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좋아했던(물론 지금도 좋지만) 90년대 노래 중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이란 노래가 있다. 당시 워낙 히트를 친데다 박완규의 놀라운 음역대의 진수를 보여주는 노래이기도 하기에 김경호의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와 함께 락 발라드 계열에서 최애하던 곡이기도 했다. 천년의 사랑이라면... 무려 열 세기를 넘어서는 사랑을 의미할 것이기에 이는 김경호의 노래 가사처럼 죽은 뒤 천상에서라도 결코 포기하지 못할 사랑, 그래서 죽음을 넘어서고 시간을 지워버린 진정 영원한 사랑일 것이다. 그렇다면 천년의 두 배나 되는 이천 년의 사랑이라면 어떨까? 이 글의 제목을 "바이밀레니얼 러브(Bimillennial Love)"로 정했는데 이것은 그대로 직역하면 "이천 년의 사랑"을 의미한다. 우리의 생이 길어봐야 백 년일 것이라면 천년이든 이천 년이든 유한한 인간의 입장에서 체감하는 느낌은 어차피 똑같이 영겁의 시간일 진데 그럼에도 왜 천년도 아니고 이천 년일까? 이는 오늘 소개할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이천 년 전의 역사적 사건에서 모티프를 따 왔으며 또한 둘 다 환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두 영화가 공통으로 취하고 있는 그 이천 년 전의 역사적 사건과 배경은 바로 진시황이다. 진시황의 시대가 대략 B.C. 250년 경이며 이때 맺어진 두 남녀의 사랑은 진시황에 의해 죽음으로 찢긴다. 그러나 운명이 점지해 준 강렬한 이 사랑이 이천 년이 지나 환생을 통하여 현대에서 다시 애틋하게 펼쳐지는 스토리를 두 영화는 갖고 있다. 이렇게 두 영화 모두 이천 년을 뛰어넘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기에 이 글의 제목을 "바이밀레니얼 러브"로 정했다. 진시황이라는 폭군이 선물한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을 이천 년 후에 환생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시킨다는 공통 플롯을 가진 두 영화는 바로 1986년에 제작된 <몽중인(夢中人)>과 1989년에 제작된 <진용(秦俑)>이라는 영화다. 두 영화가 이렇게 서로 비슷한 구도를 갖고 전개되지만 전개되는 내용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에 관객이 느끼게 될 서정은 사뭇 다르기에 함께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1989. 진용(秦俑, A Terra-Cotta Warrior)
진용(A Terra-Cotta Warrior, 秦俑), 정소동 감독, 장예모, 공리, 우영광 주연, 1989
1989년에 제작된 영화 <진용>은 특이하게도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으로 이미 세계적 거장으로 칭송받는 영화감독 장예모가 감독이 아니라 주연 배우로 출연한 영화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한다면 그가 직접 출연한 영화는 <진용>이 유일하다. 게다가 여자 주인공은 송강호가 봉준호의 페르소나라 불리듯 장예모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공리가 맡아서 1인 3역을 해 낸다. 평소 감독과 배우로 꾸준히 호흡을 맞추던 두 사람이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공리가 소화해낸 세 명의 역할은 두 번의 환생을 통해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로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이다. 마지막 인물은 짧은 등장이지만 무려 이천 년을 기다려 환생한 두 번째 등장은 첫 번째 등장과는 인물의 성격이 완전히 정반대이기에 공리의 연기력으로 훌륭하게 커버를 해야 할 작품이었고 공리는 또 그렇게 했다. 감독인 정소동은 자신의 필모 대부분을 무술 감독으로 채우고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홍콩 영화에서 무술 감독으로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감독으로 참여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지만 <천녀유혼>이나 <소오강호>, <동방불패> 등, 제법 굵직한 영화들이 존재한다. 진시황 시대와 환생을 주요 모티프로 하는 영화 <진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 현재
1990년 중국 시안(西安), 관광버스 한 대가 박물관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멈춰 선다. 버스가 멈춘 곳은 세계적 관광 명소인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秦始皇兵馬俑博物館)"이다. 1974년 우물을 파던 어떤 농부에 의해 발견된 이 병마릉은 여러분들도 익히 본 적이 있는 테라코타(토용, 土俑)들이 대량으로 발견된 대규모의 무덤으로 진시황릉에서 4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관광버스에서는 조그마한 일장기를 손에 든 관광 가이드를 따라서 일련의 일본 관광객들이 내린다. 이 관광객 무리들 중 기모노를 예쁘게 차려입은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가 있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일렬로 장엄하게 늘어선 토용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던 그녀는 아래로 내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토용들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한다. 사실 1974년에 발굴된 이곳은 워낙 대규모인 데다 이천 년이란 오래 세월을 품은 능(陵)이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인 지금까지도 발굴 및 복원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따라서 1990년이라면 당연히 발굴은 한창 진행 중이었을 터였고 그런 발굴 단원들 중 한 명이 세심한 눈으로 관찰 중인 그녀를 토용들 사이로 보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이 발굴 단원의 얼굴은 놀라움과 아련함, 애틋함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마치 그녀를 알고 있었고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 듯... 그러다 토용들 사이로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환한 웃음만 남기고는 동행의 호출에 자리를 떠나 버린다. 하지만 이 발굴 단원은 떠나버린 그녀의 환한 미소를 여전히 부여잡고 있으려는 듯 움직임도 없이 아련하고도 애틋한 그 표정을 얼굴에 담은 채 보일 듯 말듯한 엷은 미소를 입가에 피운다.
2. 60년을 거슬러
이 발굴 단원은 왜 그 소녀를 그렇게 아련하고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본 걸까?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면 6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이제 시대를 1930년의 중국 시안으로 돌려 보자. 1930년이라는 시대에 걸맞은 소형 여객기 한 대가 상공에서 착륙하고 착륙장에는 수많은 인파들과 기자들이 모여 있다. 여객기의 문이 열리자 중년의 한 남자가 내렸고 그는 곧바로 기자들에게 둘러 쌓인다. 뒤이어 요란스런 화장을 한 여인이 비행기 속에서 나오는데, 이 여인은 바로 1990년의 그녀, 발굴 단원이 애틋하게 바라보게 될 그 일본 소녀다. 이 여인은 마치 여자 주인공인양 온갖 세리머니를 펼치지만 별 관심을 받지 못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일련의 무리들은 중국 독립군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찍는 스텝과 배우들이었고 촬영지가 된 그 마을은 환영 행사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자들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남자 주인공 백운비(우영광 분)의 행방을 물었고 이때 하늘에서 경비행기 한 대가 화려한 비행을 하며 착륙한다. 이 비행기는 백운비가 직접 몬 비행기였다. 주리리(공리 분)라는 이름의 그녀는 백운비에게 달려가 온갖 애교로 자신을 어필하지만 백운비는 이내 그녀를 무시한 채 여자 주인공과 손을 잡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보아하니 주리리는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무명의 배우였고 어떻게든 인기 스타 백운비에게 잘 보여 신데렐라가 되고자 하는 철없는 여배우일 뿐이다.
영화 촬영 내내 주리리는 백운비를 스토커처럼 예의 주시하는데,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그녀는 백운비가 홀로 어딘가로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간다. 백운비는 촬영장 외곽의 어느 동굴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발굴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고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백운비는 진시황릉을 찾아 그 유물들을 영국으로 팔아넘기려는 거대 규모의 전문 도굴단 수괴였다. 영화 촬영 자체도 도굴을 위한 페이크에 지나지 않았기에 영화감독을 비롯한 스텝 대부분이 도굴 단원이었다. 별도로 영입했던 시안의 풍수가가 사기꾼으로 판명나자 백운비는 현장에서 칼로 그를 사살해버린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주리리, 하지만 철없는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이 상황을 모두 영화 촬영의 일부로 생각하고 마냥 즐거워할 뿐이다. 백운비의 입장에서는 주리리는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기에 제거해야만 했다. 하지만 배우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의심을 살 수 있기에 자신의 비행기에 태워 하늘에서 그녀를 죽이고 추락사로 위장하고자 한다. 신이 나서 백운비의 비행기에 탑승한 그녀, 백운비가 실수로 총을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주운 철없는 주리리는 영화 소품으로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다루다 총을 발사해서 비행기를 고장 내 버린다. 백운비는 낙하산을 착용하고 매정하게도 혼자만 탈출했고 주리리를 실은 비행기는 균형을 잃은 채 땅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비행기는 나무들에 튕겨 강가의 평지에 처박혔지만 이내 평지가 싱크홀처럼 쑥 꺼지면서 그녀를 태운 경비행기를 땅 속으로 삼켜 버린다.
