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 인생 서른여덟 번째 해를 살고 있으니, 만나본 적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횟수를 세자면 연애는 한 손으로, 데이트는 두 손에 발 하나까지 동원해야 한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내 나이 또래 여성은 평균 세 번에서 여섯 번 정도의 연애를 해 보았다고 한다. 나는 딱 그 중간인 셈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는 엄마와 헤어졌다. 잘된 일이었다.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은 함께 사는 사람 모두에게 고통이었다. 아빠는 집을 나간 뒤 사업을 시작했고, 경제적으로 나아졌다. 새로운 파트너도 만났다. 나는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그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빠의 도움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유학도 떠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늘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여태 나이 든 남자만 만났다. 연하는 논외이고, 동갑도 어리게 느껴진다. 흔히 여자가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젊은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고 하지만, 난 예외다.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도 여전히 나이 많은 남자가 좋다.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하고 눈가에 주름이 푹 패여야 매력을 느낀다. 탈모로 머리가 벗겨져도, 뚱뚱하지만 않다면 배가 나와도 상관없다.
이상한 취향은 또 있다. 나는 대학교 4학년 이후로 외국 남자만 만났다. 물론 유럽으로 유학을 나갔기에 한국 남성을 만날 기회가 적긴 했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유학지에서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한국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애초에 노선이 달랐다고나 할까. 유럽 생활을 시작한 뒤론 한국 남자와는 커피 한 번 마신 적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특별히 선호하는 인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국 국적을 가진 남성에게 흥취가 생기지 않는다.
나의 이런 심리적 원인은 무엇인지 ChatGPT에게 다시 물어봤다. 아버지의 부재와 ’완성된 남자‘에 대한 갈망, 문화적 거리를 안전한 거리로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나이 많은 외국 남자는 삼중 안전장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나이가 많은 것은 심리적 안정을 의미하고, 외국인은 문화적 거리를 제공하며, 이미 삶을 살아본 사람이기에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촌철살인이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취향은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여전히 나이 많은 외국 남자가 좋다. 한국 남자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나를 부담스러워할 것이므로 그만두련다. 내가 한국 시어머니라도 나 같은 며느리는 쉽지 않다. 체념이나 계산이 아니다. 주제 파악에 가깝다.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도모하는 것일 뿐, 다른 유감은 없다.
흥미로운 점은 ChatGPT의 분석 또한 내 편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취향은 결핍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구조를 찾아낸 전략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상 취향을 가진 노처녀’에서 ‘행복을 위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역시 난 멋진 여자다.
* 덧붙이기
나는 남자가 좋다. 남자는 아름다운 생명체다. 상처받고, 아픈 이별도 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밉지 않다. 나와는 다른 몸, 다른 생각, 다른 성향과 가치를 지녔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사춘기 때부터 남자는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병든 수탉처럼 졸다가도, 축구할 땐 운동장을 안방처럼 뛰어다니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아침에는 핏대를 세우며 싸우다가도, 점심시간이면 다시 함께 공을 차는 그 단순한 심리는 무엇인지. 고등학교 땐 한국 남성 작가들의 소설을 탐독하기도 했다. 황석영의 거친 문장과 이청준의 묵직한 분위기를 나는 어떤 ‘남성성’의 결로 읽어냈다. 지금도 남자는 여전히 흥미로운 탐구대상이다 — 바흐, 헨델, 라모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