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à invisibili)
“도시”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느낌들이 있다. 무언가 삭막하고 냉엄하고 쓸쓸한, 인간적인 냄새를 배제한 그 무엇이란 느낌이 항상 동반된다. 특히나, 분산화 정책에 대한 정치적인, 그리고 숨겨진 내적 욕망에 충실한 반대를 동반하며, 갈수록 과밀해지고 집중되어 그 덩치가 비대해지기만 하는 서울이라는 이 도시가 주는 느낌은 전형적이란 단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전형' 그 자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도시라는 것은 기원전부터 존재해 왔었고 사람들의 집중, 혼잡 그리고 번영이라는 이미지는 이미 그 당시부터 도시라고 불릴 수 있는 전형 중의 일부였으리라. 물론 그때도 도시가 주는 화려함이라는 이미지의 반대편엔 어둠, 뒷골목, 범죄, 가난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개념을 전제하고 있을 것이며 현대적 도시라는 의미로 넘어오면서 그러한 기존의 이미지에 삭막, 냉엄, 비인간적인 무엇으로 치부되는 이미지들이 첨가되어 요즈음 우리가 전형적으로 가지게 될 그런 이미지의 도시가 우리 감성의 전반을 차지하게 된 듯하다.
이러한 전형적인 도시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도 사진기를 들고 여기저기 돌다 보면 도시적이지 않은 곳들을 찾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선릉에 있는 삼정릉을 가더라도 서울 하고도 강남, 그리고 테헤란로라는 그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그곳은 동시에 자연과 과거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왜 선릉인가? 단순히 든 예일 뿐이지만, 삼정릉에서 성종릉, 정현왕후릉, 중종릉을 느긋이 감상하며 천천히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물든 잎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이루는 빼곡한 숲 위로 최첨단 도시를 상징하는 테헤란로의 높은 빌딩들이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순간은 과거와 현재, 자연과 도시의 극적인 대비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대비 -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들의 이질적인 대조를 보며 그렇게 거닐고 있자니, 드문드문 스쳐 지나가는 어색함과 더불어 뭔가 비현실적인 어떤 공간 속에 내가 서 있음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 비현실적이며 몽환적인 그 어떤 것...
그런 곳에서 우리가 느낄 수도 있을 도시에 대한 이러한 비현실성, 몽환성을 또 다른 느낌으로 무한정 던져 주는 소설이 있다. 바로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현경 옮김, 민음사)"이란 소설이다. 사실, 소설이라기보다는 기행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이 방문한 수많은 도시들에 대한 소개를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기행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행 가이드가 더 맞을 듯하다. 하지만, 그 여행 가이드는 실존하는 도시들에 대한 가이드가 아니라 소설 제목 그대로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대한 가이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라는 말과 함께 유목적 분주함과 열정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던 할아버지 칭기즈 칸과는 반대로 중국 본토의 황궁 안에 들어앉아버린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방문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존하는 도시가 아닌 가상의, 비현실적인 도시들이다. 이 소설에서는 총 55개의 도시들이 칼비노 특유의 섬세하며 정제된 언어 선택과 더불어 교환, 욕망, 눈들, 기억, 이름, 섬세한, 지속되는~ 등의 감각적인 단어들과 함께 공존하는 도시의 묘사를 통해 눈앞에 그 이미지가 희미하게, 아련히 떠오르도록 하는 몽환적인 느낌을 풍기며 그려진다.
이 소설은 총 9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여러 도시들이 묘사된다. 그리고 각 부들의 시작과 끝에는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감성적이고 몽환적인 대화가 그 도시들의 이야기를 감싸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으로도 이 소설은 상당히 대칭적이다. 1부와 9부는 각각 10개의 도시가 묘사되며 나머지 일곱 개의 부에서는 각각 5개의 도시가 묘사된다. 그리고 폴로와 칸의 대화가 각 부의 시작과 끝에 총 18개씩 들어가 있다. 각 도시에 대한 제목 역시 기억, 욕망, 기호들, 섬세한~, 교환, 눈들, 이름, 죽은 자들, 하늘, 지속되는~, 숨겨진~ 이라는, 8개의 명사와 세 개의 형용사가 도시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공평하게 각각 5개씩 함께 연결되어 제시된다. 또한 각 도시의 이름들 역시 "디오미라", "자이라", "제노비아" 등등의,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면서도 낯선, 그래서 실재하는 도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지는, 그러면서도 청각적으로도 매우 이국적이며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제시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전체 구성은 아래와 같다.
