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 크레이그: 터커&데일vs이블(Tucker&Dale vs Evil)
<터커&데일 vs 이블>, 이 영화는 B급 고어물을 좋아라 하는 터라 오리지널 하드 고어물이라 기대하고 봤던 영화다. 포스터만 봐도 B급 고어물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그렇다. 고어물은 맞다. 하지만 장르가 고어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고어, 슬래셔, 스릴러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에다 나름 반전까지… 별반 기대하지 않고 봤던 영화들 중 기대 이상을 건지는 영화가 있기 마련이며 이 영화 역시 그런 영화들 중 하나다. 고어와 로맨틱 코미디의 연결은 매우 신선했으며 이렇게 매끈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 또한 칭찬할 만하다. 이 영화는 B급 장르 영화임에도 엉성한, 아니 웬만한 A급보단 나은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영화는 어두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를 카메라가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맨과의 대화를 볼 때 여자는 기자로 보이고 범죄 현장을 잠입 취재하는 듯하다. 어찌 보면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보이도록 흑백 카메라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러다 비명 소리와 함께 여자가 쓰러지고 누군가가 튀어나온다. 카메라는 급히 방향을 바꾸지만 곧 땅으로 떨어지고 다시 떠오르며 머리가 잘린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이제 카메라는 방향을 바꾸어 반쯤 얼굴에 화상을 입은 채로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셀카처럼 담는다.
한적한 시골 숲으로 캠핑을 떠난 남녀 대학생들… 채드(제시 모든 분)와 앨리(카트리나 바우덴 분)를 포함하여 여덟 명을 태운 척의 차는 신나게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갑자기 트럭 한 대가 튀어나왔고 아슬하게 트럭을 피해 지나쳤을 때 운전대에 앉은 척과 보조석의 채드는 촌놈들이라고 욕을 한 사발 뱉어 낸다. 하지만 그 트럭, 촌스럽고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은 두 남자가 험상궂은 얼굴로 자신들을 노려보며 그들을 서서히 앞질러 간다. 순간 학생들의 차 안에선 섬뜩한 침묵이 흐르고… 시골 마을의 음산한 휴게소에 들른 그들. 하필 휴게소의 매점에는 자신들을 노려 보았던 그 트럭의 키 큰 운전사가 있었고, 맥주를 찾던 앨리는 트럭의 보조석에 동승했던 또 다른 험상궂은, 뚱뚱하고 키 작은 남자를 보고 기겁을 한다. 급하게 매점을 나와서 다시 출발하기 위해 짐을 챙기는데… 뚱뚱하고 작은 그 남자가 커다란 낫을 들고 앨리에게 다가와선 뭐라고 말을 건다. 잔뜩 졸아 있던 학생들을 대신해서 채드가 용감하게 그를 막아섰고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과한 액션으로 경고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후다닥 차를 타고 도망치듯 휴게소를 떠난다.
숲 속의 공터에서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운 후 맥주와 담배로 유흥을 즐기는 학생들. 천식이 있는 채드는 네블라이저를 한 번 흡입한 후 예의 그 허세를 담아 담배를 입에 물고 목소리를 깔면서 이 숲의 괴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년 전, 자신들처럼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이 숲으로 캠핑을 왔었고 미친 살인마가 단 한 명의 여학생만 남기고 모두 잔인하게 죽였단다. 겨우 살아남은 그녀가 이 사실을 전했으며 이 후로 그 사건은 메모리얼 데이 학살이라고 불린다 했다. 채드의 이야기에 갑자기 진지해져 버린 녀석들. 저녁이 되어 그들은 숲 속 호수로 수영을 하러 갔다. 수영 준비를 위해 혼자 차 안을 뒤지던 앨리를 놀랜 채드. 그리고 어쭙잖은 고백을 하는데… 채드 이 남자... 좀 밥맛이다. 앨리와 자신은 남들과 다른 부류의 우월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둘은 어울릴 수밖에 없단다. 어이없는 선민의식의 발로에 앨리는 그의 고백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친구들과 좀 떨어진 호숫가 바위 위로 혼자서 올라갔다. 겉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어떤 소리에 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남자 두 명이 자신을 훔쳐보고 있었고 놀라서 그만 물에 빠지고 만다. 멀리서 수영을 즐기던 친구들은 두 남자가 앨리를 배에 실어 납치하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채드는 손에 도끼를 들고 뒤늦게 호수로 왔지만 앨리를 태운 배는 저 멀리 유유히 사라져 갔다.
