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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Aug 01. 2019

어른이란 이름의 또 다른 아이

김윤석: 미성년(Another Child)

미성년(Another Child), 김윤석 감독, 김혜준, 박세진, 염정아, 김소진, 김윤석 주연, 2019



   미성년(未成年)은 성년의 반대말로서 말 그대로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나이 또는 사람"을, 좀 더 구체적으로는 "법률상의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만 20세가 되지 못한 나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김윤석이 직접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미성년>의 영문 제목은 "Another Child"로서 "또 다른 아이"를 의미한다. 또 다른 아이... 어찌 보자면 순진하고 개구진, 천진난만함을 표상할 때의 아이라는 단어는 청초한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여기에는 "철없음"이라는 의미도 따라오는데, 적지 않은 코미디언들이 경구로 여기는 "영원히 철들면 안 된다"라는 의미에서의 철없음이라면 이 역시 좋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또 다른 아이, 그리고 철없음은 성년이지만 일단 저질러 놓고 책임은 지지 않는, 나잇값을 제대로 못하는, 의미 그대로 철딱서니 없는 한심한 어른들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또 다른 아이의 반대편엔 진짜 아이들이 있다. 말 그대로 미성년인 이 아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철이 든 아이들이다.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과 철든 아이들을 중심으로 <미성년>이란 영화의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철없는 성년들의 이야기는 매우 진부하고 식상한 반면 철든 미성년들의 이야기는 진지하면서도 생뚱맞고 상큼 발랄하다.



* 내로남불? 철없는 어른들의 이야기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인은 어른들의 불륜인데 이런 불륜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따라가면 매우 식상한 치정 로맨스로 귀결된다. 그것은 수많은 영화에서 반복되었던 전형적인 형태, 자신들은 로맨스라고 생각하지만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한 남자와 내연녀, 그리고 그 남자의 아내라는 삼각 구도로 구성되는 바로 그런 불륜이다.


  한 남자 대원(김윤식 분), 그는 사람 좋고 성실한 직장인으로서 나름 고생한 끝에 아파트도 한 채 장만하고 토끼 같은 딸과 여우 같은 마누라와 함께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이며 똑 부러지는 아내에겐 자상한 남편이지만 얼마 전부터 그는 비밀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은 또 다른 여자와의 로맨스인데 그가 나름 고생하던 시절,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집에도 못 들어가고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던 때에 그의 심신을 위로해주던 여자다. 바로 그 여자, 내연녀 미희(김소진 분)는 고등학교 때 딸을 낳았고 아빠라는 작자는 도박에 미쳐 진즉에 마누라와 딸을 버리고 도망가버린 탓에 오롯이 혼자서 딸을 키워야만 했다. 이런 그녀의 삶이 순탄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리라. 젊은 나이에 홀몸으로 자식을 건사해야 하는 처지라면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딸이 성장하는 기간 동안의 그녀의 삶은 '악착'이라는 단어 하나로 충분히 설명 가능할 것이다. 여자 혼자서 고생 끝에 서울 근교에 오리고기 전문점을 차렸고, 대원이 고생하던 시절의 단골 식당이 바로 이 오리고기 집이었다. 그때 그녀는 대원을 만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다. 그런 그녀가 덜컥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런 상황을 그냥 묻어둔 채로 둘의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관계를 대원의 아내가 알게 된다. 아내 영주(염정아 분), 결혼 후 그녀의 삶을 두 단어로 정리하자면 '내조'와 '헌신'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빠듯한 월급을 아끼고 아껴 집안을 안정되게 꾸렸고 아이도 학교에서 반장까지 할 정도로 착실한 아이로 키웠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꿈은 포기한 채 철저하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지키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안정된 회사의 간부인 남편, 공부도 알아서 잘하는 착실한 딸, 이제는 그런 안정적인 삶을 누릴 만한 시점에서 불륜이라니...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영주의 반응은 전형적이다. 어느 정도의 안정된 삶, 거기다 나름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녀는 신중하고 우아해야 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다 혹시나 하는 헛된 기대감일 수도, 아니면 불륜의 상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차를 몰아 기어이 미희의 오리고기 집을 찾아간다. 혼자 먹기에는 부담 가는 양을 주문한 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영주는 미희가 통화하는 모습을 통해 남편의 불륜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감정을 억누르며 그냥 밖으로 나왔지만 미희는 하필이면 오지랖도 넓다. 모진 풍파를 견뎌온 그녀답게 영주가 남편 문제로 홀로 왔음을 눈치챘지만 자신이 그 대상인 줄도 모른 채 위로한답시고 영주를 붙잡았다. 짜증이 솟구친 영주는 홧김에 미희를 밀쳐 버렸고 미희의 양다리 사이에서 피가 흘렀다. 급하게 미희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조산으로 인해 아이는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가게 된다. 원래부터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간호사의 설명에도 영주는 조산에 대한 죄책감을 지울 수는 없다.