목차에서의 이런 대칭적인 구조라는 것이 각 부의 도시 할당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언뜻 드러나지는 않지만 목차에서의 도시들의 배치는 특정 규칙을 갖고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각 도시는 8개의 명사, 세 개의 형용사 이렇게 총 11개의 단어와 결합되어 각각 5개의 도시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리고 1부와 9부는 10개의 도시가 나오고 나머지 부는 각 다섯 개의 도시가 나온다. 그리고 각 도시는 도시와 기억 1, 도시와 기억 2...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1번부터 5번까지의 번호가 매겨진다. 목차 상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도시 사이의 간격은 네 간격으로 배치된다. 즉, '도시와 XXX n'이 있으면 '도시와 XXX n+1'은 네 번째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1부에서는 처음 세 개의 도시, 즉 도시와 기억, 도시와 욕망, 도시와 기호들은 아직 충분한 도시들이 없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예외의 기준은 도시와 XXX가 나오는 순서에 따라서 그 간격이 4가 될 때까지 1씩 증가한다. 도시와 기억은 첫 번째로 소개되기 때문에 도시와 기억 1 다음이 도시와 기억 2가 된다. 그리고 도시와 기억 3은 두 간격 떨어진 곳에, 도시과 기억 4는 세 간격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마찬가지로 도시와 욕망은 두 번째로 소개되는 도시이며 따라서 도시와 기억 2는 도시와 기억 1과 두 간격 떨어진 위치에, 도시와 기억 3은 도시와 기억 2와 세 간격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마찬가지로 도시와 기호들은 세 번째로 소개되며 따라서 도시와 기호들 2는 도시와 기호들 1과 세 간격 떨어져 있다. 그다음부터는 n과 n+1의 간격이 4로 균일하게 유지된다. 이 결과 2부와 9부까지의 각 부의 첫 번째 도시는 도시와 기억 5, 도시와 욕망 5, 도시와 기호들 5, ... 이런 식으로 항상 5번이 부여된다. 이런 배치 기준은 역으로도 적용이 된다. 각 도시의 5번은 2 ~ 9부까지 총 8개가 배치 가능하다. 따라서 11개 중 나머지 세 개는 9부에서 해소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1부의 배치 방식과 정 반대의 순서로 배치된다. 9부에서 숨겨진 도시들 4는 숨겨진 도시들 5보다 한 간격 앞서 있고 숨겨진 도시들 3은 숨겨진 도시들 4보다 두 간격 앞선다. 마찬가지로 지속되는 도시들 4는 지속되는 도시들 5보다 두 간격 앞서며 지속되는 도시들 3은 4보다 세 간격 앞서고 도시와 하늘 4는 5보다 세 간격 앞서게 된다. 이렇게 간격이 4가 될 때까지 1부의 경우와 반대의 동일한 규칙을 갖는다. 이렇게 9부에 대하여 규칙을 반대로 적용한 결과 8부부터 1부까지 각 부의 마지막은 각 도시의 1번, 즉 숨겨진 도시들 1, 지속되는 도시들 1, 도시와 하늘 1, ...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결과 2 ~ 8부 사이의 도시의 번호는 5, 4, 3, 2, 1의 순으로, 거꾸로 보게 되면 1, 2, 3, 4, 5의 순으로 순차적으로 매겨진다. 마찬가지로 1부의 경우, 번호의 순서를 뒤에서 읽으면 [1, 2, 3, 4] 그리고 [1, 2, 3] 이어서 [1, 2] 마지막은 [1]로 배치된다. 역시 9부의 경우 순서 그대로 따라가 보면 [5, 4, 3, 2], [ 5, 4, 3], [5, 4], [5]의 순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각 도시의 배치는 나름의 규칙을 가지면서 또 역시 앞, 뒤로 반대의 규칙을 갖도록 대칭적으로 구성된다. 이 소설의 목차 구조를 다음과 같이 배치한다면 지금까지 설명한 구조의 의미가 명확해질 것이다.
칼비노의 경우 <우주만화, 이현경 옮김, 민음사>나 <제로 사냥꾼, 전경애 옮김, 현대문학>에서 수학적 상상력을 소설과 결합시킨 다양한 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이러한 배치 역시 칼비노의 수학적 상상력이 개입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대칭적인 구조와 규칙적인 배치 속에서 펼쳐지는 도시들의 묘사는 다양한 의미를 생산해 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알 수 있을 듯한 이미지, 영화나 애니 속에서 본 것 같은 이미지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이미지들이 대조와 반복, 병치를 통해 낯선 느낌과 더불어 독자로 하여금 여러 개의 의미를, 여러 개의 결말로 다다르게 만든다. 열린 결말이며 동시에 결말이 없는 결말이다. 또한, 이러한 가상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와 청자의 역할을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에게 맡김으로써 Fiction이라는 의미를 한번 더 꼬아버린다. 쿠빌라이 칸의 제국 속에 실존했던 여러 도시와 그 반대로 마르코 폴로가 상상으로 풀어나가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전형적으로 느끼고 있던 도시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그 도시들의 이미지를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어렴풋이 눈앞에 그려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다양한 의미와 감성을 지닌 그런 도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청각의 시각화를 탐하게 만드는 그 낯섦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