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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Dec 24. 2019

관념으로 건설된 상상의 세계

보르헤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민음사, 2011: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p11


<보르헤스 전집 2: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4: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p17




   "존재" 또는 "실체"라는 표현을 쓸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말하는 세계라는 것은 그 속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소위 말하는 자연이라고 하는 물질계와 더불어 접촉하고 서로 교감하고 살을 비비며 함께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우리가 소속된 관계망을 통칭하는 것이리라. 그 세계는 존재의 세계이고 하이데거가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여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든 우리 같은 범인들이 느끼는 존재는 데카르트적 의미에서의 "연장(延長)"이라는 요소가 절대로 거세될 수 없다. 따라서 세계라고 할 때의 우리는 그 속에서 경험하며 느끼는 물질성을 배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관념은? 물질과 정신의 대립은 근대 철학의 화두였다. 그리고 근대를 연 데카르트에 의해 존재로서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버린 "물질"과 "정신" 혹은 "연장"과 "사유"라는 이 두 항은 현재까지도 서로 팽팽한 대립의 끈을 유지하며 상호 관계에 대한 논쟁을 부추기고 있다. "정신"에 해당하는 항으로서의 이성, 사고, 관념 등등, 근대부터 이런 요소들은 물질적인 요소들은 완전히 배제된, 철저하게 정신적인 어떤 것들이다. 물질성을 담지하지 못하는 이런 요소들은 존재한다라고 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그 있음을 인지할 수 있는 감각적인 요소들은 배제되어 있기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머릿속의 상상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 순수 추상 차원에 머물 뿐이다. 다시 말해 존재한다, 더 나아가서 실재한다라고 할 때의 그것을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못한다면 그것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세계는 이런 물질성의 토대 위에서 정신적인 요소들이 추상적 관념의 상부구조로 세워지는 구조를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철학이 소위 말하는 "유물론"이겠지만 여기서는 훨씬 광범위한 "실재론"을 의미한다.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거나 그 구조를 변형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존재하며 요즘 같은 현대에는 이런 일차원적 단순 유물론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일반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세계는 이렇게 물질성을 통해서 그것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세계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세계라고 할 때 그것은 우선 철저하게 물질로 구성된 세계다. 그러한 물질계의 현상을 통해서, 그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든, 아니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든, 그래서 그것들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현상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든 우리는 이러한 물질성에서 출발한다. 물론, 데카르트 시대부터 물질성은 하나의 환상이며 이러저러한 현상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더 나아가서 물질계를 지각하게 하고 그런 물질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라는, 소위 말하는 "관념론(觀念論)" 역시 있었다. 사실, 서구 철학은 뭐라 그러든 "관념론" 중심의 철학이었으며 수많은 변종도 존재했겠지만 그들의 철학에서 메인 스트림은 언제나 관념론이었고 유물론은 아웃사이더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찌 보면 "형이상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철학적 사고이며 결국 이것은 인간의 사고를 통해서 수행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라고 할 때 우리가 직접 느끼는 물질성과 그것을 설명하는 형이상학의 관념성 사이의 괴리는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상을 해 볼 수도 있다. 이 세계,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세계, 서로의 영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그래서 물질성으로 충만한 이 세계와 완전히 반대되는 세계를... 다시 말해, 어떠한 물질적 요소도 없이 오로지 관념만으로 건설된 세계를 말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성의 문제는 배제되어야 한다.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물질적인 어떤 것을 끌어들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각만으로, 상상만으로 그 세계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면 또다시 가능성에 대하여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때의 가능성은 그 세계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문제, 즉 그런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관념만으로 구성될 완전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를 소설을 통해 보여준 예가 오늘 소개할 보르헤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Tlön, Uqbar, Orbis Tertius)>"라는 단편이다.




* 우크바르(Uqbar)

   이야기는 "우크바르"에서 출발한다. 약 오 년 전, 보르헤스는 비오이 카사레스(Adolfo Bioy Casares, 1914~1999, 아르헨티나의 작가로서 보르헤스와 절친이다. 그의 장편과 몇 개의 단편은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며 대표작은 <모렐의 발명(La Invencion de Morel), 송병선 옮김, 민음사>이다)와 라모스 메히아 지역의 가오나 거리에 있는 어느 별장에서 함께 저녁을 한 후 일인칭 소설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보르헤스는 별장의 복도 끝에 있는 거울이 자신들을 쫓아다니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이에 카사레스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우크바르(Uqbar)'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의 말을 떠올렸다. 보르헤스가 이 범상치 않은 격언의 출처를 물었을 때 카사레스는 <영미 백과사전> 제46권의 '우크바르' 항목에서 봤다고 답했다. 말이 나온 김에 둘은 이 격언의 완전한 설명을 보기 위하여 마침 별장에 구비되어 있던 영미 백과사전 46권을 뒤졌지만 사전 어느 곳에서도 '우크바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다. 46권의 마지막 항목은 '웁살라'였고 혹시나 해서 47권도 펼쳐 보았지만 첫 페이지는 '우랄 알타이어'에 관한 글로 시작하고 있었다. 당황한 카사레스는 사전의 색인을 차례로 좇아서 우크바르라고 발음 가능한 모든 철자를 뒤졌지만 허사였다. 헤어지면서 그는 그곳이 이라크 혹은 소아시아 쪽의 지역이라 기억했다. 보르헤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실, 사전에 나오지도 않은 그 나라와 익명의 이교도 이야기는 비오이가 자신의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즉석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자신이 인용했던 격언의 출처를 기어이 찾았다고 비오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크바르에 관한 글을 실제로 담고 있는 백과사전 제46권이 자신의 바로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교도의 이름은 나와있지 않지만 그 책에 적힌 격언의 완전한 문장은 다음과 같. "어느 그노시스 교도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하나의 환영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궤변이다. 거울과 부권(父權)은 가증스런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분명하게 그런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간곡한 부탁으로 며칠 비오이는 백과사전을 들고 왔다. 별장의 것과는 동일했으나 페이지 수에서 차이가 있었다. 별장에 비치된 것은 917페이지였지만 비오이의 것은 921페이지로 페이지가 많았다. 표지에는 알파벳 순서 Tor부터 Ups까지의 항목이 담겨있다고 명기되어 있었기에 Uq로 시작하는 우크바르(Uqbar) 항목은 존재하면 안 되었지만, 추가된 페이지에, 즉 918페이지부터 바로 우크바르에 관한 설명이 담겨 있었다. 둘은 비오이의 책과 별장의 책을 여러 비교해봤지만 우크바르 관련된 네 페이지 외에어떤 차이점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비오이의 백과사전 색인에서도 별장의 것과 마찬가지로 우크바르라는 이름은 없었다. 모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0판을 재인쇄한 것이었고 비오이는 판본을 수없이 열리는 어느 경매를 통해 우연히 구입했다고 했다.  



* 틀뢴(Tlön)

    둘은 우크바르를 서술하고 있는 추가된 네 페이지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격언 관련된 글을 제외한다면 그 글은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는, 지극히 사전스러운 무미건조한 설명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엄정한 글의 저변에서 무언가 근본적인 모호함을 발견했다. 918페이지에 기록된 우크바르의 지리 관련 항목에서는 지형에 관한 열네 개 이름들 중 그들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마저도 애매하게 삽입된 호라산, 아르메니아, 에르제룸이라는 세 개뿐이었다. 물론 우크바르의 국경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듯했지만 그 지역의 강과 분화구, 산맥들에 관한 판단 기준은 모호했다. 920페이지의 역사 관련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인 인물 역시 은유적으로 언급된 단 하나의 이름만 기억할 수 있었다. 13세기 종교 박해로 인해 정교회 신자들이 그 섬을 피난처로 삼았다고 하며 그곳에는 아직도 오벨리스크들이 남아 있고 그들이 사용했던 돌 거울이 출토된다는 것이다. 우크바르의 언어와 문학에 관해서 기억할 만한 특징은 딱 한 가지였는데 그들의 문학이 환상적이며 전설과 서사시는 현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단지 "믈레흐나스(Mlejnas)"와 "틀뢴(Tlön)"이라는 두 환상적인 지역만을 언급하고 있었다. 참고 문헌은 나중에서야 그들이 발견하게 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지만 번째 책인 실라스 하슬람의 <우크바르라 불리는 지역의 역사(1874)>만이 버나드 콰리치 서점의 도서 목록에 실려 있을 뿐이었다. 번째 책은 1641년에 발간된 <소아시아의 우크바르라는 지역에 관한 알기 쉽고 읽을 만한 소견>으로 저자는 요하네스 발렌티누스 안드레아로 되어 있는데, 보르헤스는 삼 년 후 드퀸시의 책 <저작들>에서 안드레아라는 이 이름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 책에서 드퀸시는 안드레아가 17세기 초 '장미 십자회'라는 상상적 단체에 관해 쓴 독일 신학자이며 후에 다른 사람들이 안드레아의 그 단체를 모방하여 실제로 그런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날 밤, 둘은 국립 도서관을 찾았고 그곳에서 지리부도부터 색인 목록, 지리학회 연감, 여행자와 역사가의 비망록 등을 죄다 뒤졌지만 우크바르와 관련된 것은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 날, 이 이야기를 들은 시인 카를로스 마스트로나르디가 길 모퉁이의 한 서점에서 한 질의 <영미 백과사전>을 발견하고 직접 46권을 들춰 보았지만, 그 역시 우크바르에 관한 한 마디의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 오르비스 테르티우스(Orbis Tertius)