다음 날, 채드를 필두로 한 학생들은 앨리를 구출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한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채드는 자신들이 직접 앨리를 구출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겁을 먹은 척은 경찰을 불러오겠다며 차를 몰고 숲을 떠나 버렸고 나머지는 앨리를 납치한 두 남자의 집으로 보이는 낡은 별장 근처에서 몸을 숨겼다. 우선 염탐을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했고 미치가 별장 정탐병으로 당첨되었다. 별장에 조심스레 접근하여 모퉁이 쪽으로 다가서는 미치… 순간 갑자기 그곳에서 키 큰 남자가 나타나더니 괴성과 함께 전기톱을 휘두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고 전기톱을 든 그 남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미치를 계속 따라왔다. 미치는 숲 속을 미친 듯이 달렸고 그 와중에 옆을 돌아봤을 때 그 남자는 그를 스쳐 지나듯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간 미처 보지 못한 길고 뾰족한 나뭇가지가 미치의 흉부를 그대로 관통해 버린다. 계속 전기톱을 휘두르며 앞으로 전진하기만 하는 그 남자를 바라보는 미치의 숨은 점점 약해져만 간다. 마지막으로 미치의 눈에 비친 것은 잉잉거리는 벌 한 마리… 그리고 그는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나서 친구들이 돌아왔고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꼬치구이처럼 나뭇가지에 몸통이 꿰여 대롱거리는 미치를 발견했다. 이제 그 둘은 살인마인 것이 확실하다. 아마 곧 앨리도 죽일 것이다. 이건 시체를 통해서 남긴 메시지야, 이 숲을 떠나라는 거야, 다시 의견이 분분해지는 와중에 갑자기 그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몸을 숨겼고 그 둘은 큰 소리로 학생들을 몇 번 부르더니 통나무에 무언가를 새기고 돌아갔다. “니네들의 친구를 데리고 있다”. 통나무에 새겨진 메시지. 그들이 다시 판잣집으로 갔을 때 키 큰 남자는 커다란 나무 분쇄기에 썩은 나무들을 넣어 제거 중이었고 뚱뚱한 남자는 앨리와 함께 땅을 파고 있었다. 잔인한 놈들! 앨리가 묻힐 무덤을 스스로 파게 하다니… 좀 더 세부적으로 작전을 세웠다. 협공을 하기로 하고 파트를 나눴다. 토드가 뚱뚱한 놈을, 마이크는 전기톱을 휘두르던 놈을 담당하기로 했고 나오미와 클레오는 분쇄기 반대편 나무 더미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동시에 공격 개시를 외친 그들. 토드는 긴 나무로 만든 창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뚱보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뚱보는 삽으로 앨리를 때려 기절시킨 후 토드와 엉켜 구덩이 속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 뚱보가 바닥에 깔린 채로 위로 넘어진 토드를 서서히 당겨 창으로 토드의 몸을 삐걱삐걱 뚫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편, 괴성과 함께 핸드 나이프를 들고 키 큰 놈에게 달려든 마이크. 하지만 분쇄기 반대편에서 숨어 있던 두 여학생이 본 것은 허무하게도 키 큰 남자가 마이크의 양다리를 잡고 분쇄기로 그를 마구 밀어 넣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루가 된 마이크의 살점 뭉터기가 핏덩이와 함께 배출구로부터 튀어나와 클레오를 흠뻑 적셔 버렸다.
