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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서른 셋! 아빠가 좋아 하는 이 일은?

분명 어설프겠지만, 소명이란 그말을 높이 샀기에 과정에 집중하고 싶었다.


아침부터 바보 형들이 선물한 새 신발을 신겠다고 난리를 치는 아들을 보면서 웃다가 그날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2008년! 결혼 후 물설고 낯설은 대전으로 터를 옮겨서 다시 학원 일을 하게 되면서 새롭게 만났던 녀석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은 훌쩍 커버린 녀석들이 뜨겁던 지난 여름날에 우울증에 힘겹던 내게 보내주었던 그 응원들을 생각하면서 내 나이 서른셋과 쌤이라 불렸던 날들을 생각해본다.

1994년 사관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너무도 답답한 마음에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쬐끔은 심하게 막 나갔던것 같다. 겁도 많던 놈이 벌렁거리는 심장에 어쩔줄 몰라서 학교 밖으로 걸어서 나갔다가 결국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엉덩이가 무지갯빛으로 푸르뎅뎅? 해지면서도, '하고 싶고? 또 배우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서 결국엔 부모님께 시험을 보지않겠다고 말하고는 뛰쳐 나와 죄송하고 또 어지러운 마음에 길을 걷다가 처음으로 들어가본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헤드폰을 쓰고 봤던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를 보면서 '내게도 키팅 선생님 처럼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으면 정말로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것 같다. 그럴수만  있다면 선생이란 그 일도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시작된 사범대학 그리고 이렇게 선생이란 호칭은 스물여섯 대학 4학년에 조그만 공부방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잊혀지지도 않는 월급 25만원! 그렇게 고입 연합고사를 얼마 남기지 않고 만났던 녀석들의 부탁에 주말에도 모여서 공부를 했고, 모두가 합격하던 그날에는 내가 더 신이나서 월급을 받던 날에 고깃집에서 20만원을...! 그게 잊혀지덜 않어야~ 신영아!

그렇게 시작된 선생이란 이름으로 만나게 되었던 그 많은 녀석들은 못 만난지 십년이 넘게 지났어도 뜬금 없이 전화를 하게 되면서도 어제 같이 수업을 하고 바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 듯 어색함 없이 웃을 수 있었고,  아들녀석의 사진을 보고서는 몇 년만에 군인이 된 모습으로 전화를 해서 "저도 쌤 아들같은 아이를 갖고 싶습니다!"라면서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쪼르고 또 눈이 내린 어느 겨울 날에는 "쌤이 말해줬던 그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봤는데! 쌤 생각이 많이 났어요!"라고 말했던 연습장에 만화를 잘 그리던 녀석의 응원까지 모두가 정말로 고마웠다. 그런 만남들이 내겐 힘이 되었다. 하지만 조금은? 아니 약간은 삭막?한 대전에서 아이들을 대할 때면 문화상품권과 피자가 약이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에 나는 그럴수가 없어서 "너희들! 이번에 시험을 잘보면 나한테 크~게 한턱 쏴야 하는건 알지?'라 말해서 얻어 먹었던 초코우유! 그 초코우유는 가볍지 않은 인연이 되었다.

2012년 아직은 쌀쌀하던 봄날에 그렇게 내게  초코우유를 선물했던 녀석들이 뜬금 없이 전화를 했다. "쌤! 도대체 지금 어디세요?" "쌤을 보러가도 돼요?"라는 통화를 하고, 다음날 녀석들이 아버지의 봉고차를 끌고 학교 운동장에 나타나서 처음으로 내개 했던 말! "우~와! 대박! 쌤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우와! 4년전 그대로야! 하하!" 그렇게 녀석들을 데리고 동네 감자탕 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주머니의 말씀은 "이미 저 학생들이 계산을 다 했어요!" 그래서 "니들 시방 뭐더는 짓이냐?" 라고 했더니 녀석들은 웃으면서 말했다. "쌤이 4년전에 그러셨어요! 저희들이 스무살이 넘어서 쌤을 찾아오면 쌤이 술은 몽땅 사주실거라고! 하지만 쌤을 처음 찾아오는 날에는 꼭!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쏘주에 리본을 달아서 선물을 해야할거라고 하셔서 저희들은 쌤을 보려고 알바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되게 신기하죠? 사실 과학수업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데 그 말은 어제처럼 생생 하다라구요! 하하!" 라고 말하는데 찡~하더라!


"쌤! 사실은 저희 다음주에 군대가요! 그래서 다들 군대 가기 전에 쌤은 꼭 한번 보고싶다고 해서 왔어요!"라고 말하는데 나는 몹시 고마웠고! 그래서 입대 기념으로 우리는? 오래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쏘주를 따라 주면서 기타를 들고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면서 웃었다.  야! 아무튼 모두들 즐겁게 잘 살고있는것 같아서 좋다! 아무튼 우리 아들놈들은 이렇게 웃는 너희들을 보고 따라할거니까~ 부디 앞으로도 즐겁고 재미나게  살아라!! 고맙다~

p.s 지금은 서른이된 조카가 초딩이었을 때,  "삼촌같은 사람이 선생님이었으면 정말로 좋겠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래, 삼촌같은 쌤이 되야 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이 웃을수 있고 또 화를 내고! 칭찬을 하고! 혼을 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그런  삼촌같은 모습이기를 바래왔는데 그렇게 행동을 했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튼 내겐 당신들의 따뜻한 응원이 정말로 큰 힘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쌤! 도대체 어디가 아프시다는 거에요?
어? 그대론데? 에이~ 쌤! 장난치셨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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