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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던 일

"come true!"라고 했던가?

아빠는 아직도 그 모습을 명확하게 정의 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생이고 싶은 것이 맞단다.


그래, 꿈꾸던 일!


99년 쯤이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다가 TV를 통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된 간디학교의 모습은 대학 신입생 때 책으로 읽고, 또 TV로 보았던 서머힐의 모습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인듯 했다. 그래서 그 후로 얼마간은 술자리에서 어떤 선생이 되고 싶은 것인가?와 간디학교의 이야기가 한참동안 안주처럼 오르내리곤 했었는데...... 하지만 졸업을 앞둔 무렵에는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생각되던 학교를 막연하게 조금씩 더 듣게 되면서 망설이게 되었다.


"자발적 빈곤"이란 말과, "자유방임"을 말하는 것 같은 학교!'


사실 그때 까지만 해도 사범대의 틀에서 교사의 역할을 크게 생각했기에 방임이란 그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헨리 D 소로우의 시민불복종에서 읽은 적은 있었지만 자발적 빈곤이란 그 말도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가 쉽게 감이 오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듣게 된 급여에 관한 이야기가 당시만 해도 6시간씩 이틀 정도만 일해도  받을 수 있는 급여 였기에 "그곳에서 선생이 되어 보고 싶다!"라는 말을 호기로 뱉기도 쉽지 않았었다.


그래, 분명 그곳에는 이미 그런 모습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과연 나는? 그래, 난 쉽지 않겠다!'


그렇게 꿈을 그리고, 현실로 만들어 가는 방법을 몰랐던 아빠의 시간은 "어짤 수 없잖아!"라는 말에 밀려서 그렇게 말하던 간디학교도, 또 어떤 선생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미련 없이 묻혀 버렸다.


그래서 "난 이제 이렇게 나이 먹는 일만 남은건가?"하면서 그렇게 영영 그런 모습으로 살아 갈 줄로만 알았는데, 역시 이번에도 일이 생겨 버렸다. 그것은 산으로 가는 빌미가 되었던 발목 부러지는 일 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일이었다.


09년 3월, 밤 늦게 학원에서 수업을 하다가 아빠는 갑자기 쓰러져 버렸고, 깨어나 보니 일주일 뒤였다. 그때도 분명 말을 못하고, 몸이 맑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한달을 입원해 있는 동안에 몸은 많이 호전되어서 뇌종양 일거라던 병명은 결국 뇌수막염으로 변경 되었고 퇴원을 해서는 회복을 위해 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1년을 쉬면서도 나는 사실 그때 까지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렇게 그냥 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엄마는 말했다.


 "꿈꾸던 것이 있었다면서? 죽다 살아난 사람이 뭐가 무서워서 이렇게 망설이는건데?"


'그래, 그랬었지! 분명 내게도 한때는 꿈이라고 말하던 그런 것들이 있었지......' 그제서야 아빠는 지나온 시간들을 찬찬히 더듬어 젊던 날에 꿈꾸었던 것들을 찾아 묻혀있던 이야기를 들춰 냈고, 그중에서 가장 컸던 것이 제천 간디학교 였던거야! 그렇게 이곳에서 아빠는 형과 누나들을 믿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런 믿음들이 이번에 아빠를 다시 일어서게 해준거야~^^v


그래, 아직도 분명히 "자발적 빈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어! 우린 분명 그동안도 기부와 봉사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조금은 하긴 했었지만, 그것도 역시 다 때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 때가 되면 다 할수 있을거야!"


하지만 아빠는 그 때가 언제인지를 몰랐고, 또 "어쩔수 없잖아!" "다 그런거야!"라는 말에 덮혀 묻혀버린 것들을 이렇게 더 가난해져 보니까 "마음이 중요한거지!"라는 생각에 막연하게 망설이던 것들을 할수 있었고, 그러면서 "조금 더 가난해져 보니까 나누는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진것 같다고~" 그리고 봉사점수가 필요 없는 이 학교에서 형과 누나들이 기꺼이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에 약간은 그릇 된 아빠의 마음을 볼수 있었어


즉, '봉사와 기부라는 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전하게 되는 시혜의 행동 일거란 생각과 마음은 정말로 큰 오해였구나?'를 형과 누나들의 가리지 않은 웃음을 통해서 알게 됐거든,


'그래, 봉사라는 것이 서로가 행복해서 웃게되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렇게 단어 하나에도 오해와 곡해가 그렇게 많았던 아빠가 드디어 그렇게 오랫동안 헤메이다 찾은 이곳에서 그동안은 잊고 지내던 " 어떤 선생의 모습이 되고싶은 것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정말로 고마웠단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까 전에 있었던 두번의 일에서도 당위에 눌린 망설임에 쉽게 잃을 뻔 했던 것임을 아는데도  아직도 여전히 망설이는 모습이 참 많다는걸 느껴! 그래서 이런 시간을 통해 아빠가 알게된 "믿.었.어.야. 했구나!"


p.s 그래, 그래도 어떻게든 꿈꾸던 이곳까지는 이렇게 왔으니까 이제는 진짜로 중요한 것이 남았네!

 "그래,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뭐였지?"


아들! 다음 부터는 아빠가 무엇을 찾고 싶었는지를 말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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