다시 캠핑 장소로 돌아온 학생들, 이제 넷만 남았을 뿐이다. 20년 전의 메모리얼 데이를 재현하고 있는 두 살인마. 척이 차를 몰고 가버린 덕에 경찰을 부르고자 해도 40마일 이상을 걸어야 한다. 게다가 깊은 숲 속이라 폰도 터지지 않는다. 사면초가에 몰린 그들은 공포로 패닉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채드만은 두려움이 없었고 반드시 자신들의 손으로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복수를 고집한다. 어찌 보면 채드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하기야, 이 숲으로의 여행은 채드가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채드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구원이 강림한 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경찰차 한 대가 오고 있었다. 약속대로 척이 경찰을 데리고 온 것이다. 학생들을 태운 경찰차는 문제의 별장으로 향했다. 별장 앞에 다다랐을 때 반토막난 마이크의 하반신 양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질질 끌고 나오는 두 남자를 목격하게 된다.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간 경찰은 그 두 남자와 대면했다. 잠깐 몇 마디를 나누더니 경찰은 그들을 체포할 생각도 않고 그들과 함께 별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별장 문이 벌컥 열렸고 경찰이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의 머리는 커다란 못들을 박은 채 피를 흘리고 있다.
비틀거리며 차로 걸어온 경찰, 힘겹게 무전기를 뽑아 들었지만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척이 용기를 내어 재빨리 차에서 내려 쓰러진 경찰의 허리춤에 장착된 총을 뽑아 들었고 그들을 겨눴다. 나머지 친구들은 경찰차 안에서 공포에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뚱뚱한 남자가 척에게 어떤 말을 했고 곧이어 척은 갑자기 방아쇠를 당겨 자기 머리를 쏴 버렸다. 또다시 터지는 학생들의 비명 소리… 그것을 숨어서 지켜보던 채드가 재빨리 튀어나와 총을 집어 들고 그 살인마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겁지겁 집으로 숨어 버렸다. 총을 난사하던 채드는 그들의 개를 인질로 삼아서 항복하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만만찮은 그들… 네일건으로 저항을 했고 총알과 못들이 두 진영 사이를 여러 번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채드는 최후의 통첩을 위해 개가 있는 쪽으로 총구를 돌렸지만 그 자리에 개 대신 키 큰 살인마가 있었다. 그는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학생들이 그를 쫓기 시작했다. 마침내 숲 속에서 숨어있는 그를 붙잡았고 채드는 한 주먹에 그를 기절시켰다.
채드는 능수 능란하다. 기절한 그 남자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았고 나머지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한 트랩도 설치했다. 그가 깨어나자 채드는 마이크에 대한 복수라며 도끼로 그의 손가락 두 개를 잘라 버린다. 그리고 그의 옷 조각을 뜯어 “이번엔 우리가 네 친구를 데리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잘린 손가락과 함께 봉했다. 채드는 작전을 짰다. 두 조로 나누어 자신과 나오미는 별장 안으로 들어가고 제이슨과 클로이에게는 일정 시간 내로 자신들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집으로 와서 협공할 것을 지시했다. 그들은 별장으로 갔고 채드는 손가락을 봉한 헝겊 조각을 욕과 함께 문 앞으로 던졌다. 앨리가 나와서 그 헝겊 조각을 집어 들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뚱뚱한 놈이 큰 칼을 들고 집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작전대로 채드는 나오미와 함께 그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들이 별장으로 들어갔을 때 앨리는 멀쩡히 있었다. 이 곳은 살인마들의 집이라고 하며 채드는 바닥에 석유를 뿌리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채드가 말했지만 앨리는 무슨 소리냐고 반문한다. 자신은 납치된 것이 아니란다. 나오미는 사회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말을 꺼냈고 굳이 그 의미까지 설명해 준다. 채드의 눈빛이 살벌하게 바뀐다. 그를 사랑하게 된 거야? 질투심에 돌아버린 듯 그는 앨리의 목에 도끼날을 갖다 댄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해! 그때 두 살인마가 문을 벌컥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고 뚱보가 말했다. 앨리를 놔줘!
