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날 충격적인 숫자(공개)

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 #4

by 기록하는 상사맨

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


40대 대기업 퇴직 후 특장차 기술자가 된 이야기


부제: 첫 월급날 충격적인 숫자


대기업 시절과 다르게 대비되는 정비공 첫 월급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내 월급이 어느 정도가 될지.


고용계약서에 연봉 계약을 하고

월급날 실제로 계좌에 찍힌 금액을 보니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외벌이 40대 가장...

내가 이 돈으로 우리 세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퇴직금으로 나름 금전적인 계획을 세우고 퇴사를 했다.

그러나 한숨이 나왔다.


통장에 찍힌 금액 약 240만 원.


내가 현장에 적응하고 기술이 올라가면

월급을 차츰차츰 올려주기로 사장님과 약속했다.

그러나 회사 다닐 때 와는 다르게 반토막난 월급이었다.


현실의 벽에 세게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이게 맞나? 내가 잘 선택한 것일까?

어렸을 때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공포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전혀 경력이 없는 분야.

그것도 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로 전직한 40대.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금액은 당연한 숫자였다.


스패너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초보에게

300만 원 이상을 쥐어 줄 고용주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기술을 배우는 ‘교육생’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조사를 해보니 서울회생법원에서는 2025년 기준,

3인 가구의 법정 최저생계비는 약 300 만원 초반대라고 한다. (기준 중위소득의 60%)

60만 원이나 모자라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집안의 가계부를 다시 살피고

줄여야 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동안 강남에 높은 빌딩숲에 출근하면서

아침에 대수롭지 않게 마시던 아메리카노도,

배고프면 시켜 먹던 야식도, 이제는 모두 사치가 되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소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하는 취미 생활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여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을 하고 펜을 굴려봐도

도저히 줄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딸아이에 대한 부분이다.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남들보다 늘 팍팍한 형편이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내가 말했을 때,

부모님이 선뜻 들어주신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나 중3 때 같은 반 친구 몇 명이 가지고 다니던

그 비싼 MD플레이어를 사달라고 조르던 철없던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부모님은 마지못해 사주셨지만, 이제는 안다.


해주고 싶어도
넉넉하게 해주지 못했던
그 마음을.


그때 부모님의 가슴이 얼마나 아렸을지를.

철없던 아들은 그 이유도 모르고, 안된다고 말해주는 부모가 미울 때가 많았다.


우리 집이 넉넉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부터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꾹 참았던 기억들이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 딸아이만큼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통장은 가벼워졌지만
그만큼 어깨는 무거워졌다.


부족한 금액은 내가 몸을 더 움직여서

기술을 습득하고 채우면 된다.


지금의 얇은 월급봉투는,

훗날 대체 불가능한 기술자가 되기 위해

내가 지불하는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장은 힘들어도, 기술이 늘 수록 통장의 숫자도 정직하게 불어날 테니까.


오늘도 나는 아메리카노 대신 믹스커피 한잔으로

카페인을 채우고 작업을 시작한다.


잊지 말자.
숫자는 반으로 줄었어도,
내가 짊어진 사랑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우리 부모님의 자부심이며,
내 딸아이의 하나뿐인 우주이다.

나는 오늘도 부족함 없는 아빠다

아기와나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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