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레드포드: 일 포스티노(Il Postino)
원작 vs 영화… 원작 소설과 그 소설을 영화화한 결과를 두고 원작이 낫네 영화가 낫네 하는 반응들은 뒤따르기 마련이다. 원작자가 사후에 영화화될 경우는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원작자가 생존한 상황에서 그가 영화화된 자신의 작품을 보게 될 경우, 원작자의 평가가 궁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원작자가 그 영화화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감독과 티격태격 다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스타니스와프 램이 쓴 <솔라리스(Solaris), 스타니스와프 램, 김상훈 옮김, 멜라스>를 타르코프스키가 동명의 제목(솔라리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나탈리아 본다르추크, 도나타스 바니오니스 주연, 1972, 후에 2002년 스티븐 소더버그가 조지 클루니와 나타샤 맥켈혼을 주연으로 한 동명의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으로 영화로 만든 뒤 램과 타르코프스키는 영화화된 결과물을 두고 서로 격한 논쟁을 벌였다. 소설계와 영화계의 두 거장이 격하게 논쟁하는 모습이라…… 남미 소설의 레전드인 꼬르따사르가 쓴 <악마의 침, 붐, 그리고 포스트붐(중남미 단편소설) 중 P57 - 악마의 침 Las babas del diablo, 홀리오 꼬르따사르, 송병선 옮김, 예문>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블로우 업(Blow Up),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데이비트 헤밍스, 제인 버킨 주연, 1966>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했을 때 역시 꼬르따사르의 격분에 찬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실제로 영화화 과정에 참여했던 꼬르따사르는 불만을 느끼고 결국 쓰디쓴 비판과 함께 중도 하차해 버렸다. 보통 영화가 원작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솔라리스의 경우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며 램의 소설에서 갖고 있던 철학적 함의를 단절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가 되어 버렸다. 또한, 블로우 업 역시 원작의 환상적인 측면, 어찌 보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식의 공포가 스며드는 그 느낌은 완전히 없애버리고 전혀 다른 형식으로, 추리 소설 장르의 스릴러로 바꿔 버렸다. 하기야, 길지 않은 그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기에 안토니오니는 원작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버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철저히 주관적인 생각으론 타르코프스키는 원작을 또 다른 혹성 탈출로 만들어 버렸으며 안토니오니는 원작을 평범한 스릴러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가 되었기에 그가 그렇게 칭송을 받을 수 있으리라. 또한 상호 텍스트성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긴 좋은 예가 되겠지만 원작과 비교를 한다면 결국은 원작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소설과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은 영화라고 생각되는 몇 안 되는 작품들 중의 하나다. 바로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와 영화 “일 포스티노"다.
잘 알려진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은 1985년도에 출간되었으나 저자인 스카르메타가 이 소설을 기획할 당시는 네루다와 동시대 인물이었으며 저자 역시 네루다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1994년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이 만든 영화다.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라고 불리는 마씨모 트로이시가 주인공 마리오 역에, 그리고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 아저씨로 잘 알려진 필립 느와레가 네루다 역으로 출연한다. 특히, 마씨모 트로이시는 암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열정적으로 영화 촬영을 마감한 후 얼마 가지 않아 저 세상으로 떠나버려 더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에 이미 스카르메타 자신이 1983년에 일 포스티노라는 제목으로 직접 영화화하기도 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처음에 <불타는 인내>라는 제목으로 집필을 시작하였으며 집필 중 <일 포스티노>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영화화를 했다. 그 후 <불타는 인내>로 소설을 출간한 후 지금의 제목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소설 제목을 바꾸었다. 감독 겸 주연으로 직접 활약하며 아마추어 감독의 저예산 영화임에도 15만 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스페인 및 프랑스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원작에서의 주된 배경은 칠레의 작은 섬 이슬라 네그라다. 이슬라 네그라는 스페인어로 “검은 섬”이란 의미를 가진다. 실제, 이슬라 네그라는 네루다의 제2의 고향으로서 그가 정치적 망명을 떠났을 때와 외교관이 되어 파리로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슬라 네그라의 자신의 집에서 살았다. 네루다 역시 이슬라 네그라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으며 자신의 시를 통해서도 이 섬의 아름다움을 토로한 바 있다. 