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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 스물일곱!그냥 달렸다.

2002년, 모두가 흥분된 그때! 내겐 다른 이유로 흥분되었던 날들이

2002년! 그 해엔 6월이 다가오자 날이 더워지던 만큼 한국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된 2002 한일 월드컵! 대단했지~ 그렇게 경기가 시작 될 때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4강에 오를줄은... 하지만 해냈다. 그리고 그 무렵엔 나도 몰랐다. 처음 가본 제주의 용두암에서 십년이 흐른뒤 다시 같은 모습으로 뜨거워진 그자리에서 이렇게 다시 웃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앞 날을 상상하기 어렵던 날이었어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모든게 신기하던 그 날에 나는 아직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다가 '그래, 비행기를 타 봐야겠다! 어딜 가볼까?'를 생각하다가 제주도를 택했다. 공부하며 들은 풍문은 있었으나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 그 곳에 몹시 끌렸던 나는 다시 후배들을 꼬시기 시작했다. "야! "백문이 불여 일견" 이랬어! 우리 한번 가보고나 말하자! 과가 지구과학 교육인데 현무암도 한번  밟아보지도 않고 말하는건 쫌  그렇지 않냐? 안그러냐?" 이런 말도 안되는 꼬드김에 흔쾌히 넘어와준 후배들! 방법은 갈 수 있는 곳까지 자전거로 페달을 밟아보자! 그렇게 시작한 날은 6월 10일 한국-미국전이 열리던 날이었고, 4박 5일을 뜨겁게 달리고 돌아 왔던 날은 한국-포르투칼 전이 열리던 14일 이었다.

 10일, 그렇게 다섯 모두는 처음 타보는 조그만 비행기에 흥분했던게 기억난다. "오~귀가 먹먹해! 와~떳어떳어! 오~신기!" 그렇게 공항에 내려서 순대국밥을 한그릇 먹고 시작된 자전거 여행은, 날은 조금? 아니 몹시 무더웠지만 파란 하늘이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신나게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정해 놓은것 없이 민박을 잡아 머물었고, 돈도 없으면서 배가 고파서 무작정 들어간 고깃집은 가던 날이 개업 날이었던지라 시골인심으로 엄청난 대접을 받으며 호사를 누렸고, 다음 날은 무더위에 긴 오르막을 오르다가 퍼져서 창피한줄도 모르고 농협 창고에 누워서 쭈쭈바를 물고 "이게 뭔 짓이냐!"면서  투정을 부렸고, 꾸역꾸역 달려간 길에는 끝에 있을 민박집을 꿈꾸면서 내려간 곳이 내리막이 길었던 중문단지였다는걸 알고는 다시 올라오면서는 모두가 헥헥! 말이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제주! 그 제주에서 우리는 지나다가 들른 허름한 민박집에서 둘러 앉아 마트에서 산 해물찜 재료로 양은 솥에 밥을 해 먹으면서도 웃었고, 깜깜한 평상에 누워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건 뭘까?


아마도 그건 앞날에 대한 보장이나 확신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고 힘겨울 것이 예정된 그 길을 찾아서 스스로 나설수 있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몹시 오글거릴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서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곳에 묵으면서, 더 비싼 것을 먹었던 그날의 기억들 보다도 뜨거운 그 길 위에서 힘들게 달렸던 그날의 이렇게 기억에 더 오래 남아 있는걸 보면, 내게 여행은 그런 의미였던것 같다.


"긍정할 수 있는 나를 찾아 가는 길!" 그 길이 내겐 여행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그게 무슨 개고생이냐?" "미쳤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뒤로도 여전히 그런 느낌과 기분이 좋아서 그런 길을 찾아 나섰던 것 같다.

그렇게 찾아간 마라도와 하루를 묵었던 우도! 그 우도에서 나는 십년이 흐른 뒤, 젊은 날의 우리들처럼 웃고있는 09녀석들을 보면서 기분이 흐믓하고 좋아지더라!

그래, 스물 일곱! 사회 초년생이 되었던 2002년은 이렇게 내게 기분 좋은 일기의 한페이지로 남아 주았다. 그래, 내게 그런 날들이 있어 줘서 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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