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가 계급을 내재화하는 세 가지 방법

by Sherlock Park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흑백요리사'의 부제는 '요리 계급 전쟁'입니다. 사회주의 체제나 마르크스의 저작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계급'이란 단어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접하니 신기합니다. 우리 사회는 계급사회인가요? 아닌가요? 어떤 사람들은 소득의 양극화, 부의 대물림이라는 관점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계급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아예 계급이란 단어를 제목에 넣어 버렸습니다. '우리 좀 떳떳해지자'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다가와서 "당신은 흙수저야"라고 한다면,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이 말속에는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금수저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겠지만 사실 흙수저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이 상대방으로부터 그대로 까발려지는 것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흑백요리사 요리 대회에 먼저 등장한 80명의 사람들은 처음 이 프로그램이 두 종류의 참가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100명이 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80명만 보이니 나머지 20명을 찾게 되지요. 그런데 왠 걸요? 빈자리가 없네요. 20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중앙에, 마치 천사와 같이 하얀 가운을 입은 20명의 요리사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는 순간 80명의 사람들은 참가자가 두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곧 이 두 그룹의 구분은 상당히 '계급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저는 80명의 참가자들이 계급을 내재화하는 데 주최들이 사용된 장치들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80명의 요리사들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고요. 자신감도 무척 강합니다. 그런데 주최 측은 여러 방법을 사용해 그들이 열등한 그룹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이 방법은 성공을 거둡니다.


(1) '백'요리사들의 위치와 자세


'백' 요리사들은 등장한 후 '흑' 요리사들을 위에서 내려다봅니다. 그것도 모자라 '백' 요리사들은 줄곧 서 있습니다. 반면 '흑'요리사들은 자리에 앉아 있지요. 시선의 위치는 곧 위계질서를 상징합니다. 정말 실력 있는 분들이 '백'요리사로 나오셨겠지만요. 이러한 '물리적 장치'는 일종의 환상처럼 착용하면서 80명의 참가자들이 위계가 실제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만듭니다.


(2) '흑' 요리사, 그리고 흑수저라는 호칭


왜 청백요리사가 아니라 흑백요리사일까요? 청과 백 또한 대비되는 두 색깔이면서 청군과 백군처럼 경쟁하는 두 그룹을 지칭할 때 사용되지만 여기에 위계질서는 없습니다. 하지만 흑백은 그렇지 않습니다. '백'은 깨끗함, 부유함, 우월함을 상징하고, '흑'은 지저분함, 가난함, 열등함을 상징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요. 왜 우리가 이러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인지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미국, 유럽 등 부유한 강대국의 주 민족 구성원이 백인인 반면 가난함을 상징하는 아프리카의 주 구성원은 흑인이라는 점도 한몫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나중에 등장한 20명의 요리사가 흑색 가운을 입고 등장하고 나머지 80명이 백색 가운을 입는다는 설정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하나는 주최측은 80명의 참가자들을 '흑'요리사로 그룹화하면서 자연스레 '흑수저'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흙과 흑은 뜻은 다르지만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80명의 참가자를 '흑'요리사로 1차 지칭 후 연이어 '흑수저'라는 2차 지칭을 사용함으로써 은근슬쩍 '흙수저'를 연상시키도록 만듭니다. 흑색 옷을 입은 참가자들은 '흙수저'는 아니지만 그러한 반복된 호칭 사용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그룹임을 받아들이도록 만듭니다.


(3)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사용할 수 없음


'백'요리사들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흑' 요리사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대표하는 중요한 장치 중 하나입니다. 물론 개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하지막 닉네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A라는 닉네임을, 저러한 환경에서는 B라는 닉네임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이름보다 변화가 잦고, 또 그만큼 자신을 대표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에 제동이 걸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열심히 요리를 해도 그 요리는 대표 또는 오너셰프의 명예를 높일 뿐입니다. 물론 각자의 셰프들은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이름을 사용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위계의 정점에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요리 실력과 외적인 모습, 그리고 이름이라는 삼박자가 어울려 그 사람이 각인이 되는데 '흑' 요리사들은 실력과 외모를 휘발성이 강한 닉네임에만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외에도 흑백요리사에는 재미있는 포인트가 더 있는데요. 다른 글에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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