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도 누군가 계속 이야기하는데 문득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저 이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대가 듣고 싶은지, 도움이 되는지 상관없이 마음속 생각들을 바로 말로 내뱉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듣는 사람에게도 시간 낭비이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시간 낭비이며, 서로에게 아무런 발전이나 깊은 이해도 남기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져도 “그만 듣고 싶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무의미한 말을 멈추기 어려울까요?
이유 중 하나는 침묵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에고는 망상이 너무 많아서 고요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에고는 늘 움직이려 합니다. 가만히 있는 상태를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즉 에고의 본질은 ‘움직임’입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표정을 짓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합니다. 많은 경우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농담, 타인에 대한 평가, 정치 이야기 등이 오갑니다. 이런 게 우리 에고의 모습니다.
그래서 명상이 필요합니다. 명상은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연습에서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에고가 어떻게 움직이고 작동하는지 직접 보게 됩니다. 에고를 더 면밀히 관찰하고 진짜로 이해하려면 생각을 완전히 멈추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정의 삼매입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이 차분해지고 명료해지기 시작하면 “왜 이런 시간 낭비를 하고 있지?”라며 상대를 판단하거나 피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런 생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번뇌를 피하고 싶어 그런 상황이나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명상으로 인내심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적절한 때를 보아 양해를 구하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조절하게 됩니다.
불교는 자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매우 정밀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에고가 이럴 때 이렇게 작동하는구나’ 하고 분석하는 것으로는 실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이미 걸어간 스승이나 수행자가 필요합니다. 그분들께 묻고, 지침을 받고, 수행을 통해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에고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보고, 그것을 내려놓을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런 스승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그런 분이 여러분을 가르쳐주기로 결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운이 좋다면 좋은 스승을 만나서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진정으로 자유롭고 지혜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선명상의 궁극적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