   조산과 더불어 병원에 입원한 미희, 그렇다면 대원의 반응은? 전형적인 "찌질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원은 그저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소문이 날까 몰래 병원으로 갔지만 아내와 딸을 보고는 도망쳤고 미희의 딸한테 발각되어 조산으로 지쳐 잠들어 있는 미희만 잠깐 보고 돌아선다. 집에 와서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주차장에서 밤을 새우고는 딸이 등교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대면했을 때 그의 변명 역시 전형적이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 실수였다, 기회를 달라, 내겐 당신과 딸밖에 없다, 알아서 정리하겠다 등등... 영주가 물었다, 성욕이야 사랑이야? 그저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답을 못한다. 둘 다야? 그 여자는 사랑이던데? 잘못했다며 매달리는 대원을 뿌리치며 네가 두 사람을, 아니 네 사람을 기만한 거야! 이렇게 모진 한 마디를 내뱉고는 안방 문을 쾅 닫아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대원이 선택한 것은 도피다. 후배가 운영한다던 강원도의 펜션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 펜션은 공사가 중단된 상태고 닥친 운명의 장난을 어찌할지 몰라 마냥 강원도 바닷가만 배회할 뿐이다. 그러다 밤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귀경 길에 오른다. 차에 올라서 간호사에게 전화로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겼다. 이제 어떻게든 정리해야 할 터인데... 미희에게 전화를 한다. 괜찮아요? 간호사랑 통화했어요, 내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괜찮대요?  ...여기 멀어요. 언제 퇴원이라고? 만나서 얘기해... 안돼... 내가 전화할게... 내가 지금, 한숨 소리, ...힘들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좀 시간을 가지고...  미희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끙~ 소리를 내며 앞을 봤을 때 도로 한가운데 누가 쓰러져 있다. 차에서 내렸을 때 쓰러진 녀석은 웃고 있었고 그의 뒤로 몽둥이를 든 젊은 애들이 다가온다. 동네 양아치들이다, 몽둥이들이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조산 후 입원한 미희는 담담하다.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 막무가내 직진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이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다. 딸이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녀에겐 오직 대원 생각뿐이다. 인큐베이터 속의 아이가 죽든 말든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않을 거란 걸 임신 단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딸아이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아이를 고집한 것은 대원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원의 아이라는 존재가 대원을 끝까지 묶어 둘 끈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대원은 그만큼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대원에게 그녀는 그저 한 순간의 실수였을 뿐이다. 퇴원을 결심하고 병실에서 짐을 쌀 때 대원에게 걸려온 전화, 어디예요? 네, 괜찮아요. 나, 내일 퇴원하려고... 응, 어딘데요? 만날까? 나 사랑해? 응? 대답을 회피하는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언제? 집에 갈 거예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어간다, 여기 안 올 거예요? 자기 오면 기다리지... 나 집에 데려다 줄래요? 아님 다른 데 가든가... 왜요, 왜? 주저하는 건너편의 목소리에 미희는 전화를 끊어 버린다. 이제 그녀도 확실히 알았다, 대원에게 자신은 실수였다는 것을... 그리고 끈이었던 아이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그녀답게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을 것이다.


