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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 몹시 어설펐던 서른과 하나 사이~

스물다섯에도 그랬듯 서른에도 비슷했다. 나를 믿고 확신하지 못하는...


지난 열달을 그렇게 헤메이면서 가장 많이 되뇌인 단어는 자존감! 그리고 수처작주!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삶!"이라는 그 글을 보면서 젊은 날에는 '도데체 얼마나 자존감이 높아져야 이렇게 말을 할수 있는거지?' 싶었다. 그만큼 나는 나를 믿지 못했던거다.

그래 06년 1월, 한라산을 갔다온 이후 난 더 그랬던것 같다. 직장 때문에 그리고 예상된 부모님의 걱정을 앞서서 생각하는 마음에 그렇게도 그리던 원정을 접어버렸던 내가 참 한심해 보였던 날들?그러던 2월의 어느 날! 경진이와 둘이 앉아서 연탄불에 고기를 구우며 소주를 마시다 시작된 이야기였다.


"휴우~ 형!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딱히 뭘 해야 할지도...모르겠고, 또  잘할수 있을런지도 모르겠고..."라고 말하는 모습에, "뭐가 문제여?넌 지금 조교도 하고 있잖아? 그리고 차근차근하면 되지거지 뭐가 문제라고 한숨이여?"라면서 "자~한잔해!"라고 말은 했지만, 차근차근?이라고 말은 했지만, 말이 좋아서 그렇지 나는 하고 있나?


 그렇게 청춘들의 한숨은 깊어가더 밤, 혼자서 틀어져 있던 TV에서 나오는 "대관령 폭설속보!"라는 소식에 나는 가라 앉은 그 꼴을 보다 못해 말했다. "야! 우리 대관령에 가볼래? 어? 걸어서 어때?" 하지만 그는  "어? 음..."하면서 망설이고, "야! 힘이 들때는 확 더 힘들어 버려야 돼! 가자!어?"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수첩에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지금도 적혀 있다. 그렇게 떠나는 길에서 각자는 불안한 미래에서 오는 각자의 무게 만큼이나 말은 적었지만, 이때 내가 속으로 가장 많이 되뇌였던 말은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그에 미칠수 없다!


'과연 너는 너한테 온전히 미쳐있냐?'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또 이렇게 걸으려고 했던거다.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천안에서 후배에게 텐트를 빌려서 강릉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는 기사님께 무작정 길가에 내려달라고 부탁을 드렸고, 말도 안되게 내린 곳은 강원도 횡계의 어디쯤? "저기 가드레일 넘어서 저기 보이지? 논을 지나면 길이 있어! 그길을 지나면 그길이 말하는 그길이야!" 그렇게 우리는 그곳부터 걷기 시작했다.


청명한 하늘에 청량한 바람! '두 다리가 당겨오고 어깨가 짓눌려 올수록 차가운 공기는 내 폐부 깊숙히 들어 와서는 내가 살아있음을 일깨웠다! 그래, 이길은 피해 떠나는 도피가 아닌! 나를 찾아가는 길인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대관령의 정상부근에 다다르자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지금 당장이라도 뽑혀서 날아가버릴 것같은 소리에 전광판을 보니 "대관령 옛길은 눈과 강풍으로 통제 되었 습니다!"라고 쓰여지고, "아? 그래서 차가 하나도 없었구나!"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점점 걸음은 무거워 지고 슬슬 지쳐갈 무렵! 굽어진 커브 길을 돌아서는데 뒤에서 크락션 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다가서는 승용차! "바람이 많이 부는데 타세요!" "괜찮습니다! 저희는 여행중이거든요!" 그렇게 차를 보내고 나니 경진이는 "아~형은 그냥 타지!"라고 약간은 투덜거리면서 다음 커브를 지나자 비상등을 켜고 서있던 차에서는 급한 목소리로"그러다가 위험해요! 그냥 빨리 타세요!"라고 말했고, 그렇게 만난 중년의 부부와 짧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데 어디에서 왔어요?"  "아!" "그럼 어디학교?" "어?" "무슨과?" "어?뭐라구요?" "몇 학번인데요?" "뭐라고?" 아~ 이런!!! 그분들은 우리과의 82학번 선배님들로 강릉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윤여준 선배님이셨다. 아~이런 인연이란! 그래, 이래서 죄짓고는 못사는 거야! 그렇게 강릉에서는 코트맨 후배인 현순이에게 신세를 졌고, 다시 길을 나서면서는 고딩때 문학쌤이 말씀하섰던 기차가 거꾸로 간다던 그길을 찾아서 우리는 찐계란과 사이다를 들고 기차를 타고 정동진을 지나 흥정-나한정(스위치백) 구간에서 기차가 거꾸로 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러면서 '아쉽다!'했다. '전 처럼 기차 칸 사이가 열려 있는 옛날 기차였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래, 빨라지긴 했지만 빨리 가려고 낭만을 조금은 놓쳤네~' 그렇게 영주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부석사의 주차장에 텐트를 쳤고, 안동에서는 찜닭을 먹고 간고등어를 부모님께 선물했다. 그렇게 여행을 끝낼 무렵에는 하회마을에서 지는 해를 보았다. 재미있고 좋았다. 하지만 그때에 이런 마음들이 그렇게 컸다면, 천천히 조금만 더 다듬어 봤어도 좋았으련만...

내가 누구인건지?를 조금이라도 정리했다면 조금은 덜 고생하고 나를 믿는 힘이 조금은 더 붙었을텐데...

ps. 그래, 지금도 역시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만약에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까? 주민번호? 직업? 관등성명?


 이제와서 생각을 해보니 내가 그렇게 흔들렸던건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를 정리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자유!자유!하고 의미?를 말하면서 "이렇게 해 봐야지!"를 생각하면서 웃기보다는 당위와 명분을 위해서 "그러니까 내가 그걸 하려는 이유가 말이야~"라고 애써 설명을 하고 피력해야 하는 모습에 붙들려서 참 많이도  헤멨던 것이 었구나? 싶다.


그래, 절대적인 정답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앞으로도 계속 해서 변할 것이고! 그때마다 매번 상대적인 세상의 잣대로 나를 맞추고, 또 재단해서 나의 야성이 사라져버린  따라쟁이의 모습으로 한참을 살다가 지나고 나서야 억울해하기 보다는 지금 이순간을 오롯이 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순간순간을 점검하고 내면을 살폈어야 했구나! 싶어진다.


분명 몸이 아팠고, 우울증의 나라으로 떨어져 몹시도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서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있는 나으 글을 보면서 "야! 너 이런글  좀  쓰지마! 꼭 유서를 쓰고 있는것 같아서 싫다고!"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래, 이제는 슬슬 지금의 내 감정과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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