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는 다른 시간을 산다
아버지의 뒷모습, 굽은 허리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과 아버지가 나이를 먹는 것의 차이에 대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은 같다.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열여섯이었던 내게 더해진 10년의 시간은 나를 소년에서 청년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마흔다섯이었던 아버지에게 더해진 10년이라는 시간은 아버지의 주름살을 더 깊게 파고들었고, 손을 더 거칠게 만들고, 그 불 같던 성격도 누그러뜨렸으며 마지막엔 뇌경색이라는 병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병은 언제나 내 앞에 단단한 바위처럼 강인했던 아버지를 힘없이 주저앉혔다.
나는 아버지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이제는 나보다도 가벼운 몸무게를 부축하며 걷고 있다. 아버지는 두 손을 모아 말초정맥용 수액이 걸려있는 이동식 링거대를 잡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모습으로 아버지와 나란히 화장실에 가게 될 줄은 꿈에서 조차 상상해본 적이 없다. 아무렇게나 눌리고 엉켜있는 아버지의 뒷머리가 보인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가족을 위해 하얗게 지새운 밤의 수 만큼 늘어났을게다. 볼일을 마친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환자용 샤워실로 간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 쪽으로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맡긴다. 한사코 비누로 감는 게 시원하다며 샴푸를 마다한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비누로 문지르니 향긋한 거품이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난다. 비눗물이 눈을 따갑게 적실까 봐 조심조심 손을 놀린다.
거품을, 머리에 묻어있던 비누거품을 헹구는데 울컥, 하고 눈물이 솟는다. 이를 꽉 깨물고 눈물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지지만 고개를 숙인 아버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아, 끝내 참아내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이 볼을 간지럽히며 턱끝에 맺힌다. 눈물 한 방울, 또옥, 하고 떨어지지만 아버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 눈물 섞인 아버지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낸다. 방금 머리를 감았는데도 머리카락 사이로 거친 비듬이 눈에 보인다. 이다음에는 더 깨끗하게, 정성스럽게 감겨드려야겠다.
아, 아버지.
나는 치약 묻힌 칫솔을 건네며 속으로 아버지를 부른다.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떤 모습일지라도 부디 오래도록 제 곁에 머물러 주세요. 그동안 나를 지켜주셨듯, 이제 내가 지켜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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