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초, 코로나가 막 터지고 매일 긴급 뉴스가 쏟아지던 때, 영화 스님께서는 직접 청주에 있는 후보 건물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한국 정부 발표에 따라 하루만 늦었어도 2주 격리가 필수였지만, 우리는 3일만 격리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묘한 한국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근처 격리 시설로 즉시 이송되었습니다. 도착한 호텔은 공사 중이라 정상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건물 전체가 어둡게 꺼져 있는 싸늘한 분위기였고, 우리가 머물 방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건물처럼 적막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질병관리청 직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차례로 검사실로 불려 나갔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라도 양성 판정이 나오면 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행 중 감염되었을 수도 있고, 잠복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함께 이동했으니 우리 세 사람이 모두 양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3일 만에 시설에서 풀려난 우리는 곧바로 청주로 향했습니다. 한국은 막 봄이 시작되는 때였습니다. 길가마다 벚꽃이 만개했고, 날씨는 따뜻하고 화창했습니다. 마치 한국이 우리를 크게 환영하는 듯 방문하는 내내 완벽한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청주 강내면에 있는 후보 건물은 예전에 웨딩홀로 사용되던 3층 구조였습니다. 한국 불자님이 먼저 공간 비용을 시주하겠다고 제안한 일이 시작이었지만, 최종 결정은 여러 요소를 함께 고려해 이루어졌습니다. 영화 스님께서는 “일단 해보자!”라는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당시 필요한 조건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낮은 유지비, 합리적인 교통, 넓은 주차 공간, 법회를 위한 충분한 공간.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저는 건물이 낡고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선 수행에는 최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주변도 허허벌판이라 갈 곳도 없고 즐길 곳도 없었습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미국 도량 기준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건물 외관은 빨간 지붕이 버섯처럼 튀어나와 있어 사찰로 상상하기 어려웠고, 건물 옆면에는 “고기 무한 리필”이라는 거대한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청주 보산사는 한국의 첫 도량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이룬 여정이었지만, 위앙종이 한국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코로나 상황이 더 악화되면 입국 자체가 완전히 금지될 수 있었기 때문에, 방문을 마치고 불과 2주 만에 저만 다시 한국으로 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불뿐 아니라 여러 불교 의식도 제대로 배울 틈이 없었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한국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한국 도량에는 원택스님, 서주스님, 월인스님이 함께했습니다. 세 분 모두 위앙종으로 출가한 스님들은 아니었지만, 함께 보산사에서 생활하며 서로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보산사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낡은 건물에는 제대로 갖추어진 법당조차 없었고, 족자로 인쇄한 부처님 그림 하나만 걸어두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수행 열정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수행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돌파구, 명확한 지침을 찾는 이들이 소문을 듣고 한 명씩 찾아왔습니다. 청주 보산사에서는 영화스님이 가르쳐주신 것들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며, 무엇보다 결가부좌를 가르쳤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매일 결가부좌로 앉으며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불교의 외형적인 모습은 거의 없었지만, 진심으로 수행을 원한 이들은 추위와 더위, 혼돈과 불편함, 때로는 서로 간의 충돌까지 모두 견디며 함께 정진했습니다.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았던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한 즐거움과 편안함은 외부 조건에서 얻을 수 없으므로, 오직 내면에서만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보산사는 수행자들이 뿌리를 내려가는 위앙종의 첫 한국 도량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이제는 위앙종의 미국과 한국 도량에서 함께 수행하는 전체 승가의 3분의 2가 한국인입니다. 심지어 미국 도량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출가자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스님도 어느 순간부터 ‘찬(禪)’이라는 중국식 발음과 함께 ‘선’이라고도 자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의 수행 열망은 뜨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