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공장에 선 이방인

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 #2

by 기록의 상사맨


[잿빛 공장에 선 이방인]

40대 대기업 퇴사 후, 특장차 기술자로 전직한 이야기


긴장된 마음으로 공장에 첫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신입사원 시절 첫 출근 날 새벽같이 집을 나서며,

강남의 빌딩 숲 사이를 헤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도 두터운 외투를 입어야 했던 추운 겨울이었다.


처음 마주한 공장은 잿빛으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아직 근무 시작 전이라 공장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탈의실에 들어가 지급받은 작업복을 입고, 작업화를 신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작업화의 냉기가 발끝을 더 시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반 신발과 다르게 작업화는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


작업복을 입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직은 어색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출근하면 내 책상과 의자, 내 컴퓨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내 공간이 따로 없다.


공장 어디에 서있어야 할지, 손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근무 시간이 되자 보이지 않던 작업자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은 전동 그라인더 소리와 쇠망치 소리로 매우 시끄러웠다. 갈려 나온 쇳가루와 용접하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회사에 있을 때는 사무실 소음은 기껏해야 전화벨 소리, 키보드 치는 소리였다. 그러나 공장의 소음은 차원이 달랐다.


그라인더 굉음은 귀를 찢는듯 했고

여기저기 튀는 용접 불꽃은 화려해 보이기보다는 무섭게 느껴졌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에서 바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소음 레벨이 90dB 이상 다다랐습니다.
약 30분 동안 이 레벨에 노출되면 일시적인 청각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자 기존에 근무하던 기술자 선배들이 쟤는 뭐 하는 놈이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신입 OOO입니다.


인사를 건네도 그들은 일에만 집중할 뿐 나의 존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건 윙윙 거리는 기계음뿐이었다.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용접 불꽃만 바라보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10분, 15분이 지났지만, 누구 하나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공장 안의 소음 속에 나만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었다. 그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었다.


처음 왔는데 무슨 일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내가 잘못 찾아온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처음 왔어? 그럼 이리 와 이거 같이해”


따라가 보니 공장 한편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쓰다 남은 자재들이 작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다시 쓸만한 자재를 골라내고 고철 처리할 것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무거운 자재를 선별하고 들어 옮기고 하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손에 들린 가장 무거운 것은 노트북과 서류 뭉치였다. 하지만 지금 내 손은 차갑고 무거운 쇳덩이를 움켜쥐고 있다.


작업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보온 장갑은 아니기에

겨울의 칼바람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머리를 쓰지 않고 몸만 쓰면 되니 편할 줄 알았지만,

아직 내 몸은 이 투박한 노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 낯설고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강남 빌딩 숲을 걸을 때보다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진 기분이었다.


공장으로 첫 출근 날은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