   우크바르와 틀뢴에 대한 그런 근본적인 모호함만을 간직한 채로 2년 여의 시간이 흘렀고, 보르헤스는 단골 술집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책은 아버지의 절친이었던 허버트 애시라는 사람이 몇 달 전 두고 갔다는 8절판 크기였다. 고독한 신비주의자였던 애시가 1937년 9월 동맥 파열로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브라질에서 온 등기 우편물 속에 봉인된 책이었다고 한다. 무심하게 그 책을 넘기던 보르헤스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어로 된 그 책은 1,001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출간된 장소나 날짜는 적혀있지 않았다. 표지에는 <틀뢴 제1 백과사전 11권 - Hlaer에서  Jangr까지(이하 11권)>라고 되어 있었고 첫 번째 페이지와 컬러 화보들 중의 하나를 덮고 있는 얇은 반투명지에는 "오르비스 테르티우스(Orbis Tertius)"라는 책 제목과 함께 파란색의 둥근 인장이 찍혀 있었다. "우크바르와 틀뢴, 그리고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마침내 2년 전의 모호함에 대한 실마리가 하나 잡힌 듯하다. 우연은 보다 정확하고 공들인 무언가를 보르헤스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2년 전의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 거짓 국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담은 해적판 백과사전을 제시했지만 이번의 우연은 알려지지 않은 행성의 전체 역사를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다룬 방대한 자료(물론 그 방대함도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를 그에게 안겨 주었다. 책에는 그 행성의 건축과 카드 패, 소름 끼치는 신화와 그 언어의 속삭임, 그곳의 황제와 바다, 광석과 새와 물고기, 그곳의 수학과 불꽃,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쟁들이 교리적 의도나 패러디적 요소 없이 분명하고 조리 있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보르헤스와 그의 친구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의 모든 도서관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지만 그런 수고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책은 백과사전의 제11권으로서, 순서상 열한 번째 책이었고 이전과 이후의 권들에 대한 언급이 <11권>에 나와 있었기에 그들은 나머지 책들을 찾기 위해 사방을 들쑤시며 지구 절반을 돌아다녔지만 결코 찾지 못했다. 계속 반복되는 단조롭고 힘든 탐색 작업에 모두 지쳐버렸기에 이제는 그들 사이에서 나머지 책들의 실제 존재 여부가 치열한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알폰소 레예스는 다 그만두고 수없이 방대하고 두터울 나머지 책들을 차라리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 버리자고까지 제안했다. 그는 한 세대의 틀뢴주의자들만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농담 반 진담 반이었던 그의 이런 발칙한 발상은 그들을 다시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려놓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틀뢴을 만들었을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하여 모두 동의하는 하나는 있었다. 즉,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 한 명의 창조자라는 가설은 만장일치로 기각되었고 틀뢴이라는 이 멋진 신세계는 어느 천재의 주도 하에 천문학자, 생물학자, 기술자, 형이상학자, 시인, 화학자, 대수학자, 윤리학자, 화가, 기하학자 등으로 구성된 비밀결사의 작품일 것이라는 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틀뢴은 처음에는 단순히 하나의 카오스, 다시 말해 무책임한 상상의 방종과 같은 행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것이 코스모스이고 아직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은밀한 법칙이 명확히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완벽하게 분명하고 조화로운 질서가 존재함을 11권에서 보르헤스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 1947년의 후기(後記)

   완벽하게 분명하고 조화로운 질서가 존재한다고 보르헤스가 확신하는 상상의 세계를 보르헤스는 단편의 11페이지 정도에 걸쳐 체계별로 정리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조화롭다는 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계와는 정반대다. 보르헤스가 보여주는 그 세계는 연장, 감각적 소여, 물질성 그리고 공간이 제거된 세계다. 상상해 보시라, 그런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우리의 현실 세계는 공간과 물질성의 세계다.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실은 공간의 세계다. 몇 년 동안 내가 거주하는 빌라는 공간을 잡고 변함없이 서 있다. 시계추처럼 직장과 집, 학교와 집을 왕복하는 거리의 공간 역시 변함이 없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살며 시간에 쫓기며 살지만 공간 속에서 시간을 잊는다. 어쩌면 군대라는, 1000일이라는 무한의 시간 동안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농 치며 자위하는 그런 죽은 시간이 우리가 현실계에서 느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반대로 시간 속에서만 살고 공간을 죽여버린 그런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 연장이 제거되고 사유만 존재하는 그런 세계를 보르헤스는 창조해냈고 그것을 고작 11페이지 분량으로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풀어낸, 상상으로 건설된 그 세계는 우리의 물리적 실제 세계 이상으로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며 생생하다. 보르헤스가 설명하는, <11권>에 쓰인 관념만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은 신비에 싸인 이 행성, 틀뢴의 비밀을 미리 파헤쳐 보자.


   보르헤스가 영어로 된 <11권>을 발견한 뒤 이 의뭉스런 행성에 대한 글을 <환상문학 선집>에 투고했던 때가 1940년이다. 그리고 1947년에 그는 이 글에 대한 후기를 기고하게 된다. 그가 그렇게 후기까지 기고하게 된 이유는 7년이라는 세월이 앞선 글에서 의문으로만 남겨졌던 그 환상의 세계에 대한 비밀을 풀 단서들을 상당 부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11권>을 손에 넣게 된 계기는 자신과 친구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던 허버트 애시였다. 아버지의 친구였고 남부철도회사의 기술자였던 애시키가 컸고 말이 없으며 늘 풀 죽은 모습이었다고 보르헤스는 기억했다. 보르헤스는 수학책을 손에 들고 형용하기 어려운 하늘의 빛깔들을 하염없이 응시하며 말없이 복도에 서 있던 떠올렸다. 한 번은 그와 12진법 체계를 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는 한 노르웨이 사람이 리오 그란디 두 술에서 자신에게 그 작업을 맡겼다면서 그 자체로도 이해하기 힘든 12진법 체계를 60진법으로 변환시키고 있었다. 우리의 세계는 10진법의 세계지만 필자의 경우 직업이 프로그래머다 보니 16진법 체계에는 매우 익숙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16진법 체계는 디지털 세계의 출발이 되는 2진법의 확장이기에 그나마 형편은 나은 편이지만 12진법을 넘어 60진법이라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1937년, 애는 죽기 며칠 전 브라질로부터 봉함된 등기 소포를 하나 받았고 깜박하고 그것을 주점에 두고 갔는데, 그 등기 소포에 들어있던 것이 바로 보르헤스가 운 좋게 손에 넣게 된 <11권>이었다. 그런 애소장했던 책들 중에서 '힌톤'이 쓴 한 책에서 '군너 어프조드'가 서명한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 그 편지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틀뢴을 만들었을까?'라는 근본적인 의문부터 시작하여 틀뢴의 신비를 완전히 벗겨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17세기 초의 어느 날 밤, 루체른 또는 런던에서 틀뢴이라는 신비한 성의 역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출발은 성이 아니라 이상적 국가를 꿈꾸었고 실제로 창건을 시도했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처럼 단순히 한 나라가 목표였다. 달가르노가 회원이었고 후에 조지 버클리도 회원으로 가입하게 될 어느 비밀 자선 결사단체가 나라 하나를 창건할 목적으로 결성된다. 애매모호한 창건의 초기 계획 속에는 연금술 연구, 자선, 유태교 신비주의 철학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몇 년에 걸친 지난한 비밀회합 끝에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한 세대만으로 나라 하나를 창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과업을 이어갈 제자들을 뽑아 비밀리에 그 작업을 승계시켰다. 이러한 세습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200년을 이어왔고 운 좋게 미국에서 결실을 보게 된다. 1814년 미국의 멤피스에서 이 비밀결사의 회원 중 한 명이 금욕주의자이자 백만장자인 에즈라 버클리와 면담을 갖게 된다. 이 비밀결사의 단순하고도 순진한 계획을 들은 버클리는 실소를 금치 못했고 미국에서 한 나라를 창건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니 차라리 성을 하나 창조하라고 제안했다. 나라 하나를 창건하는 것도 황당무계하게 보이는데 성이라니... 하지만 버클리는 진지했다. 그는 이 거대한 계획을 지원할 심적, 금전적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단, 그의 니힐리즘적 산물을 첨가시켜 이 장대한 계획은 영원히 비밀 속에 묻어두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계획의 출발로써 당시 미국에서 유통되던 20권짜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처럼 그 상상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다룰 방대한 백과사전이 제작되어야 함을 암시했다. 백만장자였던 그는 그 거대한 기획을 위해 자신이 가진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두 비밀결사에 유산으로 남기기로 하는 대신 "그 작업은 사기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어떤 타협도 맺지 않아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신을 믿지 않았던 버클리는 가멸의 존재인 인간도 우주를 창조할 수 있음을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 했다.