비행기가 떨어진 곳은 땅 속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곳은 앞으로 44년 후에나 발견될 바로 그 병마릉이다. 광활한 공간 저 멀리, 환한 빛이 새어 나오는 곳에 우뚝 선 토용 한 구... 비행기 추락의 충격이 전달된 듯 토용의 진흙이 갈라지더니 그것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말라버린 진흙이 부스러져 모두 떨어져 나가자 마침내 토용은 커다란 날숨을 토해내고는 눈을 번쩍 떴다. 이천 년 이상을 버티고 서 있던 토용이 귀신처럼 움직인 것이다. 진흙 속의 그는 60년 뒤에 병마릉의 토용들을 복원하게 될 그 발굴단원이었다. 성큼성큼 걸어 비행기 쪽으로 다가간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주리리를 발견한다. 순간 서글픈 미소만 남긴 채 붉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거대한 불 속으로 뛰어드는 주리리의 환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주리리를 깨우며 '동아'라고 그녀를 부른다. 정신을 차린 주리리, 그녀의 눈 앞엔 갑옷을 입은 흙투성이의 귀신이 서 있다.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주리리를 계속 '동아'라 부르며 좇아가는 이 남자, 자신의 이름은 몽천방(장예모 분)이며 진시황의 호위무사라면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냐고 진지하게 되묻는다. 비행기 주위를 요리조리 도망치던 주리리는 비행기에 올라 백운비의 총을 꺼내 들어 그를 향해 발사했다. 총알은 몽천방을 관통했지만 그는 피만 흘릴 뿐 멀쩡하다. 귀신이야! 강시다! 주리리가 혼비백산하여 난리를 치고 있을 때 백운비 무리들이 들이닥쳐 목격자 주리리를 포박하고자 했다. 몽천방은 계속 그녀를 '동아'라 부르며 위기에 처한 주리리를 보호하고자 일당 백으로 그들과 맞섰다. 진시황의 호위무사답게 화려한 칼솜씨로 그들을 물리치는 동안 주리리는 비행기를 몰아 탈출을 시도했고 몽천방도 그녀를 따라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비행기 조종 경험이 전무한 그녀의 비행은 병마릉의 벽을 뚫고 나가서 비행기를 강물에 처박아 버린다.
몽천방은 주리리에 대하여 아주 지극정성이다. 강물에 추락한 비행의 충격으로 자신도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주리리를 먼저 챙긴다.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도중 그녀의 하이힐 굽이 부러지자 그녀를 직접 업고 걸었다. 그런 그의 정성에 주리리도 경계를 풀었고 이천 년을 산 이 남자의 말을 그대로 믿게 된다. 촬영장에 복귀한 뒤에도 지극정성은 계속되는데 주리리에게 위해가 되는 장면을 연기할 때에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뛰어든 몽천방 때문에 감독은 컷을 외쳐야 했다. 이런 지극정성을 눈여겨본 백운비는 주리리를 통해서 능에서 나온 몽천방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진시황의 무덤을 찾기 위해 그를 이용하기로 한다. 주리리에게 여주인공을 시켜 주겠다고 거짓말을 한 후 몽천방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 호텔로 돌아온 그들, 뜬금없이 몽천방의 머리를 빗겨주는 주리리, 이때 몽천방이 물어본다, 당신이 내 머리를 빗겨줬던 걸 기억하오? 지금 빗겨주고 있잖아요. 다 잊어버렸구려, 몽천방은 품고 있던 하얀 비단신을 주리리에게 건넨다, 당신 거요... 하지만 주리리는 비단신에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금방 돌아오겠다며 애타게 동아를 부르는 몽천방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몽천방의 낙담, 그녀는 자신을 잊어버린 게 분명하다.
사실 주리리의 목적은 몽천방의 머리카락이었다. 백운비가 지시한 대로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백운비에게 전달했다. 백운비는 몽천방의 갑옷에서 나온 조각과 그의 머리카락을 동업 중인 영국 밀매단 두목에게 맡겨 탄소 연대 측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그의 갑옷이나 머리카락은 이천 년이 넘은 것으로 판명되었고 이는 진시황의 호위무사라는 몽천방의 말이 허왕된 소리가 아님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몽천방은 그 시점에서 진시황릉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백운비의 목적은 바로 진시황릉의 위치였다. 그는 몽천방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고급 호텔 식당이 요구하는 격식에 맞게 현대식 양복으로 단장된 몽천방을 역시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주리리가 데리고 나타났다. 현대식 식사에 어안이 벙벙한 몽천방에게 백운비는 노련하게 진시황의 근황(?)을 물었다. 몽천방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불로장생 약을 먹었기 때문이라며 만약 시황제도 그 약을 먹었다면 지금도 살아있을 수 있기에 자신은 당장 황릉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렇지! 백운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기어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럼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겠소!
백운비의 계략을 선심으로 받아들인 몽천방은 그에게 진시황릉의 위치를 알려 준다. 백운비는 기차라는 신문물을 소개하며 주리리와 함께 그를 태웠다. 기차는 황릉으로 간다고 했지만 시실 황릉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기차였고 백운비는 기차가 출발하면 부하들에게 그와 주리리, 영화 관계자들, 심지어 영국 동업자들까지 모두를 모두 죽이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비행기로 황릉으로 향한다. 기차 객실에서 마주 앉은 몽천방과 주리리, 몽천방은 넋두리하듯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깨어보니 이천 년이 흘렀소... 하지만 주리리는 그의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듣는 둥 마든 둥 졸기까지 한다. 낙담한 몽천방, 난 영원을 믿었는데 당신은 모든 걸 잊어버리다니, 하늘이 내게 내린 벌이오. 미안한 마음이 든 주리리, 좋아요, 당신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게요, 동아 이야기나 해 주세요. 믿지도 않는데 얘길 해서 뭘 하겠소? 내가 동아도 아닌데 왜 당신 말을 믿어야 하죠? 갑자기 주리리의 손을 거칠게 낚아채는 몽천방,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황릉은 서쪽이요! 손을 놓으라며, 자신은 모른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주리리는 백운비의 지시였음을 실토했다. 분노에 찬 몽천방, 날 팔아? 왜 날 배신한 거요? 칼을 챙겨 객실 밖으로 나갔을 때 백운비의 부하들이 이미 무장을 하고 있었고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몽천방은 백운비의 부하들을 물리치며 화물칸으로 가서 주리리를 말에 태우고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몽천방은 곧장 말의 방향을 황릉으로 돌렸다. 만리장성을 따라 황릉으로 갈 심산으로 장성 쪽으로 말을 몰았다. 세월 무상을 보여주듯 장성은 자신의 시대와는 다르게 상당 부분 허물어져 있다. 황망하게 변해버린 장성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 역시 과거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자신과 동행하는 그녀, 주리리도 이젠 더 이상 자신의 동아가 아니다. 이렇게 현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애타게 부르던 동아를 놓아 버리는 순간 몽천방에겐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몸조심하시오, 그녀에게 말의 목줄을 건네고는 황릉으로 향하기 위해 몽천방은 홀로 장성 위로 올라섰다. 그렇게 장성을 따라 한참을 걷던 그는 진정 마지막 미련마저 버리기 위하여 소중히 품고 있던 그 비단신마저 장성 아래로 던져 버렸다. 수많은 자신의 후손들이 자신보다 먼저 가버린 쓸쓸한 무상의 길을 그는, 미련도 회한도 없이 그저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자 그렇게 거꾸로 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퉁이 무너진 벽을 돌아섰을 때... 주리리가 앞에 서 있었다. 영화계에선 모두 날 무시했어요, 그러고는 그가 버렸던 그 비단신을 그에게 건넨다, 당신만이 내게 잘해줬어요, 동아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어요,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이 말과 함께 주리리는 그의 품에 안겼다. 힘껏 주리리를 껴안으며 동아를 부르는 몽천방의 얼굴에는 비로소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몽천방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주리리를 앞에 태우고 말을 몰아 황릉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몽천방과 주리리가 황릉에 도착했을 때, 백운비와 부하들의 도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본릉(本陵) 입구에서 길이 막힌 이들이 입구를 뚫고자 화약을 설치하던 중 몽천방이 나타나 현란한 칼 솜씨로 그들과 맞섰다. 화약이 폭발하면서 입구가 뚫렸고 폭발로 어수선한 와중에 몽천방이 주리리를 데리고 재빨리 입구로 들어섰다. 하지만 본릉의 입구는 이중문이었고 두 번째 문이 닫히는 순간 백운비도 몸을 날려 가까스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곧바로 닫혀 버렸고 이제는 백운비와 몽천방, 주리리 셋만이 본릉으로 가는 회랑에 갇히게 된다. 진시황이 자신의 릉을 숨기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은 여러 비사들이 말해주고 있는 바다. 영화도 역시 비사를 차용하는데 그 방식은 해리슨 포드 주연의 유명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그것이다. 황릉 내부는 수많은 함정과 트랩으로 가득한데 몽천방과 백운비가 서로 칼과 총을 겨누는 사이 천장에서 뾰족한 송곳 철제문들과 창들이 그들을 향해 내리 꽂힌다. 재빨리 그것들을 피해 회랑 반대 편으로 건너갔지만 그곳 역시 벽으로 막혀 있고 한술 더 떠서 회랑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양쪽 벽이 안쪽으로 좁혀 들며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이들은 압사당할 것이다. 몽천방은 담담했지만 백운비와 주리리는 살기 위해 좁혀 드는 양 벽을 온몸으로 막아 버티고자 한다. 운 좋게도 주리리의 하이힐 굽이 겉 벽을 뚫고선 벽 속에 있던 버튼 같은 것을 누르게 되었고 순간 벽 속에서 손잡이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걸 잡아당기자 회랑의 반대편 문이 열렸고 눈에 펼쳐진 것은 종횡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수많은 토용과 토마들이다. 갑자기 횃불이 켜지며 길을 밝혔고 그 장엄한 사열 뒤로 시황제가 누워 있을 커다란 관으로 향하는 계단이 높게 펼쳐져 있다. 마침내 본릉에 들어선 것이다. 몽천방이 계단 아래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폐하'를 외치며 예를 다하는 사이 백운비는 황제의 관이 있는 단상에 올라 기쁨에 차서 이 보물들은 모두 자신 거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에 대한 몽천방의 진중한 한 마디, 넌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다!