   이혼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주는 장롱 속에 숨겨둔 패물이며 통장들을 끄집어냈다. 패물이라고 해 봐야 딸아이 백일 때 받은 금반지 몇 개, 빠듯한 남편의 월급을 아끼고 아껴 만들었던 적금들은 모두 남편 명의로 되어 있다. 심지어 집값 인상까지 고려해서 신중하게 골랐던 이 아파트마저 남편 명의다. 근 20년 가까이 쏟아부은 내조와 헌신의 물질적 결과는 자신의 것으로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영주는 혼자 중얼거렸다, 멍청한 년! 오랜만에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영주, 울먹이며 고백을 이어 간다, 저는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더러운 짓을 저지른 건 그 사람들인데... 제가 미워하는 인간들이 정말 나쁜 인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가 아픈 게 하느님이 내린 천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라도 속 마음을 끄집어내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미쳐버렸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복죽정성껏 만들어 미희가 입원한 병실을 찾아간 영주. 그 사람, 여기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다 끝났으니 그만 가라고도 한다. 가정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서 어디까지 가려고 했냐는 질문에는 바람 한 번 피워 보란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냐고? 손수 만든 죽을 먹으라고 억지로 권하는 영주, 하지만 미희가 잘라서 말한다, 나 죽 먹이려 왔어요? 영주가 답한다,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요! 이제 다 정리했다는 미희의 말에 영주식음도 전폐한 꾀죄죄한 몰골로 누워 있는 미희를 상상했고 그런 그녀에게 죽도 좀 먹이며 안되는 위로도 하고 싶었단다. 그러면 감동받은 미희가 눈물을 쏟는 그런 우아한 상황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주의 마지막 넋두리는 이러했다, 그래야 내가 숨도 좀 제대로 쉬고... 앞으로 사람 구실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맞아서 팔이 부러진 채로 택시를 타고 집까지 겨우 돌아온 대원.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대원을 맞이한 영주는 별 일 없었다는 듯 병원부터 가자며 앞장선다. 혼자 퇴원해서 집으로 온 미희는 처음으로 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그렇게 딸과 화해한다. 미희는 미희대로, 대원과 영주는 그들대로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아이는 사라졌고 대원의 바람대로 번의 치기 어린 실수는 그렇게 무마되면서 어른들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 넌 영원히 함께 하는 거야. 철든 아이들의 이야기

   어른들의 식상한 불륜 스토리는 그렇게 끝나지만 이 영화를 톡톡 튀는 상큼 발랄한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바로 철들어버린 아이들, 대원과 영주의 딸 주리(김혜준 분)와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 분)의 힘이다. 사실 영화는 어른들의 불륜이 관심사가 아니다. 영화는 책임지지 않고 회피만 하려는 어른들이 저지른 일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수습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내세워 한심한 어른들의 철없음을 고발한다.


   학교 옥상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동갑내기 두 여고생,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불륜이니 변태니 꽃뱀이니 서로 험한 말이 오간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기에 오다가다 우연히 스치며 지나갔을 순 있겠지만 출신 중학교도 다르고 사는 동네도 다르기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둘. 심지어 한 명은 이과, 나머지 한 명은 문과였기에 서로 마주칠 일도 없다. 이렇게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두 학생이 옥상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게 된 이유는 최근에 생겨난 교집합 때문이다. 대원과 영주의 딸인 주리(김혜준 분)는 반에서 반장을 맡고 있고 공부도 곧 잘하는 아이다. 미희의 딸 윤아(박세진 분)는 학교 생활에는 관심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는, 어찌 보면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아이다. 최근의 교집합이라면 바로 주리의 아빠 대원이다. 윤아의 엄마 미희와 주리의 아빠 대원은 불륜 관계에 있었고 미희가 대원의 아기를 임신하게 된 것이다. 아빠의 불륜을 어찌 알게 된 주리는 전날 아빠를 미행해서 오리고기 집까지 따라갔다 핸드폰을 떨구고 급하게 돌아왔고 이 핸드폰을 습득한 윤아가 이날 학교 옥상으로 주리를 호출했다. 불륜남의 딸 vs 불륜녀의 딸... 둘의 앙칼진 대화는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고 서로 상대방 어른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급기야 윤아가 주리의 핸드폰으로 영주에게 전화를 해서 임신 사실을 알려버리고 만다. 이렇게 둘의 첫 만남은 극과 극의 대립으로 시작된다.


   이제 엄마까지도 아빠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집안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으리라. 집으로 온 주리는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지만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행동한다. 한편 윤아는 엄마 미희에게 애를 지우라고 닦달했고 심지어 엄마의 폰으로 대원에게 "당신이 바람피우는 거 세상이 다 알아"라는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싸늘한 집안 분위기를 뒤로 하고 주리가 등교했을 때 하필 윤아를 보게 된다. 썩소를 날리며 돌아서는 윤아를 봤을 때 주리는 꼭지가 돌았고 그대로 돌진해서 윤아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았다. 학교 유리창까지 깨뜨릴 정도의 큰 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교실 문까지 박살내고 나서야 둘의 싸움은 중단된다. 양호실에서 주리는 윤아에게 이 영화의 카피가 될 대사를 날린다;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이제 지옥이다! 이런저런 담임선생의 훈계가 이어지는 동안 윤아의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고 주리의 엄마도 병원에 함께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둘은 병원으로 향한다.