키가 큰 친구의 이름은 터커(알란 터딕 분), 뚱뚱한 친구는 데일(타일러 라빈 분)이다. 외모는 촌티 나고 좀 험상 궂긴 해도 둘은 순박하기 그지없는 시골 출신 청년들이다. 외지에서 고생하다 말도 안 되게 싸게 나온 시골 별장을 구입하게 된 터커는 절친 데일과 데일의 애완견 징거스와 함께 별장을 정비하고 휴가도 보낼 겸 그곳으로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그들은 자신들과 너무나 대비되는 도시의 대학생들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휴게소에 들러서 별장 수리를 위해 나무 분쇄기를 비롯하여 여러 공구들을 구입하던 중 그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특히나 소심하고 숫기 없는 모태 솔로 데일은 그 무리들 중 앨리를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터커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보라고 했다. 데일은 용기를 내어 다가갔지만 몇 마디 하기도 전에 한 남자 애가 끼어들어 면박을 주곤 황급히 떠나 버린다. 자신들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둘은 트럭을 몰아 앞으로 자신들의 것이 될 보금자리로 향했다.
싼 만큼 엄청 낡은 한 채의 별장. 그곳에는 칼과 위험해 보이는 여러 도구들이 있었고 살인 사건 기사를 담은 오래된 신문 조각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그 집이 그렇게 싼 이유가 20년 전 메모리얼 데이 학살의 주범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만큼 그들은 순진했다. 매우 낡은 집이었음에도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뻐하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터커가 집안의 기동에 몸을 기댔을 때 낡아빠진 기둥이 쓰러지며 대들보의 한쪽이 진자처럼 떨어졌고 데일이 몸을 날려 터커를 구해 주었다. 대들보의 한쪽 끝에는 굵고 기다란 못들이 삐죽 튀어나온 경첩이 달려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들은 집수리를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터커와 데일은 작은 배를 띄워 호수로 낚시를 나갔다. 낚시와 맥주를 즐기던 중 좀 떨어진 바위 위에서 호수에 들어가기 위해 겉옷을 벗고 있는 앨리가 보였다.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가리고 마는 데일, 그 와중에 자신들이 보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앨리는 떨어져 물에 빠졌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하고 만다. 그녀가 물 위로 떠오르지 않자 데일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앨리를 구조해서 배에 태웠다. 근처에서 수영을 하던 앨리의 친구들을 보고 그녀를 데려가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도망가기 급급했다. 별 수 없이 그들은 앨리를 집으로 데려갔다.
다음 날 깨어난 앨리… 침대 옆에는 불도그 한 마리가 그르렁거리고 있고 험상궂게 생긴 데일이 아침을 들고 방으로 들어선다. 놀란 앨리는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곧 데일이 악의 없이 순전히 자신을 위해 아침을 들고 왔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데일과 함께 보드 게임을 하면서 그와 터커 모두 외모와는 다르게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란 것을 깨닫게 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바깥에선 터커가 썩은 통나무를 자르기 위해 전기톱을 켰다. 보드 게임을 하는 둘을 보면서 투덜대며 전기톱으로 통나무를 잘랐을 때 통나무 내부에 있는 커다란 벌집을 건드리고 만다. 갑자기 달려드는 벌 떼들을 흩기 위해 정신없이 전기톱을 휘두르며 달리기 시작하는 터커. 하지만 자신의 앞으로 한 학생도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고 벌 떼를 쫓느라 정신없는 그는 그 학생을 앞질러 가 버렸다.