몽천방의 말대로 이미 본릉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상한 장치들이 움직이며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능 자체가 위로 솟구치기 시작해서 비행장 활주로를 뚫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덕분에 백운비와 그의 부하들이 다시 만나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을 때 능과 함께 솟구쳐 오른 수많은 토용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천 년 만에 부활한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일 것이다, 바로 황릉의 수호다. 곧이어 토용들과 백운비 무리들과의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고 몽천방은 백운비와의 최후의 결전에 들어간다. 백운비는 주리리를 인질로 삼아 비행기를 몰았다. 주리리가 백운비의 비행을 방해하는 사이 몽천방은 비행기에 올라 백운비와 결투를 벌인다. 백운비는 자신을 방해하는 주리리를 뒤로 밀치고는 그녀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버렸다. 치열한 사투를 벌인 끝에 백운비를 겨우 쓰러뜨렸지만 조종사 없는 비행기는 제멋대로 움직이다 황제의 커다란 관과 충돌하며 멈춘다. 백운비는 여전히 백만장자라는 일장춘몽을 버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관 쪽으로 다가가 관 뚜껑을 열었다. 역시 인디아나 존스의 그것처럼 이상한 장치들이 움직이더니 관은 폭발해 버렸고 그 화염이 백운비를 삼켜 버린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본릉은 다시 땅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총에 맞아 이미 치명상을 입은 주리리를 안고 안타깝게 동아를 부르는 몽천방, 땅은 계속 본릉을 집어삼켰고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점차 아래로 가라앉는 둘 위로 흙들이 계속 쏟아져 내린다. 이제야 내가 동아란 걸 알겠어요, 주리리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영원한 나만의 동아요, 몽천방의 이 말에 하지만 너무 늦었다고 답하는 그녀, 기다려줘요, 다시 돌아올게요... 이 말을 남기고 주리리, 아니 동아는 숨을 거둔다. 꼭 기다리리다, 몽천방은 쏟아지는 흙더미 속에서 이미 숨을 거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렇게 주리리는 숨을 거두었고 죽지 못하는 몽천방은 두터운 흙무덤을 뚫고 올라와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아갔다.
3. 이천 년 전의 비가(悲歌)
몽천방이 그렇게 외쳐대던 동아는 과연 누구일까? 동아가 주리리일까? 몽천방이 애지중지하던 비단신은 어떤 사연일까? 몽천방과 본릉의 토용들은 어떻게 이천 년을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여러 의문들을 풀려면 이번에는 시간을 이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진정 바이밀레니얼로 건너뛰어 시대는 기원 전의 진시황에까지 다다른다. <열국지(列國志)>의 배경이 되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통일한 진시황은 자신의 사후를 염려하여 비밀리에 거대한 무덤을 건설한다. 성품이 올곧고 강직한 몽천방은 바로 이 시대, 진시황의 무덤 건설 담당자였다. 어느 날 사냥을 나왔던 진시황은 여전히 진나라를 인정하지 못하는 6국의 잔존 충신들에 의해 암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몽천방이 그를 구해준다. 진시황은 몽천방을 자신의 호위무사로 임명하고 황궁으로 그를 불러들인다. 황궁으로 가는 길에 한 마을을 지나게 되는 몽천방, 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한참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진행 중이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그 난리를 지켜보던 몽천방은 바닥에 떨어진 한 권의 책을 주워 책 주인의 딸에게 몰래 전달한다. 그리고 진시황의 충실한 부하로서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하게 된다. 그 무렵 진시황은 사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영생을 갈구하게 되고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 명을 골라 봉래(蓬萊)로 파견하기로 한다. 그렇게 뽑힌 동녀들 중 한 명이 몽천방이 책을 건네줬던 동아였다.
동아는 영원한 제국이라는 진시황의 허황된 염원에서 출발한 이 과업에 동의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분서갱유라는 희대의 홀로코스트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던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리라. 동아는 과업을 위한 동녀들의 삶에서 탈출을 시도했고 곧바로 사로잡히게 된다. 이에 칼을 뽑아 들고 저항했지만 몽천방의 얼굴에 흉터만 남긴 채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어느 날, 정자에 모인 동녀들의 즐거운 소일과 건너편에는 몽천방이 홀로 검술 연습에 한창이다. 음악을 듣자며 다른 동녀들이 모두 사라진 정자에 동아 혼자서 젓가락을 들고 빗물이 담긴 사기그릇들을 두드린다. 동아가 튕기는 소리는 글라스 하프 연주가 되어 은은히 울려 퍼지고 이 소리에 맞춰 몽천방의 검술 연마는 절정에 다다른다. 아마도 이 장면은 후에 몽천방 역의 장예모가 직접 감독했던 영화 <영웅: 천하의 시작(英雄, 이연걸, 양조위, 장만옥 주연, 2002)>의 그 유명한 빗속 검투신의 모티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릇이 깨지면서 몽천방도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데, 갑자기 끊긴 연주에 정자로 갔을 때 동아는 깨진 사기 조각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상태였다. 몽천방은 재빨리 동아의 옷소매 일부를 찢어 상처를 싸매고 그녀를 구해준다. 이 시점에서 이미 둘의 맘 속에선 사랑의 불씨가 피어올랐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었다.
동아를 구하느라 시황제의 부름에 늦게 나아간 몽천방에 심기가 상한 황제는 별도의 지시도 없이 그냥 떠나 버린다. 거대한 황궁 계단 위에서 몽천방은 몰아치는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몇 날 며칠을 황명을 받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그 자세 그대로 홀로 대기하고 있어야만 했다(이 장면은 후에 강제규 감독이 만든 <은행나무 침대(The Gingko Bed,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 주연, 1996)>에서 하염없이 날리는 눈발 속에서 무릎을 꿇은 채 몇 날 며칠을 기다리던 황장군의 모티프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런 몽장군을 먼발치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동아... 하지만 황제의 변덕은 몽천방의 충성도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황제는 이런 그를 불러 최측근이 아니라면, 한번 불려 들어간다면 비밀 유지를 위해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비밀 황릉으로 그를 불러들이고는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 그 임무는 불로장생초를 구하기 위해 머나먼 땅 봉래로 떠날 오백의 동남동녀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출정 전날 개울가에서 발을 씻고 있는 동아 뒤로 몽천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몽천방은 그녀의 이름을 물었고 그녀는 '동아(冬兒)'라고 답했다. 남자도 자신의 이름을 말했지만 동아는 당연히 장군인 몽천방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다. 개울가 돌담 위에 놓인 예쁜 비단신을 집어 든 몽천방, 동아는 어릴 때는 가난해서 못 신었고 지금은 아까워서 못 신고 있다고 한다. 손목의 상처가 어떤지 물었을 때 동아는 몽천방이 싸매 준 손목의 천조각을 가만히 바라보다 일어서서 눈물을 흘린다. 봉래는 먼 곳인가요? 내일 떠나는가요? 와락 몽천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다 말없이 떠나 버린다. 여전히 몽천방의 손에는 그녀의 비단신이 들려져 있었는데, 바로 그가 이천 년이 넘도록 품게 될 그 비단신이다.
그날 밤 동아는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바깥으로 나온다. 여기저기를 헤맸지만 기실 그녀는 몽천방을 찾는 듯하다. 그러다 불로환 제조소 입구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 운명이어야 하지 않을까, 금지된 사랑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이미 둘의 가슴은 서로에 대한 열망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버렸다. 제조소 안에서 둘은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들의 사랑이 절정에 치달을 수록 마법처럼 불로환도 점차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황홀한 사랑의 시간이 지난 다음 남자의 머리를 빗겨주는 동아에게 몽천방이 말한다, 우리는 대역무도의 죄를 저질렀소, 내겐 죽음만이 있을 뿐이오. 비장하게 동아의 비단신을 챙기는 몽천방에게 동아가 말한다, 저만 살 수는 없어요, 함께 죽겠어요, 동아는 목을 내밀었다. 우리, 내세에서 만납시다, 몽천방이 칼을 뽑아 들었을 때 숨어서 지켜보던 제조장을 발견하고는 대신 그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제조장은 이미 상황을 판단한 뒤였다. 이렇게 둘만 죽는다면 진노한 진시황이 동남동녀를 모두 죽일 것이며 내일 출항이니 이 사실을 비밀에 묻는다면 모두 살 것이고 자신이 동아를 잘 보살피겠다고 한다. 몽천방은 동아에게 내일 떠나라고 말하고는 눈물짓는 제조장을 사이에 두고 안타까운 이별을 한다. 그 시점에서 마침내 기다리던 불로환 한 알이 완성되었다. 금단을 진상하면 봉래로 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애타는 동아의 말에 제조장은 아직 임상 시험을 하지 않았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라고 했다. 제조장은 금단 한 알만을 남긴 채 나머지 약제들을 모두 물속에 버렸고 흘러내린 물은 바깥으로 나아가 군사들과 말들이 마시게 된다. 불로장생의 약 성분이 섞인 이 물을 마신 병사들과 말들은 토용과 토마가 되어 이천 년 후에 부활하여 끝까지 황릉을 수호하게 된다.
