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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 스물아홉! 짧은시간을 지나 다시 방황!

멈춰버린 내가 싫어서 괴롭히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깨어있고 싶었다.

매번 나는 발걸음을 떼어 놓아야 한다. 그곳이 흰눈이 쌓인 산길이 건 꽃잎이 흩날리는 아스팔트이건 간에 나는 매순간 발걸음을 떼어 놓아야만 한다.

2004년, 내 뿜은 담배연기 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그렇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함께 시작된 스물아홉은 조금? 아니 많이 답답했다. 비어 가는~ 내 가슴 속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이 노래의 가사는 어찌나 속을 후벼 파던지...

스물 아홉이 되면 나는 무엇인가 변해 있을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스물 아홉이되면 선생이 되겠다던 그 약속도 무뎌져만 가고 그래서 조바심도 아닌 무기력도 아닌 그 무엇인가가 자꾸만 나를 짓눌러오는 것이 너무도 싫어서 돌파구를 찾다 기대게 된 것이 산이었다. 스물 아홉, 직장도 있고 시간을 쪼개서 대학원도 다녔고 차도 샀건만,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히 사는 듯 별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하지만 그런 내 모습에서 나는 너무도 허전하고 약간은 두려워 하는 내 마음을 보았다.


" 나는 정말로 이렇게 주저 앉아서 아니 안주하면서 늙어 가게되는 일만 남은 건가?"


매주 차를 몰고 여행을 다니고 또 술을 마시고 어울려서 열심히 운동을 했건만,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내겐 있었다. 그래서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머리를 파묻고 한숨만 푹푹! 몰아 쉬면서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거지?"를 생각해 봐도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슬슬 나를 향한 짜증이 올라올 무렵 옆에 꼿혀 있던 태백산맥이란 책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염상진이 김범우와 함께 하기를 권했을때 김범우가 거절을 하자 염상진이 비슷하게 했던말?


 "행동하지 않는 이성은 거짓이고, 비겁한거야!"


뜬금 없이 그말이 생각났다. 아마도 편안함에 안주 하려는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별로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밖으로 뛰쳐 나가 눈이 쌓이 모악산을 오르면서 내게 화를 냈다. "얌마! 이렇게 사는건 쫌 아니지 않냐? 이게 뭐야?" 사실 별로 생각했던 것도 없었으면서... 그렇게 정상에 올라서 찬바람을 맞고 서니 뭔가 이런 안일한 마음에 젖어있는 나를 좀  괴롭히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해 버렸다. 그래서 젖은 농구화를 보면서 '등산화를 사야겠군!''그래, 등산화를 사면 바로 지리산을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내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장비점에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서 등산화를 보고 있는데, 노욱형님이 유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산 좋아해요?" 그 말에 어물쭈물 하면서 시작된 인연이었다.


"전주 파이오니어스!" 알파인 클럽!

다음날은 형님들을 만나서 난생처음 빙벽을 올라보고,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눈길을 헤쳐가는 것이 러쎌이란걸 헥헥!거리면서 알게되었다. 그리고 눈이 내린 겨울날에 텐트도 없이 그저 침낭 하나로 깊은 밤하늘에 뜬 별을 천정삼아 잠이 드는게 비박이란걸 알게되고, 그 말이  독일어 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만약에 내가 그날의 형님들과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렸을까?"를  생각하면서 세상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개척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나는! 지금 이 이야기들을 적어 가면서 꽤 길었던 시간들을 한눈으로 조망해 보니 이제야 보이는 단어가 타력! 그래, 내가 알지 못했고, 또 의도 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이끌고 도와주는 힘들이 컸구나 싶다! 그래, 참 고마운 인연들이다. 이제와서 이렇게 돌아보니, 스물 아홉에 이 인연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과연 꺼져가던 그 불씨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었을까?

- 지금은 해가 서쪽으로 기운다. 내가 목이 터져라 지른 함성은 바람에 묻혀 사라졌다. 허나 내일이면 사라졌다고 믿었던 그 해는 다시 떠오를거다! 그리고 그 뒤엔 사라졌다고 믿었던 나의 함성이 되돌아 와서 다시 내 심장을 두드리겠지? 그래, 그럴거야!
 

-06 한라산 동계훈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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