보드 게임을 하면서 앨리는 데일을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쟁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데일이 비상한 기억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앨리. 그녀는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무식해 보이지만 천재적 기억력을 보유한 데일과 그럴듯한 대학을 다니면서도 목적도 없이 전공에 자신을 갖지 못하는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역설을 느낀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도중에 벌에 쏘여 얼굴이 엉망이 된 터커가 집으로 들어왔고 보드 게임만 하고 있는 데일을 나무란다. 앨리는 자신 때문이라며 터커에게 사과를 하고 친구들을 찾아 나서겠다고 했지만 데일은 쉬어야 한다며 극구 그녀를 만류했고 자신들이 대신 친구들을 찾아보겠다고 나선다. 그녀의 친구들을 찾아 숲으로 간 그들, 숲 속에서 아무리 불러도 친구들은 대답이 없다. 데일은 도끼로 나무에 자신들이 그녀를 데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별장 정리를 시작한 그들… 터커는 나무 분쇄기를 이용해서 썩은 나무들을 갈아 없애기 시작했다. 데일은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고 마침 앨리가 나와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시골에서 자랐다는 앨리는 곡괭이 질을 곧잘 한다. 그렇게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땅을 파던 도중 갑자기 한 학생이 나무로 만든 창을 들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학생을 피하기 위해 데일이 몸을 돌리는 순간 어깨에 메고 있던 삽이 앨리의 머리를 때렸고 앨리는 또 기절해 버린다. 반면 달려들었던 그 학생은 땅바닥의 나뭇가지에 걸려 데일을 밑에 깔고 그대로 쓰러졌다. 밑에 깔린 데일 바로 옆에 꽂혀버린 창 위로 넘어진 그 녀석의 몸을 중력이 조금씩 조금씩 아래쪽으로 당겨 창으로 서서히 관통시키고 있었다.
한편 터커는 썩은 나무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자신 위로 뭔가 날라 갔고 허리를 폈을 때 한 학생이 분쇄기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로 피를 튀기고 있었다. 너무나 놀란 터커는 그 학생을 빼내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양다리를 잡아당겼지만 빠지지 않았고 미처 사람을 처치할 수 없었던 분쇄기는 그 학생의 상반신을 갈다 말고 결국 작동을 멈추고 말았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터커와 데일... 학생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자살하기 시작한다. 이건 분명 자살 모임이다. 어쩌면 앨리도 죽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이 황당한 상황을 경찰에 알릴 수도 없다. 이런 사태를 누가 믿으랴… 결국 자신들 스스로 미쳐 돌아가는 이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하반신만 분쇄기에 너덜너덜 걸려 있는 학생의 시체를 치우기로 했다. 둘이서 힘겹게 분쇄기에서 시체를 빼서 나오는 순간 경찰차 한대가 자신들 앞에 멈춰 선다. 이제 경찰이 내리고 허리가 잘린 시체를 들고 있는 그들 앞에 선다. 뭐라고 변명을 댈 수도 없는 기막힌 상황. 그들은 이실직고했고 별장 안에 있는 여학생이 그걸 증언해 줄 거라 했다. 경찰은 그들을 따라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학생이 정신을 잃고 멀쩡히 누워 있는 것을 본 경찰은 그들의 말을 어느 정도 수긍하기 시작했다. 운 좋으면 과실치사 판결을 받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경찰은 집 안의 나무 기둥에 팔을 기댄다. 그 순간 기둥이 쓰러지며 대들보가 진자처럼 하강했고 대들보 끝 경첩에 달린 굵고 기다란 못들이 경찰의 머리에 박혀 버린다. 경찰은 못이 박힌 채로 경첩을 머리에 이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지만 경찰차의 무전기를 뽑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한 녀석이 경찰이 차고 있던 총을 뽑아 들었고 자신들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안전장치를 뽑지 않은 상태였고 데일은 친절하게도 안전장치를 풀라고 가르쳐 준다. 그 녀석은 어리바리하게도 총구를 자신의 얼굴로 향한 채로 안전장치를 풀었다. 총알이 발사되고 녀석의 머리는 펑 터져 버린다.
이때 숲 속에서 다른 한 녀석이 갑자기 뛰쳐나와 땅바닥에 떨어진 그 총을 들고 난사하기 시작했고 둘은 재빨리 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다 데일의 개 징거스가 사라진 걸 알았고 창문 밖으로 그 녀석이 총으로 징거스의 머리통을 겨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터커는 데일에게 네일건을 건네주고 주의를 끌면 자신이 뒤로 돌아가서 징거스를 구하겠다고 했다. 총알과 못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터커는 계획대로 징거스를 구했지만 자신을 구하지는 못했다. 도망치다 숲 속에서 그들에게 잡혔고 주먹 한방에 기절해 버렸다. 깨어났을 때에는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징거스를 위협했던 그 녀석이 누구에 대한 복수라며 도끼로 그의 두 손가락을 잘랐고, 그들은 사라졌다.
