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꽃 피는 대승 불교
2020년 8월 24일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불교 공부를 좀 하신 분이라면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번뇌가 곧 보리,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곧 번뇌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마음에 항상 번뇌가 있는 우리는 모두 벌써 깨달은 것일까요? 우리가 번뇌가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어도 그냥 깨달아지는 걸까요?
불교에서 사용하는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뭔가 더 심오한 깊은 뜻이 담겨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2017년 영화 스님은 미국 노산사에서 어떻게 번뇌가 보리가 되는가라는 주제로 달마톡을 해주셨습니다. 그 내용을 토대로 [번뇌즉보리]가 무슨 뜻인지 오늘 한번 같이 배워봅시다.
선화 상인의 가르침
「번뇌즉보리」. 만약 이를 사용할 줄 안다면, 번뇌가 보리로 바뀔 수 있으나, 만약 할 줄 모른다면, 보리가 번뇌로 변한다.
「煩惱即菩提」。若會用,煩惱就是菩提;若是不會用,菩提變煩惱。《宣化上人語錄》
「번뇌즉보리」. 약회용, 번뇌취시보리, 약시불회용, 보리변번뇌. 《선화상인어록》
It is said, “Affliction is Bodhi.” if you know how to do it, you can turn affliction into Bodhi. If you do not know how, Bodhi can turn into affliction.
먼저 번뇌즉보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면 번뇌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번뇌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번뇌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마음속의 고통, 정신적인 질환, 너무 많은 잡념들 이런 것이 다 번뇌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가장 주요한 번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탐, 진, 치입니다. 부처님은 그 외에도 아만, 의심도 주요 번뇌라고 말했습니다. 의심 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삼보 즉 불, 법, 승을 의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주요번뇌에는 다섯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삿된 견해입니다. 삿된 견해란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도 역시 삿된 견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어야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리고 우리가 몸을 믿는 것도 또한 큰 번뇌라고 했습니다. 몸이 있다고 믿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번뇌가 확실히 있군요! 그런데 보살(선화 상인과 같은 깨달은 존재)이 말하길 “그런 주요 번뇌가 사실은 보리 즉 깨달음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번뇌가 사실은 깨달음이다라고 말하신 겁니다.
선화 상인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안다면, 번뇌를 보리로 바꿀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선화상인 말씀 중 만약 이를 사용할 줄 안다면, 번뇌가 보리로 바뀔 수 있다. (若會用,煩惱就是菩提)”
여기서 회용會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어떻게 쓰는지 안다면”이라는 뜻이지요. 회는 “할 줄 안다”는 의미이고, 용은 “사용한다, 쓴다”라는 의미입니다. 영화 스님의 법문에 따르면 이것은 바로 각 번뇌마다 그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팔만사천가지 법문이 있습니다. 이 팔만사천가지의 법문을 우리가 사용하여 다양한 종류의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것을 함으로써 번뇌가 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번뇌가 즉시 보리가 됩니다.
어떤 한 종류의 번뇌를 인식하면, 그 번뇌를 멈추는 특정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뇌를 보리로 변화시키는데 쓸 그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여러 방법들은 불교 경전, 논장, 율장 등 여기저기 곳곳에 있습니다. 삼장에는 모든 다양한 종류의 번뇌를 다룰 수 있는 다양한 법문(法門, Dharma Door)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인연인지, 어떤 상황, 계절, 국적인지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이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은 이 법문(法門), 내일은 저 법문을 써 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삼장에는 모든 종류의 번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번뇌에는 모두 다 해결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성제 또한 번뇌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는 것이 고(苦)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평을 그만해야 합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고입니다. 안그런가요? 사바 세계의 인생은 고로 가득합니다. 그러니 불평하는 대신 받아들이면 됩니다. 저항하는 대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아상도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할 줄 알면, 번뇌가 보리(菩提)가 됩니다. 우리가 어떤 법문을 사용해야 하는지 안다면, 즉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그 번뇌를 다뤄야하는지 안다면, 그러면 번뇌가 보리가 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우울하다면, 그것도 번뇌입니다. 사실 우울한 감정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울함을 느낍니다. 그것도 그냥 번뇌일 뿐입니다. 이를 다룰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울함은 그냥 생각입니다. 단지 생각일 뿐입니다. 이것이 번뇌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냥 한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럼 그걸 그냥 무시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른 곳에 집중합니다.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만트라를 염송하세요. 미국 위산사에서는 토요일마다 저녁 8시에 만트라를 합니다. 토요일 밤마다 영화 스님은 출가한 제자들과 함께 찾아오는 대중들과 함게 만트라를 염송합니다. 능엄신주 중 가장 핵심부분과 약사주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했는데, 이 만트라를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토요일 아침이나 일요일 오전이나 오후에 오지 않고, 이 토요일 저녁 만트라에만 옵니다. 이 만트라가 번뇌를 쫓아버립니다. 그러니 만트라를 하세요.
