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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10. 2022

시간차

아버지와 나는 다른 시간을 산다

아버지의 뒷모습, 굽은 허리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과 아버지가 나이를 먹는 것의 차이에 대해. 나이    먹는다는 사실은 같다.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열여섯이었던 내게 더해진 10년의 시간은 나를 소년에서 청년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마흔다섯이었던 아버지에게 더해진 10년이라는 시간은 아버지의 주름살을  깊게 파고들었고, 손을  거칠게 만들고,   같던 성격도 누그러뜨렸으며 마지막엔 뇌경색이라는 병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병은 언제나  앞에 단단한 바위처럼 강인했던 아버지를 힘없이 주저앉혔다.


나는 아버지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이제는 나보다도 가벼운 몸무게를 부축하며 걷고 있다. 아버지는  손을 모아 말초정맥용 수액이 걸려있는 이동식 링거대를 잡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모습으로 아버지와 나란히 화장실에 가게  줄은 꿈에서 조차 상상해본 적이 없다. 아무렇게나 눌리고 엉켜있는 아버지의 뒷머리가 보인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가족을 위해 하얗게 지새운 밤의  만큼 늘어났을게다. 볼일을 마친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환자용 샤워실로 간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쪽으로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맡긴다. 한사코 비누로 감는  시원하다며 샴푸를 마다한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비누로 문지르니 향긋한 거품이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난다. 비눗물이 눈을 따갑게 적실까  조심조심 손을 놀린다.


거품을, 머리에 묻어있던 비누거품을 헹구는데 울컥, 하고 눈물이 솟는다. 이를  깨물고 눈물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지지만 고개를 숙인 아버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 끝내 참아내지 못한 눈물  방울이 볼을 간지럽히며 턱끝에 맺힌다. 눈물  방울, 또옥, 하고 떨어지지만 아버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눈물 섞인 아버지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낸다. 방금 머리를 감았는데도 머리카락 사이로 거친 비듬이 눈에 보인다. 이다음에는  깨끗하게, 정성스럽게 감겨드려야겠다.


아, 아버지.


나는 치약 묻힌 칫솔을 건네며 속으로 아버지를 부른다.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떤 모습일지라도 부디 오래도록 제 곁에 머물러 주세요. 그동안 나를 지켜주셨듯, 이제 내가 지켜드릴게요.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B32qg6Ua3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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