한편 앨리가 다시 깨어났을 때 상황이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피투성이가 된 데일을 발견한 앨리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미쳐서 자살하려 했고 심지어 자신들과 자신의 개를 죽이려 했으며 지금은 터커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했다.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앨리는 서로 오해가 있었다고 데일을 설득하는 와중에 욕과 함께 무언가 별장 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는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시체들의 향연이었다. 겁에 질린 채로 앨리는 터커의 옷 조각으로 봉인된 무엇을 들고 들어왔다. 그 안에는 터커의 손가락 두 개와 “이번엔 네 친구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 와서 데려가 봐.”라고 적힌 쪽지를 보게 된다. 데일은 터커를 구하겠다고 큰 칼을 들고 나선다. 앨리는 데일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친구들은 사람을 죽이는 애들이 아니라고 했고 친구들은 터커와 데일이 앨리 자신을 죽이려 하는 줄 알고 그랬을 거라고 한다. 데일이 반문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앨리는 선뜻 답을 못한다. 아는 것 같은데요? 앨리는 처음 휴게소에서 봤을 때 당신들이 좀 수상하게 보였다고, 당황해서 그랬다고 에둘러서 답했다. 데일: 내가 미친 것처럼 보였겠네요? 앨리: 우리가 잘못 알았어요. 데일: 아뇨, 내가 잘못했어요, 나 같은 놈이 당신 같은 여자와 얘길 하면 누군가 죽을 거란 걸 알았어야 했는데… 데일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친구들을 보거든 누굴 해치려 한 적 없다고 전해줘요.
숲 속에서 데일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터커를 발견한다. 터커는 트랩이 설치되었음을 알려 줬고 데일은 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한다. 풀려난 터커가 그놈은 미쳤다고 했고 그들은 앨리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별장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 앨리와 두 명의 학생이 있었고 징거스를 위협했던 그 녀석은 도끼날을 앨리의 목에 갖다 대고 있었다. 데일이 말했다. 앨리를 놔줘!
이제 그들은 직접 대면하게 된다. 앨리가 어쭙잖은 심리학 상담사를 자처하며 그들을 대화로 이끈다. 우선 차를 권했다. 채드는 차의 종류를 물었고 자신은 천식 때문에 카모마일은 마실 수 없다고 한다. 앨리는 얼그레이 차라면서 채드와 데일에게 권했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 이야기를 듣자고 했다. 채드는 인상을 그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20년 전 이곳에서 발생한 메모리얼 데이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의 아들이 자신이라고. 자신이 태어났을 때 엄마는 정신병원에 있었고 불 속에서 비명에 죽어간 아버지는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지겹도록 듣고 자랐다고, 자신의 부모는 데일과 같은 놈들에게 공격을 받고 비명에 가 버렸다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데일은 20년 전에 자신은 6살밖에 되지 않았으며 또한 자신은 물고기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한다고 했다. 