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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나남편 Dec 20. 2019

탈린 올드타운 즐기기

유럽에 흔한 프리워킹 투어 

#프리워킹투어

#섹스과미래가없는에스토니아사람들

#이제100년됐어에스토니아

#사랑의묘약을파는전설의약국


어젯밤 탈린 올드타운의 야경을 즐긴 뒤 숙소에 돌아와 오늘 일정을 계획하던 중, 숙소 리셉션 한편에 붙어있는 '프리워킹 투어' 안내가 눈에 들어왔다. 직원에게 프리워킹 투어에 대해 물어보니 탈린 대학생이 참여자들과 함께 2시간 정도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며 무료 가이드를 해주는 것이라 한다. 정말? 공짜라고? 지금껏 돈 받는 투어는 많이 봤는데, 공짜 투어는 처음 알았다. 'Why Not? 우리 참가하자!' 그렇게 난생처음 프리워킹 투어를 경험하기로 하였다.


올드타운 인포메이션 센터

투어는 매일 정오 올드타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시작한다. 별도 예약 없이 시작 10분 전까지만 도착해 있으면 된다. 마침 센터가 숙소와 가까워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거리로 나갔다. 센터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정오가 다되어 두 명의 가이드가 나타났다. 참가자가 많은 탓에 두 팀으로 사람을 나눴다. 우리는 빨간 모자를 쓴 영어 발음이 유창한 남자 가이드팀에 속하게 되었다.


팀을 나눈 뒤 팀별로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다.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곳은 패스하고 약 두 시간 동안 올드타운을 다니며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줄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을 톰이라 소개한 우리 가이드는 사람들의 출신 국가를 묻는다. 우리만 동양인일 뿐 대부분 유럽인들이었다. 톰은 러시아에서 온 사람이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한 뒤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뭐지? 러시아에 대한 안 좋은 할 이야기가 많니?


에스토니아 독립 기념탑

톰은 인원 체크를 끝마친 뒤 독립 기념탑으로 이동해 에스토니아 역사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스토니아는 불과 100년 밖에 되지 않는 국가이고 비록 짧은 국가의 역사를 가졌지만 에스토니아 민족은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래로는 독일, 폴란드 위로는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등의 강국에 둘러싸여 늘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러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이곳을 지배하던 독일의 힘이 약해지고 러시아 제국마저 혁명으로 어지러운 사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땅이 된 에스토니아는 1918년 처음으로 독립 선언을 했다. 그렇게 최초로 국가가 된 에스토니아는 오래가지 못했다. 러시아 대륙을 정비한 소비에트 연방(소련)은 1940년 에스토니아를 다시 합병한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다시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쉽지 않았을 독립과정을 마치 어부지리로 주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톰에게서 에스토니아인들 특유의 여유와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탈린 올드타운에는 유독 멋지고 화려한 대성당이 많은데, 이는 새로운 지배자가 탈린을 점령할 때마다 기념 성당을 지은 탓이라고 한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인들은 이런 성당을 볼 때마다 ABC라며 구시렁거린다는데, 이는 Another Bloody Church 혹은 Another Boring Church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썰렁하지만 불만을 이렇게 조크로 승화시키려는 그들의 특징이 잘 느껴졌다.


역사 공부 말미에 톰은 한 가지 또 재미난 에스토니아 이야기를 해준다.


Estonian has no sex and no future

   

응? 에스토니아 사람에겐 성과 미래가 없다고? 무슨 말이지? 당황한 눈빛을 주고받는 우릴 보며 톰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윽고 설명을 이어간다. 그들의 언어 Estonian에는 유럽 다른 언어들과 다르게 성별과 미래형 시제가 없다고 한다. 주변 지배세력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헝가리어와 가장 유사하다는 그들의 언어의 이런 특징 때문에 이 농담은 꽤 유명한 개그(?)라고 한다.


'부엌을 엿보다' 첨탑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드디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의 중간쯤 올랐을까? 굵고 멋진 첨탑을 만났다. 탑의 이름은 'kiek in de kök' 번역하면 '부엌을 엿보다'라는 뜻으로 탑이 너무 높아 다른 집 부엌이 다 보인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부엌을 엿보는 탑 옆으로 사각형의 첨탑과 성벽이 보인다. Maiden's Tower 혹은 Virgin Tower라 불리는 이곳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여성과 관련된 사연이 있다고 한다. 중세 시대 이곳에는 처녀를 산채로 첨탑 지하에 가두면 성벽이 더욱 견고하고 불멸할 만큼 강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탑 지하에 Greta라는 여인을 실제로 감금했다는데... Really? Seriously?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안타까운 여인 Grete를 마음속으로 위로하며 탑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에서 처음 우리를 반기는 것은 화려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19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 분명 러시아 제국이 이곳을 점령하고 기념하기 위해지었을 것이다. 톰은 밖에서 기다리고 개별적으로 내부를 구경했다. 역시 화려한 정교회 성당. 러시아에서 많이 봤지만 그 화려함 때문에 중국인들이 아주 좋아할 법하다.


