게 식는다. 그럼에도 나는 웃으며 사람을 대한다.

“아이고, 선생님 속상하시겠다~”

자존심도 없냐, 싶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행인 걸까?




감정노동, 하면 생각나는 직업은 무엇일까. 서비스직? 교사? 콜센터 직원? 듣다 보니 다들 힘드시겠다, 싶어 눈썹이 축 처진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데, 왜 세상에는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한 가지 직업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아, 주민센터 공무원!


얼마 전, 단기 공공근로를 할 기회가 있었다. 공무원 체험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많은 것을 얻게 해 준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취준생 신분인 방구석 히키코모리에게 주어진 근로의 의 기회라니! 심지어 사람을 응대하는 일이라 사람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나의 사회성에 기름칠을 해주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보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귀한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회인가!

-라며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실 근로의 기회가 왔을 때만 해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당장 취준생으로서 돈이 부족한 것만 아니었다면 바쁜 일이 있다며 이 귀한 기회를 다른 이에게 떠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위에서 말한 것들은 전부 사실이고, 근로가 끝난 뒤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또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담긴 소감이기도 하다.

다만, 문제는 내가 저런 생각을 하고 기대를 가진 채 첫 출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에 있었다. 내가 누군가. 감정조절 장애의 탑 오브 탑, 조울증을 가진 이가 아니던가. 민원인과 한 판 붙지나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한 번 폭언을 들었다고 3일 밤낮을 내리 울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 때문에 일하기 싫다고 냅다 출근을 하지 않는 회피성 행동을 보일까 봐 걱정했다. 무엇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하루 종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부담으로 다가왔다.


첫 출근 3일 전부터 불안증이 도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내가 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민원인과 싸우면 어떡하지? 이상한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으면 어떡하지? 일을 못하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면? 무엇보다 내가 사람을 응대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돌리기를 수십 번, 상상만으로도 공황장애가 도질 것 같아 지금이라도 병원에 달려가 약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하나 걱정했다.

그렇게 대망의 아침이 다가왔다. 둥근 해를 거절하고 싶어도 세상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할 수 있다, 속으로 삼창을 하고 힘차게 인사를 했다. 공무원분들은 친절했고, 의외로 정신도 말짱했다.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니 안개가 낀 머릿속이 점점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뒤죽박죽이었던 어순이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어 입 밖으로 술술 나왔고,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어야만 말을 할 수 있었던 내게 순발력이라는 것이 생겼다. 눈치 없이 마구 튀어나오는 종류의 말이 아니라, 정말 감탄할 만한 것 말이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눈 한 번 제대로 깜빡일 시간도 없이 바쁘니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핸드폰과도 멀어졌다. 그럼에도 심심하지 않았다. 다음 할 일을 점검해야 하니까. 아, 근로자의 삶이란 이리도 아름답구나!

심지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응대와 업무의 불규칙함은 내 ADHD 성향에 딱이라서, 나는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익숙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칭찬도 받으니, 내 자존감은 끝도 없이 올라갔다.




사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규칙적인 삶’에 대한 강조에 대해 그 중요성을 체감하거나 필요성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또한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직장인의 규칙적인 삶이 더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경험으로 나에게 어떤 삶이 더 맞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규칙적인 삶의 중요성에 대해 체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루틴을 가져라, 규칙적인 생활을 해라! 그리하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취준에 대한 열정을 더욱 불태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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