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 #3
40대 대기업 퇴사 후, 특장차 기술자로 전직한 이야기
두 번째 여름이 지나고 두 번째 겨울이 왔다.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이 직업.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다’라는 말을 요즘 실감한다.
그 혹독한 환경에 어느새 내 몸이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익숙해질 만하면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운전도 초보운전 시절이 사고가 안 나고, 익숙해지고 방심하면 사고가 나는 것처럼.
절곡 된 철판 자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한 겨울 추위로 손이 얼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손가락 끝에 무언가 뜨겁고 쓰라린 느낌이 스쳤다.
날카로운 철판 끝에 손가락 끝이 깊게 베였다.
특히나 두께 1mm가 조금 넘는 철판 끝은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다. 아무리 작업장갑을 껴도 날 선 쇠붙이는 기어코 살을 파고들었다.
운이 나빴다. 꽤 깊게 베였다.
꿰매야 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지혈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피는 멈췄지만 그 이후 작업할 때마다,
손을 씻을 때마다 깊게 베인 상처가 신경 쓰일 정도로 쓰라렸다.
“기술배우다 보면 이것도 훈장이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깊게 베인 상처는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병원에 가봐야 하나 하는 고민이 되었다.
그날 저녁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네 살배기 딸아이가 나의 손가락 끝 상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빠 여기 왜 그래?
“아빠 일하다가 살짝 다쳤어 그래서 아야 했어”
"아야" 했으면 바로 말해야지! 잠깐만 기다려봐
딸아이는 자신의 보물창고인 장난감 통을 한참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리고 조막 만한 손으로 내 투박한 손을 잡고 반창고를 삐뚤빼뚤 여기저기 대보더니 내 상처에 붙여줬다.
딸아이가 가장 아끼는 ‘하츄핑’ 캐릭터 밴드였다.
검은 기름때가 낀 거친 손가락에 분홍색 하츄핑 밴드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신기하게도 상처가 정말 아프지 않았다.
딸아이는 알까? 아빠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빠의 손이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것을.
지난 13년 동안 상사맨으로서 펜과 서류를 손에 쥔 박 과장의 손은 부드러웠다.
그때는 A4용지에 살짝만 베여도 쓰라리다며 엄살을 피웠다. 하지만 지금 내 손은 기름때가 끼고 여기저기 굳은살이 있는 투박한 기술자의 손이 되어간다.
손가락 끝에 피어난 분홍색 하츄핑 밴드를 보며 마음을 다 잡는다. 아이가 자라서 나를 어떤 아빠로 기억할까?
화려한 대기업 명함은 없지만 적어도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땀 흘려 일하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상처가 아물면 밴드는 떼어질 것이다.
하지만 내 손 끝에서 피어난 딸아이의 온기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이 차가운 겨울을 버티게 할 것이다.
다시 작업 장갑을 낀다. 아프지 않다.
오늘도 전국의 모든 아빠들을 응원합니다!
다음 주 2/3 화요일에는, 대기업 과장 명함을 버리고
공장 초보가 되어 받아 든 '첫 월급 명세서'의 충격적인 숫자를 공개합니다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의 공장 첫 출근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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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차 대기업 박 과장이 연봉 반토막을 감수하고 공장에 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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