   2세기 전에 장미 십자회와 비슷한 프리메이슨 성격의 신비주의적 비밀결사로서 단순히 하나의 국가 창건을 목표로 출범했던 이 단체는 이제 버클리라는 백만장자 몽상가를 만나 그 목표를 극단적으로 상향 조정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계에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상상계로 도약한다. 하지만 그 상상계는 또 다른 현실계 그 자체이자 하나의 우주인 성, 이 세계와 완전히 반대인, 연장과 공간이 제거되고 오로지 관념과 시간으로만 구성되는 상상의 세계 틀뢴이다. 1828년 버클리는 베이톤 루즈에서 독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틀뢴 건설을 위한 비밀결사는 버클리의 바람대로 1914년 약 300명에 달하는 공동 저자들에게 제1 백과사전의 마지막 권을 기어이 전달했다고 한다, 물론 비밀리에 말이다. 40권에 달하는 이 방대한 백과사전(현실계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0권이니 인간에 의해 수행된 작업들 중 가장 방대한 작업이라 할 만하다)은 앞으로 틀뢴에 관한 다 세부적인 항목들이 영어가 아니라 틀뢴의 언어들 하나로 기록될 또 다른 백과사전의 기본 토대가 될 것이다. 어느 상상의 세계에 대한 이 교정판은 잠정적으로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 불렸는데 이것을 물려받은 300명의 공동 저자들 중 한 명이 바로 허버트 애였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교정판은 운 좋게도 보르헤스의 손에까지 닿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44년 테네시 주 내슈빌의 어느 일간지 소속 연구자가 멤피스 도서관에서 <11권>을 실제로 발견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세계 도처에서 비밀리에 틀뢴의 백과사전 편찬 작업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고 먼 훗날 언젠가는 100권 이상으로 구성된 <틀뢴 제2 백과사전>이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다.


 

* 관념으로 건설된 상상의 세계

   모든 것을 신의 이름으로 대신했던 중세와 단절하고 근대의 문을 열어젖힌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이후의 한 세대는 그와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를 축으로 하는 대륙의 합리론과 로크(John Locke, 1632~1704),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흄(David Hume, 1711~1776)으로 대변되는 영국의 경험론이 대립하던 시대였다(물론 그 대립의 시기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 종합이란 이름으로 깔끔하게 종지부를 찍게 된다). 양 진영 모두 이전 신 중심의 세계관을 깨치고 나온 근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진리로서 정당화하고 그것의 장애물이 되는 신화나 편견, 선입견들의 제거를 목적으로 했지만 이를 위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합리론은 인간의 사고와 논리적 추론에 의존하기에 방법론은 연역적이었던 반면, 경험론은 대상에 대한 실험과 관찰을 통하여 이론을 정립하던 과학의 방식을 추종하여 귀납적 방법론을 중시했다. 당시 섬나라 영국과 유럽 대륙의 자존심 경쟁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었는데 양 진영의 이런 방법론의 차이는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적분을 동시에 발명한 라이프니츠와 뉴튼의 방식이 그러한데 대륙의 라이프니츠는 수학적인 체계와 추론에 기반하여 미적분을 발명했다면 영국의 뉴턴은 시각적인 기하학에 의존한 경험적이고 직관적 방식으로 미적분을 발명했다. 여기서는 보르헤스가 이 소설에서 건설한 틀뢴이라는 세계를 소개할 차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근대의 경험론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관념으로 구축된 상상의 이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경험론에 대한 간단한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론을 논하기 전에, 서두에서 언급했던 물질성으로 가득한 우리의 실제 세계를 바라보는 '관념론'과 '실재론(實在論)'의 대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먼저 "유명론(唯名論)"부터 언급하고자 한다. 유명론은 중세의 "보편 논쟁"에서 비롯된다.


   보편이라는 것은 결국 개개의 구체적 사물이나 사람 등을 추상화한 것이다. 강의실에는 이 책상, 저 책상 등 다양한 책상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뭉뚱그려 '책상'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개똥이, 철수, 순자 등등 각자의 개성과 차별성을 지닌 구체적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추상화시켜 '인간'이라고 한다. 이때 책상이나 인간이 보편이다. 유명론은 한자어 의미 그대로 이름만 있음을 의미한다. 즉, 각각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람들이나 책상들이 실재하는 것이지 인간, 책상이라는 보편 개념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 '실재론'인데 개개의 구체성과 차별성을 사상한 그런 보편 자체가 실재한다고 주장한다(여기서의 실재론은 앞서 언급했던 유물론이 기반을 두고 있거나 정신 바깥의 물질세계를 인정하는 실재론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유명론에 반대하는 중세의 실재론자들은 신의 존재 증명으로써 보편의 실재를 내세웠고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실재하는 것은 보편이며 보편을 가능케 하는 그런 구체적인 개별자들은 단지 신뢰할 수 없는 감각의 소여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보편만이 실재하는 것이고 그것의 구체적 개별자들은 보편의 발현이거나 양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실재하는 것은 이데아요 세상의 만물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그대로 직결되는 실재론이다. 이런 중세를 지나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사유(정신)'와 '연장(물질)'을 실재하는 두 개의 존재로, 다시 말해 보편으로서의 두 개의 실체를 증명하는 이원론을 내세워 지금까지도 논쟁이 될 두 실체 사이의 절대적 분리를 야기시켰다(브런치 글 "정보의 바다를 떠다니는 자유로운 인조영혼" 참조). 이는 근대 철학의 화두이기도 한데, 이렇게 실재하는 두 실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면 사유라는 실체가 연장이라는 실체에 대하여 얻게 되는 인식이 과연 후자와 일치하는가, 그렇다면 일치함을 누가, 어떻게 보장해 주는가라는 고전적이고 오래된 진리의 문제가 야기되었고 그것은 곧바로 인식론으로 이어진다. 데카르트의 존재론이 인식론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실 대륙의 합리론은 실체라는 보편의 실재에서 출발한다. 데카르트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보편의 실재를, 스피노자의 경우 사유와 연장을 그 양태로 갖는 범신론적 일자라는 보편의 실재를 주장한다. 반면에 영국의 경험론은 이런 보편의 실재를 부정하고 경험의 출발이 되는 감각적 소여나 개별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기에 유명론과 맞닿아 있다. 경험론의 출발은 로크로 볼 수 있는데 그는 당시 갈릴레오와 뉴턴으로 대변되는 근대 과학 혁명의 성과를 이어받아 진리의 가능성을 확실시하고자 했다. 데카르트를 위시한 합리론자들은 감각의 소여인 개별자들에 대한 인식, 즉 경험과 관찰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며 선험적으로 주어진 '본유관념'에 근거하는 이성의 힘으로 연역적 추론을 통해서 그 진리를 확보하고자 했다. 로크는 반대로 경험과 관찰에 입각하지 않은 지식이나 개념은 모두 과학적 지식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는 데카르트가 전제한 본유관념을 거부했으며 인간 지식은 모두 경험의 산물이라 확신했다. 따라서 보편이라는 개념 역시 오성이 만들어낸 결과로서 경험적인 것이라 단정한다. 그는 경험 이전의 인간은 백지상태에 있다고 보았기에 합리론자들이 주장하는 선험적 소여는 그에게는 단순한 가정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각 및 사고 작용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관념은? 로크는 관념을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자극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단순관념과 이러한 단순관념들을 오성이 결합한 결과로서의 복합관념으로 나누었다. 따라서 보편이라는 것은 복합관념인데 이는 직접적 경험으로 주어지는 단순관념들의 결합에 지나지 않기에 결국 신이니 주체니 하는 이런 보편 개념들 역시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단순관념을 가능케 하는 물질의 성질도 둘로 나누었는데 경험에 따른 대상 자체의 성질, 다시 말해 사람들이 동일하게 인지하는 객관적인 성질을 '제1 성질'이라 하고 동일한 물체임에도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경험하는 주관적인 성질을 '제2성질'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순, 복합관념이나 물질의 제1, 제2 성질을 설정하는 순간 이것들을 담지해야 할 어떤 보편을 상정해야만 했고, 결국 로크는 데카르트의 두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로크가 주장한 물질의 '제1 성질' 역시 사물의 고유한 성질로서 경험 이전에 사물이 갖고 있어야만 하는 "본유성질"이 되고 만다. 데카르트가 정신에게 선물했던 "본유관념"이라는 선험적 보편을 로크는 부정했지만 반대로 그는 "본유성질"이라는 선험적 보편을 물질에 선물하는 이율배반과 맞닥뜨리게 된다. 로크는 데카르트를 부정했지만 돌고 돌아 결국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로크의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이가 버클리다. 버클리는 이 딜레마를 넘어서기 위해 로크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던 두 보편 중 감각적인 요소, 즉 연장, 물질의 존재를 부정해 버린다. 그는 극단적으로 나아가서 이 책상, 저 책상은 내가 보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고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까지 선언했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존재 또는 실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정신이며 따라서 연장이나 물질은 자연스레 존재의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 버클리는 경험론에서 출발하지만, 그래서 그를 경험론의 계열에 포함시키지만 사실 그의 경험론은 종국에는 극단적 관념론으로 전환된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적 대상은 실재하지 않고 오로지 그것의 지각된 관념만이 정신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지각될 수 없는 정신은? 비록 지각되지 않았지만 정신은 실체로서 존재하는데 그 존재의 보증은 신이 담당한다. 이는 그가 신학자란 사실이 시사하는 바다. 버클리에 따르면 세계는 지각된 존재인 관념들로 구성된 관념의 연합이다. 보르헤스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반론(만리장성과 책들, 정경원 옮김, 열린책들)>이란 글에서 버클리를 관념론의 창시자로 규정한다. 버클리는 "정신이 관념을 상상해 낼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사물이 정신의 밖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한다"라고도 했고 "천상의 합창과 지상의 만물들 - 우주라는 놀라운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개체들 - 은 정신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각된 것 외에 또 다른 존재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존재한다면 <무한 영혼>의 정신 안에 존재한다."라고도 했다. 이렇게 버클리는 데카르트의 '연장'도 부정하고 로크의 '제1 성질'도, 절대 공간도 부정한다. 다시 말해, 물질성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는 경험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경험된 것의 실체를 실체 그 자체가 아니라 정신 안에 위치시켰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하는 경험된 것은 정신 활동의 결과물인 관념들이며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경험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인식된 관념들인 것이다. 이제 유명론은 버클리를 거치면서 철저한 관념론으로 바뀌게 된다. 버클리의 이런 귀결은 자연스레 공간의 부정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시간은? 버클리는 시간은 인정한다. 왜냐면 관념적 행위, 정신의 사고 행위는 열련의 연속된 시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클리에게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가며 모든 존재들이 참여하고 있는 관념들의 연속"이다. 이러한 버클리의 사상이 바로 틀뢴의 기본 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판이하게 성격이 달라진다.