또한 네루다가 죽은 후 그의 세 번째 부인 마틸데와 함께 묻힌 곳도 이슬라 네그라의 그의 집 앞,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소설에서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곳이며 지금은 네루다 박물관으로 여전히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고 한다. 주인공 마리오의 집 역시 이슬라 네그라 근처며 어부인 아버지와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묘사한다. 반면 영화의 경우, 네루다가 칠레 당국의 탄압을 피해 실제로 이탈리아로 망명했을 때의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그가 피신한 곳이 이태리의 나폴리 근처의 어느 작은 섬 “칼라 디 소토”이다. 그곳 역시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가난한 어부들이 사는 곳이며 마리오 역시 그곳에서 아버지와 고기를 잡으며 살아간다. 영화나 소설 모두 고기잡이 일에 정을 못 붙이던 마리오가 우연찮게 우체부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네루다 전담 우체부가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네루다의 망명 상황을 극장 뉴스(예전 우리나라에서 틀어주던 ‘대한뉴스’라고 보면 될 것이다.)를 통해 마리오가 접하도록 만들면서 주인공과 네루다의 접점을 잇는다.
원작과 영화 모두 마리오의 내적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시든 정치든 아무것도 몰랐던 순박한 청년 마리오가 사회주의자이자 유명한 시인 네루다와 만나게 되면서 시에 눈을 뜨고 베아트리체라는 사랑을 얻게 되고 그리고 정치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이 전개된다. 마리오의 의도는 단순했다. 항상 멀리서 바라봐야만 했던 짝사랑하는 베아트리체의 호감을 얻고 싶었고, 그래서 네루다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당시 여자를 유혹하고자 한다면 네루다의 그 달달한 연애시 몇 편은 필수였으리라. 영화는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마리오가 네루다와 만나면서 네루다의 시를 인용하고 네루다라는 명성도, 그의 힘도 빌리면서 결국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을 비중 있게, 그리고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리오가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성취가 있었으니, 메타포였고 시였다. 네루다와의 만남을 통해 메타포를 깨닫게 되고 시를 알아 가는 과정을 칼라 디 소토의 아름다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네루다와 마리오, 그리고 자전거를 함께 한 화면에 녹여내면서 그 장면 장면들은 마리오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부지불식간에 스스로가 시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원작은 상당히 정치성을 띠는 작품이다. 원작은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 칠레의 전설 같은 역사적 상황, 세계사 최초로 무장봉기가 아닌 선거를 통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켰던 무혈혁명, 그리고 이어지는 반혁명을 통해 피노체트에 의해 아옌데가 축출되고 네루다가 죽게 되는(이 당시의 칠레의 상황과 아옌데라는 전설의 안타까운 몰락을 알고자 한다면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Il Pleut Sur Santiago, 1976>를 추천한다.) 그 역사적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소설은 전개되고 마리오가 마지막까지 네루다의 시신을 지키다 경찰에 체포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따라서 원작은 영화와는 다르게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을 얻는 과정을 통해 시를 알아가는 상황들을 더 자세하게, 그리고 진한 성적 코드를 담고 있는 다양한 대화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 마리오가 시에 눈을 뜨게 되는 동시에 서서히 정치에 눈을 뜨게 되는 상황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마리오의 장모, 즉 베아트리체의 엄마의 비중이 소설에서는 크게 부각된다. 영화에서는 감초 같은 역할로만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그녀의 그 걸걸한 입담과 코믹하고 풍자적인 성적 코드가 담긴 욕설과 이야기는 마리오와 티격태격하며 그의 두 번째 성장과 함께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정치적 상황을 살짝 비켜간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영화는 칠레가 아니라 이태리의 어느 작은 섬을 배경으로 하기에 소설 그대로 칠레의 상황을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 이태리의 상황 역시 프랑스 68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좌우 대립이 첨예하던 시점이었고 부정부패와 각종 스캔들로 정치권이 떠들썩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 이태리의 정치적 상황을 차용해서 마리오의 정치적 각성의 과정을 소설처럼 충분히 풀어갈 수 있었겠지만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화 ‘일 포스티노’가 더 유명해진 이유 중에 하나로 이런 정치적 상황의 인위적인 도입이 없었기에 정치라면 신물을 내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부담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소설을 뛰어넘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이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감독의 방식이다. 네루다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칠레도 더 이상 네루다를 거부하지 못하게 되자 네루다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리오는 잊힌다. 마리오는 네루다를 그리며 네루다가 머물렀던 그 작은 섬의 소리를 담기 시작한다.