다음 날이 되어 오백의 동남동녀들은 봉래로 떠나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 속에는 물론 동아도 있었지만 동아는 몽천방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기약 없는 먼 길을 떠나 그와 헤어질 바에는 차라리 그와 함께 죽고자 결심했고 불로환 금단을 몰래 훔쳐 바닷물로 뛰어든다. 이런 동아의 행동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제조장은 그저 멀리서 지켜보다 동아가 물속으로 뛰어들자마자 출항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급하게 출항 명령을 내린다. 땅 위의 군사들은 갑작스러운 배의 움직임에 우왕좌왕하며 몽천방에게 보고했고 몽천방이 부둣가로 나왔을 때에는 배는 선착장을 떠난 뒤였다. 그런 소란 속에서 병사들이 동아를 포박한 채로 잡아 몽천방 앞에 데리고 왔다. 배는 떠났지만 전 가지 않았어요, 당신과 생사를 함께 하겠어요. 몽천방이 칼을 뽑아 들고 내리쳤지만 그 칼부림은 포박된 동아의 줄을 자를 뿐이었다.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부하들 앞에서 몽천방은 동아를 껴안고는 칼을 땅바닥에 던져 버린다.
몽천방과 동아는 곧 체포되었고 황제 앞으로 끌려갔다. 이제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은 죽음뿐이다. 동아는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고 몽천방은 산 채로 진흙으로 매장되어 황릉을 지키는 토용이 될 운명이다. 몽천방을 아꼈던 황제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하고 동전을 던진다. 앞면이 나오면 그를 살려 주기로 했고 황제의 내심의 바람대로 땅에 떨어진 동전은 앞면을 향했다. 하지만 동아 없는 그의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몽천방은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으며 차라리 토용이 되어 천년만년 능을 지키겠다고 한다. 황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형 집행을 명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 앞에 선 동아는 갑자기 기둥에 포박된 몽천방을 껴안았다. 마지막 키스를 하면서 몰래 훔친 금단을 입에서 입으로 전달했다. 불에 타 죽으면 이생에선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없어요, 이 말만 남긴 채 동아는 불 속으로 향한다. 몽천방이 안타깝게 그녀의 이름을 외쳤을 때 동아는 잠깐 돌아서서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비처럼 기나긴 옷깃을 펄럭이며 뜨거운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장면은 매우 비장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한다. 특히 엽천문이 부른 이 영화의 OST "분심이화(焚心以火)"의 애절한 가락이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화면은 온통 붉은색의 화염으로 가득하다. 관객의 시 청각을 이렇게 극단으로 몰고 간 뒤에 상반신을 돌려 옅은 미소만 남기고는 옷자락을 펄럭이며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이 장면은 세상의 모든 애절함과 안타까움, 회한을 모두 응집시킨 듯한 감정의 최고조를 보여 준다.
이렇게 불 속으로 사라진 동아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선 몽천방의 몸을 이제 진흙이 덮기 시작한다. 그의 몸 마디마디를 진흙이 꼼꼼히 채웠고 마지막 진흙 한 덩어리가 그의 두 눈을 덮었을 때 화면은 암전된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 없는 운명이다. 동아가 먹여 준 불로환으로 인해 그는 산 채로 이천 년을 건너뛰었고 마침내 주리리로 인해 1930년에 다시 깨어나게 된다. 불 속으로 사라진 동아 역시 이천 년 후의 주리리로 환생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때에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몽천방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또다시 환생하리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물론 그 기다림이 몇 천년, 몇 만년이 될 지라도... 다행히도 이번의 기다림은 너무나도 짧아서 겨우 60년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산 증인이었던 병마릉의 발굴단원으로 있으면서 그녀를 기다렸고 동아는 이번에는 일본인 관광객으로 그의 앞에 섰다. 이제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다시 꽃을 피울지는 관객의 몫이 되겠지만 말이다.
1986. 몽중인(夢中人, The Dream Lovers)
몽중인(The Dream Lovers, 夢中人), 구정평 감독, 주윤발, 임청하, 양설의 주연, 1986
<몽중인>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감독 구정평에 의해 1986년에 제작된 영화다. 감독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남녀 주인공은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두 배우, 80년대 후반 대한민국 뭇 남성들의 우상이었던 주윤발과 90년대 초반, 역시 대한민국 못 남성들의 연인이었던 임청하가 맡은 영화다. 사실 <몽중인> 자체는 크게 알려진 작품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에 개봉을 했는데 개봉이 가능했던 이유는 솔직히 주윤발 덕이었다. <몽중인>과 같은 시기인 1986년에 제작된 <영웅본색>이 우리나라에서 메가 히트를 치면서 주윤발 신드롬이 불었고, 80년대 후반에는 명작이든 졸작이든 주윤발이 출연한 영화는 무조건 수입해서 개봉한 덕에 <몽중인> 역시 당시의 주윤발 패키지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임청하 역시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였긴 했지만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원톱을 찍은 시기는 1992년 <동방불패> 이후 불어닥친 임청하 신드롬을 통해서였다. 사실, <몽중인> 개봉 당시였던 8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의 중화권 여배우 원톱은 <천녀유혼>의 왕조현이었다. 사정이 그러했기에 <몽중인>은 그저 그런 감독에, 그저 그런 여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에 지나지 않았고 주윤발 때문에 주목이 가는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별 기대 없이 봤다가 건지게 되는 수작이 있다. 솔직히 필자도 주윤발 때문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지만 이 영화는 환생을 주제로 환생 전의 자신들의 기억을 추리물처럼 따라가는 잘 짜인 구성과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돋보이는 수작임에 틀림없다.
1. 그 남자, 송위
영화는 아쿠아빛 심연의 연못 속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연못 바닥에는 진시황의 병마릉에서나 볼 수 있는 토용 하나가 누워 있다. 점차 이 토용은 수면을 향해 천천히 떠오르고... 이와 동시에 화면은 어느 콘서트 장으로 전환되는데 화려한 조명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협주가 울려 퍼지고 연못 속의 토용과 꼭 닮은 얼굴의 지휘자가 열정적인 지휘를 하고 있다. 이렇게 화면은 떠오르는 토용과 부지런한 손놀림의 지휘자를 번갈아 보여준다. 마침내 토용이 연못 위로 완전히 떠오르는 순간, 협주의 절정에 다다른 지휘자는 그대로 굳어버린 듯 지휘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멈춰 버린다. 관람석에서 지휘자의 연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달려 나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부축했을 때 그는 눈을 감은 채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쓰러졌던 이 남자의 이름은 송위(주윤발 분),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그에게는 8년을 동거하며 결혼을 약속한 아리라는 연인이 있다. 물론 지휘하면서 그가 쓰러졌을 때 부축을 했던 그녀다. 송위의 활동 무대가 미국이었기에 둘은 뉴욕에서 살다가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할 기회가 생겨 홍콩으로 돌아왔다. 급하게 귀국했기에 오피스텔에서 임시로 거주하던 차에 최근 결혼해서 함께 살 집을 장만했다. 점술가인 아리의 할머니가 화를 막아준다며 선물했던 풍경을 뉴욕에서부터 지금까지도 버리지 않고 가져와 새로운 집 천장에 달아 두었다. 홍콩의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둘은 즐거운 미래를 그렸지만 할머니의 풍경 때문일까? 송위는 그 집에서 진나라 복장을 입은 채 춤을 추고 있는 어떤 여인의 환영을 보게 된다. 오케스트라 지휘 시에 봤던 토용의 환영과 새 집에서 보게 된 진나라 시대의 여인의 환영... 어떤 연관이 있을 듯해서 아리와 함께 진시황 유물전이 개최 중인 박물관에도 가봤지만 그곳에서 별 단서는 찾지 못한다.
아리와 송위는 환영의 비밀을 풀기 위해 그녀의 할머니를 찾았다. 점술가인 할머니는 비록 시각 장애인이었지만 송위를 금방 알아본다. 송위를 앞에 앉혀 두고는 그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지며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8년 전 송위를 만난다는 아리의 편지를 받고 그를 줄곧 만나고 싶었다면서 요즘 주변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묻는 것이다. 토용과 진나리 시대의 여인에 대한 환영을 이야기했을 때 할머니는 진지하게 송위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묻는다. 정유년 5월 8일 자시, 진나라 시대의 사람이군, 송 선생, 당신은 올해 2,197세입니다, 진시황 시대의 사람이에요. 황당해하는 아리의 참견에는 상관없이 이상한 구전동요 같은 걸 한 곡조 뽑은 뒤 다소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자신만 쳐다보는 송위를 보며 말을 잇는다. 송 선생, 이건 전생의 일이라 당신도 모를 겁니다, 아리에게 따로 할 말이 있으니 먼저 나가서 걸으며 잘 생각해 봐요, 인연에 따라오고 인연에 따라가는 겁니다, 이건 좋은 일이에요... 먼저 밖으로 나간 송위는 옛 신을 보내고 새로운 신을 맞이하는 그 마을의 토속 제사를 구경하며 아리를 기다렸다. 그러다 그는 또 진나라 여인의 환영을 보게 되는데 여러 겹의 옷을 입은 채 여전히 자신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정신을 차린 송위는 결심한 듯 발길을 돌려 박물관으로 향한다.