   보호자 자격으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러 인큐베이터 실에 들른 아이들...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둘 사이도 인큐베이터 안에서 꼬물거리는 조그마한 생명 앞에서는 무장해제당한다. 병원 식당에 앉은 둘, 화면에는 노란 계란으로 덮인 오므라이스가 보인다. 윤아의 말, 요만했지? 다음 장면은 덮밥보다 조금 더 큰 돈가스다. 주리의 답, 이만했어, 정말 작다, 죽어버리라고 기도 했는데... 윤아도 한마디 거든다, 난 엄마 배를 주먹으로 때리고 싶었는데... 그래도 태어났다. 둘 모두에게 남동생이다. 주리와 윤아 모두 남동생은 필요도 없다고 했지만 둘은 이미 생명의 신비라는 경외감을 체험한 뒤였다. 쭈글쭈글하고 못생긴 조그만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체험은 둘에게 생명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 부여했다. 병원에서 주리는 아빠에게 전화를 해 보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아빠를 발견한다. 하지만 아빠는 도망치기 바쁘다. 그렇게 주리와 윤아 그리고 대원 사이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대원은 요리조리 도망쳤고 결국 주리는 실망하여 돌아서고 만다. 하지만 윤아는 아빠, 아빠를 부르며 끝까지 대원을 추격한다. 중년의 나이는 패기 넘치는 고등학생의 체력을 이기지 못하는 법, 도망치다 지쳐 결국 주저앉아 버렸지만 아빠를 부르며 쫓아온 아이는 처음 보는 녀석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대원, 누구니 너? 윤아의 안내로 미희가 입원한 병실에 들른 대원, 괜찮아요? 자요? 하지만 곧 병실의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시선이 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고 조용히 돌아서서 병실을 나가 버린다. 병실 유리창 밖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대원을 지켜보며 윤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봐, 내가 뭐라 그랬어... 꼴좋다...


   미희의 진료비를 영주가 대신 결재를 했다. 자신이 밀치는 바람에 조산을 하게 되었다는 미안함에 대신 결재를 한 것이지만 엄마 성격을 그대로 닮은 윤아는 빛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기에 그 돈을 마련하고자 학교도 빠진 채 여전히 강원도의 도박장을 전전하는 친아빠를 찾아간다. 친아빠 역시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본 딸이지만 도와주기는커녕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성년자인 딸아이 명의로 신용카드나 만들어달라고 할 뿐이다. 도박장 차가 왔을 때 급히 떠나는 아빠에게 윤아가 외친다, 아빠, 내 이름은 알아? 내 이름 뭔데? 우리 이제 보지 말자! 그렇게 허탕만 치고 되돌아온 윤아는 알바를 뛰던 편의점 사장에게 돈을 가불하여 겨우 진료비를 맞추었다. 영주를 찾아가 돈을 돌려주고 주민 센터에 들려 출생 신고서를 한 장 챙겨서 병원에 온다. 그 사이 주리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 아빠의 행방을 찾아 다시 병원을 찾았고 미희를 보게 된다. 병원 휴게실에서 주리와 나란히 앉은 미희, 주리가 먹던 과자를 받아서 우걱우걱 씹어 먹는데... 오지랖이 심하게 넘쳐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게 마련이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산모의 엄마는 그런 미희를 보고 산모가 자기 몸을 안 챙긴다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험한 세상을 혼자 헤쳐온 미희였기에 그녀는 만만치 않다, 왜 반말이야?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커다란 말싸움으로 번졌고 휴게실의 다른 사람들도 막무가내인 미희의 기에 눌려 움찔거린다. 간호사가 나서서 사태가 진정된 후, 윤아가 나타나서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아이 출생 신고를 위해서는 출생 증명서가 필요했고 윤아는 미성년자라서 신청을 할 수 없었기에 미희가 직접 해야 한다. 하지만 만사 귀찮은 듯 그냥 휴게실 소파 위에 누워 버리는 미희. 출생 신고에는 관심이, 아니 아이 자체에 관심이 없는 그런 엄마를 보고 윤아가 한 소리를 했지만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미희가 더 화를 낸다. 어이가 없어진 윤아가 떠나버린 후 사이다처럼 속을 뻥 뚫어주는 주리의 한 마디; 왜 아줌마가 화를 내요, 뭘 잘했다고? 


