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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vs 육식 - 수행자의 채식주의

by 현안 XianAn 스님

2021년 3월 9일


나의 부모님은 목장과 정육점을 운영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부족하지 않게 날 키워주시고, 대학교도 다니게 해주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는 목장에서 수십마리의 소를 키우시면서 우유를 납품하셨고, 아마도 내가 중학교때즈음 정육점을 시작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 정육점을 하실 때 김치찌게에 김치보다 고기가 더 많았고, 미역국에도 역시 미역만큼 고기가 들어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전문성을 살려서 농장직영으로 정육점을 하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어릴때부터 생선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 몇년간 참선을 배우면서 다른건 몰라도 생선을 안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 기억을 되짚어보니 내가 언제부터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된 과정이 꽤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채식주의자가 되려고 노력을 기울이거나 결심을 내린적도 없다.

지난 2012년부터 매년 여름과 겨울 미국 노산사와 위산사에서 선칠 수행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선칠 후 집에 돌아왔을 때, 고기 먹고 싶은 충동이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선칠이 끝난 후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종종 고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몸이 너무 피곤한 날이나 먼 도시로 출장을 나갔을 때 더욱 그랬다. 특히 먼 곳에 출장을 가면 직원들이나 사업상 만난 친구들과 어울려 유명한 식당에 가서 어울리는 것이 사는 즐거움이라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날 선칠 수행 중 한국 식료품점에 가게 되었다. 식료품점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정육코너 옆을 지나갔는데, 쇼케이스에 있는 고기가 다 내 몸같이 느껴졌다. 육식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싫은 것은 아니였지만, 그냥 먹고 싶은 충동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날부터 육식을 끊었다.


그래도 생선과 해물요리는 계속 먹었었다. 선칠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 일본식 식당에서 연어회가 들어있는 스시김밥도 즐기고, 간혹 거래처 사장님을 활어집에서 만나서 회와 사케도 즐겼다.


선칠 수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날 직원들과 다함께 집근처에 있는 일식스시집에 갔다. 지금 돌이켜보니 같은 종류의 음식을 즐기고 맛에 대한 공감을 누리는게 세속적인 즐거움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느낀다. 선칠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메뉴판을 보는데 그냥 맨밥에 미소국만 먹는 것과 화려한 스시먹는 것에 대한 차이가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다시 말해서 화려한 스시 메뉴를 보아도 먹고 싶은 충동도 느껴지지 않았고, 군침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직원들은 먹고 싶은 것을 시켜주고, 나는 맨밥에 미소국, 김 그리고 샐러드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날 이후 나는 생선과 해물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그전부터 오신채도 점점 먹지 않게 되었다. 선칠동안 계속 무오신채 채식으로 먹다가 양파와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몸이 무겁게 느꼈다.


무오신채 채식으로만 먹기 시작한 후 사람들과 식당에가서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이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큰 기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출가하기 수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무오신채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다행히 서양에서 채식열풍이 불면서 채식주의생활이 좀 더 수월해졌다. 그리고 참선지도를 받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좀 더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거나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이렇게 나는 불교인은 채식을 해야한다, 육식은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수행으로 채식주의가 되어버렸다. 참선과 수행으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많은 분들이 채식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하니 참 좋은 일이다.

2015-05-07 07.02.19.jpg 2012년 노산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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