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 아닌, 대기업 다녔던 박 과장 이야기 #6
40대 대기업 퇴직 후 특장차 기술자가 된 이야기
공장에서 계속된 청소와 정리만 하던 나에게
첫 작업 지시가 떨어졌다.
‘어이 박 씨, 이리 와 봐!’
사고로 입고된 1톤 탑차의 사고 부위를 해체하는데,
망치로 리벳(못)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작업자 선배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정 끝부분으로 리벳의 머리 부분을 비스듬히 조준하고,
망치로 두 번 정도 때리니 리벳 머리가 손쉽게 제거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고 난 부위의 리벳을
전부 제거하면 된다고 하였다.
고작 망치질이었지만 이제야 나에게
청소 아닌 '진짜 일'을 주문하는구나 싶었다.
‘뭐야, 별거 아니네? 그냥 망치로 때리면 되잖아’
그런데 쉽게만 보였던 망치질은
보기와는 달리 쉽지 않았다.
옆에서 작업하는 선배는 쉽게 리벳을 제거하고,
또 다음 것을 제거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런데 나는 몇 번을 망치질을 해도
리벳 하나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을 잡고 있는 손이 흔들려 망치가 빗나가거나,
조준을 잘못해 허공을 휘두를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망치로 내 손등을 때려 찡하고 울렸다.
겨울 끝자락의 날씨였지만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옆에서 볼 때는 고작 하찮은 망치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조차 쩔쩔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순간부터 손에 들고 있는 망치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뭐 하냐!? 비켜봐!’
답답했는지 작업자 선배가 내 망치를 뺏고
다시 시범을 보였다.
쾅, 쾅! 경쾌한 두 번의 타격음과 함께
리벳은 쉽게 제거되었다.
그의 망치질은 단순히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정확한 타점, 정의 정확한 각도,
그리고 망치를 들고 있는 손목 스냅이 만들어낸
완벽한 하나의 몸짓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쉽게만 보였던 망치질도 단순한 노가다가 아니라
몸에 익은 ‘기술’ 중 하나였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을
‘단순 반복’이라고 얼마나 오만한 생각으로 치부했던가.
시간이 흐른 지금이야 나도 요령이 생기고
숙달이 되어서 쉽게 할 수 있는 망치질이다.
그러나 처음 망치질을 한 그때는
한 시간이 넘고 나서야
나에게 배정된 할당량을 마칠 수 있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망치질에
괜히 숨이 찼다.
그래도 한참을 망치질을 한 후에
바닥에 널린 리벳들을 보니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퇴근 후 집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와보니,
망치질을 하던 팔꿈치가 욱신거렸다.
실수로 손등을 몇 번이고 때렸던 부위는
조금씩 퍼렇게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회사 다닐 때 책상에 앉아
펜을 굴릴 때는 머리가 아팠지만,
현장에서 망치질을 하니 온몸이 아팠다.
매끈했던 사무직의 손등 위에
시퍼런 멍 자국.
그런데 왠지 그 시퍼래진 손등과 통증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책상 앞이 아니라,
거친 현장에 발을 디뎠다는 것을 나타내는
첫 번째 훈장이었다.
그리고 기술자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혹독한 과정 중 하나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능숙하게 망치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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