   그새 컸나? 다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 앞에 선 둘. 이제 좀 사람 같네. 자신들과 무관하지 않은 어린 생명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어, 지금 웃은 거지? 저게 웃는 거야? 웃었잖아~ 웃으니까 더 못생겼어 인마~, 사는 거 되게 빡세다 너~, 각오가 돼 있어? 손을 뻗어 조심스레 아기의 발을 만지는 윤아, 그리고 한 마디 더 거든다, 힘 내! 이제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은 둘. 윤아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편의점에서 자신이 직접 구입해서 정성껏 빨았던 아기 양말을 만지작거린다. 아기에 전혀 관심 없는 엄마와 도망치기 급급한 주리의 아빠, 그래서 윤아는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남동생을 키우겠다고 한다. 자신의 엄마나 주리 아빠보다는 자신이 훨씬 더 애를 키울 자격이 있단다. 좀 더 현실적인 주리,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며 차라리 입양을 보내자고 한다. 윤아는 정색하며 말한다, 내가 걔 누나야, 근데 왜 입양을 보내? 엄마, 아빠 없어도 내가 있잖아! 주리는 알아서 하라며, 그리고 다시는 서로 보지 말자며 돌아 선다. 돌아서는 주리에게 윤아는 엄마를 잘 돌보라고 했지만 주리도 지지 않고 너네 엄마나 잘 보라는 앙칼진 대답만 남긴 채 그렇게 둘은 헤어진다. 그래도 윤아의 마지막 말이 귀에 밟혔는지 학원으로 향하던 주리는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나 학원 안 가면 안 돼? 보고 싶어, 나 집에 가서 엄마랑 밥 먹을래...


   다음 날, 다시는 보지 말자 했던 주리가 웃으며 병원에 나타난다. 그리고 윤아에게 폰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그 사진은 주리 아빠와 윤아 엄마가 알 수 없는 어느 놀이동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은 주리에게는 불륜의 근거였지만 아기한테는 출생의 근거다. 둘은 신기하다는 듯 깔깔거리며 사진을 한 참을 들여다본다. 너, 애기 보고 싶어서 왔지? 윤아의 말에 주리는 아니라고 했지만 윤아는 아기 양말을 보여주며 신겨 볼 거라고 신이 나서 인큐베이터 실로 향했다. 하지만 아기는 없었다. 직접 확인하겠다고 생떼를 쓰는 윤아와 이를 막는 간호사들, 수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뇌출혈이 있어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너네... 동생 얼굴은 봤잖아... 주리가 말했다, 입양 보낸 거죠?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아기 명단을 정리하던,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를 본 것을 기억해냈고 윤아를 데리고 급하게 병원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막 출발하려는 승합차를 막아선 둘, 윤아는 아저씨에게 동생을 자신이 키우겠다고 울면서 애원했고 그 사이 주리가 승합차 뒷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하얀 천으로 쌓인 수많은 상자들이 있었다. 그 승합차는 바로 아기들의 시신을 실어 나르는 장의 차량이었다. 자상한 그 아저씨(정종준 분)는 윤아와 주리를 태워 운전을 시작했고 주리에게 아기들 명단이 적힌 서류철을 내밀었다. 윤아는 명단을 보려는 주리를 막으며 모두 거짓말이라 했다, 이렇게 많은 애기들이 어떻게 같은 날에 죽을 수 있냐는 거였다. 하지만 아저씨의 말로는 모두 같은 날에 죽은 것이 아니란다.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보름 단위로 실어 나를 뿐이라 했다. 그 사이 주리는 명단 맨 마지막 줄에서 미희의 이름을 확인했다. 윤아는 아저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를 세우라 했고 내려서는 다 거짓말이라고 외치며 반대편으로 달아나 버린다. 주리는 동생의 시신이 담긴 하얀 상자를 받아 들고 꾸벅 인사를 한 후 비장한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주리가 집으로 왔을 때 초췌한 몰골을 한 아빠가 있었다. 아기 죽었어, 아빠, 아기 죽는 거 기다린 거지? 나 이제 아빠 딸 안 해! 이렇게 소리치곤 주리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 버린다. 한편, 집으로 온 윤아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구질구질한 상황도, 엄마도 용서할 없었기에 집안 여기저기를 뒤집어 돈과 짐을 챙겼다. 그렇게 집 안을 뒤지다 윤아는 엄마의 산모 수첩을 발견한다. '못난이'라는 태명과 함께 아기의 사진과 태교 과정이 정성스레 기록되어 있다.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식당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봤다. 엄마 혼자서 퇴원해서 와 있었다. 엄마는 컵라면 하나를 끓이기 시작한다. 큰 짐보따리를 들고 나타난 딸을 보고 건넨 엄마의 첫마디; 네 아빠 온 줄 알았어, 닮을 게 없어서 그런 걸 닮니? 대답도 없이 윤아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린다.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아래로 박고 라면만 먹는 미희... 알고 있었지? 그래서 일부러 안 본 거지, 못난이? 다 컸네... 엄만 늙었어, 흰머리도 늘고... 이제 윤아는 진솔한 한 마디를 건넨다, 엄마, 내가 엄마를 좀 좋아하게 해 줄 순 없었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미희...


