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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Jun 09. 2018

새로운 개념의 가족, 그 기원을 추적하다

김태용:  가족의 탄생

가족의 탄생(김태용 감독, 문소리, 엄태웅, 고두심, 공효진, 봉태규, 정유미 주연, 2006)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2006년 영화계가 내어놓은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그만큼 잘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말 그대로 참패를 했다. 나의 영화 취향이 원래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흥행에 참패할 만큼 재미가 없다든지 그러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 영화는 망했다.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새삼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족 - 물론 나의 개인적인 가정사 자체가 그렇게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에 이 영화에 더 공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현, 수애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가족(이정철 감독, 2004)"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의미의 가족은 절대 아니다. 


   영화의 제목을 왜 가족의 “탄생”이라고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답을 떠올려 보았다.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는 전혀 이질적인 구성원들이 모여서 부대끼고 살면서 종국에는 가족이라는 넓고도 약한 연대의 울타리를 만들어 내는 것, 그렇다. 그것을 바로 가족의 탄생으로 보는 것이리라.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와는 전혀 이질적인 개념의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영화의 구성도 괜찮다. 어찌 보면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같기도 하지만 옴니버스가 아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민규동 감독, 2005)”이나 “새드 무비(권종관 감독, 2005)” 또는 “러브 액츄얼리(리차드 커티스 감독, 2003)”처럼 옴니버스 형식에 각 플롯을 연결시켜 서로 연관을 맺어주는 그런 형식도 아니다. 이질적인 가족의 탄생이니만큼 구성 자체도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하지만 그런 구성 자체가 가족의 탄생을 위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야기 셋:


   춘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란히 앉게 된 젊은 두 남녀가 삶은 계란 하나가 계기가 되어 대화를 터게 된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은 그렇게 연인 사이로 발전할 계기를 함께 한다.

이야기 하나:


   군대 간 후 제대할 날짜가 훨씬 지났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사고뭉치 남동생 형철(엄태웅)만을 바라보며 시집도 가지 않고 혼자 사는 미라(문소리). 어느 날 갑자기 형철이 찾아온다. 그것도 결혼했다면서 어떤 여자와 함께… 동갑이란다, 띠동갑, 그것도 위로 형철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고무신(고두심)이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동생이 왔건만, 그 동생은 여전히 철없고 사고뭉치에다 미라의 앞길에 방해만 되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그러던 중 형철은 단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무신의 전 남편과 전 부인 사이에서 난 어린 딸 채현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렇게 채현만 덜렁 데려다 미라에게 맡기고는 또 군대 갈 때와 마찬가지로 형철은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혈연과 지연이라고는 전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서로 어색하기만 한 세 사람, 미라와 무신, 그리고 억지로 남겨진 어린 채현… 세월의 흐름, 그리고 가족의 탄생

(어린 채현이 마당에서 뛰어노는 장면들을 연속을 컷으로 이으면서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야기 둘:


   여러 번 반복된 재혼으로 인해 딸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했던 엄마 매자(김혜옥). 그 엄마가 씨도 알 수 없는 배다른 어린 남동생 경석을 데리고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버젓이 다른 가정이 있는 남자다. 그런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경(공효진)은 엄마를 콤플렉스로 가슴 깊이 묻어둔 채 혼자 당차게 살아가는 젊은 여성이다. 엄마에 대한 엄마에 콤플렉스와 애증, 그리고 외로움을 가슴 깊숙이 감춘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 노력이 애절하다. 그런 그녀의 성격 때문에 남자 친구마저 떠나 버리고, 엄마와의 계속된 갈등으로 인해 배다른 남동생은 그녀에게 예뻐 보일 리가 없다. 남동생 경석 역시 그렇게 불친절한 누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 너저분한 자신의 주변 세계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제공해 줄 일본으로 떠날 수 있는 어려운 기회를 쟁취했지만, 불치병에 걸린 엄마는 선경과는 별 관계없는 자신의 핏덩이 하나 - 경석을 그녀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나 버린다.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은 그렇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결국엔, 엄마의 삶을 그 삶 자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버린 듯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선경. 어색하게 남겨진 어린 경석과, 역시 세월의 흐름, 또 다른 가족의 탄생......

다시 이야기 셋:


   경석은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돕는데 악착같이 발 벗고 나서는 채현이 불만이다그렇다채현의 그러한 과잉친절은 분명 오버다경석한테는 그러지 못하면서 주변의 선후배친구들의 어려움이라면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채현돈도 일도 뭐든지 거절하지 못하고 빌려달라는 대로 다 빌려주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준다정말 자신을 좋아하기나 하는지 의심이 드는 경석그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누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에 선경은 채현을 집으로 초대하지만초대한 그날도 채현은 선배의 어려운 일을 도와준답시고 오지도 않는다그렇게 계속 티격태격하기만 하던 그들… 경석의 답답한 심정을 잘 표현하는 격한 한마디: “돈만 꿔줬냐돈만 꿔줬냐고!!!!”



   결국 이별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채현을 잊지 못하는 경석은 다시 화해를 시도하고(그것도 극적인 화해다.) 어찌어찌 춘천의 그녀의 집 앞까지 배웅하게 된다. 때마침 그녀의 엄마 미라가 나온다. 미라는 경석을 딸의 남자 친구라는 이유로 과하게 반기면서, 늦었다는 핑계로 자고 가라면서 억지로 집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집 안에서는 또 다른 엄마 무신이 경석을 격하게 반긴다. TV에서는 성탄 축하 방송이 흘러나오고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성가대 대원 중 한 여자가 공중에 떠 오른다. 경석의 누나 선경이다. 그렇게 가족의 탄생은 다음날 경석과 미라의 가족이 김장을 담그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제…… 

   또 하나의 가족은 이미 탄생했다.




  이 영화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질적인 만남이 이렇게 가족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질적이라 함은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태용 식의 가족의 탄생은 그러한 수많은 차이를 극복하면서 그 거리를 조금씩 좁혀 나가는 과정이리라. 차이의 극복이 차이를 없애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단순히 서로를 이해해 간다는 식상한 표현보다는 그러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가족의 탄생은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라고 표현했던 황지우 시인의 말처럼, 그렇게 서로 가족이라고 부를 만큼의 과정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그 가족이 그렇게 계속 행복하기만 할까?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그 차이 때문에 다른 여느 가족처럼 투닥투닥 서로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일상인(das Mann)의 암울한 측면이 아니라 그가 의미한 바처럼 그렇게 삶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전형성을 지닌 일상인으로서의 가족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2015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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