   로크와 버클리를 거친 경험론은 이제 경험주의의 극단인 흄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버클리가 물질의 존재를 지워버렸다면 흄은 한발 더 나아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코기토, 즉 나, 주체, 정신의 존재마저 부정한다. 어찌 보면 버클리가 절대적 관념론자였다면 흄은 철저한 반-형이상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흄은 여타 근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확실성의 추구라는 이상을 지향하면서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경험론의 특징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관념'으로 뭉뚱그린 로크와는 다르게 흄은 인간의 정신활동, 즉 경험의 내용을 '지각'이라 불렀고 이 지각을 '인상'과 '관념'으로 나누었다. '인상'은 대상으로부터 느끼거나 상상하는 직접적인 지각으로서 흄은 그 특징을 "생생하다"라고 표현한다. 반면에 '관념'은 그러한 인상들에 대한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간접적이며 한번 에둘러 온 지각이다. 흄은 인상은 직접적인 것이요 관념은 인상의 연합이지만 결국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인간의 정신이란 것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념과 인상의 다발로써만 존재할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흄은 나, 정신, 자아와 같은 것들은 결국 인상과 관념의 연합 또는 집합으로 격하시킴으로써 데카르트의 주체마저 없애버렸다. 흄은 유사성, 근접성, 인과성이라는 세 가지 유형에 따른 관념의 연합을 통해 인간의 사고가 작동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히 인과성인데 흄은 인과관계를 시간적이나 공간적으로 연접한 두 인상의 관계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으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그는 과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법칙의 근거가 되는 인과성을 반복되는 습관에 따르는 강한 믿음, 신념의 차원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즉 인과관계는 독립된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믿음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과학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꼴이 되었다. 결국 흄에 이르러 데카르트의 사유와 연장, 정신과 물질이라는 양 쪽의 실체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물론 그의 저서 <인간 오성론>에는 이런 결과 앞에서 스스로도 난처해하는 자신의 모습 역시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흄을 근대의 탈근대주의자라고 하기도 하고 해체주의자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흄의 해체, 즉 보편의 제거는 반대로 보자면 개별자들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흄을 반-형이상학자라고도 하는데 틀뢴은 비록 그 틀은 버클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온전히 흄의 정신으로 채워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유명론과 접점을 두고 시작한 영국의 경험론이 어떻게 극단적 관념론(버클리)으로, 더 나아가서는 근대 철학의 지평 자체를 해체(흄)하는 데까지 나아갔는지 살펴보았다. 이렇게 영국의 경험론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한 이유는 바로 버클리와 흄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버클리의 이러한 사상이 보르헤스가 이 소설을 쓴 모티프가 되었지만 실제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순수 관념의 세계는 버클리의 절대 관념론이나 대륙의 합리론 또는 독일의 고전 관념론과는 다르게 흄의 철학을 배경에 깔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확신했던 11권의 완벽하게 분명하고 조화로운 질서를 갖춘 '틀뢴의 우주관'에 대한 설명을 버클리에 대한 흄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흄은 언제나 버클리의 논지가 아주 사소한 논박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고 주장했다.(p21)" 버클리에 대한 이런 평가는 역시 그의 극단적인 관념론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염두에 두고 이제부터 연장이나 공간 또는 감각적 소여 등의 어떠한 물질성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 관념의 세계를 상상해 보자. 이런 세계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그런 세계를 11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걸쳐 만들어 냈다. 틀뢴의 세계는 태생적으로부터 관념적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당연히 물체들과 그것들이 위치해야 하는 공간, 데카르트적으로 말하자면 '연장'은 부정된다. 따라서 틀뢴에서의 세상은 독립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연속물이며 연속적이고 시간적이지만 공간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이런 세계를 보르헤스는 어떻게 설명할까?



- 언어

   우선 보르헤스는 틀뢴의 언어를 고찰한다. 틀뢴의 남반구 언어는 명사가 없고 부사적 기능을 가진 단음절의 접미사(혹은 접두사)에 의해 수식된 비인칭 동사들만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 현실 세계의 언어는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있으며 문장의 구성과 의미 전달에 있어서 명사는 핵심 역할을 한다. 하지만 틀뢴의 경우 대상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명사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어나 목적어의 자리를 차지할 그 무엇이 없음을 의미하기에 비인칭 동사가 자연스레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 것이다(라틴 계열이나 게르만 계열의 서구권 언어에 존재하며 우리말의 구조에는 존재하지 않는 비인칭 동사 덕분에 보르헤스의 이런 상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예를 들자면, '달(月)'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는 대신에 '달뜨다' 혹은 '달비추다'라는 동사가 있다. "강 위로 달이 떠올랐다"라는 의미에 해당하는 남반구의 표현을 우리 세계의 어순 그대로 직역하면 "위쪽으로 뒤로 계속 흐르는 달떴다"라는 표현이 된다. 하지만 북반구의 언어는 또 다르다. 문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위는 동사가 아니라 단음절 형용사이며 남반구와는 다르게 우리 세계에서 지칭하는 명사 비슷한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형용사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앞서 예를 든 '달'의 경우, '어두운 - 둥그런 위의 대기의 - 밝은' 혹은 '주황빛의 - 부드러운 하늘의' 이런 식으로 달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런 형용사들의 조합은 기정의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완전한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대상을 지칭하는 고정된 명사가 없기 때문에 하나의 특정 대상은 수식 가능한 형용사들의 수많은 조합으로 존재 가능할 것이다. 이미 느낌이 오지 않는가? 바로 문학의 세계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북반구의 문학은 시적 필요성에 따라 어느 순간 모였다가 흩어지는 관념적 대상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또한 가끔은 순전히 동시성에 의해 결정되곤 하며 시각적, 청각적 성격을 지닌 두 개의 말로 이루어진 단어도 있다고 한다. 어떤 대상들은 아주 많은 말로 구성되기도 하는데, 부차적인 대상들은 다른 대상들과 결합될 수도 있으며 이 결합 과정은 특정한 생략 부호들을 통해 실질적으로 무한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 하나의 거대한 단어로 구성된 시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틀뢴의 사람들이 명사들이 표현하는 현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반대로 명사들의 숫자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철학