   다음 날 수업 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주리가 윤아의 반을 찾아왔다. 교실 뒷 문을 열고 무작정 걸어서 윤아 앞에 선 주리, 왜 전화 안 받아? 윤아의 대답, 너 누군데? 너 나 알아? 아무 말 없이 주리는 가방에서 하얀 상자를 꺼내 윤아의 책상 위에 올렸다. 열까? 너 어제 도망가서 못 봤잖아. 상자를 열려는 주리의 손을 막으며 윤아가 말한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다시 주리가 말한다. 넌 살아 있잖아...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윤아. 이제 둘은 나란히 교실을 나선다. 하얀 상자는 이번에는 윤아의 손에 들려 있다. 너네 어디가? 시험 시작하는데... 담임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진이다. 그렇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둘은 학교를 나섰다. 그들이 간 곳은 화장터였고 아기의 시신을 건네주었던 친절한 그 아저씨의 도움으로 동생의 화장을 치렀다. 아저씨는 마땅한 상자가 없다고 미안해하며 동생의 유골 가루가 담긴 통을 내밀었다. 그 통은 동그란 용각산 상자였다. 너네 동생은 아주 운이 좋구나, 찾는 가족이 있어서... 아저씨의 이 말에 주리는 이렇게 답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면 죽지 않았겠죠. 찾지 않는, 죽음도 많으니까... 이 말을 남기고 아저씨는 돌아 섰다.


   주리는 영업을 그만둔 지 꽤 되어 보이는 놀이동산으로 윤아를 데리고 갔다. 어리둥절해하는 윤아를 끌고 대관람차를 배경으로 셀카를 잡았다. 주리와 윤아를 비추는 셀카 배경에는 대관람차가 보였고 그곳은 바로 주리가 윤아에게 보여 주었던, 대원과 미희가 함께 찍었던 사진의 그 장소였다. 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놀이동산의 여러 놀이기구들을 타고선 서로 깔깔거리며 여고생다운, 천진난만하고 활기 넘치는 웃음들을 여기저기 흩뿌렸다. 바이킹 위에 나란히 앉은 둘, 주리는 용각산 뚜껑을 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동생의 유골 가루... 그냥 납골당에 둘 걸 그랬어, 이런 윤아의 말에 주리는 답한다, 그 속에 있었으면 더 외로울 거야,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 난 나를 못 믿어. 이 말에 윤아도 단호하게 동의한다. 이제 결심한 듯 주리는 초코 우유와 딸기 우유를 가방에서 꺼냈고 동생의 가루 일부를 우유에 넣은 후 나머지는 윤아에게 건넨다. 윤아도 주리를 따라 자신의 우유에 나머지 가루를 넣었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뭐야? 내가 그런 거 아냐... 서로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 둘, 그렇게 아이들의 피어나는 웃음을 마지막으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아주 담백하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억지를 짜내는 부분도,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는 최루성 요소도 없다. 신예 김혜준과 박세진이 풀어내는 애증의 관계는 시종 밝고 가벼우며 흩날리는 꽃잎에도 까르르 거리는 여고생 특유의 상큼 발랄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어린 두 주인공의 이런 역할이 바로 식상한 불륜 로맨스를 전혀 식상하지 않은, 살아서 파닥이는 활어와도 같은 신선도 높은 이야기로 이끌고 있다.


