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짓수 잘못 찾아온 아저씨

by 찬놀

5월에 소득세과에서는 세무서에서 가장 큰 공간인 대강당을 종합소득세 및 근로장려금 신고 창구로 만들고 납세자들의 세금 신고를 돕는다. 관련 과 직원 뿐만 아니라 관계 없는 다른 과 직원들까지 동원될 정도로 굉장히 큰 연례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그 날 난 제일 앞에 앉아서 단순경비율 대상자와 기준경비율 대상자를 가려내고, 수입금액 안내 자료를 뽑아주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 데 복도에서 동그란 얼굴과 체구를 가진 한 아저씨가 와서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물었다. 내 목에 걸려 있는 직원 명찰을 본 것일 테다.


"소상공인 지원금 어떻게 신청해요?"


"아, 그건 저희 업무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아저씨는 근로장려금과 소상공인 지원금이 헷갈려서 온 걸까?


“여기 홈페이지에 있는 데 전화해 봐도 어떻게 신청하는 지 안 알려줘요. 제가 핸드폰을 잘 못 해서 그런데 한번만 봐 주시면 안 될까요?”


이 아저씨,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걸 알면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일부러 온 거다. 말투가 매우 공손하고 애잔하다. 휴대폰을 할 줄 아는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진작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금을 꼭 신청해야 하는데 상담원은 알아서 하라는 말만 반복하고,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고, 얼마나 초조하고 답답할까? 하지만 나는 지금 신고창구 근무중이었으므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빨리 가지 않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늘어날 테고 동료들이 힘들어 할텐데.


]원칙대로라면 단호하게 우리 일이 아니라고 되돌려 보내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꾸 안쓰러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직렬이 어떻건 간에 나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로 한 공무원인데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줘도 나라에서 혼을 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저씨를 그냥 신고창구로 데려와서 의자에 앉춰놓고 핸드폰을 건네 받았다. 인터넷 어플에 창이 52개나 열려 있어서 놀래는 소리를 냈더니 어떻게 끄는 줄 모른다고 다 꺼달란다.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 하나 누르다가 정지된 야동을 발견해서 당황한 건 굳이 티 내지 않고 X를 터치했다. 갑자기 아저씨의 성적 취향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소상공인 지원금 신청 페이지에 또다시 오류가 나서 상담센터에 전화를 다시 해 보았다.


“저희가 신청을 도와드릴 수는 없고, 모바일 홈페이지를 통해 하시면 됩니다.”


그 모바일 홈페이지가 잘 안되서 전화 했는데 답답했지만 애먼 상담원한테 화를 낼 수는 없으니 그냥 알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옆에 있던 인터넷 컴퓨터를 사용하니 시원시원하게 넘어가져서 잘 해결해 드렸다. 다 해서 20분 정도 걸렸는데 대강당에서 뭔가를 하고 있으니 남들이 보면 종합소득세 신고 관련해서 온 민원인인 줄 알겠지. 이렇게 나는 개인적인 측은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신없는 시장통에서 20분 동안 본연의 업무를 해태하였으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게 될 것 같다. 다른 동료들도, 기다리는 민원인 들도 이런 경우는 차마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은 언택트다, AI다 해서 손님과 직원의 접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우리 회사만큼 인간적으로 민원인을 대하는 곳도 드문 것 같다. 어려움에 처한 민원인들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데서 책임감을 느끼고, 다른 기관들도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창구는 열어두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못 도와드리니 알아서 하세요 라는 말을 듣는 게 언젠간 그대들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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