   틀뢴의 고전 문화는 심리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의 학문은 모두 심리학의 하위에 위치한다. 그도 그럴 것이 틀뢴 사람들은 우주를 공간으로 보지 않고 시간 속에서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정신적 과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코스모스란 바로 '사유'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그들에겐 당연히 어불성설이 될 것이며 '연장'과 '사유'를 그 양태로 지닌 범신론적 실체를 내세운 스피노자의 일원론 역시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연장'이란 단지 어떤 상태에서만 특별히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그들은 결코 공간이 시간 속에서라도 지속될 거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들은 '사유'를 일자로 간주하는 일원론자들이기에 철저하게 관념론자들이지만 '사유'를 절대적인 실체로 간주하는 우리 세계의 관념론과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지평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어 들판에 불이 번진다. 그리고 화재를 불러일으킨 반쯤 끄다만 담배꽁초를 발견했다고 치자. 연기와 들판의 불, 그리고 담배꽁초 이 세 가지에 대한 지각은 우리 세계라면 인과관계에 따라 담배꽁초가 야기한 연기와 화재를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틀뢴에서는 이것은 인과관계를 부정했던 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관념들의 연합에 대한 하나의 예시에 그칠 뿐이다. 틀뢴의 문화가 이러하다면, 흄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세계의 모든 과학을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틀뢴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실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사실과 단순히 결합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연계는 주체의 후 상태로서, 하나의 사실로서의 전 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모든 정신적 상태는 축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그 정신적 상태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하나의 왜곡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틀뢴에서는 과학, 심지어 유추의 행위까지도 존재할 수가 없는데 이는 명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설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학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반구의 명사가 그러하듯, 과학이 그러하듯, 틀뢴의 철학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어떤 현상을 규정할 수 없다면 철학이 가능할까? 규정성을 거부하는 틀뢴에서의 모든 철학은 하나의 변증법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틀뢴의 철학은 '마치 ~처럼(Als Ob)'의 철학, 즉 의제(擬制) 철학이 주를 이룬다. 규정성을 거부하는 세계라면 개념의 정의나 명제가 있을 수 없고 그렇기에 우리 세계 철학의 제일 과제인 진리의 추구도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다. 틀뢴의 형이상학자들은 진실, 심지어 그럴듯한 진실조차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철학을 통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그저 '놀라움'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철학 역시 이 세계에서는 문학처럼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렇다, 이들은 형이상학을 환상 문학에서 파생된 하나의 가지로 생각한다. 이런 의제 철학이라면 명사나 과학이 그러하듯, 철학의 무한 자기 증식이 가능할 것이며 실제로 틀뢴에서는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어떻게 무한 증식이 되는가 살펴보자.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체계란 어떤 한 관점에 온 우주의 "모든 관점들"을 종속시키는 오류와 같다. 심지어 이 말도 모순인데 여기서 사용된 "모든 관점들"이라는 말은 규정 불가능한 현재의 순간과 모든 "과거의 순간들"의 통합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 말 자체가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방금 사용된 "과거의 순간들"이라는 복수형조차도, 또 다른 불가능한 사유 양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적확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전개에 따라 틀뢴의 한 학파는 심지어 시간마저 부정하기에까지 이른다. 즉, 현재란 규정될 수가 없는데, 미래는 현실적 실체가 없는 현재적 기다림과 같고, 과거란 마찬가지로 현실적 실체가 없는 현재적 기억과 같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다른 학파는 이미 모든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우리의 삶은 단지 이미 지나가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과정에 대한 어슴푸레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조작되고 훼손된 기억, 또는 반영이라고 선언했다. 또 다른 학파는 우주의 역사란 악마와 타협한 하급 신이 만들어낸 하나의 문서에 불과하다고 했고, 또 다른 학파는 우주란 마치 암호 표기법과 비교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 했다. 어떤 학파는 우리가 여기서 자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어떤 곳에서 우리는 깨어 있는, 그래서 모든 사람은 두 사람이라는 우리 세계의 평행 우주의 논리를 펼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수많은 학설들 중 <유물론>만큼 스캔들을 일으킨 학파는 없었다고 한다. 오직 관념론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유물론이라니... 유물론을 신봉하는 어떤 이교도의 교주가 난해한 유물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안해낸 '아홉 개의 구리 동전' 궤변은 우리 세계에서 운동을 부정하기 위해 고안된 제논의 역설만큼이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궤변은 다음과 같다.


화요일에 X가 텅 빈 거리를 지나다 아홉 개의 동전을 잃어버린다. 목요일에 Y가 그 거리에서 수요일에 내린 비로 약간 녹슨 네 개의 동전을 발견한다. 금요일에 Z가 길에서 세 개의 동전을 발견한다. 금요일 아침, X가 자신의 집 복도에서 두 개의 동전을 발견한다.


   이 이야기로부터 교주는 되찾은 아홉 개의 동전이 시간 속에서 지속되었음을 유추하여 물체 또는 연장의 시간 속에서의 지속 불가능이라는 틀뢴의 제1 원칙을 부정한다. 화요일과 목요일 사이에 네 개의 동전이 존재하지 않았고,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사이에 세 개의 동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화요일과 금요일 새벽 사이에 두 개의 동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것들은 그 세 기간의 매 순간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은밀한 방식으로 존재했다고 보는 게 보다 논리적이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현실계에 사는 우리가 볼 때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시간 속에서의 연장의 지속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틀뢴에서라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이는 우리 세계에서의 제논의 역설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제논은 사고를 유일한 일자로 보는 일레아 학파의 거두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틀뢴의 유물론자가 그랬던 것처럼 네 개의 역설을 고안해냈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하나이며 부동의 완전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운동이란 개념을 지워야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사실은 공간 상의 사물은 움직이고 이동한다. 따라서 이 운동이란 것은 모두 환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제논은 네 개의 역설을 내세웠고 이 역설은 논리적으로 따지게 되면 말이 되기에 결국 궤변으로 불린다. 아무리 이 역설을 반박한다고 하더라도 논리 자체에서는 반박이 쉽지 않으며 그렇기에 제논의 역설은 오랫동안 철학사를 괴롭혀 온 것도 사실이기에 틀뢴에서 유물론의 궤변이 미친 파급력 역시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사실 제논의 이 궤변을 제대로 반박하기 위해서는 수학의 미분 개념까지 동원되어야 한다.


    제논의 역설 중 확실하게 알려진 두 가지는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그리고 <나는 화살의 역설>이다. 이 중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잘 알려져 있기에 여기서는 나는 화살의 역설을 살펴보자. 화살이 날아가고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살은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할 것이지만 그 순간 화살은 바로 그 지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음 지점을 화살이 통과하는 순간 역시 화살은 그 지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에 화살은 사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지해 있다는 것이며 이로써 움직임이라는 운동은 부정되어야 한다. 제논의 역설을 궤변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당시의 논증에는 역설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 논리는 부정되어야 하는 귀류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제논은 화살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음을 증명코자 하는데 이를 위하여 화살이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이러이러한 역설에 직면한다, 고로 화살은 정지해 있다는 식의 증명을 이어간다. 제논의 시대에 존재는 A or ~A여야 한다. 즉, A and ~A이면 이것은 역설이 된다. 이는 모순율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다. 하지만 틀뢴이라면 그 반대가 될 것이다. 규정성을 거부하는 틀뢴이라면 A or ~A라는 논리는 거부될 것이며 차라리 A and ~A라는 사고가 더 부합될 것이다. 다시 말해 틀뢴에서는 A or ~A가 상식이 아니라 역설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뢴의 상식의 대변인들은 즉각 반박했고 이 역설이 설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우선, 엄밀한 사고와는 거리가 먼 두 개의 신조어를 무분별하게 적용한 데서 온 언어적 오류라고 반박했다. 다시 말해 먼저의 아홉 개의 동전과 나중의 아홉 개의 동전이 같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발견하다'와 '잃다'라는 두 동사는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즉 논증의 대상이 되는 명제 자체를 논증의 전제로 삼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 동전, 목요일, 수요일, 비와 같은 명사들은 틀뢴의 언어에서는 은유적 가치밖에 지니고 있지 않음을 주지시켰다. "수요일 비에 약간 녹이 슨"이라는 표현은, 화요일과 목요일 사이에 네 개의 동전이 계속 존재했음을 증명해야 하는 이 궤변이 이미 존재했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설정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동등한 것"과 "동일한 것"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며 귀류법의 예를 들었다. 아흐레 동안 계속해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 아홉 사람의 가설을 들어 아홉 사람들이 모두 동등한 고통이 아니라 동일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정말 어리섞은 생각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그 교주가 "존재"라는 신성한 범주를 몇 개의 하찮은 동전에 환치시키려는 신성 모독적 의도로 그런 궤변을 만들어 냈고 어떤 때는 복수성을 인정하면서 다른 때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동등성"이 "동일성"을 의미한다면 이는 아홉 개의 동전이 단 하나의 동전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논박했다.