터커는 그것을 자신이 증명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이때,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제이슨과 클로이는 약속된 시간 내로 채드가 돌아오지 않자 집으로 숨어들었고 잡초 제거기를 돌리며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 터커를 공격했다. 터커가 피해 버렸고 잡초 제거기는 엉뚱하게도 터커 뒤에 서 있던 나오미의 얼굴을 갈아 버린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채드는 재빨리 식탁을 엎어 데일을 덮쳤고 도끼로 데일을 공격한다. 터커가 그를 저지했고 상황은 엉망이 된다. 채드가 램프를 던졌고 바닥에 뿌려 둔 석유에 불이 옮겨 붙어 제이슨을 태우기 시작한다. 클레이는 불을 끄겠다고 액체가 든 항아리를 제이슨에게 뿌렸다. 하지만 그 액체는 시너(Thinner)였고 불은 폭주하여 제이슨의 몸 전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바닥에 흩어진 석유 줄기를 통해서 불이 옮겨 붙으며 방에 있던 휘발유 통으로 번졌고 폭발하면서 클로이를 날려 버렸다. 터커와 데일은 재빨리 앨리를 데리고 밖으로 피신했다. 폭발로 집은 무너져 내렸지만 불에 반쯤 탄 얼굴을 한 채드는 광기를 띄며 도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차를 타고 도망쳤지만 나무에 차가 정면충돌하며 데일은 정신을 잃고 만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얼굴을 핥고 있는 징거스 덕분에 데일은 정신을 차렸다. 차 밖으로 나왔을 때 터커는 배에서 피를 흘리며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사력을 다해 앨리를 보호하려 했지만 채드가 자신을 이 꼴로 만들고 앨리를 데려가 버렸다고 한다. 데일은 터커를 지혈시킨 후 징거스를 앞세워 채드와 앨리를 찾아 나섰다. 채드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폐허가 된 목공소의 나무 절단기 앞에 앨리를 묶어 두었다. 작동만 되면 톱날이 바로 앨리의 몸을 좌우 반으로 갈라버릴 것이다. 데일이 안으로 들어와서 묶인 앨리를 풀어주는 동안 채드는 나무 절단기의 전원을 넣었고 곧이어 채드와 데일의 사투가 시작된다. 아슬아슬하게 데일은 앨리를 결박하던 줄을 풀었고 앨리는 목공소 위층으로 도망쳤다. 데일은 채드를 때려눕힌 후 앨리를 뒤따라 위로 올라간 후 문을 잠갔다. 채드가 올라오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 이것저것 무기를 찾던 와중에 데일은 카모마일 차가 담긴 상자를 찾았고 앨리는 오래전 신문을 찾았다. 그 신문에는 20년 전 메모리얼 데이 학살 기사를 담고 있었고 범인의 얼굴이 1면에 나와 있었다. 유일한 생존자가 범인을 지목했고 그 생존자는 범인에게 고문과 강간을 당했으며 현재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검거된 범인의 얼굴은 채드의 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다. 채드의 기억과는 다르게 그는 메모리얼 데이 학살의 피의자와 유일한 생존자인 피해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으며 범인은 바로 채드의 아버지였다. 이때 채드가 전기톱으로 문을 박살내고 들어왔고 데일은 위협에 처하게 된다. 채드가 전기톱으로 공격을 가하기 직전 데일은 그에게 신문을 펼쳐 보였고 메모리얼 데이 학살 범인이 시골 출신인 그의 아버지임을, 그리고 채드 역시 시골 출신임을 상기시켜 준다. 신문을 낚아채서 확인한 채드는 거짓말이라며, 진실은 없다면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데일은 재빨리 카모마일 가루를 채드의 얼굴에 뿌려 버렸다. 천식을 악화시키는 카모마일 알레르기로 인해 얼굴을 감싸고 괴로워하면 비틀거리던 채드는 발을 헛디뎌 창문을 뚫고 아래로 떨어져 처참하게 바닥에 처박혀 버린다. 데일은 “이상한 거 기억 잘한다고 말했잖아요.”라며 앨리를 보고 으쓱했다.
