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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나남편 Dec 18. 2019

러시아 국경을 넘어 에스토니아 탈린에 도착

발트 3국 여행 시작!

오늘은 3주간의 러시아 여행을 마치고 에스토니아로 넘어가는 날이다. 에스토니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인데, 두나라 국경을 오가는 고속버스 회사 중 가장 깔끔해 보이는 ECOLINES 버스를 예약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어서 중간에 있을 출입국 절차가 어떨지 궁금했다. 


아침 식사 후 3박 4일간 편하게 머물렀던 호스텔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좋은 위치와 개성 넘치는 분위기가 맘에 들었던 곳이다. 무거운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거리로 나왔다. 버스 예약 확인서에 나와있는 집합 장소까지 배낭을 메고 걸어가기에 조금 멀어 트램을 이용했다. 트램 덕에 어렵지 않게 집합소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곳은 터미널도 아니고 아무런 정류장 표시 없는 사람이 다니는 인도였다. 


처음엔 아무도 없어 잘못 왔나 불안했지만 버스 시간이 다가오자 여행가방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가실 때쯤 ECOLINES 점퍼를 입은 여성이 나타났고, 곧이어 우리가 타고 갈 2층 버스도 저 멀리서 다가왔다. 아 이제 진짜 가는구나!


에스토니아로 타고 갈 버스 앞에서

점퍼를 입은 여직원은 예약자 명부의 이름을 부르며 티켓을 확인했다. 그사이 버스기사님은 가방을 짐칸에 싣고 일일이 짐 번호표를 티켓에 붙여준다. 안정감 있는 유럽 버스 시스템 덕분에 짐 분실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 버스 앞에 붙어있는 행선지를 확인했다. 상트에서 출발해 탈린을 지나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까지 내려가는 버스. 꽤 거리가 있을 텐데 기사님 힘내세요!


사진으로 봤던 것처럼 버스 시설은 만족스러웠다. 모든 자리에 개인용 On-Demand 스크린이 설치되어있고, 1층에는 무료 커피 자판기가 있다. 커피 한잔씩 뽑아 들고 멋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2층 맨 앞자리로 향했다. 2층 버스에서 창밖 경치를 구경하기에는 맨 앞자리만 한 곳이 없다. 가는 길에 비가 조금 내렸지만 역시 앞자리는 정답이다.


도시를 벗어나 두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자 국경이 나타났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었는데, 러시아 국경 직원이 버스로 올라와 사진을 지우라 한다. 국경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구나. 쏘리를 남발하고 얼른 사진을 지웠다. 


잠시 뒤 버스는 러시아 출국장에 정차했다. 모든 승객은 버스에서 내려 출국 도장을 받은 뒤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승객을 다시 태운 버스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사이에 흐르는 강을 건넌다.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절벽에 오래된 성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두 국가의 오랜 국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빠진 사이 버스는 에스토니아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위해 버스에서 내려 이민국 사무실에 들어갔다. 러시아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리는 에스토니아 입국 시 좀 까탈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다. 역시나 여권을 꼼꼼히 살피고, 입국 목적과 여행 일정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 언제나 입국 사무소에서는 최대한 여행자라는 느낌이 풍기도록 해야 한다. 이민국 직원들의 주요 관심사는 장기 체류와 구직이 목적인 사람을 찾아내는 것으로 돈을 쓰러 온 여행자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세계 어느 나라든 입국장에서는 돈 많은 여행자라는 느낌을 풍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꽤 많은 질문을 받고도 잘 대답한 신나부인. 깐깐한 질문을 마친 뒤 무표정하게 도장을 찍어주는 이민국 직원. 그다음 차례에 섰던 나는 'She is my wife'라는 한마디에 질문 없이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허탈해하는 부인을 다독이며 성공적으로 유럽에 들어온 것을 서로 축하해주었다. 미안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심사받도록 할게.


탈린 국경

입국 심사가 까다로운 탓에 모든 승객이 입국을 완료할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했다. 버스는 이미 국경 밖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쳤고 솜사탕 같은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따뜻한 유럽의 햇살을 즐기고 있을 때 모든 일행이 입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 이제 탈린으로 출발하자!


곧게 뻗은 도로 옆으로 넓은 숲과 밀밭이 펼쳐진다. 차들이 많지 않은 한가한 도로에서 유럽의 여유가 느껴졌다. 아침 일찍 서브웨이에서 사 왔던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온다. 당연히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국경을 넘는 일이 신경이 쓰였나 보다.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벌써 오후 4시. 창 밖으로 도시 풍경이 나타났다. 이윽고 버스는 깨끗하고 세련된 버스터미널로 들어선다. 여기가 탈린이구나.


버스에서 내린 배낭을 다시 짊어졌다. 터미널 앞 거리에서 예약한 숙소까지 가는 트램을 탔다. 탈린 트램에서는 기사님에게 직접 현금 요금을 내고 탈 수 있었는데, 가격이 1인당 2유로, 3,000원이다. 비싼 대중교통 요금에 새삼 유럽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에스토니아가 발트 3국 중에는 가장 잘 산다고 들었는데, 깨끗한 현대식 트램과 비싼 요금을 봐서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탈린 올드타운 골목길

숙소 근처에서 내린 뒤 탈린 올드타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마차가 다녔을 법한 벽돌이 깔린 골목길과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마치 중세 도시의 느낌을 풍긴다. 그런 골목을 지나 드디어 숙소에 도착. 비수기인지 침대가 4개 있는 방 하나를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간단히 짐을 풀고 마트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 먹을까.


에스토니아의 마트는 러시아에 비해 크고 좋았다. 다양한 식료품과 익숙한 공산품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유럽이구나. 러시아에 비해서는 교역이 활발한지 익숙한 상품들이 많았다. 다양한 국적의 맥주와 와인들도 보인다. 어떤 요리를 해먹을지 고민하며 마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탈린에서 만난 고추장과 된장

그런데 마트 한편에서 우리나라 식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국을 나서며 '고추장 따윈 필요 없어!' 라며 호기롭게 여행을 시작했지만, 러시아 여행 내내 얼마나 그리웠는데 여기서 너희들을 만나다니. 하지만 우리는 왜 그랬는지, 라면만 사고 또 한 번 더 미련하게 고추장을 사지 않았다. 왠지 유럽에서 고추장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잘못된 기대 때문이었을까? 이후 우리는 발트 3국에서 더 이상 고추장을 만날 수 없었고, 이때 구매하지 않은 것을 정말 많이 후회했다. 장기여행 중 뼈저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뭐든 살 수 있을 때 사야 한다. 특히 그것이 한국 식품이라면'일 것이다. 


그래도 마트에서 구매한 라면으로 오래간만에 매콤하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탈린의 올드타운 밤거리를 구경하였다.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지만 탈린은 꽤 안전하다는 첫 느낌을 받았다.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던 탈린. 내일 본격적으로 구경해보자! 

오늘 국경 넘으랴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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