   하지만 이런 논박은 우리 세계에서의 제논의 역설에 대한 논박이 그러하듯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했다. 우리 세계에서는 제논의 이 궤변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써 수학에서의 미분소의 개념이 나오기까지 2천 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다행히도 틀뢴에서는 1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유물론의 궤변이 나온 후 한 세기가 흐른 뒤 정통 교파 소속의 명석한 한 사상가가 이 궤변을 반박하기 위해 아주 대담한 가설을 하나 내세웠다. 그 가설은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주체가 있을 뿐이며 분리될 수 없는 이 주체는 우주의 각 개별적인 존재들이며 이 개별적 존재들이 바로 신성의 기관들이자 가면들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모든 주체가 단 하나의 주체이기 때문에 X는 Y이고, Y는 Z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Z는 X가 동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에 세 개의 동전을 발견했으며 X 역시 다른 동전들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금요일 복도에서 두 개의 동전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 궤변은 극복되었고 동전의 지속성은 폐기될 수 있었으며 결국 사유라는 일자의 연속성이 승리하게 된다. <11권>에서는 이 이상주의적 범신론이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으로 그 안에 내포된 세 개의 중심적 논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유아론(唯我論)에 대한 거부다. 유아론은 주관적 관념론의 일종으로 주체를 자기 자신 내로만 가두는 에고이즘적인 경향이 강하다. 틀뢴에서의 '하나의 주체'라는 주장은 '자기'라는 틀을 벗어나야만 가능하기에 유아론은 당연히 거부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과학의 심리학적 근본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틀뢴의 학문은 심리학이 주가 되며 철학이든 과학이든 나머지 학문은 모두 이 심리학의 하위 학문이라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틀뢴이 기본적으로 관념으로만 구성된 세계이고 따라서 이곳에서의 운동은 오로지 시간에 따라 전개되는 사유 행위밖에 없다. 이는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이런 틀뢴의 과학을 우리 세계에서의 현대 수학이나 과학의 예에 견주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까지의 과학은 철저하게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며 이것은 결국 물리적 대상을 항상 전제한다. 하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나 상대성 이론 또는 양자역학과 같은 현대 수학이나 물리학은 이런 관찰과 실험의 영역을 벗어나야 가능했다. 이러한 현대 수학이나 과학은 관찰과 실험 자체에 의문을 가했으며 그런 직접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고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이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는 바로 틀뢴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의 심리학적 측면과 비견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의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한다. 하나의 주체라는 생각은 결코 기독교의 유일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라리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세계관에 해당한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모든 만물에 내재된 신의 개념은 무신론도 아니며 초월적 원인으로서의 신도 아니라 내재적 원인으로서의 신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런 개념의 신이 아니라면 틀뢴에서의 하나의 주체는 불가능할 것이다.


- 기하학

   틀뢴의 기하학은 시각적 기하학과 촉각적 기하학으로 구성된다. 촉각적 기하학이 우리 세계의 기하학과 일치하지만 그것은 시각적 기하학의 하위 수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시각적 기하학의 근간은 점이 아니라 면이며 특히 평행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세계의 대표적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이 기하학은 점을 기본단위로 하여 구성된다.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는 도형으로 정의되는 점이 움직일 때의 궤적이 선이고 이 선이 움직일 때의 잔상이 면이 된다. 다시 말해 선은 기본 단위인 점들의 집합이고 면은 선들의 집합이다. 이렇게 이 기하학은 점으로 출발점으로 해서 직선, 원, 삼각형 등에 대한 철두철미하며 무미건조한 23개의 정의들로 이데아를 구축하고 있다. 유클리드가 쓴 <원론>에는 이 23개의 정의와 다섯 개의 공준과 공리가 바로 서두부터 이어지고 이 정의와 공준, 공리를 출발점으로 하여 명제와 증명, 그리고 증명된 명제를 이용하여 다른 명제들이 구축되는 촘촘하고 숨 막히는 거대한 건축물이 완성된다. 우리 세계에서는 이러한 유클리드 기하학이 2천 년 동안 명백한 진리로 간주되었고 현대 세계에서 우리가 배웠고 아는 기하학 역시 유클리드 기하학이 태반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준 중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공준인 평행선 공준이 가장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 공준을 부정하게 되면 전혀 다른 기하학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세기 초에 이태리의 수학자 벨트라미(Eugenio Beltrami, 1835~1899)는 평행선 공준이 증명 불가능하다는 것을, 더 나아가서는 이 공준을 부정하더라도 모순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모순이 없다는 말은 해당 공준을 부정하더라도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른 요소들을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어 러시아의 로바체프스키(Nikolai Ivanovich Lobachevskii, 1792~1856), 독일의 가우스(1777~1855) 등에 의하여 실제로 이 공준을 부정했음에도 아무런 모순이 없는 새로운 기하학이 제시되었고 이것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핵심은 틀뢴의 그것처럼 '면'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을 전제로 했지만 후자는 휘어진 평면, 즉 곡면을 평면으로 봤을 때의 기하학을 새롭게 구성했다. 로바체프스키나 가우스, 볼리아이가 제시한 이 기하학은 면이 오목한 쌍곡선 기하학으로서 유클리드 기하학에서의 평행선은 단 하나만 존재하지만 이 기하학에서 평행선은 무한대로 존재한다. 반면에 리만은 볼록한 타원면에서의 기하학을 제시했고 이런 구면 기하학의 경우 평행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평행선 공준을 부정하게 되면 수많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가능하게 되며 현재까지 13개의 기하학이 체계화되어 존재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결국 점이 아니라 해당 기하학이 토대를 두는 면이 중심이 된다. 리만은 곡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곡률이 0인 경우 휘어짐이 없는 평면이 되어 유클리드 기하학을 만족하고 1인 경우는 구면 기하학이, -1인 경우는 쌍곡선 기하학이 된다. 그는 더 나아가서 곡률을 변수로 하는 이론을 정립하여 곡면 기하학으로 일반화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유클리드 기하학은 일반화된 곡면 기하학의 하위 기하학으로 위치하게 되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틀뢴의 시각적 기하학과 맥이 닿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계는 여전히 유클리드 기하학이 대세지만 틀뢴의 경우라면 수학으로 보는 세계관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당장 예를 들더라도 틀뢴의 시각적 기하학에서는 사람이 자리를 이동하면 자신을 둘러싼 모습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절대적 진리로 여겨졌던 뉴턴의 고전 물리학에서는 물질과 시간, 공간은 서로 독립적인 물리적 실체로 간주되었다. 그렇기에 물체의 이동은 시, 공간에 어떤 변화를 야기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 이 세 가지 물리적 실체가 결코 서로 독립적이지 않음을 밝혀냈다. 시간과 공간은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이 특수 상대성 이론이며 가속 좌표계에서의 중력과 관성력은 본질적으로 같으나 강한 중력은 시공간을 휘게 만들어 정지한 쪽의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 이 말은 곧 운동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시공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선험적 형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간주했던 칸트의 아 프리오리를 부정하는 동시에 시간과 공간은 독립적인 요소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또한 이런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아인슈타인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했다. 그는 우주가 평평하지 않고 중력에 의해서 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공간에 대한 기초 이론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찾았다. "나는 기하학의 이러한 해석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그(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몰랐다면 결코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아인슈타인은 이야기한 바 있다.


   언어에서 고정된 명사가 없는 것처럼, 철학에서 규정성을 거부하는 것처럼 시각적 기하학의 경우 역시 결정된 단위의 수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세계의 수학에서 부등호로 표기되는 '더 큼(>)', '더 적음(<)'의 개념이 중요시된다. 이 의미는 수학 역시 무규정을 그 자체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 물리학을 떠받치는 수학의 경우 등호(=)의 관계가 중요하고 이를 통해서 정확히 딱 떨어지는 어떤 정답을 언제나 도출해왔다. 그리하여 뉴턴의 고전 역학은 몇 가지의 공식을 통해서 영원한 진리를 구가해왔지만 틀뢴에서는 이런 공식들의 존재는 불가능할 것이다. 마치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처럼 말이다. 뉴턴의 고전 역학은 양자들의 세계인 미시 세계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 이는 관찰이라는 과학의 고전적 정의를 뒤흔든 개념이다. 고전 역학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은 공식에 따라서 정확히 측정 가능하기에, 한 지점에서 발사한 폭탄이 어느 위치에 떨어질 것이란  예측 가능한 결정론적 세계관이 구축된다. 하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고자 하면 운동량의 측정의 불확정도가 커지고 운동량이 정확하게 측정될수록 위치의 불확정도는 증가한다. 따라서 미시 세계에서 발사된 포탄이라면 이것이 떨어질 위치는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그저 구름과 같은 확률적 분포로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마치 틀뢴의 시각적 기하학처럼 이는 결정된 단위의 값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 보다 크거나 보다 작은 부정수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틀뢴에서는 수를 세는 행위는 양을 변화시키고, 하나의 수를 무규정적인 것(부정수)으로부터 규정적인 것(정수)으로 전환시킨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양을 세어 똑같은 결과를 도출해 낸다는 사실을 틀뢴의 심리학자들은 관념들의 연합이나 훌륭한 기억력을 발휘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는 앞서 유물론의 궤변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틀뢴에서의 지식의 주체는 하나이며 영원하기 때문이다.