장면이 바뀌어 터커는 병원 침실에 누워 끔찍했던 자신들의 사건 현장을 다루는 뉴스를 보고 있다. 데일이 병문안을 왔고 터커는 성공적으로 접합된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 준다. 더불어 앨리와 어떻게 되었는지, 데이트 신청은 했는지 물어본다. 데일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했고 안타까움에 터커는 또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데일은 그녀와 볼링을 치기로 약속했으며 지금 가는 길이란다. 터커의 응원을 뒤로하고 약속한 볼링장에서 앨리를 만난 데일. 볼링을 치던 중에 자연스레 대화를 하게 되고 이때를 노려 데일은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려 한다. 이런저런 사족을 앞에 붙이며 겉돌던 데일,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때 앨리는 가벼운 입맞춤으로써 그의 말을 가로막는다. 저도 같은 감정이에요. 그리고 둘의 뜨거운 키스를 화면에 가득 담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상이 영화 “터커&데일 vs 이블”의 내용이다. 영화는 언뜻 B급 슬래셔 하드고어를 표방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로맨스 물이며 지극히 평범한 교훈까지 담고 있다. 평범한 교훈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은 미녀와 야수와 같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표현 방식은 공포 괴기물을 차용하고 있다. 평범한 이야기를 고어물의 형식을 빌어 풀어내면서 겉으로 보이는 선과 악이 실제 내용에서는 뒤바뀌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그 평범한 교훈은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또는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라는 아주 식상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형식적인 측면 역시 그 교훈을 그대로 표방하고 있다. 포스터부터 시작해서 영화는 겉만 봤을 때는 공포 장르의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예상케 하지만 실상 그 내용은 달달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또한 포스터의 터커와 데일은 악 그 자체로 묘사되어 있지만 제목이 왜 “터커와 데일” vs “악”인지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평범한 교훈을 한번 더 돌이켜 보자. 이 교훈은 우리가 어릴 적 동화나 도덕 시간을 통해서 주입된 매우 진부한 그것이다. 낙인 효과라는 말이 최근에 정치권에서 많이 사용된다. 낙인 효과는 상대방에게 심어진 부정적인 이미지가 그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 기준이 되어버리는 효과로서 정치권에서는 흔히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씌운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오래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죄를 저지른 죄인의 범죄를 표시하기 위하여 불에 달군 쇠로 피부를 태워 새기는 흔적, 결코 지워지지 않을 표식으로서의 흉터가 낙인이다. 그리고 이런 낙인 효과를 그린 대표적인 소설이 바로 1850년 미국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이 발표한 “주홍글씨”일 것이다. 하지만 낙인은 후천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낙인을 찍음으로써 그 이후로 낙인이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다.
반면에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선입견이나 겉모습에 의한 판단은 선천적인 성격을 띤, 어쩌면 낙인보다는, 낙인에 의한 흉터라기보다는 흉터 그 자체의 의미에 가깝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덧씌워진 것이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생겨난, 의도치 않게 그에게 새겨진 선천적 낙인이다. 우리는 새겨진 이 흉터를 통해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게 된다. 시골 출신의 험악한 인상을 가진 터커나 데일과 마찬가지로 피부, 인종, 학벌, 재력 등을 통해서 상대방을 미리 재단하게 만드는 기준으로서의 흉터가 될 것이다. 이런 흉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을, 거리의 노숙자를, 장애인을, 동성애자를,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와 다름에 대한 편견이자 두려움일 것이다.
사실 그런 흉터를 도드라진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은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다름에 대한 이질감은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런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질감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수용하고 그것을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런 다름에 우선 친숙해져야만 하고 그러기 위한 과정과 시간 역시 요구될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다름은 다름의 편에서 우리를 볼 때도 역시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따라서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흉터를 보고 그 흉터를 통해서 서로를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만의 흉터를, 결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무결성의 인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완벽함, 완전성은 파라다이스에 위치할 것이며 이데아 속에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현실 속의 구체적인 인간이며 그렇기에 흉터로써 무결성을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무결성을 거부하는 서로의 흉터를 바라봐야만 하고 흉터를 이야기해야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흉터에 가까워져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흉터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흉터, 결점… 너무나 인간적인 조건들!!! 이런 인간적인 조건들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존 버거의 글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수레를 끌며 고철을 모으고 있는 베드를 만났어요.
그는 벌집에서 꿀을 뽑아내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꽃이 다 진 지금이 바로 꿀을 모으는 때인데, 그래서 그도 이야기를 꺼낸 거겠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그가 말했어요.
하지만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당신 오른손 손목에 있는 흉터를 떠올렸어요.
화상 흉터, 결점.
내가 당신을 알아보는 첫 번째 표식이에요.
‘신체적 특징’이라는 말은 참 이상하죠. 안 그래요?
그건 그들의 경찰 기록이나 착취 과정을 위해서 고안된 말이죠.
당신 손목에 있는 흉터를 봅니다.
지나가는 세월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나의 모든 잘못과 결점 중에 당신은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말해 주세요.
우리 함께 이 긴 밤이 지나도록 그것을 즐길 수 있게,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해 주세요.
<A가 X에게, 존 버거, 김현우 옮김, 열화당, p6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