2. 그 여자, 장예화
한 쌍의 남녀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 누운 채로 여자가 말한다, 내가 죽으면 같이 죽겠다고 말해줘, 죽은 뒤의 적막을 견딜 수는 없을 거야. 남자는 여자의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다시 여자가 말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한 쌍의 혼백이 될 거야. 남자가 말한다, 아니, 난 혼백이 되기 싫어. 남자는 여자의 볼에 입을 맞춘 뒤 말을 잇는다, 난 아름다운 육체를 좋아해, 당신의 육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좋아, 아주 실제적인 느낌이야. 여자가 답한다, 당신을 내 속에 담아두고 싶어, 육체뿐만 아니라 혼백까지도 말이야. 흘러나오는 음악과 화면의 톤은 아주 몽환적이기에 누군가의 꿈임을 직감할 수 있다. 두 남녀는 진나라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으며 집안의 구조도 그 시대의 것이다. 남자는 바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쓰러져버린 바로 그 남자다. 하지만 여자는 그가 쓰러졌을 때 부축했던 그 여자는 아니다. 이 꿈은 꿈속에서 사랑을 나누던 여자 쪽의 꿈이며 그들의 사랑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꿈에서 깨어난다. 뜨거웠던 사랑의 꿈이 망측하다고 생각했는지 욕조에서 여자는 입이며 몸이며 비누로 세게 문질러 닦아낸다. 하지만 몸을 헹구면서 이내 그렇게 싫지는 않았는지 다시 그 꿈을 떠올리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이 여자의 이름은 장예화(임청하 분), 보석 감정가로 일을 하고 있다. 예화 역시 자신의 꿈이 진나라 시대와 관계가 있을 것 같아 유적 발굴에 오랫동안 종사한 병마릉의 권위자인 아버지와 같이 진시황 유물전을 찾았다. 병마릉에서 출토된 여러 토용들을 둘러보며 진시황과 토용에 대한 아버지의 설명을 듣던 중 아버지의 지인이 인사를 걸어온다. 그 지인은 이창(임총 분)이란 이름의 아버지 후배였는데 마침 그 전시회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예화는 한 커플을 우연히 발견하는데, 커플의 남자는 꿈속에서 봤던 남자와 꼭 닮은 사람이었다. 예화는 무작정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입구에서 그 남자의 얼굴이 크게 담긴 오케스트라 협주회 광고를 보게 된다, 바로 꿈속에서 본 그 남자가 맞다. 협주회 광고 속의 주인공은 송위란 남자다. 송위와 아리 커플은 전시회장에서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지만 예화는 막연하나마 단서 하나를 건졌다. 사무실로 돌아온 예화는 송위가 속한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연히 다시 길을 나선 예화, 차를 몰고 가다 이번에는 끔찍한 환영을 보게 되는데, 꿈속의 그 남자가 밧줄로 목을 포박당한 채로 양 쪽에서 그 줄을 당겨 처형당하는 환영이었다. 놀라서 도로 한가운데 급정차해버린 예화, 화를 내는 주위 운전자의 항의에 아랑곳없이 예화는 결심한 듯 차를 돌려 다시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3. 재회(再會)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전시회장에서 도착해선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하지만 예화는 바로 돌아서 나갔다. 송위가 그녀를 따른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예화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지만 송위의 추격도 만만찮다. 마침내 송위가 그녀의 길을 가로막고 묻는다, 당신은 누구요? 난 당신을 본 적이 있어... 날 어디서 봤죠? 예화의 이 질문에 송위가 차마 환영에서라고 답을 못하자 그녀는 달아나듯 뛰기 시작했다. 송위도 그녀를 따라 뛰었지만 한참의 추격전 끝에 찻길에 막혀 예화를 놓치고 만다. 도망갈 테면 가봐, 네가 날 죽이지 않는 한 반드시 널 다시 만나게 될 터이니,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 이번에는 그녀가 송위를 찾아 돌아왔다. 물론 송위가 찾은 이 여인은 환영 속의 여자였기에, 예화에게도 송위는 꿈속의 남자였기에 이 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첫 만남이 아니라 재회(再會)다, 그것도 이천 년이라는 기다림의 기나긴 터널을 겨우 통과한 후에야 성사된 만남이다. 그렇게 만난 둘은 아리가 새로 장만한 집으로 향한다, 바로 송위가 그 여인의 환영을 본 그곳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예화는 귀신에 홀린 듯 외투를 벗고 바닥에 누웠다. 송위도 천천히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왔다. 송위; 난 당신을 두 번 봤소, 지금 꿈꾸고 있는 게 아니요. 예화; 난 꿈에서도 당신을 봤고 깨어나서도 봤어요, 몇 번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송위; 내가 뭘 하고 있었소? 예화; 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죠. 곧이어 격정적인 키스가 오갔고 둘은 꿈속에서처럼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자 했다. 그러다 예화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송위를 밀쳐내고 도망치듯 주방으로 몸을 피한다. 천상 음악가인 송위는 꿈속에서 예화가 흥얼거렸던 진나리 시대의 그 몽환적인 노래를 기억했고 흥얼거렸다. 우린 아마 이 세상에서 진나리 시대의 음악을 들은 유일한 사람들일 거요. 그리고는 아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했다. 꿈속에서 내가 입은 옷이 진나라 병마용 옷과 비슷하지 않아요? 내가 이천 년 전의 진 왕조 사람이라면 당신도 마찬가지요. 주방에서 나온 예화, 다시 송위 옆에 앉았다. 마음이 오늘처럼 혼란했던 적은 없었어요, 우리가 전생에 진나라 사람들이었나요? 부부였을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송위의 대답에 예화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수치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겠죠, 처음 본 남자에게 이 모양이라니... 송위는 자신이 본 환영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여자 친구와 여기 있었을 때 당신을 처음 봤소, 당신은 나를 향해 이상한 춤을 추며 옷을 벗기 시작했지, 여자 친구는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난 아주 친밀한 느낌이 들었어, 이천 년 전에 우리가 부부였다는 걸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소. 두 번째는요? 송위가 본 두 번째 환영은 신을 보내는 제사 때였다, 당신은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똑같은 춤을 추고 나를 향해서 또 한 겹의 옷을 벗었소. 예화가 물었다, 옷을 몇 겹이나 벗었나요? 잠깐 고민하던 송위의 답, 세 겹... 예화가 웃으며 답한다, 두 겹이에요. 송위가 민망한 듯 웃으며 옷을 너무 많이 껴 입었어라고 했을 때 예화는 놀란 듯 말했다, 꿈속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이제 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여자의 꿈과 남자의 환영은 동일한 것이었음을...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시원한 바닷바람에 풍경이 청량한 소리를 낸다. 예화가 미소를 띠며 말을 잇는다, 이천 년 전에 당신은 이미 열정적이었어요, 쾌감이 절정에 다란 후에도 당신은 날 떠나지 않았죠. 당신은 내 목을 애무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곤 당신의 입술은 아래로 내려가선 내 가슴에서 멈췄죠, 내 가슴을 애무하는 줄 알았지만 당신은 목에 걸려 있던 백옥을 입에 넣었죠... 순간 예화는 그 백옥이 하얀색이 아니란 걸 떠올렸다, 그녀의 눈에 떠오른 백옥은 흘러내리는 붉은 피로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홍옥이었다. 흠칫 놀라 예화는 일어섰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위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얼 봤길래 내게 얘길 안 해주는 거요? 예화는 차마 답을 하지 못한다. 마치 대답을 하기 싫은 듯, 대신 송위를 바닥에 밀쳐 넘어뜨리고는 그의 입술을 애무할 뿐이다. 그렇게 둘은 이천 년 전의 꿈처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사랑의 시간이 끝난 후 둘은 마트로 갔다. 이천 년 동안 못 만났으니 오늘은 실컷 회포를 풀자면서 술과 먹거리를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쇼핑을 하며 서로의 출생지를 물었다. 예화가 산시성(陕西省) 출신이라고 하자 송위도 그렇다고 했다. 예화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그곳에서 고적 발굴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둘은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나이는? 스물여덟, 서로 동갑이다, 심지어 태어난 해와 날짜, 시간까지 동일하다. 꿈이 아니다, 진정 진지해져야 하는 순간인 동시에 자신들의 전생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이들은 어떤 운명의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그저 외면할 수만은 없다. 송위의 여자 친구, 아리가 있지 않은가? 당신에겐 이미 여자 친구가 있잖아요, 그녀가 당신을 무척 사랑하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송위... 당신도 그녀를 사랑하죠? 당신은 지금의 내 여자 친구보다 이천 년이나 먼저요. 그녀가 알게 되면 무척 상심할 거예요. 이천 년 전의 인연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여기서 물건을 사고 있을 리가 없겠지, 안 그래요?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예화가 말한다, 놀리지 말아요, 난 생전 처음 남자와 꿈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거란 말예요.
바닥에 식탁포를 펼치고 음식과 술을 실컷 먹고 마신 둘, 다시 둘의 전생에 대한 추적이 계속된다. 사랑을 나눈 후에 그들도 우리처럼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죠... 꿈속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술잔을 건넨다. 남자가 술잔을 비우자 팔을 뻗어 여자는 다른 술잔을 남자에게 내밀며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흐느낀다. 여자는 울었어요, 그녀는 "안돼요"라며 생이별을 갖고 농담하지 말라고 했어요... 예화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그들의 최후의 만찬이었어요. 그녀가 왜 울었어? 뭘 봤지? 뭘 봤는데 내게 이야길 하지 않는 거야? 여전히 예화는 얘기를 잇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화가 치민 송위는 술잔과 음식들을 받치고 있던 식탁보를 뒤집어 버렸다. 송위는 4일 전 연주회 때 자신이 처음으로 봤던 환영 이야기를 했다, 물 위로 떠오르던, 자신을 꼭 닮은 토용의 이야기를... 진나라 시대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토용을 만든 것이다, 왜, 누가, 무엇 때문에? 마치 내 시체 같았어. 예화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며 그제야 차 안에서 봤던 환영 이야기를 송위에게 해 주었다. 당신이 두 명의 병사에게 목 졸려 죽는 걸 봤어요. 왜 내가 목 졸려 죽었지? 나도 몰라요! 갑자기 진나리 시대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방은 그때처럼 진나리 시대 풍으로 바뀌어 있다.