- 문학

   철학이나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일 주체 사상은 문학에서도 예외 없이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우리 세계에서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쏟아지는 것처럼 틀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유일한 주체라면 이 모든 문학 작품의 저자 역시 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렇다, 유일 주체 사상은 모든 작품은 단 한 작가의 작품이며 무시간적이고 익명이라는 생각을 확립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틀뢴의 저서에는 저자의 이름이 명기된 책은 거의 없으며 표절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문학 작품이 한 사람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비평 역시 우리 세계와는 다를 것이다. 틀뢴에서의 문학 비평은 우선 두 개의 서로 이질적인 작품, 예를 들어 <도덕경>과 <천일야화>를 선정하여 그 둘을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전제하는데 이 전제는 늘 또 다른 작가들을 고안(Invent)해내는 결과가 된다. 그런 후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고안해낸 이 흥미로운 작가의 심리를 철저하게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줄거리와 다른 형식을 갖는 수많은 소설들을 이런 방식으로 비평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


   틀뢴의 저자는 단 한 명임을 상기한다면 이렇게 다양한 내용이나 형식들은 가능한 모든 변주에 지나지 않고 결국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동일한 플롯을 상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양한 내용이나 형식들은 결국 이 동일한 플롯의 모방과 반복에 의한 변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안된 작가의 심리 분석이란 측면에서 볼 때,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은 그러한 비평의 결과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하늘 아래 새로운 문학이란 없으며 모든 책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호 텍스트"라는 문학관을 가진 보르헤스가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을 썼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동일한 플롯'이란 관점은 가정이 아니라 틀뢴에서는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틀뢴의 책들 역시 우리의 것들과 매우 다른데, 그곳의 소설들은 상상 가능한 모든 변형들을 동원하지만 모두 단 하나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문학에서의 전형적인 플롯이 대립 구도라고 한다면 이런 구도는 틀뢴의 철학 또한 예외가 아니다. 틀뢴에서는 철학을 다루는 책들은 반드시 명제와 반명제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논지에 대하여 엄밀한 찬성과 그것의 반론을 동시에 가져야만 한다. 만약 어떤 책이든 그 안에 그것에 대한 반대의 책을 갖지 않으면 그 책은 미완성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틀뢴에서의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그저 놀라움을 추구하는, 그래서 환상 문학의 한 지류라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 복제와 생산

   수세기에 걸친 관념론은 틀뢴의 현실 세계에 끊임없는 영향을 미쳐왔다고 한다. 여기서의 현실 세계라 함은 바로 틀뢴에서의 물질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물질성은 우리 세계에서처럼 연장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관념으로 존재하는 그것이다. 그렇기에 틀뢴에서의 물건의 분실과 되찾음의 의미는 앞서 동전의 궤변에서처럼 동일한 물건에 대한 분실과 회복이 아니다. 반복되는 이야기겠지만 시간 속에서 연장이 지속한다는 생각은 틀뢴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다는 것은 결코 동일한 물건에 대한 회복이 아니라 그것의 복제를 의미한다. 또한 복제이기 때문에 산술적 양의 증가를 의미하며 따라서 복제는 곧 생산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분실 역시 실재의 사라짐이 아니라 기억의 사라짐, 즉 망각이 된다. 틀뢴에서는 생각되고 지각된 것의 관념 자체만이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의 가장 오래된 지역의 경우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발견, 즉 복제는 아주 흔한 일에 속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잃어버린 연필 하나를 찾는다고 하자. 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도 입을 다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사람은 그 사람이 발견한 것 못지않게 더 사실적이고 더 기대치에 부응하는 두 번째 연필을 발견한다. 우리의 세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사물이 연장이 아니라 관념으로 존재하는 틀뢴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더군다나 이 복제는 동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본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차이를 동반하는 복제가 된다.


   틀뢴에서는 복제의 원본에 해당하는 일차적 물체를 <흐뢴>, 그리고 복제물인 이차적 물체들을 <흐뢰니르>라고 부르는데 그것들은 볼품없지만 실제의 것보다 약간 길다고 한다. 이 <흐뢰니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심과 망각이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었지만 이제는 조직적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고작 100년 전에 최초의 조직적인 생산이 시도되었는데, 그것은 예전 강바닥이었던 곳에 위치한 무덤에서 유물을 찾는 것이었다. 죄수들에게 유물을 찾았을 경우 석방을 약속하고 유물들의 사진을 보여 주었고 일주일 동안의 작업 결과 그들이 찾은 것은 <흐뢴>인 녹슨 수레바퀴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발굴 개시 이후의 것으로 판명이 났고 결국 이 시도는 실패로 규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업 방식에는 나름 기억해 둘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곧 그 <흐뢴> 역시 복제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로 똑같은 시도가 네 곳의 고등학교에서 재개되었다. 대부분 별 기대를 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세 곳은 실패했지만 마지막 학교에서는 황금 가면 하나, 오래된 칼 한 자루, 두세 점의 토기, 그리고 왕의 흉상을 발굴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학교는 탐사 지휘자가 발굴 초기 단계에 사망하는 바람에 더욱더 기대를 하지 않았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것들이 <발굴>이라기보다는 <생산>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발굴자들이 그 탐사의 실험적 성격을 알고 있었다면 발굴이라는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틀뢴은 원본의 회복(발굴)이 아니라 복제인 것을, 그렇기에 생산 그 자체가 그대로 인정되었으며 점차 그것이 더욱 활성화되어 지금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전의 그런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은 상호 모순적인 대상들을 생산해내기 때문에 요즘은 개별적이고 즉흥적인 생산 방식이 선호된다고 한다. <11권>에 따르면 <흐뢰니르>의 조직적인 생산은 고고학자들에게 커다란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것은 이제 미래 못지않게 굳어있지 않은 유연한 과거를 캐묻고 그것을 변형시킬 수 있도록까지 허용했다. 이는 자신만의 고고학과 계보학적 방식으로 감옥이나 정신병원, 성(), 권력 그리고 담론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과거가 현재의 기억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준 푸코를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틀뢴에서의 이러한 복제는 주기성을 띤다는 사실이다. 제2차 <흐뢰니르>, 즉 다른 <흐뢴>에서 나온 <흐뢰니르들>과 제3차 <흐뢰니르들>, 즉 어떤 <흐뢴>의 <흐뢴>에서 나온 <흐뢰니르들>은 첫 번째 것으로부터의 이탈을 지나치게 과장한다. 제5차 <흐뢰니르>는 거의 형태가 동일하고, 제9차 <흐뢰니르>는 제2차 <흐뢰니르>와 혼동된다고 한다. 이러한 <흐뢴>과 <흐뢰니르>의 자리바꿈은 제11차 <흐뇌니르>에 이르게 되면 원래의 것에 부재했었던 선들의 순수성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리고 제12차 <흐뇌니르>부터는 다시 질적인 퇴락이 시작되어 앞선 주기의 차이를 반복한다. 이러한 차이와 반복의 영원한 놀이는 차이를 변수나 예외가 아닌 상수로 규정하여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을 주장한 들뢰즈를 당장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끊임없는 차이의 반복 과정에서 어쩌다 나타나는, <흐뢴>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우르>는 이제는 그 어떤 <흐뢴>보다 낯설고 생경하며 보다 순수하다고 하는데, 사실 그 <우르>는 상상에 의해 만들어지고 희망에 의해 추출되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틀뢴에서는 진정한 원본으로서의 <우르> 역시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진정하고도 유일한 존재로서의 이데아를 단순히 플라톤의 희망과 상상의 결과물로 위치시켜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원본 없는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되어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르크 이론을 주창한 장 보드리야드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차연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원본의 자리인 기원 찾기의 부질없음을 보여줌으로써 기원 자체를 없애버린 데리다에게까지 다다른다. 구조주의나 포스트 모던, 해체 철학의 주장들을 보르헤스는 앞질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틀뢴에서는 사물들이 끊임없이 복제된다. 사람들이 그것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스스로 지워져 버리거나 세부 항목들을 상실해 버리곤 한다. 거지가 찾아오는 동안 존재했었던 문지방은 그가 죽자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는 이 사실의 고전적인 한 예가 된다. 때로는 새 몇 마리, 말 한 마리가 원형 극장의 잔해들을 재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상이 보르헤스가 설명한 틀뢴의 세계다. 이 세계는 공간과 물질성을 의미하는 연장이란 어떠한 요소도 모두 거세된 세계로서 순수하게 관념들만이 시간 속에서 존속하는 세계다. 보르헤스는 관념들로 구성된 이 세계의 단초를 버클리로부터 취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틀뢴이란 세계에서의 관념론은 버클리의 절대적 관념론과도, 데카르트의 관념으로서의 실체와도 거리가 멀다. 보르헤스는 이런 틀뢴의 세계를 구성함에 있어서 차라리 흄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흄은 데카르트가 존재로 정의했던 연장과 사유 모두를 지워버렸으며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주체마저 그저 기억과 인상의 다발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그의 극단적 해체는 결코 모든 것의 존재 부정이 아니다. 그가 부정한 것은 바로 보편에 대한 부정이며 형이상학이라는 이름 하에 걸러지고 연역되고 종합되어 추상화된, 그래서 존재자들 사이의 모든 구별과 차이를 없애버리는 철학적 보편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흄은 니체가 수행했던 반-철학을 근대라는 계몽의 시대에 미리 수행했던 것이다. 그런 보편을 부정한 결과의 효과는 인식의 대상들을 그 자체로서, 서로의 차이를 사상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시키는 것이다. 틀뢴의 세계는 바로 이런 생생하고 구체적인 인상들이 공평무사하게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세계일 것이다. 무엇이라고 결코 규정되지 않은 세계, 명사가 없고 정수가 없고 동일성이 없는 세계, 그 세계는 바로 무규정의 세계이며 혼돈 그 자체인 세계일 것이다. 그 세계는 완벽한 코스모스, 바로 보르헤스가 그린 완전한 혼돈으로서의 코스모스일 것이다. 보르헤스는 법칙과 규범, 논리로 구성되는, 그래서 이성의 절대성이 지배하는 우리 세계와는 다르게 예외가 법칙이 되고 우연이 필연이 되는, 그래서 감성이 그 자체로 발현되는 문학의 세계, 예술의 세계를 틀뢴에 구축한 것이 아닐까? 혼돈 자체가 거대한 질료의 보고가 되는, 그래서 규정할 수 없는 세계이고 이는 곧 생성의 세계이자 창조의 세계가 될 것이다. 이러한 틀뢴의 세계라면 절대적 혼돈을 그린 보르헤스의 <바빌로니아의 복권>이 가능할 것이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차이와 반복의 영원한 놀이는 그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를 가능케 할 것이다. 역시 그 세계는 부분과 넘치도록 동등해지는 전체로서의 <알렙(브런치글: 전체를 집어삼킨 부분 참조)>이 가능하며, 혼돈의 도서관인 <바벨의 도서관>에서 모든 책들을 담은 단 한 권의 책인 <모래의 책>을 찾아 헤매야만 하는 세계일 것이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틀뢴은 미로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해독되어야 할 미로다. 그리고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는 이 소설 자체가 바로 그 미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창조한 밀한 장기 고수는 바로 보르헤스 자신이다.



