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란 Aug 13. 2022

순간 접착제는 안쓰럽다.

불쌍한 순간 접착제...

순간 접착제는 물체를 순간적으로 붙게 하는 접착제이다. "강력 접착제"라고 불린다. 주성분은 시아노 아크릴레이트이고, 색깔은 무색이다. 보통 순간 접착제는 5~10초 안에 굳는다.

- 위키백과


유명한 순간 접착제(헨켈 록타이트)




순간 접착제는 물건과 물건을 강력하게 붙이고 절대로 떨어지지 않게 만들 때 필요하다. 이때 우리는 이 두 물건을 다시 떼어놓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느 바보가 다시 떼어버릴 물건에 순간 접착제를 쓴단 말인가?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건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고 절대 떨어져선 안 되는 물건도 때론 떨어뜨려놔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순간 접착제로 붙인 물건은 온전히 떨어지지 않는다. 붙어 있는 그 부분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그 부분과 가장 가까운 면(面)이 통째로 뜯어져 나간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면이 붙었던 두 물건 다 못쓰게 망가져 버린다.


나는 프라모델 조립에 몰두하던 중학생 시절, 겁도 없이 맨 손으로 순간 접착제를 만지다가 쏟아서 왼쪽 손가락 전체가 붙어 버린 적이 있다. 게다가 약한 화상도 입었다(순간 접착제는 열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내가 힘을 세게 주자 서로 붙은 손가락 사이의 살점은 결국 찢겨 떨어져 나갔다. 다행히 대부분 표피층끼리 붙어 큰 피를 보지는 않았지만 연분홍색 진피층이 드러나는 상처가 생겨버렸고 피부가 완전히 아물고 중화되는 데에는 몇 주가 걸렸다.


그래서 순간 접착제를 쓸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순간 접착제를 쓰는 게 용기가 필요할 정도의 일이야? 참나,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생각이 사실 맞다. 그냥 세상을 조금 쉽게 살면 된다. 강력하게 붙으면서도 깔끔하게 잘 떨어지는 최신형 강력 양면테이프를 쓰고, 만약 접착제 자국이 조금 남았다면 접착제 제거제를 사용해서 말끔히 지우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은, 순간 접착제를 쓸 일이 필요하다. 면적이 너무 좁은 곳이나 세밀한 작업이 필요할 때, 특히 깨져버린 물건의 어느 부분을 다시 감쪽같이 붙일 때 필요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순간 접착제야 말로 정말 안쓰러운 제품이다. 왜냐하면 그 효용이 대부분 1회성에 그치기 때문이다. 살면서 '순간 접착'을 할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고 이미 한번 사용한 순간 접착제는 잘 밀봉하지 않으면 다음번 '순간 접착'이 필요한 때가 왔을 때 이미 고체의 형태가 되어버린 상태로 발견된다. 공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버린 순간 접착제는 '순간 접착' 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모두 접착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처럼 투명하게 비치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잘 흐르던 그들은 돌멩이처럼 딱딱해져 아무 말이 없다. 이 얼마나 안쓰러운 일인지.


순간 접착제가 액체 상태일 거라 기대하며 몇 번 흔들어 보던 나는 결국 이번에도 또 굳어버렸군 쯧쯧, 혀를 찬다. 그것이 마치 순간 접착제의 잘못인 것처럼. 손에 들었던 순간 접착제는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나는 물건들이 다 있다는 그 상점으로 가서 다시 새 순간 접착제를 사 오게 된다. 새 순간 접착제가 필요해서 사왔다는 소리를 이렇게 참 길게도 했다. 안쓰러워해 가며, 안타까워해가며.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odUkx8C2gg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