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라쌤의 독고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by 찬란한s

<이방인>이라는 책을 생각하면 저자 알베르 카뮈의

저 담배 물고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작가와 주인공 '뫼르소'가 다른 사람임에도 어쩌면 '뫼르소'의 모습이 저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도 작가의 모습이 일정 부분 투영된 것이 작품 속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방인>이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고

저자인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사르트르에게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 문학의 총아라고 불리던데,

정작 그 실존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챗gpt에게 물어보았더랬다.


'실존주의'란 인간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쉽게 말해 세상에는 원래부터 정해진 의미나 목적이 없고,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이 없이 태어났고 논리적이지 않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 정해진 의미는 없다.

그저 각자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방인> 속 '뫼르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반적인 사회의 감정 규범(슬퍼해야 한다, 후회해야 한다 등)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는 "세상이 본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순간조차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태도가

"진정한 자유"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뫼르소'는 사회 속의 ‘이방인’인 것이다.

.

.

혹자는 그 시절에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라는 정신학적 용어가 달리 없었기에 그를 이방인으로 분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는 아마도 최소 소시오패스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품 속 본질은 그의 일반적이지 않은 감정의 태도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인 것 같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삶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로 임했으며, 그래서 자신이 생각한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의 행동을 옹호한다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보니 그런 것 같다는 편이 더 맞겠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인생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속 주인공보다는 '뫼르소'가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는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그가 만약 진리를 알았다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그가 얻은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이런 말들이 내게는 너무 무책임한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의 자유도 진정한 자유가 아닌 것 같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고,

그것 역시 각자의 선택과 책임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의미를 찾느냐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 아무 의미 없이 주어진 것이기 아니기에.

작가의 이전글신나라쌤의 독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