불교 수행의 가장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뭘 해야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어떨 때는 부드럽게, 어떨 때에는 단단하거나 강하게, 어떨 때에는 앞으로 밀어붙이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뒤로 물러서기도 해야합니다. 이렇게 유연해야 합니다.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선화 상인의 가르침에서 약회용, 번뇌취시보리(若會用,煩惱就是菩提) 즉 만약 사용할 수 있으면, 번뇌가 바로 보리가 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회용” 중 “용(用)”이란 사용한다는 뜻 외에도 “기회를 이용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번뇌가 있을 때, 이것이 깨달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기회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돈오법입니다.
번뇌가 있을 때마다 그것은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해야하는 일은 단지 그 집착을 떨어뜨리는 것 뿐입니다. 그럼 즉시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돈오입니다. 여러분이 번뇌가 있는 것은 그 뒤에 집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셨나요? 우리는 번뇌에 응하여 행동을 취합니다. 그래서 번뇌 위에 더 많은 번뇌를 만듭니다. 여러분에게 번뇌가 생기는 것은 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화 상인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난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개미 한마리이다. 내 위로 터벅터벅 밟고 걸어도 된다. 나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만약 여러분이 이렇다면, 그때 사람들은 여러분을 진정으로 존경해 줄 것입니다. 최상의 존경은 여러분이 아상이 없을 때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여러분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 존경심이 진실이 됩니다. 더 이상 가식적이지 않습니다.
우울한 생각이 찾아오면, “아 기분 나빠, 기분 나빠”라고 말하고, 그 괴로움에서 도망가기 위해 죽고 싶다고 합니다. 그건 고통이 완전히 없어야 한다는 집착입니다. 괴로움을 받아들이세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분이 안 좋나요? 나한테 뭘 원하나요? 기분이 더 안 좋길 바라나요? 당신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한계가 있어요. 나쁜 기분이 최고조에 달하면, 그보다 더 안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게 끝이예요. 다 한거예요. 그런 후에 안락이 됩니다. 흔들리는 추와 같이 한 극으로 가는 것은 반드시 되돌아 옵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방향을 바꿔야만 하는 것이죠.
세상사람들이 겁장이기 때문에, “아픈 것이 싫어, 아프기 싫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당신에게 선택은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세요. 얼마나 더 기분이 나빠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그냥 해보세요. 당신이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그때 당신이 내려놓을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상관 안해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번뇌입니다. 자비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비라고는 없는 것입니다. “나 상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비가 더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상관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 봅니다. 이기적입니다. 다른 이들의 괴로움은 보지 않아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본다면, 자연스럽게 신경쓰게 됩니다. 막대기의 잘못된 끝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자기 자신만 보는 것이죠. “나 번뇌롭고 싶지 않아!” 안되요! 당신이 번뇌가 생기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번뇌롭지 않다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작은 비밀입니다. 번뇌롭지 않고서야 깨달을 수가 없어요. 불가능합니다. 알았나요? 그래서 우리 절에서는 벽 안쪽에 숨어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밖에 나가서 매일 번뇌가 생기게 둡니다. 그렇게 언젠가 깨닫기를 희망합니다. 더 많이 번뇌할 수록, 더 자주 번뇌가 있을 수록, 깨달을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벽 뒤에 숨어 있다면, 여러분은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벽 뒤에 숨어서 깨닫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숨어있으면 진전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안전하겠죠. 번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도록 권하고, 직장에 가라고 권합니다. 알았나요? 당신이 번뇌하지 않고서야, 절대 해낼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참고: 영화 선사의 법문, 2017년 10월 22일, 미국 노산사
https://www.youtube.com/watch?v=TKkWZq-WaW0
저자 소개 현안 賢安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영화 선사永化禪師(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처음 접한 후 수행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종교, 인종,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영화 선사의 지도하에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미국 전역과 캐나다, 콜롬비아, 쿠바 등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 수행법을 소개해왔다. 영화 선사의 한국 방문 시 동행하면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한국의 보산사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