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악회양선사의 2대 제자 중의 한 명인 마조도일선사의 홍법도량
보화선사(Pao Hua Buddhist Temple)는 남악회양(南嶽懷讓:677-744)선사의 2대 제자 중의 한 명인 마조도일선사(709-788)의 홍법도량으로 강서성 감현(縣) 전촌진(田村鎭) 공공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1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이다.
창건 당시 서당보화선원(西堂寶華禪院)으로 부르다가 명나라 초기에 보화사라 고쳐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마조스님의 입적(788년) 후 지장대사가 보화사에 다시 와서 전법하여 한국과 일본 및 동남아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문을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전각에‘寶華古寺(보화고사)’라 쓴 낡은 현판이 걸려있고, 그 아래에‘選佛場(선불장)’이 붙어있다.
“천하명산 마조홍규(馬祖洪規)제일”이라는 글이 붙어있는 전각을 지나 대웅전에 들어서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서당스님의 좌상을 모신 옥석탑(玉石塔)으로 향한다. 대웅전 뒤편에 한창 새 대웅전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을 지나서 오래된 사찰 벽에 <玉石塔>이라고 쓴 대리석 판이 붙어있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안쪽에 옥으로 된 탑 속에 서당스님의 좌상이 모셔져 있다.
1957년 7월1일 강서성 정부로부터 강서성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받은 이 옥석탑은 홍갈색옥석으로 조각되었으며 높이 4.5미터의 7층으로 밑 부분은 2미터의 옥석으로 받쳐져 있고, 그 위에는 3조 승찬대사의 신심명이 새겨져 있다. 옥석탑은 중국 강남제일탑으로 불리우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당나라 명탑이다.
옥석탑 옆에 마조스님의 대제자이며 보화선사의 창건자인 서당지장대사상이 모셔져 있다. 8세기 중엽인 당나라 때 중국 선종이 우리나라 신라 초와 고려 말에 전래되어 종풍을 크게 떨쳤는데, 신라의 증각홍척(證覺洪陟), 명적도의(明寂道義), 체공혜철(體空惠哲)국사가 서당지장 대사로부터 법을 받아 각각 실상산문(實相山門), 가지(迦智)산문, 동리(桐里)산문을 개산하였다. 우리나라 구산선문 중 희양(曦陽)산문과 수미(須彌)산문을 제외한 7개 산문이 모두 마조의 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옥석탑이 있는 전각 곁의 대각전 정면에 가로로“중국강서감주보화선사한국조계종참배단교류회(中國江西州寶華禪寺韓國曹溪宗參拜團交流會)”라고 쓴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금년 초에 조계종에서 중국 선종, 특히 마조선사의 홍법도량인 보화선사를 참배하고 교류회를 가진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육조스님의 정통 법맥을 이은 마조스님의 전법이 우리나라 선불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보화선사의 산문 앞에 새 대웅전 조감도가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당대 이후 마조스님과 서당지장대사의 법력으로 융성하던 도량이 문화혁명 때 무참하게 파괴되고, 수백 명의 스님들이 뿔뿔이 흩어져 불문이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쇠퇴기를 맞은 지 15년 여,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보화사를 재건하여 옛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2003년 12월 보화사를 찾은 중국불교협회장 일성(一誠)대화상의 지원과 감주시 정부와 보화사 주지 증통(證通)법사의 노력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사찰 총면적 4만 평방미터에 법당, 선원, 제당, 요사채, 불학원 등을 모두 갖춘 대총림사원으로 복원하는데 총 6천만이엔(元)의 인민폐가 소요되는 대불사가 지금 대법당의 공사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마조(馬祖)가 총림을 세우고, 백장(百丈)이 청규(淸規)를 일으킨 보화선사에는 지금도 40여 명의 스님들이 당시와 같은 근엄한 도풍(道風)과 엄격한 청규를 지키며 농선(農禪)을 병행하며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산문 앞에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은행나무 밑에 서서 제법 넓게 펼쳐진 녹색 들판을 바라본다. “평상심시도 즉심시불(平常心是道 卽心是佛)”의 마조선풍에 “일일불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가풍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보화선사가 대불사를 회향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하면서 대총림의 융창을 부처님께 발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