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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 스물한살의 선택?

그래,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버거운 것들이 있다.

방금은  할머니랑 통화를 하는데 "엄마, 바람이 부니까 날이 진짜 가을날 같다!"고 말하다가  "그런데 날이 이러니까 갑자기 군대에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전화했던 날이 생각나는데?" 그렇게 난 씩씩한 척? "엄마, 몸은 괜찮으시죠? 예! 저도 괜찮아요!"를 기억하고,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 너머로  부스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났고, 그래서 엄마는 한참을 소리죽여 울어야만 했다고 기억 하신다. 하긴 그날은 부스 안에서 "요!"자를 썼다고 쫌 맞긴 했었다.


" 에.라.이.써.글.놈!"

군대가기 전날 밤, 온 가족이 모여서 저녁 밥을 먹다가 형이 물었다. "그런데 넌 훈련소는 어디로 가는 거냐?" 그말에 난 "포항!"이라고 말했고, "뭐? 포항? 얌마~거긴!  야! 너 왜 그랬어?" 하지만 그렇게 급히도 싸늘해진 분위기 안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냅둬라! 지가 허것다는디! 사람 사는건 다 똑같은 거여~ 그러니까 지가 가서도 잘허믄 되는거여! 알어서 잘 허것지!" 그 말씀 만을 남기시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셨고, 엄마는 아무 말없이 다음날 새벽 집 앞에서 나를 꼭 안고 "조심히 다녀 오니라!"고만 하셨다.

그래,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버거운 것들이 있다. 내겐 스물하나가 그랬다. "군대" 수없이 봐온 송별회에서 형들은 그리고 친구들은 몹시도 안타까워 보였다.


'그래 힘들겠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못 만나고 그 긴 시간을...'


 그러다가  내게도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김없이 영장이 날아오던 날! 나 역시도 뛰쳐 나가 술을 마시면서 오늘이 마지막인듯 흔들렸다.


"속이 씨려서 죽을만큼! "


하지만 다음 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게슴치레한 모습으로 힘들게 일어난 아침은 생각과는 달리 아무런 미동도 없었고, 곧 이어지는 후회와 창피함이 "왜 그랬을까?" " 왜 그리도 힘든 척 괴로운 척을 했던 걸까?" "무서워서?" "넌 애인이 있는것도 아니잖아?" 왜 그랬던거야?" "진짜로 왜?왜?왜?" 하면서 어설펐던 내가 싫어서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이유는 없었다. 그러다 생각한건 "그냥?"


"그래, 그냥!" "남들도 그러하니, 나도 그냥 그래야 할것만 같아서 였던것 같다." 정도? "아... 어.설.프.다! 아이고, 속이야!"를 곱씹으면서 남들이 그러하니 나 역시도 슬퍼해야 할것만 같아서 그냥 습관적으로 생각도 없이 그랬다는 것이 정말 화가났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를 몰랐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못하고 휴학해버린 날들은 의미없이 흘러만 가는 것 같고, '섣불렀다!'며 후회를 해봐도 되돌릴수는 없는 일이란걸 알기에 후회가고 만빵이었다. 그러다가 허무함에 몸서리 치던날 우연히 접하게된 "그리스인(희랍인) 조르바"라는 책에서 조르바 형님은 내게 물었다.

 "얌마! 숙명이란건 존재하는거야~네가 어쩔 수 없는? 그런데 이렇게 지금처럼 피할 수 없다는걸 안다면, 넌 어떻게 해야겠냐?" "예? 그거야 잘 모르죠!" "아이구, 얌마! 넌 그걸 반드시 너의 자발적 의지로 바꿀수가 있어야만 하는 거야 임마!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넌 바짝 웅크리고 엎드려 그런 숙명을 받아 들여도! 아니라고! 싫다고! 발악을 하면서 뻐팅겨 봐도!벗어날 수 없음에 끝까지 원망하고 후회만 할꺼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건데요?" "음! 분명 쉽진 않겠지만, 그 숙명이란것 마저도 네가 하려했던 자발적인 행위들로 바꿔버려야해!" (책을 두번은 읽지 않은지라 정확한 내용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말도 안되는 오해였을수도 있지만 아빤 그때 그렇게 이해했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송별식에서 내가 보아왔던 장면들이 생각났다. "나 곧 끌려간다!" "그냥 개목걸이 차고, 집지키러 가는 거지~뭐!" "난 빽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래, 나는 무엇보다도 그렇게 끌려 가는 느낌이 정말로 싫었던거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은 생각이 나지를 않았고, '그럼 어쩌지?와 어쩔 수 없잖아?'사이에서 흔들리다가 '그래, 그걸 피할수는 없는것 같다.' "그래? 그럼 좋다!" "그럼 나는 내 두 발로 걸어서 갈거다! 그래, 난 꼭 그래야겠다!"

그렇게 아빠는 1996년 9월 4일 부터 1998년 11월 3일 까지 해병 789기로 이곳 해병 2사단 청룡부대에서 복무했단다.


 once marine always marine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의 의미를 몸으로 익히면서!그리고 아빠에겐 이렇게 그곳의 추억들이 자부심으로 남아서 이번 일을 넘기는 데에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 사진은 지난 겨울 남은 시간이 6개월 정도란 선고와 머리는 고장나서 몸은 마비 되었고, 일어 서지도 못하고 그저 무너지는 아빠가 너희들을 생각하면서 "남은 시간이 6개월 뿐이라도! 나는 그동안이라도 녀석들과 같이 놀겁니다! 꼭 다시 일어나 뛰어 놀 겁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또 어금니를 깨물고 다시 설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능케 해주었던 장면이었다.

 

'나는 분명 그곳에서도 이렇게 웃을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웃으면서 가볼거다! 그래! 나는 해병 789기 이.정.상.이다!'


"그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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