* 상상계의 현실계로의 침투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이 보르헤스가 간략하게 정리한 틀뢴의 체계에 대한 개괄이다. 하지만 이러한 틀뢴의 체계 전체를, 개괄이 아니라 상세하게 담은 방대한 저서 <틀뢴 제1 백과사전> 40권이 비밀리에 전승되었다고 했다. 또한 드러나지 않은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소속의 수 백의 저자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틀뢴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서술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이런 비밀 작업은 지구 곳곳에서 은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오게 될, 틀뢴의 언어로 쓰일 <틀뢴 제2 백과사전>의 양도 첫 번째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앞으로도 틀뢴과 우리 세계의 공존은 마치 평행우주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세계는 완전히 단절된 세계일까? 틀뢴을 창조한 이 비밀결사들의 숨은 의도는 알 수는 없지만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두 세계의 경계에 미세한 틈이라도 하나 생겨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틈은 둑에 난 조그마한 구멍이 점차 커져 둑을 무너뜨리듯 그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리지 않을까? 그 완벽하고 신비한 세계는 그렇게 우리 세계를 조금씩 침식해서 언젠가는 우리의 현실 세계 전체를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카사레스가 경매에서 우연히 얻은, 네 페이지의 추가분을 담고 있는 <영미 백과사전> 역시 그 비밀결사가 의도적으로 흘린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소설은 어느 신비주의 비밀집단이 창조한 이 상상의 산물이 우리의 현실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그 영향의 결과는 다소 비극적이지만 예술가인 보르헤스의 입장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을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1942년부터 침투에 대한 여러 전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포니시 뤼생주 왕자비는 프랑스 쁘롸띠에르로부터 은으로 만든 그릇을 선물 받았는데 아름다운 고급 그릇과 사모바르 사이에서 신비스럽고도 미세하게 진동하는 나침반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나침반의 테두리에 새겨진 글자들은 틀뢴의 알파벳들 중 하나와 일치했으며 그것이 바로 그 환상적인 세계가 실제 이 세계 속에 처음으로 침투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우연은 보르헤스로 하여금 두 번째 침투의 목격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보르헤스는 친구와 함께 브라질의 한 허름한 선술집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술주정으로 새벽까지 형용할 수 없는 욕지거리를 뒤섞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나이 어린 청년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당시 그의 목동용 허리띠로부터 몇 개의 동전과, 직경이 주사위 크기만한 반짝거리는 원추형 모양의 금속 물체가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조그마한  물체였지만 선술집의 시동은 아예 들어 올리지도 못했으며 어른도 간신히 그것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손바닥에 그 물건을 몇 분 동안 올려 두었는데 견딜 수 없었던 그것의 무게와, 그 원추형 물체를 내려놓은 뒤에도 계속 손바닥에 남아있던 중압감, 그리고 손바닥에 남아 있었던 선명한 원형의 자국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금속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그 작지만 아주 무거운 원추형 물체들은 틀뢴의 몇몇 지방에서 신의 형상에 해당한다고 한다.


   틀뢴의 현실계로의 침투는 현실 세계를 변화시켰다. 에즈라 버클리의 소망대로 그 발간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던 <틀뢴 제1 백과사전> 40권이 1944년 멤피스의 어느 도서관에서 실제로 발견되었다. 이 멤피스 본의 발견이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위원들이 사전에 의도한 것인지 오늘날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멤피스 본에서는 <11권>에 나오는 몇 가지 비현실적인 사실들, 예를 들어 흐뢰니르의 증식 같은 것들이 삭제되어 있거나 적당히 얼버무려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세계와 어느 정도 호환되는 어떤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보이기에 의도적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물론, 틀뢴의 물체들을 여기저기 노출시키는 것도 그러한 계획의 보완책일 것이다. 멤피스 본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 세계의 언론들은 그 <발견>을 연일 대서특필하며 목청을 드높혔다고 한다. 인간이 만든 가장 방대하고 위대한 이 작품들에 대한 지침서나 해설서, 선전, 개괄서, 직역판, 해적판들이 범람하여 온 지구를 뒤덮었다. 사실 그대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현실은 즉각 항복을 선언한 것에 다름없다. 아니, 현실이 스스로 항복하기를 열망했다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이처럼 완전한 질서가 구현된 틀뢴이라는 행성 앞에서, 이 정밀하고 방대한 증거 앞에서 어떻게 현실이 굴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현실도 질서 정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신적인, 다시 말해 비인간적인 법의 관점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틀뢴은 확실히 미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미로, 인간에 의해 해독되도록 운명 지어진 그런 미로라는 사실을 현실은 잊고 있다. 그것의 엄밀성에 현혹된 인류는 그 미로가 천사들의 엄밀성이 아니라 장기 고수의 엄밀성이란 것을 망각했고 여전히 망각하고 있다. 그 결과 틀뢴과의 접촉, 그리고 그것이 가진 관습의 침투가 남긴 결과는 우리 세계의 해체였다. 이미 학교들에는 틀뢴의 원시 언어가 침범해 들어갔고 감동적인 일화들로 가득한 틀뢴의 조화로운 역사는 이미 우리의 역사를 뒤덮어버렸으며 우리가 확실히 인지할 수 없는 허구적 과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다른 과거로 대체되어 버렸다. 모든 분야가 틀뢴의 것으로 혁신을 구가했다. 일군의 은둔자들이 창건한, 세계 도처에 흩어진 모습으로 존재하는 한 왕조가 세계의 면모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100년 후에 100권으로 된, 틀뢴의 언어로 쓰인 <틀뢴 제2 백과사전>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지구 상의 모든 언어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틀뢴이 될 것이다. 그래도 뭐 어떠리... 보르헤스는 개의치 않고 아드로게에 있는 호텔 별장에서 매일 조용한 나날을 보내면서 토머스 브라운 경의 <납골당 매자>을 케베도 식으로 엉성하게 번역해 둔 원고를 손보고 있을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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