4. 풀리는 실타래
처음 만나 함께 밤을 보낸 둘은 다음날 아침 자신들이 보거나 꿨던 환영과 꿈의 비밀을 풀기 위해 예화의 집으로 향했다. 병마릉 전문가인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는 전시회장에서 만났던, 전시회 책임자였던 후배 이창과 아침을 먹고 있었다.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딸이 아침부터 처음 보는 남자를 집에 데리고 왔다면? 일반적이라면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화낼 만도 하지만 아버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파악했다. 만난 지 얼마나 되었냐는 질문에 예화는 자신들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며 이 일을 상의드리러 송위를 데리고 왔다고 한다. 자신은 평생 저 남자를 기다려 왔던 것 같다는 딸의 말에 아버지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송위를 본 이창이 무척 당황해하며 생각할 게 있다면서 갑자기 자리를 떠버리기까지 했다. 저간의 둘의 사정을 들은 아버지는 송위를 닮은 토용, 딸과 송위가 보고 꾸었던 동일한 환상과 꿈을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었다. 사실 그럴 수는 없었던 데에는 아버지와 이창도 문제의 토용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피스텔로 돌아간 송위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한 듯하다. 밤새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아리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리는 예화를 직접 보고 싶어 했고 어쩔 수 없이 삼자의 만남은 성사되었다. 그 사이 이창이 다시 아버지를 찾아와 사진 한 장을 보여 준다. 토용의 얼굴을 찍은 사진인데 송위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곧이어 이창은 안주머니에서 홍옥 하나를 꺼내어 아버지에게 내민다.
이창과 한참 깊은 대화를 나눈 뒤 아버지는 예화와 송위를 불렀다. 이창은 지난달에 송위를 닮은 토용이 물 위로 떠올랐다고 하면서 토용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송위에게 보여 준다. 이창의 말로는 이 토용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른단다. 지각의 진동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근 마을 사람들에게 미신 풍조가 생길까봐 지금까지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토용이 왜 호수에 가라앉았는지 예화가 물었다. 사실 가라앉은 사연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와 이창이 그 사연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직접 호수 안으로 빠뜨렸다고 했는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28년 전 산시성에서 둘은 또 다른 동료 왕한과 고적 발굴을 하고 있었다. 당시, 지금은 작고한 예화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한 상태였기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 아버지와 이창, 왕한은 각별한 사이여서 자주 뭉쳐서 고적 발굴 작업을 하러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산시성의 호수 부근에서 진짜 보물을 발견한다. 바로 송위를 닮은 문제의 그 토용이었다. 당시는 시안의 진시황 병마릉이 발견되기 전이었기에 이것이 고고학계의 보물이란 사실을 이들은 충분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이 토용의 가슴팍에서 홍옥도 발견했다. 그러면서 이창은 홍옥을 꺼내 송위에게 보여준다. 예화가 자신의 꿈에서 본 것은 백옥이었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본래는 백옥이었고 붉은색은 피라고 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보물이 될 토용을 뗏목에 싣고 밧줄을 매달아 배로 호수를 건너던 차였다. 문제의 그날 밤, 어머니는 배에서 예화를 조산했고 그 과정에서 숨을 거두었다. 게다가 평소에 얌전했던 왕한이 귀신에 씐 듯 토용의 가슴팍에 있던 홍옥을 독점하고자 파내기 시작했다. 이창이 말리는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이 오갔다. 이 와중에 뗏목이 기울면서 둘은 물에 빠졌고 덩달아 토용까지 호수 속으로 잠기고 말았다. 아버지는 이제 갓 태어난 예화를 품에 안고 있었기에 이런 난리통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물에 빠진 이창과 왕한을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아기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배를 몰아 호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새벽, 호숫가에서 어떤 부부가 아기를 치켜들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길래 아버지도 얼떨결에 예화를 치켜들고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때 그 부부가 치켜들었던 아기가 바로 송위였을 것이다.
이제 자신들의 전생과 인연에 대한 비밀이 어느 정도 풀렸다. 이제 둘은 이 사실을 인정했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들은 서로 이천 년을 기다려 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했다. 그런 기나긴 인내의 시간을 넘어 이젠 둘의 사랑만이 남은 듯했다. 송위는 자신의 짐을 챙기러 예화와 함께 아리와 동거하던 오피스텔로 갔다. 송위 혼자 짐을 챙기러 방으로 들어갔고 예화는 로비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아리였다...
5. 서글픈 아리
한 여인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집으로 들어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남자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찾는데... 숨어있다 갑자기 뛰쳐나온 남자는 그녀를 번쩍 안아 침대로 데리고 간다. 서로 깔깔대며 침대 위에서 포개진 두 남녀는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아리(양설의 분), 송위라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8년을 기다렸다. 8년 전에 만나, 지휘자인 남자를 위해 기나긴 외국 생활을 함께 했고 이제 홍콩으로 돌아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 장만한 신혼집으로 온 두 남녀, 아리는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삶의 단꿈에 젖어 있다. 하지만 남자는 연주회에서 지휘 도중 자신의 얼굴과 꼭 닮은 토용의 환영을 보고는 기절해 버렸고 자신이 본 환영에 대한 의문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했지만 아리 역시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 집에서 남자는 또 어떤 환영을 봤다고 하기 때문이다. 진나라 시대의 어떤 여인이 새로 이사한 집에서 춤을 추고 있단다.
토용 때문에 진시황 병마릉 전시장까지 찾았던 둘,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기에 아리는 혹시나 하여 송위를 데리고 점술가인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송위를 붙잡고 이상한 소리를 했다. 무려 이천 년 전의 사람이라면서 전생의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냥 하는 말이려니 넘기려 했지만 할머니는 진지하다. 송위를 먼저 밖으로 내보낸 뒤 아리에게 진지하게 당부했다; 송위를 보내 주렴, 그 여인이 지금 그를 기다리고 있단다, 송위가 봤다던 환영 속의 여인이 말이다. 둘 모두 2,197세이고 진나라 때의 사람이란다, 그들이 왜 이천 년씩이나 기다렸다 지금에서야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리는 말도 안 된다며 일어섰지만 할머니는 그런 아리를 붙잡고 송위의 몸에는 그 여인의 피가 묻어 있다고 하면서 그를 보내 주라고 한번 더 신신당부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밖으로 나왔지만 송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날 밤 남자는 집에 오지 않았다, 여자는 뜬 눈으로 마냥 기다릴 뿐이었다. 마침내 남자가 왔지만... 남자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남자의 첫마디는 미안하다였다. 그 여자를 만났어? 정말로 당신을 기다리는 여자가 있었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밤새 그를 기다렸다. 그를 찾으러 신혼집으로 가려고도 했지만 한번 더 생각을 했고 결국 생각을 고쳐 먹었다. 꿈속의 여인은 무려 이천 년을 기다렸는데 자신의 8년은 아무것도 아닐 거야... 둘 사이를 방해하지 말라던 할머니의 말도 있었다. 하지만 아리는 참지 못하고 남자의 품에 안겨 매달렸다. 남자는 곤란한 듯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멀뚱히 서 있을 뿐이다. 이제 날 안고 싶지도 않은 거지? 지난밤에 그 여인을 안고 있었지? 남자의 품 속에서 아리는 눈물을 쏟아내지만 송위는 아무 말이 없다. 아리는 그 여인이 직접 보고 싶어졌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부둣가, 송위가 여인을 데리고 나왔다. 그렇게 아리는 송위의 환상 속에서 걸어 나온 여인, 예화와 마주한다. 난 8년을 만났는데 당신은 이천 년이니 내가 졌어요. 예화는 자신들은 아직은 모른다며 한낮의 꿈이라고 했지만 아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둘 사이를 방해 말고 길을 비켜주라던 할머니의 말을 전했다. 당신들은 한 쌍의 혼백 같아요, 그저 혼백으로 남지 왜 환생한 거죠? 예화가 말한다, 혼백으로 남길 바랬지만 이 사람은 육체를 원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환생한 걸 거예요, 차라리 그냥 혼백으로 남았더라면... 아리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난 당신들의 전생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제가 물러나죠. 당차게 돌아서며 아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당신이 고대의 여인이었을 때는 그를 위해 죽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현대의 여인인데 그럴 수 있을까요? 둘은 이 말의 의미를 깨달아야 했지만 이때는 깨닫지 못했다.
