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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란 그 놈! 그래, 그 놈은...

징글징글한 그놈이 친구라는걸 인정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사진을 찍었을 땐 그의 이야기로만 보였다. 하지만 십년이 흐른 뒤 내 모습이 그와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건조한 목소리로 "뇌종양 말기인것 같습다.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나는 꼭 울어야 할만 같았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테니까! 우리오늘 딱 하루만 울자!"


그렇게 말하고는 다리를 끌면서 문을 닫고 들어간 화장실에서 나는 목놓아 울어보려 했지만, 눈물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건 무적해병이 쪽팔려서가 아니라! '아직은 어린 두 아들녀석에게 나는 아직도 못해준 것들이 많은데...' 그렇게 아무것도해준 것이 없는 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지를 았다.


녀석들이 언젠가 아빠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또 뛰어 놀고 싶을 때?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던 어느날? 아빠가 곁에 없다면 녀석들은 외롭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욕심이 생겨났다.


'저는 살겁니다! 녀석들과 같이 뛰어 놀고, 웃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6개월 뒤에 떠난다 해도! 이렇게 누워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마비가 더욱 심해질수록 티를 내기가 싫었다. 아니! 더 웃으면서 나는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기억난다! 오른 손에는 감각이 없고, 나무토막이 되어버린 오른쪽 발로는 걸을 수가없던 그날에 '나는 꼭 걸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집사람이 자리를 비운사이에 몰래 휠체어를 잡고 질질 다리를 끌면서인적이 없는 곳으로 나가서 걸어보려 하다가 결국에는 몇 번을 넘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몇번을 더해보고, 얼어붙은 한강을 보면서 주먹으로 맨 바닥을 치고 돌아온 늦은 밤! 주사를 맞으면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어? 환자분! 여기가 왜 이래요? 어떡해? 엉덩이가 멍들고 찢어져 피가났잖아!" "예? 전 전혀 모르겠는데?" "어휴! 그건 마비니까 그렇죠!"


그러면서 내게는 별명이 생겼다고 옆 침대에 보호자가 쥬스를 건네면서 말했다. "간호사 분들이 그러더라구요! "완전 긍정맨!"라고! 우리 남편도 그랬음 좋겠는데... 힘내세요!"


그래, 그때부터 나는 이렇게 왼손으로 어디에든 글을 남겼다.  아빠가 너희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나는 꼭 같이 해보고 싶었고, "욕심!"이라 말씀하셔도 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해야한다. 아니? 할거다!'로 시작된 그 마음이 이렇게 간절하게 "하.고.싶.다!'로 바뀌는 것을 끼면서 아빠는 퇴원하게 되었다. 석달만에...


아빠는 너희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놀아 주어야 한다!""해주고 있다!"가 아니었구나... 내가 뱃속의 너희들을 보고싶어서제발 건강하게 나와 달라면서 쫄랐던거고, 이렇게 같이 놀아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 그래서 아빤 이렇게 같이 목욕을 하면서 물을 뿌리고 장난을 치고 웃는 너희들을 보면서 웃음이 나는거야~


아들! 우린 항상 말하잖아? 약속은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거라고! 그래서 아빤, 지금부터라도  잊지 않겠는다는 그 약속을 꼭 지키면서 살거다! 그래, 이렇게 같이 놀아줘서 고맙고 날이 더워지면 아빠가 하드 하나씩 쏠께~ 의.리!


하지만 불면증으로 깊이 잠들지 못하고 6개월이 자나서도 호전이 되지 않는 몸을 보면서 우울증은 소리없이 스며들었다.


미각을 잃고 맛을 느끼지 못해서 먹은것을 모두다 쏟아내면서 다시 찾은 병원에서 "예!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정말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답답합니다"라고 말했더니 의사선생님은 다른 과와의 협진을 말했고, 찾아간 곳은 "정신과!" 듣게된 말은 "우울증!"이었다.


"예? 저는 우울증은 아닌것 같은데요!"

 "어허! 우울증이 되게 무서운 병인건 아시죠?"

"..."

"그럼 요즘 제일 많이 하고 또 생각하는 말이 무엇인것 같아요?"

"그거야 당연한게 아닙니까? 미안한 마음과 미안하다는 말이겠죠! 저는 아직도 어린 아들이 둘이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험하다는 거예요! 미안하다는 말 다음에 환자분이 하게 될 행동이 무엇일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정을 하고 약을 드세요!"


그말에 움찔할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우울증 약이란 말에 "내가 왜 이런걸 먹어!" 하면서 약을 집어 던지고 "난 우울증 같은건 없어!"라고 말했던 탓에 거부했지만, 사실은 매순간 머릿속에는 자살이란 단어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들을 생각한 덕분에 올라갔던 옥상에서 매번 돌아섰기에 나는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그건 우울증이 맞았던거다!' 그렇게 우울증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받아온 약을 먹지는 않았다. 그건 '이 약을 먹으면, 모든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거잖아?'


사실 과학선생인 나는 가르쳤었다. "찢어지면 흉터가 생긴다는건 다 알지? 그건 다친 부위를 복원하기 위해서 육아조직이 작동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지금 말하는 신경세포는 그게 안돼! 한번 다치면 그것으로 끝이야! 그러니까 조심해야 하는거라구!"라고 말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내가 중추신경인 머리의 고장으로 인한 마비인 것이다!


그 누구도! 그리고 나 역시도? 회복에 대한 확신은 전혀 하지를 못했으니 막막했다. "이런 몸으로 평생을? 그래, 아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한 것이 맞겠지만! 그런다고 이런 몸으로 언제까지 버틸지도 모르겠고, 또 그러다가 스트레스로 히스테리라도 부린다면? 그런 아빠가 곁에 있다는 것이 과연? 과연 그런 아빠가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나는 자신이..."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빠였고! 그래서 적어도 아들놈들 앞에서는 웃고 싶었다. 그래서 분명 노력도 했다. 하지만 공 받기를 해보자는 아들의 말에 "그러자!"라고 말해 놓고도 펴지지 않는 오른손 안에 공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고, 또  차에서 잠든 아들녀석을 안을 수가 없어서 깨워야만 했던 그날이 느끼게 되는 자괴감은 컸다.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수 있을 것인가?' 그런 내가 너무도 두렵고, 또 불쌍해서 삶을 버텨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글을 보면서 나는 버티고 싶지?가 않았다.


이렇게 우울증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큰건? 어떻게 넘고,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였습니다. 다음 글에는 그 이아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우울한 글!"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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