제 1번, 칼라 디 소토의 파도, 작은 파도, 2번, 큰 파도, 3번, 절벽의 바람 소리, 4번,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 5번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6번 신부님이 치는 교회의 종소리, 7번,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8번, 파블리토의 심장 소리......
이 장면이 영화에서는 매우 서정적으로 그려지고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이다. 사실 소설에서는 네루다의 부탁으로 마리오가 섬의 소리를 담게 된다. 소설은 네루다가 주 프랑스 대사로 떠난 후 이슬라 네그라가 그리워 마리오에게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를 담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서 마리오가 담은 소리는 영화와는 조금 다른 소리다.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 소리, 둘째. 제가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 디삿쩨, 벌집,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 일곱째,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의 갓 태어난 아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의 울음소리……
하지만 영화는 이것을 살짝 비틀어 더욱 감동적인 장면을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마리오의 정치적인 각성을 영화는 단 몇 컷의 흑백 화면으로 처리해 버린다. 이 장면이 상당히 압권인데 이런 변조는 양비론의 관점에서 중립을 위장하며 애써 정치적 함의를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 몇 컷으로도 충분히 그 시대의 상황을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케 하는 그런 방식으로 비켜갔다. 또한 비켜가는 그 방식은 동시에 최종적으로 죽는 자가 누구인가를 바꾸어 버림으로써 더욱더 영화를 애잔하게 만든다. 네루다의 죽음을 둘러싼 당시 칠레의 혼란은 유명하다. 스카르메타는 그 시대 상황에 그대로 주인공을 개입시켜 네루다의 시신을 끝까지 지키는 투사로서의 마리오를 그렸다면 영화는 네루다에 의해 사회의 문제에 눈을 뜨게 된 주인공이 네루다가 그 섬을 떠난 후 어느 집회에서 시 낭송자로 초대받게 되고 그곳에서 시를 낭송하던 중 경찰의 난입으로 도망가던 시위 군중에 의해 밟혀 죽게 만든다. 이 짧은 흑백 장면은 마리오의 의식 변화의 과정을 구구절절 길게 묘사하고 설명할 필요 없이 단 몇 컷으로 그 모든 과정을 응축시켜 단박에 보여 주는 아주 애잔한 장면인 동시에 어떤 회한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장면이기도 하며 이태리의 어느 섬이라는 영화 상의 가상공간의 역사를 새로이 창출해낸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그 섬을 찾은 네루다는 마리오가 남긴 그 유명한 시, 그 섬의 아름다움을 소리로 담은 시를 들으며 영화는 끝난다. 소설은 네루다의 시신을 지키던 마리오가 담담하게 체포되어 비장한 표정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화가 남긴 것은 네루다의 진한 회한이다. 죽은 자의 회한과 그것을 남겼던 살아남은 자, 네루다의 진한 아쉬움이……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로 네루다의 시 Poetry가 올라간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 강이었는지
언제 어떻게 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시인 황지우도 이 회한이 못내 안타까웠던지 다음의 시로 스스로를 달랬으리라......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마리오의 그 순박한 눈망울을 잊지 못한다.
일 포스티노, 황지우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2016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