성당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며 골목골목 자세히 설명해주는 톰. 이곳은 Toompea (톰페아)라 불리는 올드타운의 고지대로 탈린의 귀족과 부자들이 주로 살았던 지역이라고 한다. 아마도 부자들은 외부 침입으로부터 더 안전한 이 윗 언덕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꾸며놓고 살았던 것 같다. 톰페아 골목을 다니던 중 어느 좁은 골목 앞에서 멈춰 선 톰. 다른 골목보다 유난히 좁은 이 골목에는 또 다른 잔인한 사연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탓일까 기념품 가게도 유난히 많았다.


피의 골목

일명 '피의 골목'이라 불리는 이곳은 길이 좁아 누가 먼저 지나갈지 결정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폭이 넓은 치마를 입었던 중세 귀족 부인들이 이 골목에서 마주치면 좁은 폭 때문에 동시에 지날 수가 없어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했는데, 서로 양보를 하지 않는 경우 호위 병사들끼리 싸워 이긴 쪽이 먼저 지나가는 룰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좁아도 일반 사람 3명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인데, 정말 이런 말도 갑질이 어디 또 있을까! 중세시대는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음에 틀림없다.


잔인한 전설을 갖고 있는 피의 골목을 지나면 Kohtuosta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탈린의 올드타운과 신시가지, 멀리 항구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런 멋진 풍경을 보려고 많은 귀족 여인들이 이 곳을 찾았던 것일까? 어젯밤에도 이곳에 올라와 멋진 야경을 바라보았었는데, 개인적으로 이곳이 탈린에서 가장 멋진 장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Kohtuosta 전망대와 성 올라프 성당

올드타운을 내려보고 있자니 정말 많은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가장 높은 첨탑을 갖고 있는 성 올라프(St.Olaf's) 성당이 유독 눈에 띈다. 123미터 높이의 이 성당은 지금은 그 지위가 빼앗겼지만 한때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탈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고, 이 성당 이상의 높이는 절대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Long-Leg Gate

전망대 구경을 마치고 톰페아 지역을 벗어나 다시 낮은 지역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만난 하얀 탑의 평범해 보이는 문. Long-Leg Gate라는 곳으로 올드타운의 상업지역에서 톰페아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세워진 문이다. 경사가 낮아 올라가는 길이 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유일하게 마차가 다닐 수 있었던 길이라고 한다.


긴 다리 문을 지나 도착한 마지막 목적지 탈린 시청 광장. 넓은 광장 중앙에는 시청사 건물, 주변으로는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는 멋진 광장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이곳에 멋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고 하는데, 톰은 광장 바닥에 동그란 홈을 가리키며 여기가 크리스마스트리가 매년 세워 홈인데, 이곳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 곳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막 던지는 거지?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공식적인 첫 번째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무도 모르는 듯 보였다.


탈린 시청 광장

시청 광장을 마지막으로 프리워킹 투어는 끝난다. 마지막으로 투어가 즐거웠다면 팁을 줘도 된다고 학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톰. 투어는 무료지만 마지막에 팁으로 아르바이트비를 버는구나? 모두들 열심히 설명해준 톰에게 팁을 준다. 우리도 고생한 탐에게 인당 5유로씩 팁을 주었다. 마음은 더 많이 주고 싶은데, 미안 우리는 가난한 여행자라 나중에 만나면 더 잘해줄게~


600년 역사의 약국 Apteek

팁을 받은 톰은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시청 광장 한쪽 구석에 있는 약국을 가리키며 꼭 가보라고는 말을 남기고 광장을 떠나갔다. 저곳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전설의 약국 Apteek.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600년 된 약국으로 사랑의 묘약, 저주의 묘약 등 신기한 묘약을 팔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물론 이제는 일반 약품을 취급하는 평범한 약국이지만, 과거에 만들어 팔았던 약, 재료, 기구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다양한 약초뿐만 아니라 두더지, 개구리, 뱀 등 영화 해리포터에서 처럼 정말 다양한 것들이 약재로 사용된 기록이 남아있다. 입장료는 없어 누구나 구경이 가능하다.


탈린 꿀 아몬드

약국 구경을 마치고 광장을 떠나려는데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풍겨온다. 냄새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알록달록 중세 복장의 상인이 꿀 아몬드를 팔고 있다. 시식 한두 개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 한 봉지에 4유로이지만 한번 맛보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탈린 올드타운 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지만 시청 광장 중세 복장 아저씨 가게 아몬드가 너무 맛있었다.


우리는 잠시 광장에서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맛있는 꿀 아몬드를 먹었다. '프리워킹 투어 괜찮은데?' 라며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자주 이용하자며 경쟁하듯 꿀 아몬드를 후딱 해치웠다. '근데 팁 주니까 프리는 아니네'라는 경제관념 투철한 신나부인이 있어서 왠지 우리 여행이 조금은 더 길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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