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 #5
40대 대기업 퇴직 후 특장차 기술자가 된 이야기
공장에 출근한 지 어느덧 두어 달이 다 되어 갔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자재 정리와 공장을 청소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기술자가 되기 위해 왔는데,
좀처럼 기술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 계신 작업자 선배 분들도
나에게 뭘 시켜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스패너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정작 무엇을 맡길 수 있을까?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대기업 출신이고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이력은 여기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라인더질, 용접…
어느 하나 초보자가 쉽게 손댈 수 없는
위험한 일들이었다.
그래도 일은 시켜야 되니 만만한 공구 정리하는 일과
청소하는 것만 나에게 주문할 뿐이었다.
선배들이 작업을 마치면 뒷정리를 하거나
중간에 필요한 연장을 가져다주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얼른 기술을 연마해서 월급을 올려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만 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자꾸만 과거의 시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이 시간이면 사무실에서 난 무얼 하고 있었겠지”
차라리 다시 익숙하던 사무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후회가 턱 끝까지 차올랐다.
도망치고 싶었다.
분명 "잘할 수 있다", "어떻게든 기술 배워 성공하겠다"
각오하고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현실을 마주했을 때면
어김없이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가 고작 이거 하려고 회사를 나왔나?
이러려고 회사를 나온 게 아닌데…
내가 여기서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넋이 나간 사람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몸이 힘든 건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힘든 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회사 다닐 때 사무직처럼 체계적으로
신입을 교육시키고 그것을 내가 잘 배우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큰 오산이었다.
두 달을 다녀보니 이곳은 그런 체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당장에 눈앞에 닥친 일을 쳐내느라,
신입이 기술을 배우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사수와 부사수 시스템이 있어 일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곳이 애초부터 아니었다.
한낮이었지만 눈앞에 잿빛 공장이
더 무거운 톤의 무채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회사에 출근하면 내 책상과 푹신한 의자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 공장에는 책상이나 의자는커녕 내가 설 자리가 없다.
일하는 중에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그럴 공간도 마땅히 없었다.
유일한 도피처는
냄새나는 화장실 칸막이뿐이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변기 위에 앉아있으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이 일을 하라고 나를 등 떠밀지 않았다.
내 발로 회사를 걸어 나왔고, 내 발로 이곳에 찾아왔다.
집에 있는 아내와 딸아이가 생각났다.
아들 공부시키겠다고 고생하셨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너무 나만 생각하고 무책임한 결정을 한 게 아닐까?
감정이 북받쳤다.
꾹꾹 눌러왔던 설움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계속 흘렀다.
하지만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모든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니까.
한참을 소리 없이 삼키다가 거친 화장실 휴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칸막이 밖으로 나와 세면대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닦아낸 눈가에는 검은 기름때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지우려 할수록 얼굴에 더 번져갔다.
거울 속에는 이제 양복을 입고 대기업 사원증을 걸고 있던 ‘박 과장’ 은 없다.
대신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에 기름때가 묻은,
마흔 즈음의 중년의 신입이 서 있었다.
추운 겨울,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세면대의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차가운 냉기가 정신을 때렸다.
이대로는 이도 저도 안 된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마냥 시키는 일만 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추위에 벌게진 젖은 손을 작업복에 쓱쓱 문질렀다.
“가자. 아직 하던 일이 안 끝났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뱉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아직 내가 설 자리는 없지만 우선 주어진 일은 마쳐야겠다.
밖에서는 여전히 요란한 공장의 소음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이 텃세를 부리거나 일부러 기술을 안 가르쳐 주려던 게 아니었다.
워낙 일이 고되고 거칠다 보니,
얼마 못가 도망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그들은 내가 정말 이 ‘기름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금방 도망갈 사람은 아닌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다.
오기로 버텼고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지금도 이 현장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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