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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편지 : 스무살의 그날!

그렇게 태풍을 맞이한 다음 날!

허클베리 핀 2부,


그렇게 태풍을 맞이한 다음 날, 하늘이 너무도 파랗고 맑아서 뗏목을 보러 갔더니 녀석은 아직도 불어 있는 물 위에서 둥둥 떠있고,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주인 아저씨의 봉고차를 빌려 타고 노고단을 향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그 길에는 꼬불탕 꼬불탕 커브 길이 많아서 커브를 돌때마다 여지없이 창문은 열렸고, 지난 밤 술자리에서 용기내어 크게 노래부르지 못한 아쉬움을 담은 격한 소리들이 "우웩!우~에~엑!" 그렇게 성삼재 부터 걸어 올라간 노고단은 통제구역이었고, 왠 군인 아저씨?가 막고 서서는 우리에게 "여기까지 입니다!돌아 가십시오!"라고 말하는데, 누나들은 "어~엉! 아저씨~~"하면서 남은 오바이트를 "우웩!"

그렇게 우리는 쪼르고 쪼른 끝에 삼십분을 얻을 수 있었다!


청량하게 파란 하늘을 보면서 천천히 올라선 노고단에서 녹이슨 철펜스에 기대어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는데 그 모습은 꼭 초록 카펫이 드넓게 깔려 있는듯 너무도 푹신해 보였고,  아래서 벽에 막혀 불어오는 바람이 내 남방을 쓸어 올리는데 그곳에서 뛰어 내리면 정말로 훨훨 피터팬처럼 날아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삼십분이 흘러서 내려와 앉은 마고할매 바위 위에서는 천천히 땀을 식히다가 그대로 누워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는데, 그 눈부신 햇살 너머로 엄청나게 많은 잠자리들이 날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물었다.


 "와! 잠자리 좀 봐! 오~ 은빛 날개가 멋져! 그런데 어떻게 잠자리들은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 온 거지? 선배님 왜 그렇죠?"그랬더니 선배님 말씀이 "나도 들은 얘긴데 이곳 지리산은 소신을 위해 살다간 사람들의 땅이라더라. 그래서 사람은 죽고, 그 넋은 다시 태어나서 이렇게 훨훨 날고 있는거라고 어떤 글에 쓰여 있는걸 본적이 있네!"


그말을 듣고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그러면 어디가 천왕봉인 가요?"를 물었고, "이 길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데 여기서는 보이지를 않네!" 하지만 이야기를 해보니까 자네는 곧 한번쯤은 밟을 것같다고 말씀 하셨는데, 만약에 그때 그 말씀이 평소 과학 선생님의 모습으로 "그거야 유충이 많아서 겠지!" 라는 말이었다면 아마도 저는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도 달랐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다시 한번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지리산을 보고서 내려 온 다음날,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만 더 타고 뗏목을 해체해서 끝내기로 했는데, 그날은 불어난 물에 물결은 한층 더 출렁거렸고 유속은 빨라서 너무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해서 곧 마무리 하기로 했다. 그래서 마지막을 조금은 멀리 보이는 하얀 포말이 보이고 심하게 출렁이는 그곳으로 정하고 열심히 달렸는데, 우린 그 앞에 도착해서야 포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뿔싸!" 그건 가교가 물에 넘쳐서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을 뿐, 결국 뗏목은 물에 잠긴 가교를 넘지 못하고 아래로 빨려드는 쎈 물결에 휘청! 하는데 나는 "제가 내려서 밀어 볼게요!"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뱉고 뛰어 내렸다가 물살에 빨려들어서 한참을 어두운 다리 밑에서 새까만 하늘에 놀라기도 전에 다시 밝은 빛으로 주위가 환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건 사고였구나!"했다.


그런데 물결에 휩쓸려 떠밀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추스려 다리 위를 보니 다리 위에는 셋! '그럼,나머지는 어딨지?' 하면서 움찔! 하려던 찰라 바로 다리 앞에서 한수형이 연지누나를 안고 물 위로 올라 왔고, 장미는 물 속에서 나뒹굴고 있어서 내가 다시 들어가 안고 나왔는데?  


분명 그 1~2분 사이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아직도 물속에서 나오지 않는 선누나는? 그렇게 째깍째깍 흘러가던 그 1분의 시간을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길게 느끼면서 애가 탔을 선배님은 한 오십년을 넘게 늙어 버리셨고, 나오지 않는 누나를 생각하면서


"혹시? 물 속에서 뗏목과 함께 엉켜버린 것은 아닌가? 어쩌지?"를 반복하면서 다리 위의 세사람이 가슴 졸이던 그 순간!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나온 그 손은 "나 여기 있어요!" 를 외치듯 허우적 거렸고, 애타게 기다리던 선배님은 절묘한 타이밍으로 그 하얀 손목을  덥썩 잡을수가 있었기에 우리는 땅 위에서 모두가 얼싸안고 덩실덩실 한참을 들썩이며 웃을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탈 없이 살아난 우리는 물놀이를 하던 그 복장 그대로 짐도 없이 반바지에 맨발로 가방도 잃어버리고 지갑도 없이 그냥 털래털래 웃으면서 돌아왔다.

 

그것이 사고인지도 모르고, 잃어버린 짐이 아깝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나른한 웃음과 함께 털래털래!


그래, 이 때 까지도 나는 정말로 자유가 어떤 느낌인지를 정의하고 말 할수는 없었다. 그건 분명 내가 느리고 어리숙해서 였겠지만, 그래도 그 이후부터는 뭔 조금씩? 내가 아주 조금씩은 변하고 있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래, 아주 조금씩 내가 책임지고 행동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생겼던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은 그 참 고맙고,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그을 추억하면서 이렇게웃을 수 있게 해서~ 고마워요 모두들!

p.s 그렇게 집에 돌아오던 길에 들렀던 천왕봉휴게소는 그 뒤로도 가끔은 그 길을 지날때마다 들리게 되는데, '신발은 없는데 급히 화장실을 가야겠고, 뜨겁게 달구어진 시멘트 길 위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헐레벌떡 뛰어 가다가 밟았던 흥건한 화잘실 바닥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그 느낌은 아직도 정말로 선명하다. 그래서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곳에 가면 혼자서 웃게 된다.


"그런데 넌 왜 이렇게  나왔던 거냐? 빨려 들어가서 뗏목에 엉킨줄 알고 십년 감수했잖아!"라는 선배님 말에 "줄을 놓으면 절대로 안 될것만 같아서 꽉 잡고 있다가 물속에서 물을 너무도 많이 먹어서 어쩔수 업시 놓쳤던거예요!" 그런데 누나 그렇게 물을 먹고도 잠시 뒤 밥집에서도 많이 먹었다!


이제 연락을 못 한지도 벌써 이십년이 되어가네요.

아! 그 사이에 언젠가 한 겨울의 지리산은 같이 한번 갔었군!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시죠?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모두들 연락은 뜸했지만, 이렇게  즐거운 기억만은 생생하게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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