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근육이 빠졌다!

몸에도 근육이 없는데

by 찬류

글을 쓸 때, 지속적으로 막힘없이 글을 쓰게 해주는 것을 보통 ‘글근육’이라 부른다. 글근육이라는 것은 정말 신체의 근육과도 비슷한 것이라, 며칠 글을 쓰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내버리면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내 생각에는 일반 근육보다도 쉽게, 잘 빠지는 근육이 바로 글근육이 아닌가 싶다.




나는 글근육이 빠지는 것을 ‘글손실’이라 부른다. 입시생 시절부터 종종 쓰던 말이었는데, 이 말을 쓸 때마다 주위의 반응이 꽤 좋아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 사전에 입력해 두었다. 근손실을 겪은 뒤의 후유증과 일어나는 일, 해야 하는 일 등이 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인지 이것만큼 글근육이 빠진 상태를 종합하는 말이 없다고도 생각한다.

글손실은 하루만 글을 쓰지 않아도 쉽게 찾아온다. 나 자신이 어느 정도로 글을 쓰든 간에 관계없이, 순식간에 0으로 수직낙하하는 것이다. 습관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지난날을 떠올리니 어찌나 분한지, 모든 것이 부질없다며 순식간에 놓아버릴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특히 내 의지로 글을 쉬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설이 지났다. 온 가족이 모였고, 당연히 글을 쓸 시간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분주히 움직이던 몸은 밤에 눈을 감을 때가 되어서야 전원을 꺼버리듯 움직임을 멈췄다. 키보드를 잠깐 치거나 소재를 떠올리는 것도 사치일 정도로 글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명절이 끝나니 휴일에도 쉬지 못한 내가 아쉬워 하루만 쉴까, 생각하던 것이 하루가 더해지고 이틀이 더해졌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이미 글과는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키보드를 치는 것도 어색하다. 손목을 어떻게 두었는지, 손가락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자판을 눌렀는지도 의식하게 되었다. 묘하게 오타도 자주 나는 기분이다.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 말문을 열어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문장을 쓰다가도 막히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명절 기간 동안 입을 쉬지 않고 움직였음에도 문장을 끝맺지 못하고,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끙끙 앓는 중이다. 말을 하지 않아 문장이 막히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다. 그림을 처음 그리는 사람이 붓을 어디부터 대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어떤 글자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잃은 기분이다.


하루마다 채워두던 투두리스트는 일주일치가 통째로 비워졌다. 일주일이 그냥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남겨둔 것이 없으니 아마 이후에는 이때 무엇을 했냐며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당장 어제의 지출 내역을 보면서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짚는 나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밑바닥에는 끝이 없다고 했던가, 글근육이고 뭐고 논할 실력이 아니라 생각했던 나도 더 떨어질 곳이 있는 걸 보니 현상유지도 대단해 보인다. 습관 또한 현상유지를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하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애를 써야 할까. 감이 잡히지 않는 걸 넘어 허탈해지기까지 한다.


근손실을 극복하는 것은 다시 운동을 하면서 습관을 다지는 방법밖에 없듯, 글손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글을 쓰는 방법뿐이다. 지금까지 글을 쓰느라 허덕인 세월이 몇인데, 겨우 며칠 강제로 떨어져 있었다고 이런 업보를 치르다니… 정말 불공평하고도 불친절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보통 글근육이 빠졌다고 한다면 글을 쓰지 않아 아웃풋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뜻을 담는데, 당연하게도 나는 이번 명절동안 책을 포함한 글을 단 한 글자도 접하지 못해 인풋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억지로라도 욱여넣어야 할 정도로. 아마 계속해서 타이머를 맞추고 때가 될 때마다 책을 읽어야만 이 간극이 메워지고 이전만큼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양심 없는 것처럼 발전을 바라지도 않는다. 딱 명절 이전만큼의 감각과 루틴을 되찾는 것이 목표다.




이전에도 가끔 글손실의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기 때문에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확실한 목표가 있었고, 그 간극을 충분히 메울 만큼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외부에서 제시해 주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더욱 라인을 이탈한 것 같은 감각에 휩싸이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초심을 찾고 습관을 다시 만들어 보는 수 밖에는. 내가 나를 원상 복구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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