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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 서른이야?? 그래, 서른살 이야!

조금은... 두려웠나봐! 해놓은 것이 없었으니까...

-끊어져 버린 인대가 제구실을 못하고 욱씬거려서 밤마다 끙끙대면서도, "미친놈! 이제 그만 좀 해라!"라는 말을 끊임 없이 들으면서도 그리 쉽게 끈을 놓지 못하는것은 그에게 미친 때문인가? 나에게 미친 때문인가? 그것을 몰라서 오늘도 다시 그의 품에 안기었다.

-요즘은 날이 점점 무더워지기 시작하면서 길가에 뿌려진 물이 수증기가 되어서 사라져 버리듯 나의 인내심도 수증기 처럼 사라져 버리는 느낌에 섬찟 해지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시 짐을 꾸려서 지리산의 어느 자락으로 젖어 들어 하루 쉬어갈 둥지를 튼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건 없겠지만, 그래도 쉼 없이 찾아 보아야 한다! 그래, 내게 있어 길이란 것이 피해 떠나는 것이기 보다는 찾아가는 것이길 바라는 마음에...

-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 깊은 산중에 들어오게 된 것인가? 그 흔적만 있을 뿐 이끼와 스치는 바람은 그 사연을 전하지 않는다. 동학군이었을까? 심마니였을까? 아니면 가혹한 수탈에 속세를 등진 평범한 아버지 였을까? 이런저런 생각에잠겨 무심히 바라다보니 바위 위에 위태롭게 선 이끼들도 다음 대를 위해서 억척스레 그 여린 손으로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보였다. 자식의 뱃속에 쌀 한톨을 더 넣어주기 위해서 손이 닳도록 계단논을 만들었을 평범한 아버지들의 설움이 담긴 땅! 그곳이 지리산 곳곳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노장대 마을이리라.

아빠가 산을 다니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2005년 서른이 되던 그 해에 더욱 간절하게 산을 찾고 또 파고들었던건 사실 이유가 있었다.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내가 더 젊던 날에 읽었던 태백산맥이란 책에서 시린 겨울에 지리산에 숨어서 배를 곯아야만 했고, 살을 에는 동상으로 힘들어 하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저 아래에서 밥을 짓는 연기와 냄새가 유혹을 해도 바위에 우두커니 앉아서 자신이 믿고 있는 그 책을 손에 꼭~쥐고 동사를 선택한 여인! 그런 여인의 신념과 집념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껴버린 나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아니 하고 싶었다! '스물을 갓 넘긴 저 젊은 처자에게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는데, 서른이 된 너는 뭐냐?' 그래서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기에 그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그래, 내겐 너무 어려웠다! 지금 왜 이러고 있는거지?무엇이 의미인 건지? 왜 살고 있는 거지? 이런 삶이 의미가 있기는 한건가? 를 생각해 봐도 혼자서 찾는 것은 너무 어렵고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술자리를 빌미로 선배들을 찾아 어렵게 묻고도 돌아오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란 말에 고프기는 했지만 "그래! 놓아도 죽지는 않고, 잡아도 달라지는건 없을거야!"라는 마음이 수시로 일어나서 포차에 앉아 술을 마시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서른이 되고 이 즈음엔! 이때는 내 몸을 괴롭혀서라도 꼭 생각해 보고 찾아 보고 싶어서 "무슨 빨치산도 아니고 주말이면 지리산이야? 젊어서는 네온 불빛 아래서 생각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지리산 골짝골짝을 헤메이는 모습이었다.  

-설악에서의 일주일!-
물은 거세도 아래로만 흐르고 단풍은 붉어도 때가되면 자리로 앉는데 어찌나는 이리도 헤메이는 것인가? 수많은 물음을 안고 다시 난 산에 안기었다. 간만에 백리터가 넘는 배낭에 일주일분의 식량을 메고 그렇게 다시 설악으로... 산에 들때는 아무런 목적이나 이유가 없어야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매번 산에드는 이유가 산더미처럼 많으니 난 철저히 알피니즘에는 위배되는 인간이다. 하기야 내가 언제고 의식이 있던 인간이었던가... 그렇게 양폭에 베이스를 치고 중년신사에게 술을 권하여 형님동생이 되었고, 외국인 친구어게 술을 권하여 산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외로운 산장지기에게 술을 권해 낮짝좋게 그의 방을 빼앗아 등따시게 되었다. 넘어간 대포알이 몇 개냐? 밤새 취한 술에 헥헥 거리면서 지난 밤을 원망하면서도... 그래도 산에 드는것은 왠 억지인가? 오늘도 왠 억지인가?를 생각하다가 들고간 보따리에 짐 하나만 더 짊어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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