아리는 다시 할머니를 찾았다. 송위가 할머니를 찾아왔기에, 그리고 찾아온 이유를 짐작했기에 할머니는 확실하게 아리를 단념시키고자 할 의도에서였는지 별도로 아리를 불렀다. 아리는 옆방에서 할머니와 송위의 대화를 엿들었다. 할머니가 말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왜 환생을 안 했는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건 두 연인이 진나라 사람이란 것뿐입니다, 이천 년 만에 처음으로 환생했고 게다가 서로 상대방을 찾았으니... 송위가 묻는다, 아리에게 예화가 절 따라서 죽었다고 말씀하셨다는데... 할머니가 답한다, 당신의 머리와 얼굴을 만져보고 당신이 전생에 사람들 손에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왜 진시황의 노여움을 샀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의 지위와 신분도, 가세도 말입니다. 전생에는 비참하게 죽었는데 이번 생엔 어떻게 될까요? 송위의 질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전생의 길을 답보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생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있어요, 다 인연에 왔다 인연에 가는 거죠... 송위는 아리를 떠올렸다, 아리에겐 정말 미안해요, 지난 8년간 아리를 속여온 것만 같아요. 할머니의 단호한 대답, 둘의 인연은 딱 8년 간뿐입니다. 당신은 좋은 남자예요, 아리도 자신의 길을 선택해서 나갈 겁니다. 송위가 인사를 하고 나갔을 때 아리는 옆 방에서 눈물만 흘릴 뿐이다. 할머니가 와서 말한다, 양보해 줘라... 아리는 고개를 저었고 울면서 뛰쳐나갔다.
오피스텔로 돌아왔을 때 로비 소파에 앉아 있는 예화를 본 아리는 짐작할 수 있었다, 송위의 짐을 챙기러 왔다는 것을, 이제는 완전히 자신을 떠날 시간이라는 것을... 방으로 들어갔을 때 예상대로 송위는 짐을 챙기고 있었다. 아리는 말 없이 곧 떠나갈 송위의 짐을 직접 챙겼다, 당신이 멀리 떠날 때 항상 내가 챙겨 줬잖아... 짐을 챙긴 캐리어를 내밀었을 때 송위가 말한다, 지난 8년간 당신 한 사람밖에 몰랐어, 예화가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고... 서글픈 아리의 말, 꿈이 아니야?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어... 그렁거리는 눈물을 참으며 말한다, 마지막으로 날 한 번만 안아줘, 아리의 마지막 부탁이다. 예전 하던 그대로 송위는 그녀를 안아 올려 거실로 나갔다. 그에게 안긴 채 아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웃옷을 벗어 송위를 감아 당겨 바닥에 눕는다. 마지막 유혹일까, 아님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일까... 하지만 송위는 입맞춤만을 남긴 채 매정하게 일어선다. 아리는 거실 바닥에 누운 채로 하염없이 눈물만 삼킬 뿐이다. 캐리어를 챙겨 든 송위가 방문을 열었을 때 밖에서는 예화가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에겐 차가운 이별이, 다른 한 사람에겐 새로운 시작이다. 그런 상황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만든 것이리라. 그렇게 송위와 예화가 기나긴 오피스텔 복도를 걸어 나갈 때 뒤에서 송위를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복도 끝 방, 아리가 목욕 가운을 걸친 채 두 팔을 치켜들고 있다, 그러곤 비틀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오는데... 역광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점차 가까워졌을 때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가운에는 온통 붉은색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손목에는 자해의 상흔이 선명하다. 송위가 뛰어갔을 때 아리는 그의 품에 안겨 쓰러졌다. 예화가 달려와 아리를 돌보는 사이 송위는 구급차를 부르러 전화기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리의 상태는 이미 늦은 듯하다. 8년이나 이천 년이나 사랑은 모두 같은 거예요... 예화에게 이 말을 남긴 채 아리는 숨을 거두었다.
6. 별리(別離)
우리의 꿈이 아리를 죽게 만들었어요, 우리 이제 앞으로 어떡하죠? 그렇게 아리를 떠나보낸 둘은 서로의 죄책감을 외면할 수는 없다. 다시 아리가 장만한 신혼집으로 돌아온 둘, 이제 남아 있는 전생의 추적을 마무리해야 한다. 아리가 그렇게 죽은 것처럼 예화는 왜 죽었는지... 진시황 시대에 송위가 죽자 예화도 따라 죽었다, 그리고 이제 둘은 함께 태어났다. 송위가 말한다, 막 태어난 아이가 뭘 봤는지 기억은 못하겠지만 만약에 볼 수 있었다면 자신은 예화를 봤을 거고 예화도 자신을 봤을 거라고. 송위는 형제가 없어서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했다. 그건 예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만다행이었다, 이천 년 전의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것이... 아니,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었다, 남자를 낳으면 진시황을 위해서 전쟁터로 보내지거나 아니면 장성을 쌓거나 왕릉을 짓는데 보내졌을 것이다. 여자를 낳았더라면 남자의 시체를 거두어야 했을 테니까...
사랑을 나눈 후에 그들도 우리처럼 밥을 먹고 술을 마셨죠, 회상하듯 아리가 읊조린다, 다음 날 그는 처형당하러 갔어요, 여자는 평소처럼 집안을 청소했어요, 그녀의 행동을 보면 아무도 그녀가 그날 밤 자살할 거라 생각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바닥을 쓸고 거울을 닦은 후 여자는 세 겹의 옷을 벗었다. 그녀의 새하얀 등이 드러났지만 남자는 없었다. 백포, 거울, 빗, 핀, 새 옷, 그리고 칼... 남자는 여자의 목을 애무하는 걸 좋아했다. 여자가 백포로 자신의 가슴을 감쌌을 때 남자는 없었다. 여자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남자를 기다렸다. 전국시대가 진시황의 천하 통일로 종결된 후 포로가 된 6국의 장인(匠人)들이 남자의 시체를 갖고 돌아왔다. 모두 남자의 동료들이었고 남자 역시 망국의 장인 중 한 명이었다. 이들 모두 진시황의 거대한 릉 건설에 강제 투입된 사람들이다. 진시황은 자신의 묘가 누설될까 두려워 그들을 차례대로 처형했고 이번엔 그의 차례였던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시신을 깨끗이 닦은 후 동료 장인들과 함께 그를 진흙으로 발라 생전의 모습과 똑같은 토용으로 만들었다. 남자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용 앞에서 예를 갖춘 여자는 준비한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베었다. 목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피는 가슴을 타고 흘러내려 새하얀 백옥을 선홍빛의 홍옥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토용 위로 엎드려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붉은 피는 다 마를 때까지 흘러내려 남자와 여자를 붉게 물들였다.
바깥에선 어느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한 쌍의 혼백이 될 거예요, 여자가 말했다. 난 혼백이 되고 싶지 않아, 육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난 좋아, 남자가 답했다. 애틋한 짧은 숨을 토해내며 여자는 말한다, 소망대로 우리는 육체가 되었어요, 하지만 아리는 지금 어디 있죠? 우리의 전생이 없었다면 현재의 당신의 사랑은 아리일 거예요. 남자는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전생은 무서운 꿈이었어요, 지금 역시 무서운 인연의 꿈이에요. 여자는 가만히 가방을 챙겨 일어선다. 남자가 따라 일어섰지만 이제 둘의 운명을 서로 예감한 듯하다. 이 집은 수리하면 멋질 거예요, 이 말을 남기고 여자는 밖을 나섰다. 밖에는 여전히 세찬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남자의 말에 여자는 담담하게 답한다, 글세요, 난 당신을 멀리서 바라볼 거예요, 우리가 서로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죠. 안타까운 남자의 말, 몹시 사랑했지... 여자는 단호하게 답한다, 꿈속에서요... 그리고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발 가지 못하고 돌아선다. 빗속에서 둘은 격하게 껴안았고 뜨거운 마지막 키스를 나눴다. 그렇게 여자를 놓아주며 남자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삼킬 뿐이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차를 모는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차창 위로 빗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감내하고자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겨우 짓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지운다. 주기적으로 와이퍼가 비의 커튼을 걷어내어 그런 그녀의 얼굴을 되살린다. 그렇게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채로 이 영화의 주제가인 "몽중정(梦中情)"이 구슬프게 울려 퍼지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진시황은 역사에서나 외전, 또는 구전을 통해서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진시황이란 존재는 단순히 흥미 있는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담론 수준으로 격상된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진시황에 대한 상반된 논의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3대 역사 소설이라고 한다면 <열국지(정식 명칭은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재주가 쓰고 감영사에서 출간한 '평설 열국지' 10권이 있다.)>와 <초한지(楚漢志 또는 초한연의(楚漢演義)라고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정비석, 유재주, 김홍신, 이문열 등이 소설로 출간한 바 있다.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 초한지'도 유명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삼국지(三國志, 역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라고도 불리며 나관중의 그것을 이문열이 평역하고 민음사에서 출간한 10권짜리 '삼국지'가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하다.)>일 것인데, 이 중 <열국지>와 <초한지>가 모두 진시황과 관련이 있다. <열국지>는 진시황의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 550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그리고 있으며 <초한지>는 천하통일이라는 위대한 과업에 걸맞지 않게 짧은 시대를 영위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진나라 말기의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정확하게는 전한)를 세운 유방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초한지> 자체가 저자가 명확하지 않고 여러 버전이 존재하지만(그래서 '초한지'라는 제목 자체도 사실 고우영 화백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진시황 암살 시도부터, 심지어 통일 전 진시황이 권력을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여불위부터 다루는 버전도 있기에 <초한지> 역시 진시황과 무관할 수 없다.