   이 영화의 한 축은 철딱서니 없는 한심한 어른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고는 자신이 치고 책임은 회피하는 대원,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을 대변한다. 바람을 피우면서도 이들의 대전제는 가족이다. 그래서 어물거리는 변명도 한순간의 실수였다, 아내와 자식밖에 없다, 알아서 정리하겠다는 식의 매우 식상한 레퍼토리다. 그러면서 그는 결코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에게 가족은 언제나 훌륭한 보험일 것이다. 불륜녀 미희도 식상함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험한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대원은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진정 사랑이었고 그것은 상상할 여력도 없었던,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어떤 막연한 낭만의 성취를 위한 직선적인 사랑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좌고우면 없는 무조건적 직진을 선택했을 터이지만 그런 직진은 무책임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결국 낭만은 낭만일 뿐이라는 현실 앞에 그녀는 다시 좌절하고 보험 수령자인 남자를 애써 떠나보낸 후 홀로 남아 아픔을 삭이는 전형적인 스토리를 반복한다. 아내 영주 역시 전형적이다.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혼자 끙끙 앓다 결국은 스스로 극복하는 길을 찾는데 그 길은 역시 용서라는 미덕이다. 한 번의 실수로 가정을 파탄낼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실수한 남자는 돌아오고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용서의 미덕으로 아내는 그를 받아들이며 사랑이라 믿은 여인은 홀로 남게 되는 8, 90년대까지의 전형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구성된다. 어쩌면, 남자는 실수하기 마련이고 여자는 용서해야 한다는, 그렇기에 가정을 지키는 책임은 온전히 여자가 져야 하는 이런 패턴이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서는 관성처럼 용인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미성숙하다고 여겼던 아이들은 전형성을 빗겨 나간다. 가정의 파탄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저지른 결실을 끝까지 책임지고자 한다. 물론 그러한 반응은 즉자적일 것이며 여전히 아이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만약 주리와 윤아가 상당한 인생을 경험한 성인이었다면 어차피 불구로 태어날 아이, 차라리 잘 죽은 거야... 이런 식으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럴 수 없었고 어쩌면 철들지 않았기 때문에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위에 대한 즉자적인 반응으로 기를 쓰고 대신 책임을 지고자 했을 것이다. 놀이동산의 바이킹 위에 앉아서 윤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엄마도 내 나이 때는 자기가 이런 짓을 할지 몰랐겠지? 너네 아빠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바람피우고 막 그래야지, 그런 생각 안 했을 거 아냐..." 두 아이도 훗날 어른이 되어서 그들의 부모와 같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 이 날을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철든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사회에 물들어가고 요령을 익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마지막까지 아웅다웅, 티격태격하며 뛰어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꺼져 버렸지만 누구도 돌보지 않을 그 죽음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을 진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인연일지라도, 그것에 대한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영원히 함께 하는 쪽을 택한다. 그 방식은 바로 미성숙에 충실한 방식이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민속학적 의례로서 식인의 풍습은 알려져 있다. 특히 족내(內) 식인의 경우 죽은 자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지만 그 행위는 영혼을 이어받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다.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한다면 현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에 이를 애석하게 여긴 결과, 친족이나 지인들은 죽은 자를 먹음으로써 그의 영혼과 육체를 함께 나누어 갖고, 생전에 가졌던 죽은 자의 지혜와 능력마저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위로 해석된다. 주리나 윤아 둘 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 했다. 납골당에 동생을 안치해둬 봐야 후에 자신들이 찾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사실이 철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동생의 유골을 나눠 먹음으로써 애석함을 해소하는 동시에 동생과 영원히 함께 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자신들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고 어른들과 다르게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한 것이다.


   영화는 어른이라 쓰고 아이라 불러야 하는, 어른이란 이름의 또 다른 아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이 싸지른 무책임을 수습하는 철든 아이들을 대비시킨다. 하지만 그런 대비는 어른이란 이름의 또 다른 아이를 단순히 비판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런 또 다른 아이를 보듬는 철없는 아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바로 성숙을 포근히 껴안고 위로하는 건강하고 충만한 미성숙의 한 양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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