3대 역사서 중 2권씩이나 연관이 있는 이런 진시황이니만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진시황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상당히 많이 붙는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변증법에 기반한 다섯 단계의 역사 발전론을 내세웠다. 즉, 원시 공산주의, 고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 순으로 향하는 진화적 역사 발전론이 그것이다. 물론 이 이론은 지금에 와서 보면 매우 거칠고 조야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특히 봉건제에 대한 일반화는 철저한 서구 중심적 입장에서 본 시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사에서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동양의 경우는 봉건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부터 문명의 거대한 한 축이었던 중국의 경우 기원전부터 이미 중앙 집권제가 확립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계 최초로 강력한 중앙 집권제를 확립한 이가 바로 진시황일 것이다. 진시황의 천하 통일이 단순히 영토만의 통일이 아니라 실질적 통일이라 보는 이유는 중앙 집권제의 확립 때문인데 이는 중앙 집권이라 불릴만한 제반의 제도들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하다. 진시황은 통일 후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군현 제도를 도입하여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으며 문자와 도량형, 화폐를 통일시켰다. 또한 도로 건설과 북방 이민족 침략에 대비한 만리장성 구축을 시작했다. 요즘 시대야 이런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기원전에, 게다가 전국 7웅이 활약했던 거대한 땅덩어리의 중국을 생각한다면 앞서 언급했던 이런 제도 정비는 대단히 큰, 어찌 보면 위대한 과업들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이 각각의 과업에 모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 것이며 평가에 따라 진시황이 위대한 성군으로 간주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한 영화 <진용>의 주인공이었던 장예모가 2002년에 만든 <영웅: 천하의 시작>도 진시황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부각하는 영화에 포함될 것이다(물론, 솔직히 이안이 만든 <와호장룡>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영화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이런 위대한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희생되어야 했을 것이다. 진시황 자체가 출생이 비천하고 성품이 포악한 측면도 있어서이겠지만 이런 위대한 과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행해진 수많은 폭정들은 익히 알려진 바다. 물론, 그 대표적인 것이 "분서갱유"일 것이다. 게다가 통일의 위업을 과시하기 위하여 거대한 건축 및 토목 공사를 진행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아방궁과 만리장성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원들이 부역으로 강제 동원되어야 했기에 백성들의 원성은 자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불멸을 염원했던 진시황은 자신의 사후에 대한 염려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염원과 염려에서 비롯된 두 가지 사업이 불로장생 약을 구하기 위한 동남동녀의 파견과 거대한 무덤 건설이다. 그리고 이 두 사업이 바로 오늘 소개한 <진용>과 <몽중인>의 모티프가 되는 것이다.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다. 영원한 제국을 갈망한 진시황은 서복의 제안으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500을 뽑아 동쪽으로 파견했는데 서복이 직접 이들을 이끌었으며 이들의 경유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폭넓게 이어졌다고 한다. 서복 일행은 제주도에도 들렀는데 그래서 제주도에 "서복 기념관"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국에서 징발된 동남동녀 중에 '동아'라는 아이가 있었다는 가정으로 영화 <진용>은 출발한다. 그리고 거대 무덤의 건설은 병마용갱이나 토용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진용>과 <몽중인>이 공통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모티프다.
동남동녀로 발탁된 동아와 황릉 건설 책임자였던 몽천방의 금지된 사랑, 사실 필자가 소개한 줄거리는 시간을 역순으로 뒤집은 것으로, 영화에서는 시간 순대로 진시황 시대의 동아와 몽천방의 만남, 1930년의 주리리와 몽천방과의 만남, 마지막으로 1990년의 만남 순으로 전개된다. 왕의 호위무사로서 올곧고 강직하여 충성을 결코 저버릴 것 같지 않던 주인공 몽천방은 어느 날 운명의 상대를 만나 금지된 사랑을 범함으로써 왕명을 어기게 된다. 그의 성격 그대로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운명의 여인 동아가 먹여준 불로장생 약으로 인해 그는 죽음이 아니라 불멸이라는 선고를 받은 채 토용이 되어 병마릉에 갇힌다. 불에 타 죽으면 혼백으로라도 만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동아는 몽천방을 불멸의 영역에 가두고 자신은 환생을 기약한다. 2천 년이 흘러 동아는 약속대로 주리리로 환생했고 잠든 몽천방을 깨웠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상기시키려는 남자와 기억할 수 없는 여자, 그런 안타까운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게다가 몽천방의 지극정성으로 동아가 자신을 기억하게 되는 순간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 안타까움은 배가(倍加)된다. 동아는 다시 환생을 약속하지만 그게 또 언제일까? 어쩌면 몽천방은 아무런 기약도 없이 마냥 동아를 기다려야만 하는 영원의 반복에 갇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운명이라면, 그런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더라도 아깝지 않을 그런 운명의 여인이라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어두운 터널도 기껍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다시 환생하는 순간은 어느 노래 가사처럼 캄캄한 어둠 그 오랜 기다림 속으로 햇살처럼 그녀가 내리는 순간일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두 연인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그리며 그 안타까움을 애절하게 전달한다. 특히, 엽천문이 부른 영화의 OST <분심이화(焚心以火, 노래: 엽천문)>가 영화 곳곳에, 중요한 시점에 흘러나와 영화에서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진용>과 마찬가지로 <몽중인> 역시 토용이 주요 소재가 된다. 자신의 사후에도 불멸의 제국을 꿈꿨던 진시황은 자신의 거대한 무덤을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전국의 장인들을 동원시켰다. 특히, 망해버린 6국의 장인들도 동원되었는데 <몽중인>의 송위 역시 망국의 장인 중 한 명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송위의 전생은 바로 토용 제작을 포함하여 황릉 건설과 관련된 기술 전문가이자 아티스트였을 것이다. 그리고 <진용>의 몽천방은 호위무사가 되기 전 무덤 건설 책임자였기에 몽천방이 송위를 비롯한, 포로로 잡힌 이들 6국의 장인들을 관리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두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진시황은 사후 자신의 무덤이 훼손될까 두려워 황릉의 위치를 비밀에 부치기를 바랐기에 이들 장인들을 차례대로 처형시켰으며 <몽중인>의 이야기는 이런 배경 하에 시작된다.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하지만 남자는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상태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상시처럼 사랑하고 춤을 추고 식사를 한다. 죽음을 앞뒀기에 이들의 이런 행위들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다소 과장되고 왠지 어색해 보이며 알게 모르게 슬픔이 묻어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죽기 전날, 여자는 죽음 직전까지도 여전히 덤덤해 보이려는 남자에게 생이별을 앞두고 장난치지 말라며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여자는 한쌍의 영혼으로 남고자 했지만 남자는 감각을 사랑했다, 그녀의 채취와 향기, 부드러운 살결을, 손으로 전해지는 그 감촉을... 그래서인지 모른다, 여자는 남자의 바람을 이루고자 그를 토용으로 만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남자의 바람대로 2천 년이 흘러 육체로 환생한다. 남자의 토용이 발견되는 순간, 그 시점에서의 동년, 동일,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말이다. 인연에 오고 인연에 가듯 그들은 기어이 다시 만나고 이천 년 전처럼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 아니,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추리물처럼 자신들의 전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랑이 차례차례 되살아나는 것이리라. 하지만 복원된 두 번째 사랑은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 버렸고 둘 다 그 죄책감을 지울 수는 없다. 그렇게 둘은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그런 상투적 멘트가 결코 상투적일 수 없는 가슴 에리는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들은 평생을 서로를 가슴에 품은 채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만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른다, 이들의 사랑은 몇 백 년이, 또는 몇 천년이 흐른 다음 생에서 환생을 통해 다시 부활할 지도...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두 영화 모두 진시황과 토용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환생을 통해 이어지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필자의 경우 두 영화를 처음 본 지가 25년이 넘은 듯하다. 당시에 봤을 때는 온전히 사랑 이야기를 다뤘던 <몽중인>보다 로맨스와 인디아나 존스 류의 액션 형식을 갖춘 <진용>을 더 재미있게 봤었고 기억에 더 남았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최근에 두 영화를 다시 봤을 때에는 <몽중인>의 그 애절하고도 가슴 에리는 사랑 이야기가 더 와 닿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기다려 다시 만났건만 어쩔 수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그 애절함의 서정이 필자를 새롭게 건드렸다는 사실 자체가 그만큼 필지도 나이를 먹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리라. 그런 애절함은 프랑스의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자끄 드미 감독, 까뜨린느 드뇌브 주연, 1965)>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이별을 받아들이며 떠나는 예화와 빗물이 흘러내리는 차장 너머로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아픔을 숨기는 그녀의 얼굴이 줌인되면서 흘러나오는, 다소 샹송 느낌이 묻어나는 <몽중인>의 OST <몽중정(梦中情, 노래: 임청하, 주윤발)>에서 <쉘부르의 우산>의 마지막 장면과 그 OST <I Will Wait For You>가 저절로 떠올랐더랬다. 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피천득의 수필 <인연>을 떠올리기도 했다. 운명적이어야 했던 송위와 장예화의 사랑은 운명도 어찌하지 못하는 이별로 끝난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면 그저 고개를 떨굴 수밖에는... 아리 할머니의 말대로 그저 인연에 왔다가 인연에 가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면 말이다. 물론, <진용>에서의 기다림도 가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느낌은 <몽중인>과는 사뭇 다르다. 기약 없을 연인의 환생을 반복해서 영원히 기다려야만 할 불멸의 남자, 그 기다림의 영원한 반복은 어찌 보면 하나의 '선고(宣告)'와 같은 느낌이다. 이는 자신의 온 삶을 뱀파이어 소녀의 피받이로 받쳐야만 할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영화 <렛 미 인(Låt den rätte komma in,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셰레 헤데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주연, 2005)>의 오스칼의 정서와 일정 부분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영화 <몽중인>과 <진용>은 진시황, 토용, 그리고 환생이라는 모티프와 이 천년을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지만 영화가 주는 잔상과 여운은 사랑에 대한 사뭇 다른 애증으로 다가온다.